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한 독자로서, 서점에서 일하는 도서 MD로서 살짝 속 상할 때가 있습니다. ‘받기 싫은 선물 1위는 책’이라는 기사를 접할 때죠. 저는 선물로 책 받을 때가 가장 즐거웠거든요. 특히 손편지와 함께 받는 책에서 감동을 받곤 했습니다. 물론 선물로 책을 받더라도 기분이 썩 유쾌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책이라는 형식이 싫어서가 아니라, 그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이 저와는 크게 상관이 없어서였죠. 모든 선물이 그러하듯, 받는 사람에게 필요한 걸 헤아릴 수 있다면 그 선물은 실패하지 않을 겁니다. 쉽지만은 않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책 중에서도 막상 선물했을 때 받는 사람이 별로 반기지 않을 도서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선물하기 좋은 책을 꼽아봤습니다.
1. 표지가 아름답다.
2. 특정한 주제가 아니라 누구나 삶에서 마주할 수 있는 문제를 다룬다.
3.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차적으로 읽을 필요가 없다. (어디를 펼치더라도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문장이 있다.)
4. 이 책을 계기로 다른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것들』 (정재찬 저 | 인플루엔셜)
『시를 잊은 그대에게』 정재찬 교수와 함께 시를 읽어가는 특별한 시간으로 초대합니다. 시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냐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시는 일상과 맞닿아 있고,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쓰여 있습니다. 저자는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는 그것 하나만 있어도 의외로 버텨지는 게 삶이라고 씁니다. 바꿔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이 책 한 권만 있어도 의외로 버텨지는 게 삶이라고. 책에 실린 시를 함께 음미하면, 마음이 홀가분해집니다.
우리가 삶을 버티는 데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그것 하나만 있어도 의외로 버텨지는 게 삶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나를 위로해주는 가족만 있어도, 아, 그리고 무엇보다도, 희망이 있으면 우리는 버틸 수 있습니다. 비정규직이어도, 아직 취업을 못하거나 심지어 직장을 잃었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힘, 그 희망이 있다면 우리 삶은 견딜 만해집니다. ‘아 이것마저 없다면’ 하며 지켰던, 삼겹살에 소주 한잔만으로도 단군 이래 최대 위기라던 그 환란을 이겨낸 게 우리들이지 않습니까. (23쪽)
『내가 원하는 것을 나도 모를 때』 (전승환 저 | 다산초당)
삶이 지치고 힘들 때 기댈 사람, 장소가 있나요? '책 읽어주는 남자' 전승환 저자는 책에 기댄다고 합니다. 수많은 책을 읽으면서 모은 문장을 이 책 한 권에 담았습니다. 이 책을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어느 쪽을 펼치든 당신의 가슴을 뛰게 하는 아름다운 문장을 만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는 매일 참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물론 반복되는 일상에 지칠 때도 있고 힘든 일도 많지요. 그러나 반짝이는 작지만 소중한 순간들도 분명히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겠지만, 문득 ‘아, 나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면, 문득 주변에서 반짝이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정말 너무나도 잘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180쪽)
책에도 유행이 있습니다. 단행본의 주간지화 현상이 심해진 요즘, 10년이라는 세월을 버틴 책이라면, 충분히 ‘고전’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요? 이 책이 바로 그렇습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을 알기 쉽게 풀어쓴 이 책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이며, 불안하고 우울할 때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프로이트도 대단한 사상가지만, 정도언 저자의 설명과 비유에 무릎을 탁 치게 될 겁니다.
근본적으로 불안, 공황, 공포는 심리적 문제입니다. 뇌의 문제가 일부 있지만 심리적 이유로 심해진 경우에는 뿌리가 되는 심리적 문제를 찾아내야 합니다. 우선 인생이 장밋빛이어야 한다는 환상을 버리세요. '장밋빛 인생'이라는 말이 있는 것은 인생이 결코 장밋빛이 아니라는 역설입니다.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받아들이고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불안하다는 것은 자아가 나에게 불안의 원인을 찾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를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원인을 찾으려고 할 때, 많은 문제들이 풀립니다. 증상에만 집중하지 말아야 합니다. (102쪽)
『야생의 위로』 (에마 미첼 저 | 심심)
『야생의 위로』를 쓴 에마 미첼은 25년 동안 우울증에 시달려 왔습니다. 우울증과 맞서기 위해 저자가 택한 방법은 산책이었습니다. 숲속 산책은 그 어떤 치유 방법보다 효과가 높았습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숲속이나 들판을 산책하도록 권합니다. 큰 걱정 없이 평온한 삶이 이어질 때도, 우울과 불안으로 마음이 힘들 때에도 자연과 동행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삶을 충만하게 합니다. 이 책에는 우울증의 다양한 양상과 저자를 위로해준 자연의 모습을 글과 그림, 사진이 담겼습니다. 종이와 잉크로 만들어진 항우울제, 『야생의 위로』 입니다.
자연 속에서 보낸 시간은 올해 나의 부서진 정신을 치유해주었다. 3월의 가장 암담했던 날, 내 생각을 되돌리고 나를 자살의 목전에서 붙잡은 것은 도로 중앙분리대에 있던 은은한 초록빛을 띤 묘목이었다. 지난 열두 달은 힘겹다 못해 비현실적이고 끔찍한 시간이었다.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내 마음은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였지만, 정말로 쓰러질 것 같을 때마다 어느 새의 모습이나 숲에서의 짧은 산책이 최악의 우울증 증세를 피해 갈 수 있게 해 주었다. 이 사실은 나에게 엄청난 위안을 준다. 야생의 장소는 내게 꼭 필요한 약이자 안전망과도 같다. (252쪽)
손민규(인문 PD)
티끌 모아 태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