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성호 “고통 속에서도 인내한 욥 이야기를 떠올렸어요”
이유 없는 고통 속에서도 인내로 견디고 결국에는 크게 복 받은 욥. 이 욥을 통해서 코로나라는 고통을 겪는 지금 시대에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집필을 시작했습니다.
글ㆍ사진 출판사 제공
2021.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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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성경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책으로 꼽히는 욥기. 산문과 운문(시), 그리고 다시 산문으로 이어지는 특이한 구성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다양하게 해석되는 욥기에 담긴 진실은 무엇일까? 욥은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도 인내하고 회개한 성인’의 대명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욥이 정말로 회개했을까?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 『너무도 가벼운 고통』은 그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앙하다가 나중에 갑절의 복을 받는다고 알려진 욥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짚어가면서, ‘신앙을 고백하던 욥’이 ‘침묵하는 욥’으로 바뀐 원인을 찾아가는 여정을 담았다.

이전에 출간한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와 이번 ‘성경 속 인문학 시리즈’는 결이 많이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작가님에게 어떤 패러다임의 변화가 있었습니까? 그리고 성경 속 인문학 시리즈 다음 편은 어떤 주제를 다루실 건가요? 

‘부족한 기독교’를 쓸 때만 해도 성경을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면, 지금 성경은 제게 『길가메시 서사시』 또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다르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히브리성경(구약성경)은 39권의 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욥기는 문학작품으로서 뛰어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훌륭한 문학작품이죠.

사실 코로나 시대가 시작하면서 이곳저곳에서 ‘코로나와 하나님의 뜻’을 내세운 책이 많이 나왔습니다. 솔직히 저도 그런 시류에 영합해서 코로나 시대에 독자들에게 힘을 주는 ‘긍정적인’ 책을 하나 쓰고 싶은 생각이 있었는데, 갑자기 욥이 떠올랐습니다. 이유 없는 고통 속에서도 인내로 견디고 결국에는 크게 복 받은 욥. 이 욥을 통해서 코로나라는 고통을 겪는 지금 시대에 위로가 되는 메시지를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인데, 결과는 일반 독자라면 그렇게도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기독교 교리에 함몰된 교인이라면 전혀 다르게 읽힐 수도 있을 겁니다. 

『너무도 가벼운 고통』은 종교 서적이라기보다는 욥기라는 문학작품에 대한 평론서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성경 속에서 하나의 문학작품으로 가치를 갖는 게 몇 개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게 창세기와 에스더입니다. 이 두 권을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교회에서 욥기를 잘 다루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욥기는 너무 어렵습니다. 그게 가장 큰 이유고요. 두 번째는 욥기 초반에 나오는 하나님과 사탄의 내기 때문입니다. 아마 많은 사람이 이 장면을 의아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네, 맞아요. 저도 어릴 때 교회를 다녔는데, 그 장면이 아주 의아했습니다.

교회에서 성경 속 모든 사건은 다 실제로 일어난 역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사탄의 내기도 비유나 상징, 이런 게 아니라 역사적 사건으로 받아들이거든요. 그러니까 힘든 것이지요. 하나님이 사탄과 내기를 해서 아무 잘못도 없는 욥의 가족을 완전히 망가뜨렸으니까요. 그걸 설명할 길이 없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합리적이고 공평해야 하거든요.

하나님이 왜 그런 건가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이 이 책입니다. 책에 자세히 썼습니다. 또 덧붙여 독자들이 자유롭게 해야 하는 해석에 족쇄를 채울 순 없죠. 여기서 제가 말해버리면 말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인내한 성인 욥’이 아닌 뭔가 중요한 쟁점이 욥기 속에 있다는 뉘앙스로 들리는데요. 그럼 기독교에서 말하는 욥의 가치와 작가님이 파악한 욥의 인생은 다르다고 보나요?

네, 많이 다릅니다. 그것도 이 책의 본론이자 결론이므로 궁금하신 분에겐 일독을 권합니다.

작가님은 평생 교회를 다니셨고, 그래서 욥기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아신다고 가정할 때, 이번에 욥기를 공부하고 저술하면서 가장 놀란 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가장 새롭게 크게 깨달은 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뭐가 있을까요?

놀란 점을 이야기하도록 하지요.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 우리나라 대부분 교회가 쓰는 개역개정 성경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에 대해서입니다. 특히 욥기를 개역개정으로 읽으면서 욥기를 이해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다행히 새번역 성경이 있습니다. 새번역으로 욥기를 읽으면 그나마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됩니다.(물론 그럼에도 어려움이 많지만요.) 그런데 우리나라 교회가 새번역을 거의 사용하지 않거든요. 히브리 원어에서 번역했기 때문에 훨씬 더 정확하고 이해하기 쉬운 현대어로 되었는데도 말이지요.

두 번째로 욥기의 핵심은 42장 6절입니다. 욥이 회개하는 장면인데요. 성경 속 이 구절의 번역은 정말로 차마 뭐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되어 있습니다. 다행히 요즘은 기독교계에서 나오는 욥기 관련 서적에서 조금씩 그 번역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그 구절이 가진 폭발력이 워낙 크기 때문에 제대로 번역하지 않습니다. 한마디로 욥이 이상한 사람으로 왜곡되는 것이지요. 저도 욥이 정말로 처절하게 회개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요. 



서문에 보면 이 책을 쓰게 한 이유가 욥의 침묵이라고 했는데, 지금 말씀하신 부분이 욥의 침묵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거기서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셨나요?

이것도 스포일러인데요. 한 가지만 언급하면, 욥기는 초반과 마지막 부분이 산문으로 쓰여졌고, 중간 부분은 시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초반 산문 속 욥은 말을 많이 하는데, 마지막 산문 속 욥은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그건 욥기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받은 부분인데도 교회에서는 전혀 다뤄지지 않는 부분이죠. 그 침묵은 아주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책을 끝까지 읽은 독자만 알게 되겠죠.

보통 ‘욥’ 하면 엄청난 고통을 강조하는데, 왜 ‘너무도 가벼운 고통’이란 제목을 붙이게 됐나요?

타인의 고통은 언제나 내게는 가볍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내 손가락에 들어간 가시 하나가 지구 반대편에서 굶어 죽는 수천 명보다 더 중대한 문제라는 거죠. 내가 누구보다 더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인간은 누구나 그렇거든요. 그럼 과연 하나님에게 욥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무겁고 아팠을까? 욥을 위로하겠다고 온 친구들에게 욥의 고통은 어떠했을까? 과연 타인의 고통이 나 자신에게 무거울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한 것일까? 그런 질문을 던지는 의미로 제목을 그렇게 정했어요. 



아무리 욥기가 문학으로서 가치를 가진다고 해도 성경이 아닙니까?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요? 그리고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떤 마음으로 읽으면 가장 좋을까요?

욥기는 히브리성경 안에서도 몇 안 되는, 신이 아닌 인간에 관한 내용입니다. 게다가 표현을 비롯해서 정말로 탁월한 문학작품이지요. 사실 성경 속에 욥기가 들어 있기 때문에 성경이라는 정경이 다른 종교의 정경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욥기는 대단한 책입니다. 법륜 스님의 ‘즉문즉답’을 듣는 사람이 많은데, 사실 종교를 뛰어넘어 보편타당한 말씀을 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기독교인도 법륜 스님의 말씀에 빠져들지 않습니까? 욥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종교와 관계없이 보편타당한 인간의 문제,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간과 신의 관계’라는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거든요.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한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나는 무신론자니까 인간과 신의 관계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불확실성이라는 숙명을 갖고 태어난 인간인 이상 ‘신’ 또는 ‘신 개념’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거든요. 그렇기에 욥기가 다루는 주제는 종교의 차이, 종교 유무를 떠나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알게 되겠지만, 퍼즐을 하나씩 맞춰가는, 심리 추리소설을 읽는 느낌이면 좋을 거 같아요. 그러니까 무슨 연구서나 논문이 아니라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고요. 또 하나는 ‘내가 만약에 욥의 상황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할까?’라는 마음으로 읽어보는 것도 좋을 겁니다. ‘욥기 내내 욥과 친구들의 논쟁이 나오는데, 나는 욥처럼 말할까, 아니면 친구들처럼 말할까?’ 이런 관점에서 읽는 것도 아주 흥미로울 겁니다. 

욥기는 어느 종교에서도 찾을 수 없는 독보적인 메시지가 담긴 보물 같은 책인데, 기독교계에서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너무도 가벼운 고통』이 그 가치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옥성호

한국외국어대학교 노어과를 졸업하고 미국 인디애나주 노터데임대학교(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MBA를 취득했다. 2007년 『심리학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시작으로 『갑각류 크리스천』 시리즈, 『아버지, 옥한흠』 『진영, 아빠는 유학중』 『진리해부』 『야고보를 찾아서』, 장편소설 『서초교회 잔혹사』 『낯선 하루』 등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저술했다.

특허 솔루션 전문 기업인 위즈도메인에서 10년간 미주 지사장을 그리고 2011년부터 2013년까지 국제제자훈련원 출판본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도서출판 은보와 테리토스 대표를 맡고 있다.

사랑의교회를 개척하고 교회 갱신을 위한 초석을 만들었던 한국 개신교의 거목인 옥한흠 목사의 장남으로 태생적으로 기독교에 해박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성장하였다. 『부족한 기독교』 시리즈를 통해 비판과 성찰이 사라진 한국교회에 일침을 가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저자는 이제, 질문과 상식이 사라진 한국교회를 깨울 새로운 흐름을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



너무도 가벼운 고통
너무도 가벼운 고통
옥성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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