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소설 쓰기, 현실을 살해하는 행위 같아요 (G. 박민정 소설가)
이렇게 훼손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는 쓰기의 과정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 과정이 『서독 이모』에 많이 배어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글ㆍ사진 임나리
2020.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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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는 독일 통일을 현지에서 경험한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고도, 라고 운 떼는 엄마의 말이 기억날 때가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엄마는 가끔 이모 흉을 봤다. 1990년 이후였다.


- 그러고도, 여전히 전화하면 ‘서독 이모’야, 라고 하지 않니, 걔는.


독일 이모라고 하지 않고.


삼청동에서, 나는 어쩌면 이모가 그렇게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나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거의 없다시피 한 세대에 속해 있었고, 연일 연내 북한 1인자의 서울 방문이 성사될지도 모른다는 뉴스가 들렸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기에, 이모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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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박민정 소설가 편>


오늘 모신 분은 “뭉툭하지 않은 작품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하는 소설가입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사회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그려내는 분이에요.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 『미스 플라이트』 , 『아내들의 학교』 , 그리고 『서독 이모』 를 쓰신 박민정 소설가입니다.

 

김하나 : 『서독 이모』 를 가지고 오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하는데요. 어린 시절에 서독, 동독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기억이 나시나요?


박민정 : 네, 아무래도 어린 시절에 ‘우리 통일의 모델은 독일이다’라고 하면서 학교에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영상을 보여주시고, 그러면서 서독 동독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요. 사실 서독, 동독 시절은 모르고 서독, 동독이 존재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은 나는데요. 소설 속에도 등장하듯이 ‘서독’ 하면 사람들이 광부 삼촌, 간호사인 아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었죠. 그래서 소설에서도 서독이라는 이름 하나만 듣고 간호사나 광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 편견이 너무 힘들었다는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저도 그런 식으로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것 말고는 사실 들을 기회가 없었죠, 어린 시절에는.

 

김하나 : 소설을 쓰실 때 항상 제목을 먼저 지어놓으신다고 들었는데요. 제목을 먼저 지어놓으실 때는 대충의 이야기를 구상해두시나요?


박민정 : 어느 정도 이야기가 꾸려졌을 때 제목이 나오는 것 같아요. 저도 제목을 바꾸는 경우가 있는데,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이건 그냥 『서독 이모』 여야 되겠다’ 싶었어요.


김하나 : 『서독 이모』 는 한 번 듣는 순간 뇌리에서 떠나지를 않아요(웃음). ‘독일 이모’도 아니고 ‘서독 이모’잖아요(웃음).


민정 : 사실 이런 이야기를 언젠가 스쳐서 들었던 거예요. 실제로 서독에 사셨던 이모가 있는데, 독일이 통일된 이후에 아직도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서독 이모’라고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 분은, 이 소설의 이야기와는 조금 다르게, 동독이 되게 못 사는 나라이고 서독을 더 못 살게 만든 결과가 통일이라고 생각을 하시고 서독 출신이라는 것에 굉장히 자부심을 가지고 ‘나는 서독 이모야’라고 이야기를 하신다는 거예요.


김하나 : 아, 그런 이야기를 어디에서 들으셨군요.


박민정 : 네, 그때 ‘서독 이모’라는 조어가 저한테 굉장히 꽂혔던 것 같아요.

 

김하나 : 글을 쓰시다 보면, 글이 점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데로 나아가기도 하잖아요. 이번에는 어떠셨나요?


박민정 : 처음부터 짜놓은 각본 같은 게 있었다면 ‘자신을 ‘서독 이모’라고 칭하는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라는 것을 생각을 해봤고요. 이후에 제가 제목과 맞춤하는 이야기를 구상하기 위해서 생각해둔 이야기는, 실제로 제가 2010년에 ‘독일 통일 20주년 세미나’를 봤었어요.


김하나 : 아, 이 책의 초반에 나오는 것처럼요.


박민정 : 네. 제 경험이 많이 들어간 작품인데요. 그때 저희 학교 독문과 교수님이 주최를 하셔서 세미나를 했었어요. 그때 저는 ‘동독 지식인들의 고통사’라는 말을 처음 들은 거예요. 소설 속의 화자가 그렇듯이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김하나 : 그런 표현이 나오죠. ‘자본주의가 이 정도로 악랄할 줄은 몰랐다.’


박민정 : 네, 그 표현도 실제로 세미나에서 비슷하게 들었던 표현이고요. 이후에 제가 이 책을 쓰면서 참고했던 『독일은 통일되지 않았다』 라는 일종의 지식인들의 고발 같은 것을 담은 책이나 ‘독일 통일과 지식인들의 역할’ 같은 논문들을 보면 통일 이후에 동독 지식인들이 ‘이 통일이라는 것이 우리가 결코 원하지 않은 모델이었다’라는 걸 생각하면서 힘들게 살았다는 이야기들이 나와 있어요. 그리고 세미나에서 동독의 교수였던 분이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통일이 되고 나서 자신은 교수 자리를 빼앗겼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자신의 사상 같은 것들이 가치 없는 것들로 훼손되었다고 육성으로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걸 들으면서 굉장히 놀랐고 그 이야기와 『서독 이모』 라는 제목을 붙여보고자 했던 거죠. 그리고 그것과는 상관없이, 남편이 실종된 줄 알고 살았는데 나중에 어딘가에서 살아있는 것으로 발견되는...


김하나 : 이건 스포일러 아닌가요, 괜찮나요(웃음)?


박민정 : 음...(웃음)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고 알고 있어요.

 

김하나 : 주인공 화자에게 어렴풋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서독 이모’의 남편, 그러니까 이모부죠. 이 ‘클라우스’라고 하는 인물은 중국에서 체류하고 있던 한국 아이였던 거죠?


박민정 : 그렇죠.


김하나 : 그랬는데 동독으로 가서 공부를 하고 지식인이 된 사람이었고, 또 ‘클라우스’에게는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박민정 : 네.


김하나 : ‘서독 이모’라는 말이 작가님 속에 들어가고 나서, 세미나를 듣고, 이런 이야기들이 들어오고, 그러고 난 뒤에 이런 등장인물들을 설정하잖아요. 이야기를 구성하시다 보면 ‘어떤 인물이 저쪽에서 걸어오는 것 같아’ 하는 과정이 있겠군요.


박민정 : 그렇죠. 그래서 아까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에 생각했던 것에서 빗나가기도 하고요. 그런데 저는 그 과정을 굉장히 재밌다고 느끼거든요. 인물들을 새로 추가하고 이야기를 새로 만들다 보면 항상 빗겨가거나 미끄러져서 굴러 떨어지게 되는데, 이 소설도 역시 그런 지점이 있었죠.


김하나 : 흥미로운 것은, 『서독 이모』 는 빗나가고 미끄러져 떨어지는 과정들 자체가 소설을 구성하고 있어요.


박민정 : 네.


김하나 : 이전의 『미스 플라이트』 라든가 『아내들의 학교』 와 다르게, 화자가 ‘이 인물을 이렇게 해볼까, 이들에게는 이런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쓰려다가 실패하는 모습이 계속 등장합니다. 이 소설의 장르를 이야기하자면 ‘본격 대학원 소설’(웃음), 또는 ‘쓰기에 관한 쓰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민정 : 네(웃음).


김하나 : 보통은 쓰기의 과정과 미끄러져 떨어지는 과정은 생략하고 매끈해진 이야기를 꺼내놓잖아요. 그런데 이것을 이렇게 드러내신 것은 어떤 이유가 있을까요?


박민정 : 처음에는 내가 직접 동독 지식인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놀라움 같은 것들이 소설 속에 많이 반영이 됐어요. 그래서 제가 겪은 일들을 소설 속의 화자가 많이 겪고 있고 저를 많이 닮은 인물이 됐는데요. 이 사람에게도 이모는 친족 관계로서 어렸을 때부터 있었지만, 자신이 지식인에 가까워지면서 각성하는 과정 같은 건 대학원 들어가서 공부하고 세미나 들으면서 됐던 거잖아요. 이모가 말해줘서가 아니라. 이모와 이모부에게 어떤 함의가 있었는지는 나중에 만난 대타자들을 통해서 알게 된 거니까, 저는 제가 받았던 충격이나 놀라움 같은 것들을 화자한테 개입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를 닮은 화자가 됐고요. 이모가 화자한테 ‘통일에 대해서 써봐라’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제 지도 교수님이 실제로 저한테 하셨던 말씀이었거든요.


김하나 : 화자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즉각적인 반응이 ‘화가 났다’는 거였어요.


박민정 : 저도 그랬어요. 약간 ‘무슨 소리지? 나를 뭘로 보고’ 이런...(웃음)


김하나 : ‘뭐지? 21세기에 갑자기 나한테 통일에 대해서 써보라니.’ (웃음)


박민정 : 통독 20주년 세미나가 끝나고 하신 말씀이었어요. 되게 진지하게 ‘남북 통일에 대해서 써봐라.’ 그래서 ‘진짜 소설에 관심이 없어도 그렇지...’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요. 소설에 ‘드라마투르기’라는 말이 몇 번 나오잖아요. 내가 알게 되는 지식들, 정보들, 사회적인 사실, 역사적인 사실 같은 것들을 드라마투르기하는 과정에 있어서 ‘나는 쓰기의 윤리 같은 것들에 얼마나 직면해 있는가’를 고민하는 시간이 있었던 것 같고요. 저랑 닮은 화자이다 보니까 쓰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김하나 : 통일에 대해 써보라고 했던 교수님은 『서독 이모』 를 읽으셨나요(웃음)?


박민정 : 이전에는 선생님한테 소설을 많이 보내드렸는데 이번에는 못 보내드렸어요. 선생님이랑 저랑 겪었던 일들이 많이 나와요. 선생님이 이 소설을 읽으시면 저를 고소하시지 않을까(웃음)...

 

김하나 : 『아내들의 학교』 에 실린 「행복의 과학」과 「A코에게 보낸 유서」 연작을 보면, 일기라든가 기사라든가 사료를 쓰고 때로는 일기를 발표하는 과정에 대해서 나오는데요. 일기라는 것은 아주 내밀한 것이고 ‘개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공론화해도 되는가’ 같은 윤리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나오잖아요. 아까 교수님의 이야기가 들어갔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그런 여러 생각들이 『서독 이모』 를 쓰는 데 바탕이 됐을 것 같아요.


박민정 : 네, 작품을 쓸 때마다 ‘이것을 어떻게 서사화할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요. 저도 어디에서 들은 이야기나 실제로 본 이야기들을 많이 드라마적으로 구성을 하다 보니까. 소설 쓰기라는 것 자체가 일종의 현실을 살해하는 행위라는 생각을 하거든요. 풍경이라든지 실제로 있는 일 같은 것들을 항상 훼손하고, 그리고 인물들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 보면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가 ‘인물의 대상화’라는 것을 감수해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반드시 대상화될 수밖에 없고 현실이라는 것은 왜곡될 수밖에 없고, 그런 장르이고 그런 쓰기의 고통이 있다는 것을 항상 실감하고요. 이 ‘윤리’라는 게 도덕이라는 말에 가깝다기보다는 ‘나는 어떻게 이 쓰기에서 생존을 할 것인가’라는 생존 방식에 관한 이야기라고 느껴져요. 이렇게 훼손되고 왜곡될 수밖에 없는 쓰기의 과정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그 과정이 『서독 이모』 에 많이 배어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김하나 :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라는 부분을 조금 더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박민정 : 제가 실제로 알고 있는 인물을 소설 속에 등장시킬 때, 그 사람들이 겪은 고통이라든지 고뇌 같은 것들을 제 멋대로 드라마로 만들다 보니까 왜곡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것들을 피하기보다는 제가 하는 작업이라는 것이 매우 순수하고 진정한 작업이라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타인을 훼손하고 왜곡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받아들이면서 ‘하지만 어떻게 내가 그것을 의식할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고요. 그렇게 생각하는 과정이 살아남으려고 애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서독 이모박민정 저 | 현대문학
“일상의 위협보다는 더 먼 곳을 대상화하며 어떤 일이 있어도 훼손되지 않을 고결함 같은 것을, 아직은 꿈꾸”며 글을 쓴다는 박민정의 고민들이 그대로 담긴 것으로, 이번 소설에는 역사?사회?정치적 현안까지 다양한 고민들이 소설 속 녹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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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