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솔러지와 단행본을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하는 창작자에게 앤솔러지는 어떤 의미일까? 앤솔러지에 수록된 단편을 확장해 장편 소설을 쓰기도 하고, 직접 앤솔러지를 기획해 출간하기도 하는 소설가 조우리를 만났다.
신작 『이어달리기』의 설정은 큐큐퀴어단편선 『언니밖에 없네』에 수록된 단편 「엘리제를 위하여」에서 시작되었죠?
「엘리제를 위하여」에 등장하는 중년의 레즈비언 성희와 혈연관계가 아니지만 성희를 이모라 부르는 일곱 조카들의 이야기를 더 보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어요. 이야기를 추가해 연작 소설인 『이어달리기』로 확장했어요. 『이어달리기』에 수록된 「엘리제를 위하여」는 앤솔러지에 실린 버전과 조금 달라요. 뒤에 이어질 이야기와 설정이 충돌하지 않도록 인물의 나이와 생애 등을 수정해야 했어요. 『언니 밖에 없네』가 ‘퀴어’라는 주제 외에는 열려 있는 앤솔러지였기 때문에 확장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보다 세부적인 주제에 맞춰 쓴 작품이었으면 더 어려운 작업이 되었겠죠.
앤솔러지에 글을 쓰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문예지에서 오는 청탁은 자유 주제에 분량도 열려있는 편이에요. 제약이 거의 없죠. 앤솔러지는 한 권의 책을 여러 작가가 나눠서 쓰는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분량과 주제를 맞출 수밖에 없어요. 큐큐퀴어단편선처럼 시리즈로 출간되는 앤솔러지는 그 자체의 분위기도 고려해야 하고요. 이전 시리즈와 이어지는 흐름이 있고, 독자들이 시리즈에서 기대하는 이야기도 다를 테고요.
앤솔러지에 참여하는 창작자라면 주제를 가장 먼저 볼 수밖에 없겠네요.
네. 그리고 제가 꼭 써야만 하는 이야기인지 생각해요. 그 주제의 앤솔러지에 ‘조우리가 작품을 싣는다.’고 했을 때 독자들이 기대할 만한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도 고민하지요. 앤솔러지 작업과 단행본 작업의 무게가 다르지 않아요. 모두 제 작품이기 때문에 자신 없는 주제로 글을 쓸 수는 없는 거죠.
앤솔러지에 참여하면서 이전에 써보지 않았던 새로운 주제로 작품을 쓰게 된 적도 있나요?
잡지 <악스트(Axt)>에 ‘key-word’라는 코너가 있어요. 매 호마다 같은 주제로 두 명의 작가가 쓴 소설을 싣고 있어요. 저도 2022년 3/4월 호에 참여했는데 ‘도시 괴담’이 주제였어요. 주제를 듣고 이건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어느 날 갑자기 우리 회사 화장실에 몰래카메라가 있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면?’이라는 상상에서 출발한 이야기입니다.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와 『엄마에 대하여』는 작가로서 참여하기도 했지만, 기획부터 저자 섭외까지 직접 진행한 앤솔러지 작품이에요.
원래 두 작품을 한 쌍으로 기획했어요.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는 1990년대 대중가요, 또 『엄마에 대하여』는 1970~80년대 대중가요 중에서 여성이 화자인 곡을 모티프로 쓴 소설들로 구성되었어요. 제가 처음 붙였던 가제는 ‘언니의 플레이리스트’ ‘엄마의 플레이리스트’였는데요. 차현지 소설가, 천희란 소설가와 결성한 ‘왓에버’라는 여성 소설가 모임이 있는데, 같이 차를 타면 음악을 자주 틀어둬요. 1980년대생인 우리가 1990년대 노래, 7080 노래를 생각보다 많이 알고 좋아하고 있어서 “이 노래를 어떻게 알게 됐지?”라는 말을 하다가 이런 이야기를 소설로 써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바로 기획서를 만들어 다른 작가님들께 연락을 드렸어요.
그 뒤에는 어떻게 출간으로 이어지게 됐나요?
제가 직접 출판사에 제안을 했어요. 일단 출판사에서 저는 모를 순 있더라도 제가 모은 작가님들을 보고는 책을 내주리라는 확신이 있었죠. 작가이기 전에 ‘독자’로서 어떤 작품을 쓸지 궁금한 작가님들이 모였으니까요. 이후 출판사와 계약을 하고 책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콘셉트 방향도 수정이 되고, 제목도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와 『엄마에 대하여』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주제에 대한 관심 외에 앤솔러지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떻게 보면 저의 ‘덕업일치’라고 할 수 있어요. 앤솔러지 때문에 연락을 드린 작가님들 중에서 원래 친분이 있었던 분은 몇 분 없었어요. 그분들의 책을 통해서만 알고, 좋아하고 있다가 연락을 드렸어요. 그러니까 저에게는 앤솔러지가 다른 작가님들과 교류하는 기회이기도 했던 거죠.
2000년대 여성 가수의 노래를 모티프로 한 앤솔러지도 기대해볼 수 있을까요?
네, 언젠가 해보고 싶어요. 제가 쓰고 싶다는 마음도 있지만 다른 작가님들이 쓴 글을 읽고 싶다는 마음, 그런 ‘팬심’ 때문이기도 해요.
앤솔러지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전에는 이야기는 작가의 몫으로 맡겨두는 편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에는 독자들이 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잘 쓸 수 있는 작가를 생각하고, ‘어떤 작가들이 만나야 독자들이 좋아할까?’를 고민하는 거죠. 앤솔러지는 좋아하는 이야기를 여러 작가가 써준 종합 선물 세트 같은 느낌이라고 생각해요.
앞서 언급한 『이어달리기』가 4월 예스24 도서 MD가 엄선한 이달의 책으로 꼽히기도 했습니다. 독자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조카들이 이모 성희가 준 미션을 풀면 선물을 받게 된다는 설정을 재미있어 하는 분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일단 말씀처럼 조카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성희 같은 부자 이모가 있을 수 있느냐며 장르가 판타지인 것 같다는 반응이 재미있었어요. 신기하게도 성희와 관계 맺은 일곱 조카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 공감하며 감상평에 자기 경험을 써주신 분들이 많았어요. 모두들 어린 시절에 대한 위로가 필요했던 건 아닐까 싶어요.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독자들을 만날 계획인가요?
단편 소설을 몇 편 마감했고, 하반기에는 장편 소설을 집필할 예정입니다. 제 소설답게 레즈비언인 여성이 주인공인데요. 지방직 공무원으로 일하며 동네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룰 예정입니다.
*조우리 소설가. 여성, 퀴어, 노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쓴다. 연작 소설 『이어달리기』, 경장편 소설 『라스트 러브』, 소설집 『내 여자친구와 여자 친구들』 『팀플레이』를 냈으며, 공저로 『이 사랑은 처음이라서』 『언니밖에 없네』 『엄마에 대하여』 등을 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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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