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순전히 재미로 꽉 찬 생활을 하고 있어요 (G. 김동식 작가)
지금 제 옆에 “마카롱처럼, 가끔 먹으면 맛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는, 최근 아홉 번째 소설집 『문어』와 열 번째 소설집 『밸런스 게임』을 출간하신 김동식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21.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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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이 사태를 정확히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난 뒤에 보면 하루 만에도 파악이 가능한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럴 수 없었다. 인간의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 철없는 늙은이들은 매일 어려지는 거냐며 좋아했지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생물학적으로 몸이 어려지는 게 아니라, 시간을 역행하는 것이었다. 오늘 태어난 아이가 내일은 다시 어머니의 배 속으로 들어갔다. 오늘 죽은 이는 내일 다시 살아 돌아왔다. 인간의 모든 시간이 역행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김동식 작가님의 소설집 『문어』에 수록된 「역행 인류」라는 작품의 도입부인데요. 시간이 역행하기 시작한 세계, 이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끝이 날까요? 극한의 상황과 인간의 딜레마, 그리고 놀라운 반전까지. 김동식표 초단편 소설집은 『회색 인간』으로 시작해 이제 『밸런스 게임』이라는 열 번째 책으로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수록된 단편만 200편이 넘는데요. 이 엄청난 생산력과 뜨거운 상상력의 주인공, 김동식 작가님이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출연합니다. 많은 기대 부탁드려요. 




<인터뷰 – 김동식 편>

오은: 김동식 작가님은 작가들이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요. 조영주 작가님께서는 ‘갓동식 헤밍웨이’라고 부르겠다는 말을 <채널예스> 칼럼에서 하신 적이 있고요. 김민섭 작가님은 김동식 작가님을 스티븐 킹에 비교하시기도 했어요. 이런 말 들으면 어떤 기분이 드세요? 

김동식: 민망하죠. ‘욕먹을 것 같은데(웃음)’ 하는 생각도 하고요. 그래도 당연히 좋아요. 처음에 글을 쓰던 당시에도 제가 “아닙니다”라고는 하면서도 좋아했던 댓글이 “작가님, 베르나르 베르베르 같아요” 같은 댓글이었어요. “아이, 저 욕먹어요” 하면서도 얼굴은 웃고 있었죠.(웃음) 

오은: 방송을 준비하면서 본 인터뷰에서 작가님은 공장 생활은 편했지만 작가 생활은 재미있다고 하셨어요. 공장을 다니면서 글을 쓸 때는 편함과 재미 둘 다 있었을 텐데요. 그렇다면 지금은 재미만 있는 생활을 하고 계시는 걸까요? 

김동식: 그렇죠, 지금은 순전히 재미로 꽉 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재미가 없을 때는 안 쓰거든요. 제 글의 특징이 초단편, 아주 짧은 글이잖아요. 따라서 생각보다 물리적으로 들어가는 시간은 적어요. 속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훨씬 더 긴 거죠. 그러니까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동안에는 딴짓을 할 수 있어요. 

오은: 이제 김동식 작가님 소개를 해드릴게요. “독자가 나를 작가로 만들어줬다고 말하는, 꾸준함의 힘을 믿는 사람. 꿈이 없었다. 어렸을 적 잠깐 가졌던 꿈이라고는 오락실 사장님이 전부였던 김동식. 오락실 게임을 정말 잘했는데 앉은 자리에서 무려 72승까지 한 적이 있다. 동네에는 적수가 없어서 원정을 나가기도 했다. 책은 싫어했고, 일기 쓰는 것도 싫어해서 일기 숙제는 마지못해 몰아 써서 제출하곤 했다. <환상특급>, <서프라이즈> 같은 짧고, 많이 나오는 이야기를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학교가 싫었다. 자주 혼났기 때문이다. 옥상에 숨어 한나절을 보내거나 100원만 넣어도 잘만 하면, 종일 할 수 있는 오락실을 탈출구 삼았다. 결국 중학교를 중퇴했다. 뭘 해도 잘 먹고 잘 살겠지, 하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었다. 신문배달, 인쇄소, 건설현장, 재봉공장 등을 전전했고, 성인이 된 후에는 타일 기술을 배우기 위해 대구로 갔다가 일감을 얻지 못하고 PC방에서 3년 동안 일했다. 이후 2006년,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아연 주물공장에 취직해 10년간 일했다. 500도가 넘는 액체 아연을 국자로 떠서 단추나 지퍼, 옷핀 모양 틀에 붓는 일이었다. 

집과 공장만 오가는 생활을 반복하던 어느 날, 우울함이 찾아왔다. 그 즈음 그가 가장 많이 한 행동은 시계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왜 살지’라는 질문까지 하게 됐고, 그때 운명처럼 글쓰기와 만났다. ‘네이버’에 ‘글 쓰는 법’을 검색해가며 글을 쓴 김동식은 2016년 5월, ‘이미지 메이킹’이라는 제목의 글을 둘로 나눠 인터넷 커뮤니티 공포 게시판에 앞부분만 올린다. “결말이 궁금하신 분이 있으면 다음 편을 마저 올리겠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50분 동안 새로고침을 했다. 그제야 댓글이 달려서 뒷부분을 마저 올렸다. 댓글 받는 게 너무 좋았다. 이후 3일에 한 편씩 글을 써 올렸다. 이를 테면 ‘관종의 힘’이었다. 그러다 김민섭 작가에게 책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 김동식이 처음 한 대답은 “출판하는 데 돈이 드나요?”였다. 

10년 동안 해온 일을 그만두고 가장 좋았던 것은 늦잠을 잘 수 있는 것이었다. 차멀미가 심해서 여행은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만 갔다. 고집이 세다.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 하는 성격이다. 스트레스를 싫어하고, 경쟁도 싫어하고, 화내는 것도 싫어해 타인에게 화내 본 적도 없는 김동식은 귀신이나 괴물보다 무서운 것은 언제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혹시 수정할 부분이 있을까요? 

김동식: 아니요, 듣는 동안 겁이 났습니다. 내가 살면서 했던 모든 얘기가 들어있네, 요즘 시대는 정말 검색이 시대구나, 어디 가서 말을 조심해야 되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어요.(웃음)

오은: 72승까지 한 적이 있는 오락실 게임이 혹시 격투기 게임인가요?

김동식: 네, 격투기 게임 마니아 분들은 아실 텐데요. ‘킹오브파이터스’라는 게임이 이에요. 저희 세대에 굉장히 유행했던 게임인데 이걸 제가 좀 잘했어요.(웃음) 뒤에 구경꾼들이 몰려와서 박수 치고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자존감이 올라가잖아요. 뒤에서 보는 사람들이 “오오!” 이러니까요. 제가 학교를 그만두면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소개해주셨는데요. 그게 바로 게임의 영향이었던 것 같아요.

오은: <환상특급>, <서프라이즈> 같은 극들은 길지 않아요. 지금 쓰고 계신 장르인 초단편의 씨앗을 그런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만들었을 것도 같은데, 어떤가요? 

김동식: 지나고 보니까 제가 좋아하던 형식을 쓰고 있었던 것이더라고요. 제가 싫어하는 게 ‘다음 이 시간에’거든요.(웃음) 꼭 중요한 장면에서 ‘다음 이 시간에’가 뜨잖잖아요. 저는 그걸 참을 수가 없어서 흥행하는 드라마도 방영 당시에는 안 보고 완결이 난 다음에 몰아봐요. 어렸을 때도 그런 취향 때문에 <환상특급>, <테마 게임> 같은 프로그램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시트콤도 좋아했고요. 매 화 어느 정도 기승전결이 있는 형식을 좋아했어요. 

오은: 본격적으로 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서 작가님께 이번에 나온 책 『문어』와 『밸런스 게임』이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를 부탁드리려고 합니다.

김동식: 『문어』는 제가 쓴 글 중에 나름대로 SF라고 할 수 있는 작품들을 모은 소설집이에요. 저는 사실 글을 쓸 때 장르를 생각 안 하고 쓰는데요. 보는 분들이 평가해 주시잖아요. 그 중 SF라고 알려주시는 작품들이 있었고요. 그런 것들을 모은 SF 소설집이 『문어』입니다. 『밸런스 게임』은 열 번째 소설집이에요. 요즘 밸런스 게임이 유명하죠.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 대신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식으로 고민되는 지점을 보여주는 건데요. 제가 소설 안에 딜레마 상황을 자주 쓰거든요. 그런 ‘선택’에 관련된 소설을 모아서 『밸런스 게임』이 됐고요. 이것이 김동식 소설집의 마지막 책입니다. 

오은: 작가님의 작품을 읽을 때 가장 놀라운 것 중 하나가 도입부에서 주저하지 않는 글쓰기를 하신다는 점이에요. 보통 글쓰기 도입부라는 것은 배경을 암시하기도 하고, 이 소설이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하는데 김동식 작가님은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어떤 사건이인지 곧바로 이걸 알려주면서 시작하잖아요. 이런 방식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김동식: 글을 쓰기 시작한 환경이 인터넷이라서 그런 것 같아요. 인터넷 독자 분들은 처음에 늘어지거나 장황하고, 서두가 길면 글을 안 보세요. 어차피 돈을 내고 보는 것도 아니니까요. 공짜로 볼 수 있는 퀄리티 높은 다른 글들도 너무 많으니까 금방 다른 글을 보러 가죠. 이분들을 다른 글로 못 빠져나가게 하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던 거고요. 관심을 끌기 위한 방식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게 스타일이 된 것 같아요. 

오은: 작가님의 작품을 1권부터 10권까지 쭉 읽어오면서 또 놀라운 것이 등장인물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어요. ‘김남우’ 같은 경우는 3권 제목으로도 등장을 하잖아요. 『13일의 김남우』라고요. 그밖에도 ‘두석규’, ‘공치열’, ‘홍혜화’ 같은 인물이 반복해서 등장을 하는데요. 보통은 사람들이 헷갈릴 수 있거든요. 지난번 김남우는 이런 캐릭터였는데 갑자기 이번에는 다른 인물로 또 등장하니까요. 그런데도 어색하지 않고 매끄럽게 읽히거든요. 이처럼 같은 이름을 계속 사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김동식: 정을 붙일 수 있는 캐릭터가 있었으면 좋겠더라고요. 제 작품은 안 그래도 짧은데 이름이 매번 바뀌면 독자 분들도 정을 붙일 수가 없을 것 같았어요. 장편 작가였으면 모르겠지만요. 초단편의 개수가 200편이 넘기 때문에 정 붙일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서 같은 이름을 계속 쓰는 게 낫겠다 생각했어요. 또 저는 이름마다 의도적으로 비슷한 성격을 주거든요. 상황은 달라도 성향은 거의 비슷해요. 그러니까 독자 분들이 이름만 봐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연상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굳이 캐릭터에 묘사를 안 해도 말이에요. 그게 편하기도 했어요. 어떤 캐릭터인지 독자들 사이에서는 다 상이 잡혀 있을 테니까요. 

오은: 가장 좋아하는 소설집이 『회색 인간』이라고 밝힌 적이 있는데요. 지금도 변하지 않았나요? 

김동식: 네, 이유는 가장 많이 팔려서이기도 하고요.(웃음)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쓴 글이 『회색 인간』에 가장 많이 들어 있어서 그래요. 또 솔직히 말하면 공장에서 일하면서 쓴 글이 저는 더 재미있더라고요. 일하면서 쓸 때는 아침에 출근해서 저녁에 퇴근할 때까지 계속 머릿속으로 그 한 가지 이야기를 상상했어요. 제가 일한 환경이, 앞이 벽으로 막혀 있고 옆은 칸막이로 막혀서 동료와도 대화가 안 되는 환경이었거든요. 이런 환경 속에서 혼자 이야기를 그리고 있으면 제가 이 공장에 있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들어요. 무아지경의 상태로 퇴근할 때까지 계속 생각하다가 집에 와서 급하게 쓰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까지 뭔가에 빠져들어서 쓰지 않는 것 같아요. 

오은: 글쓰기라는 것은 하면 할수록 느는 것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회색 인간』을 다시 보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어떤 부분은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있을 것도 같은데 어떠세요?

김동식: 전체적으로 그렇죠.(웃음) 근데 희한한 것은 그걸 좋아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거예요. 지금은 문장이 많이 교정됐어요. 10권과 1권을 비교하면 최소한 문장 면에서는 10권이 좀 정갈해요. 1권은 진짜 웹이라는 게 느껴지는 형태거든요. ‘엔터’ 값도 많고, 문장도 비교적 시나리오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걸 좋아하신 분들은 또 그렇게 써달라는 메시지가 개인적으로 오기도 하고 그래요. 

오은: 앞서 말씀하셨는데요. 소설집이 끝났다는 것은 시리즈의 완간을 뜻하는 건가요? 

김동식: 그렇습니다. 새로운 시도를 이제 할 때가 됐다는 거죠. 마카롱을 계속 먹으면 물리잖아요. 그래서 딱 10권까지 하고, 이제는 마카롱 먹었으니까 김치 같은(웃음) 새로운 시도를 한번 해보자, 생각하고 있어요.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을 드릴게요.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영업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동식: 어렸을 때 제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책인데요. 『슬램덩크』입니다. 사실 『드래곤볼』과 1, 2등을 다투는데요. 결국 제가 두 번, 세 번 보는 건 『슬램덩크』더라고요. 이왕이면 많이 보는 게 1등이지 싶어 추천해요.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할지 모르는 분들,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는 분들이 자신의 모든 걸 던져서 하는 것이 주는 감동을 느끼시기에 좋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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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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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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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ero

2021.04.08

이번에도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마카롱 같은 책을 쓰시는 작가님, 일주일에 두 번이나 마카롱 같은 달콤한 시간을 주는 책읽아웃. 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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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