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 사람의 등을 팡팡 쳐가며 깔깔깔, 배가 뒤집어지게 웃으며 함께 보는 만화의 맛도 좋지만, 조용한 저녁 혼자 앉아 종이 위의 선들을 곱씹어 보는 만화가 어울리는 요즘입니다. 천 개의 문장보다 더 많은 말을 품은 한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내 안에 숨어있던 대답들이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만화. 다가오는 따뜻한 계절을 더 반가이 맞을 수 있도록, 웅크린 시간을 가만히 토닥여주는 만화를 추천합니다.
『스피닝』
틸리 월든 글그림, 창비
가족들의 부족한 관심, 학교에서의 따돌림,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뒤로하고, 틸리는 오늘도 링크 위에 섭니다. 언뜻 매일 똑같은 훈련, 똑같은 하루를 지루하게 보내는 것 같지만 좋아하는 상대에게서 답이 돌아오는 순간에 대한 희열, 성취를 위해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훈련이 짐으로 느껴지는 순간들을 격렬하게 지나고 있지요. 저자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는 『스피닝』 은 흔들리는 마음과 제멋대로인 몸에 속수무책이었던 그 시절을 건너온 이들에게 인사를 전합니다.
『우두커니』
심우도 글그림, 심우도서
사랑으로 자신을 키워준 아버지를 기억하는 딸은 결혼 후 고령의 아버지와 함께 삽니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치매가 왔습니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아버지의 얼굴, 행동, 말투에 혼란을 겪는 부부. 승아는 낯설어진 아버지에 마음을 다치고 속상한 한편 무심했던 스스로를 꾸짖습니다. 이 이야기 역시 저자 스스로의 경험을 풀어낸 것이라 더욱 진솔하게 다가옵니다. 이제는 고령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임을 알기에 끝으로 갈수록 장면 장면이 더 사무치게 와 닿네요.
『내 남자는 곰』
뱅상 부르고 글그림, 진선북스
삶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그 의미를 얻는다…고 하셨던가요. 그렇다면 ‘삶’의 자리에 ‘사랑’은 어떨까요, 선생님. 네, 곰과 사랑에 빠지면 우리의 인생은 불확실해집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황홀한 춤도, 덩치에 걸맞은 안온감을 주는 품도, 열렬한 구애도, 한순간 신기루처럼 행방이 묘연해질 수 있습니다. 영화 같은 만남과 뜻밖의 이별, 그 반복 속에서 그녀가 정말로 찾고 있었던 건 무엇일까요? 단순한 드로잉과 간결하면서도 강렬한 색채로 구성된 서사는 많은 말을 하지 않지만 읽는 이에게 진짜 사랑의 의미를 떠올리게 합니다.
박숙경 (도서MD)
안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