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명의 석학에게 문명의 좌표를 물어온 저널리스트 안희경이 『오늘부터의 세계』를 통해 그간 인류의 미래에 대해 전방위 비평을 해온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제러미 리프킨, 원톄쥔, 장하준, 마사 누스바움, 케이트 피킷, 닉 보스트롬, 반다나 시바. 어제까지와는 다를 오늘부터의 세계에 대한 갈급함을 가지고 7명의 석학에게 질문을 던졌다.
위기의 원인은 무엇이고, 인류 앞에는 어떤 선택지가 놓여 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올 우선적인 변화는 무엇인가. 대부분 이동 제한령을 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인터뷰는 온라인 화상이나 전화, 혹은 몇 차례의 왕복 서한으로 이루어졌지만 코로나19라는 공통 경험이 인터뷰에 어느 때보다 짙은 현장감을 불어넣었다. 위기의 원인을 날카롭게 진단하고 임박한 질서를 대담하게 상상할 수 있는 통찰로 가득하다.
안희경 작가는 우리 문명의 좌표를 조망하기 위해 놈 촘스키, 재레드 다이아몬드, 장 지글러, 스티븐 핑커, 지그문트 바우만 등 세계 지성들을 직접 만나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를 집필했고, 이후 『문명, 그 길을 묻다』, 『사피엔스의 마음』까지 3부작 기획 인터뷰집을 완성했다. 이외현대미술가들과의 대화를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에 담았고 샬럿 조코 백의 『가만히 앉다』, 틱낫한의 『우리가 머무는 세상』, 사쿙 미팜의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 등을 번역했다.
『오늘부터의 세계』가 올해 3월에 기획이 들어가서 7월에 출간되었으니, 책이 굉장히 빠르게 작업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경향신문>에 연재 후, 단행본 작업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보통은 연재를 마치고 책 출간을 결정한 다음 다시 전 과정을 복기하는 1년 여의 시간을 보냅니다. 깊게 숙고하고 다시 정리하는 단계를 밟아온 것인데요. 이번 기획의 경우는 출간을 서둘렀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내용이고, 우리들이 선택하고 결정해야 하는 중요한 정책 사항이 이어지고 있어서요. 지면의 한계 때문에 신문에 담지 못한 내용까지 포함해 40% 정도 원고를 추가해 책 작업을 했습니다. 다행일 수도 있고 미련한 일일 수도 있는데, 제가 작업하는 방식이 매우 저효율적입니다. 영어로 진행한 인터뷰 녹취를 풀어 일일이 번역을 한 다음에 1차, 2차, 3차 편집까지 진행합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뷰에서 오간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버리지 못하는 염려 덕분에 책으로 묶는 작업에서 속도를 낼 수 있었습니다.
연재를 진행하는 동안 독자들의 피드백도 받으셨을 텐데요.
연재를 진행하는 동안에 정부에서 코로나 뉴딜 정책을 발표했고, 처음에 나온 대안이 미흡하다 여겼기에 책에서는 제러미 리프킨의 그린뉴딜, 장하준의 불평등을 완화하는 제도 보안으로서 미국식 뉴딜에 대한 내용을 강조했습니다. 우리의 취약함을 보완하도록 코로나 뉴딜의 방향이 정해져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 힘을 보탰다고 생각합니다. 그 밖에 마사 누스바움과 원톄쥔의 인터뷰에서 혐오와 새로운 세계화의 가능성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는 독자들도 있었고, 특히 반다나 시바의 인터뷰를 읽고 경제구조와 우리의 삶의 방식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독자분의 피드백이 기억이 납니다.
제러미 리프킨, 원톄쥔, 장하준, 마사 누스바움 등 7명의 인터뷰를 진행하셨어요. 인터뷰이를 고른 기준은 무엇이었나요?
인터뷰이 선정 과정은 기획 전체의 기조와 틀을 짜는 과정과도 같습니다. 고심을 할 수 밖에 없죠. 그런데 아무리 고민한다고 해도 이 구성은 가능성 제로(0)에서 시작해요. 섭외라는 절대적인 변수가 도사리고 있으니까요. 코로나19 위기는 2008년 위기와는 규모 면에서 비교할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전 지구를 위협하는 요소였고, 기획을 시작할 당시 이미 세계화 사슬이 끊어져 유통뿐만 아니라 생산 자체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위기에 대한 저의 염려는 위기가 반드시 취약한 사람에게 더 큰 고통을 몰고온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계층구조 아래로 내려올수록 고통의 하중은 증폭되죠. 코로나19로 인한 파멸의 가속도가 거세어져서는 안 된다는 다급함이 일었습니다.
이런 문제의식 아래 현재 우리 문명이 갖고 있는 취약함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미 실행 단계에 있는 대안들을 함께 제시하고자 했죠. 그린뉴딜이 대표적이고, 순환 경제, 지역경제, 유기농이 한 축이 될 수 있습니다. 감염병은 화석연료 문명이 가진 파괴적 위협을 드러낸 현상이었기에 제러미 리프킨, 장하준, 원톄쥔, 반다나 시바를 섭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우리가 생활 속에서 부딪치고 있는 혐오와 선입관이 작동하는 기저를 분석하고자 마사 누스바움을, 코로나19가 경제적 불평등을 따라 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고자 공공역학자 케이트 피켓을 만났지요. 코로나19는 영화로 치면 예고편일 뿐이에요. 우리 문명은 치명적인 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 거대한 붕괴를 막으려면 전 지구적인 대책 수립이 필요하다 여겨 닉 보스트롬을 섭외했습니다.
인터뷰 연재글을 단행본으로 엮으면서 각 장의 주제가 선명해졌습니다. ‘집중과 분산’으로 시작해서 ‘분리와 연결’로 끝나는데요. 인터뷰를 하시면서, 특별히 마사 누스바움의 인터뷰가 가장 눈에 띄었습니다. 코로나 이후의 시대를 두고, ‘새로운 정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눈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미국에서 이방인으로, 마이너리티로 살고 있기에 ‘새로운 혐오’를 더 민감하게 느꼈다고 봅니다. 늘 태도와 감정이 문화라고 여겨왔고, 이는 온전히 사적이지 않다고 생각해왔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아시아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물리적인 혐오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뿐 아니라 모든 곳에서 인간이 인간을 꺼려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었죠. 계급적 혐오, 성적, 인종적 혐오까지 범벅이 되어 복잡하게 드러났습니다. 공공역학자 케이트 피켓은 물론이고 여러 사회학자, 경제학자들이 사회적 유대감이 흔들리는 배경으로 불평등 심화를 꼽아왔습니다. 마사 누스바움과의 대화에서는 이러한 현상의 기저를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고 싶었어요.
마사 누스바움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 윤리학자, 고전학자, 여성학자입니다. 오래 전 그와 직접 만나신 적이 있으시죠?
2017년 마사 누스바움과 ‘혐오’에 관하여 인터뷰하는 중에 노인 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했는데요. 마사는 마침 당신이 쓴 세대 간 혐오에 대한 문제, 특히 나이듦에 대한 혐오를 다룬 책이 곧 나올 거라며 다시 만나 이야기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코로나19로 마사의 모든 강의가 줌으로 이뤄지는 바쁜 상황이었지만, 제가 연락하자 흔쾌히 허락했죠. 그의 통찰은 우리가 혐오를 넘어 성찰의 정치, 그리고 사랑의 정치에 당도해야 한다는 데에 이르렀습니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카고 한복판에서 그런 깨우침을 얻은 것이지요.
또한 동아시아의 방역 성공에 대한 서구의 비판, 독재를 경험했기에 복종적이다라는 식의 해석을 보며 정치 시스템 속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관계’에 대한 이해가 빠져있다고 생각했어요. 정치는 우리가 어떻게 관계 맺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세세한 논의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마사는 그 작업의 단초를 보여주었고, 서구와 동아시아가 사회를 인식하는 방식의 차이에 대해서는 원테쥔의 말에서 좀 더 보강됐다고 여겨요.
책 띠지를 열어보면, 인터뷰이 7명이 한 말이 압축되어 한 문장으로 써 있습니다. 저자님이 이 책을 집필하면서, 이 7개의 문장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무엇인가요?
반다나 시바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경제로 나아가는 것을 저지하라” 입니다. 코로나19에 집중하였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저의 의지를 잘라내야 했는데요. 그럼에도 어느 정도 충분히 그 핵심은 전달되었다고 여깁니다. 코로나19로 지구화가 주춤한 이 시기에 자칫 우리는 잘못된 결정을 내릴 수 있습니다. ‘언택트’라는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단어(영어권 외국인들과는 소통할 수 없는 단어 조합입니다)가 유행하는 시기에 우리는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잃는 돌이킬 수 없는 사태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경제의 목표는 우리의 행복인데 경제라 불리는 구조 속에 ‘우리’가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핵심을 반다나 시바가 짚어줬습니다.
이 책을 엮고 나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생각, 또는 가장 강하게 들었던 인사이트는 무엇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생각이 달라졌다기보다는 확장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나무 뿌리가 땅 속으로 깊게 내려가면서도 다른 잔뿌리와 얽혀 또 다른 잔뿌리를 내리며 함께 굵어지는 것과 같죠. 제 생각의 빈 곳을 메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물론 이전의 사고를 죽이거나 잘라내기도 하면서요. 예를 들어 기본소득에 좀 더 조심스레 접근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의 세계』 에필로그에 2018년 말에 인터뷰했던 경제학자 카를로타 페레스의 기본소득 주장과 같은 시기 장하준 교수와 나누었던 대화를 교차해서 소개한 이유이지요.
2015년에 『문명 그 길을 묻다』를 낼 때 한 사람의 농부가 열 가족에게 유기농으로 기른 농산물을 공급한다면, 적어도 그 날 열 집은 건강하게 고루 영양을 섭취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생산자와 연결된 소비자죠. 이번에 원테쥔과 반다나 시바가 말한 ‘우리가 추구하는 바는 생산과 소비를 분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의미와도 통합니다. 그리고 저는 전 국토의 유기농화를 꿈꿉니다. 특히 쌀이 초과 생산되는 오늘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모두의 밥상은 평등한 영양가를 가지는 거죠. 그럼에도 매우 이상적인 소리, 누군가에는 ‘꿈 꾸고 있네’ 소리를 듣겠구나 싶습니다. 지금은 기본 소득을 생각하며 과거의 꿈을 좀 더 구체화합니다. 쌀과 돈을 분리하기보다 이를 연결해야 한다는 생각이죠. 기본소득처럼 돈을 줘서 시장에서 구매하도록 한다면, 이는 다시 시장의 논리가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돈은 자유를 줍니다. 자기 결정권을요. 2010년에는 예술가들 만날 때여서 기본소득은 그들의 창의력, 열정, 시도를 보장하는 대안이란 생각으로 전폭적인 지지를 했어요. 지금은 이를 정교히 다뤄야 한다고 여깁니다. 복지에 있어 어느 부분은 현금 지원이 나가야 하겠지만, 어느 부분은 행정력을 보완하고 소비체계를 보강함으로써 해결되는 것도 있겠지요. 인사이트가 뭐냐고 물어오셨는데, 많은 이야기들이 세분화되어 자라고 있어요. 그러다 어느 시기 우리 사회의 현장에서 말도 안되는 소모적인 논쟁이 있거나, 새로운 시도가 일어야 할 때라는 요구가 있으면 이런 질문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기획 주제로 떠오르는 것이지요.
심화 인터뷰를 진행한다면, 어떤 주제로 더 이야기 나누고 싶나요?
제가 늘 강조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요. 변화를 위해 첫 발을 내딛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지만, 이를 완성하는 것은 우리의 행동이라는 겁니다. 이 행동은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때 나오게 되죠.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와 『문명 그 길을 묻다』 다음 『사피엔스의 마음』을 출간한 이유입니다. ‘과연 나는 나를 위한 선택을 하는가?’ ‘나의 생각은 오롯이 나만의 생각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며 인간의 마음 작용을 탐구했습니다. 우리는 사회적인 프레임, 문화적인 프레임 속에서 ‘나의 생각’를 알지 못한 채 행동합니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고 보다 지속 가능한 지구 생활을 모색하기 위해 반드시 마주해야 할 하나가 바로 ‘내 마음’이라고 여겼어요. 이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석학으로 반다나 시바를 떠올린 것은 이 때문입니다. 독자들이 반다나 시바와의 대화 속에서 스스로와 만나고 세상을 껴안을 길을 안내받기를 바랐어요. 그와 다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주제는 우리가 숨 쉬는 이 행성의 모든 작용이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의 생각을 심화하는 방향이 될 겁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와 관련한 책들을 꾸준히 출간되고 있습니다. 이번 책을 집필할 때 참고로 둔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기획할 때 새로 책들을 살펴 보거나 의지하지는 않았어요. 초반에는 해외 언론과 국내 언론의 칼럼 기획 기사를 많이 읽었죠. 그리고 기획 전에 감염병에 대해 알아보고자 읽은 데이비드 콰먼의 『인수공통 모든 전염병의 열쇠』가 도움이 됐습니다. 사실 코로나19 전후로 2019년 경향신문 신년 기획이었던 ‘안희경의 보살핌의 경제’를 마치고 이 기획을 심화시키려고 공부하던 중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읽었던 책 중 라구람 라잔의
하지만 4월 들어서는 가능한 외부의 글이나 책을 접하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인터뷰이들과 하나의 에세이를 공동 집필한다고 생각하고 작업을 해요. 그 에세이를 읽는 이들이 한국 독자라는 점도 제게 중요하고요. 제가 발 딛고 있는 현장, 제 글을 읽을 독자들의 상황을 반영해 질문을 구성하고, 그 질문과 함께 섭외를 진행하기 때문에 책보다는 그동안 만나서 이야기 나눴던 선생님들과 취재원들의 도움이 컸습니다. 독자, 인터뷰이, 그리고 나의 생각과 의지 이 세 가지가 중요하지요.
어떤 상황에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저는 『오늘부터의 세계』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우리를 옭아매는 현실이 어디에서 오는지, 그리고 하나의 사안이 다른 사안과 연결되어 어떻게 확산되는지 드러내고 싶었어요. 물론 그 과정에서 복합적인 문제들을 단순화하지 않으면서요. 어떤 상황에서건 고민을 갖고 있는 모든 분들께 다가가고 싶습니다. 우리의 고민은 온전히 ‘나’의 탓, 나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자꾸만 개인의 문제로 고립시키려는 힘이 특히 신자유주의의 물결 속에서 거세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힘에는 현실의 문제를 은폐하려는 의도가 자리할 때가 많아요. 그동안 우리가 현장에서 학습해온 가까운 역사들이 그러했어요. 점점이 떨어져 있는 개인들이 자신의 문제를 전체 속에서 바라보며 연결해내고 행동할 때, 우리는 감히 해결이라 말할 수 있는 좀 더 나은 내일을 맞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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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