권정민 “매일 식물의 시점과 대사를 상상했어요”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식물들이 인간에 대해 이런저런 논평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그림책을 만들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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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늘 풍경처럼 놓인 식물들을 본다. 반대로 식물의 시선으로 우리 인간을 본다면 어떨까? 권정민 저자의 그림책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에는 식물들이 관찰한 우리의 모습이 담겼다. 화분 하나를 고르기 위해 수십 가지의 질문을 하는, 그러고도 식물의 이름은 곧 잊어버리고 마는 인간의 모습. 바쁘고 지친 와중에도 삶의 공허를 채우려 애쓰거나 자신을 돌보는 것도 잊을 만큼 노력하는 인간의 모습은 연민을 불러일으킨다. 무심하거나 섬세한, 이상하지만 다정한 우리 삶의 갈피들은 거칠거칠한 잎사귀의 뒷면과 닮았다. 독특한 유머와 부드러운 톤의 그림으로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권정민 저자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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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그림책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가 출간되었습니다.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  에 이어 작가님만의 참신한 접근이 좋았어요. ‘소포모어 징크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창작자에게 두 번째 작업의 의미는 특별하지 않을까 합니다. 성공적으로 탈출하신 것을 축하드리며, 소회를 밝혀 주시겠어요?

 

첫 책이 어렵게 나와서인지 두 번째 책은 그보다는 덜 어려울 것이라고 조금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책을 만들 때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겪게 됩니다. 최초의 생각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는 책이 될 수 없고 생각을 전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찾아내야 하는데, 저는 그 방법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의 경우 식물 화자의 태도를 어떻게 취해야 할지가 무척 고민이었습니다. 식물이 인간에 대해 너무 잘 아는 것도 거북한 느낌이 들고 그렇다고 너무 천진한 태도는 낯간지러운 느낌이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선에서 알 듯 모를 듯한 식물 화자만의 어조를 가다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처음에는 완전히 냉소적인 톤이었다가 조금씩 수정을 거쳐 지금의 톤이 되었는데요. 다시 열어보니 아쉬운 부분도 보이지만 어쨌든 탈출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오랜 시간 저를 견뎌 주신 여러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웃음)

 

이 책을 읽고 늘 곁에 있던 반려 식물이 새삼 새롭게 보인다는 독자들이 많았습니다. 이 이야기의 실마리는 어디에서 왔나요?

 

죽어 가는 식물은 버려집니다. 사무실 밖에 버려진 화분을 품에 안고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우산을 쓰고 그의 뒤를 따라 걸으며 두 생명체의 마음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죽어 가는 식물을 살릴 수 있다고 믿는 그의 마음과 누구든 좋으니 더 살게만 해달라는 식물의 마음. 두 개의 마음이 만나서 결국 우리의 베란다가 가득 채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작은 골목길을 걷다 보면 집과 집 사이 작은 틈 사이에 놓인 화분들이 눈에 띕니다. 최소한의 공간만 있어도 식물을 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입니다. 하지만 매일 아침 물심부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때면 어쩐지 식물들이 우리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닐까, 저들의 전략에 우리가 넘어간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식물들이 인간에 대해 이런저런 논평을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이 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만약 작가님 가까이에 있던 식물이 자신이 관찰한 내용에 대해 서술한다면, 뭐라고 이야기할까요?


지금 저기서 저를 보고 있는 벵갈고무나무가 “이봐 아직도야? 7문 7답에 70시간은 걸리겠군.” 하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작업하면서도 어려운 시간을 보낼 때마다 식물들에게 감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는데요. 조금만 게으름을 피웠다 싶으면 “어이 너는 정녕 인간이냐, 겨우 이 정도에서 포기하는 거야? 쯧쯧.” 혀를 차며 한심해하는 식물들 때문에 흠칫 놀라며 자세를 바로잡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매일매일 식물의 시점과 식물의 대사를 상상하며 지냈기 때문에 증세가 심해진 면이 있습니다. 요즘도 문득 거실을 돌아보면 인구밀도보다 식물밀도가 더 높다는 사실이 섬뜩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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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사의 방식이나 채색을 보았을 때 한참 동안 꼼꼼히 여러 겹을 올리고 또 올려 완성한 그림 특유의 충만한 느낌이 듭니다. 짧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 이번 그림책의 작업 과정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식물 세밀화를 그리듯이 펜으로 선을 긋고 점을 찍으며 그려나갔습니다. 하지만 틀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경직된 선이 너무 적나라하게 들켜 버렸습니다. 식물은 살아서 말하고 있는데 그림에서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아 답답한 느낌이었지요. 이미 모든 장면을 그린 상태에서 문제를 발견한 탓에 좌절감이 컸지만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볼펜 스케치에 색연필로 부담 없이 한번 그려 본 그림이 오히려 살아 있는 느낌이 들어 이 방식으로 그리게 되었습니다. 색연필 작업도 처음이라 두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 망했는데 더 이상 망할 것도 없다, 자연스럽게만 그려 보자” 하면서 힘을 빼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그림에 빛을 넣으니 더 자연스러워 보여 많은 장면에 빛이 들어가 있는데요. 눈 밝은 편집자님과 디자이너님께서 빛과 그림자의 정점을 표지로 완성해 주셨습니다.

 

개업식이 끝난 뒤에 방치된 화분들을 포착한 장면이나 요가원의 사람들 모습 등 공감 가는 장면들이 많았습니다. 독자마다 공감의 지점이 다를 것 같지만 특히 깜깜한 사무실 홀로 환한 모니터 앞에서 엎드려 잠든 회사원의 모습에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혹시 작가님도 직장 생활의 경험이 있으신가요?


그림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는 방송작가로 일을 했습니다. 책 작업과는 달리 원고가 잘 안 써진다는 이유로 방송 시간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밤을 새우거나 책상에 엎어져 쪽잠을 자는 일도 많았습니다. 책 속의 사무실 장면은 그 시절의 경험을 담았다기보다는 늦은 밤길을 걷다가 건물 안의 식물들을 보면서 떠올린 것입니다. 희미한 사무실 불빛 뒤로 힘겹게 서 있는 식물들의 그림자가 처연하게 느껴졌어요. 있고 싶지 않은 곳이지만 별다른 수가 없으니 그냥 버티고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어쩌면 우리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마음에 오래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열대 식물들이 놓여 있는 곳은 근사해 보이긴 합니다만 식물들이 좋아할 만한 곳은 아닙니다. 그런 곳에 놓인 식물들을 보면 서커스단의 코끼리나 수족관의 돌고래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공감한 독자들이 있다면 공간과 존재의 엇갈림에 대해 ‘조금 알고 있는’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를 즐겁게 읽은 독자들과 또 함께 나누고 싶은 그림책이 있으신가요? 음악? 영화? 같이 나누면 좋을 것 같은 무언가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한동안 영화를 못 보고 지내다가 책 작업을 마치고 후련한 마음으로 <쓰리 빌보드>라는 영화를 보았습니다. 딸을 잃은 엄마가 범인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단순한 설정이지만 압도적인 주인공 캐릭터와 매 순간 예상을 빗나가는 전개로 끝날 때까지 감탄사를 연발했던 영화입니다. 특히 인간의 이해할 수 없는 복잡한 면면들을 선명하게 보여 주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  역시 식물이 화자이지만 결국 인간의 여러 가지 마음을 보여 주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시들어 가는 식물을 살려 보려고 물을 주지만 그 마음이 지나쳐 결국 과한 습도로 죽게 만드는 사람들, 식물을 원하는 것 같지만 실은 다른 무언가를 욕망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가장 단순해 보이는 사람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 복잡하고 정교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희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시종일관 시니컬한 태도의 식물 화자의 목소리를 따라가다, 문득 대상에 대해 알기 위해서 이렇게 유심히 지켜보는 것, 호기심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사랑의 본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자가 툴툴대도 밉지 않고 어딘지 정이 간 이유가 이것이었네요. 여름의 막바지에 다다른 요즘, 작가님은 무엇에 대해 ‘조금’ 알아 가고 계신가요?


요즘 저의 고민거리는 여성과 남성의 역할에 대한 것입니다. 이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눌 때면 남성들은 주로 진화심리학에 기반한 논리를 내세웁니다. 일면 동의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론의 여지를 찾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분하고 안쓰럽게 느껴질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분노와 안쓰러움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알아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제목의 책을 발견해서 읽고 있는데요,  『잠깐 애덤 스미스 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  라는 책입니다. 저의 짧은 호기심이 부디 끝까지 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권정민


작가 권정민은 첫 그림책 『지혜로운 멧돼지가 되기 위한 지침서』로 인상적인 출발을 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집을 잃은 멧돼지 가족이 인간 세상 한복판으로 뛰어들며 펼쳐지는 서글픈 아이러니는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는 작가의 두 번째 그림책이다. 시니컬한 화자의 목소리는 독특한 유머를 실어 나르고, 여러 겹 꼼꼼한 채색으로 완성된 부드러운 톤의 그림들은 적나라한 진실을 드러낸다.

 

 


 

 

우리는 당신에 대해 조금 알고 있습니다권정민 글그림 | 문학동네
그전에는 몰랐던 봄여름 신록의 폭발적인 생명력이 새삼 벅차오르지는 않는지. 물리적인 공간은 물론 마음의 빈 곳까지 그들의 아름다움과 너그러움에 기대고 있는 우리. 그들은 어떻게 인간의 삶 곳곳으로 파고든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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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