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투게더>, <화양연화> 등 왕가위의 영화에는 '시대를 아우른다'는 수식어가 붙는다. 90년대 영화팬은 물론이고,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새롭게 영화를 만나는 세대까지 오래도록 관객을 사로잡는 힘은 무엇일까? 왕가위 작품 세계 30주년을 기념하여 출간된 『왕가위의 시간』은 이러한 질문에 충실히 답하는 책이다. 오랫동안 왕가위의 스타일을 연구해온 저자 스티븐 테오는 이번 책을 통해 그의 영화에 숨겨진 디테일을 펼쳐 놓는다.
이번 국내 출간은, 왕가위와 인연을 맺어온 이들이 직접 참여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왕가위 영화의 국내 배급사 ㈜모인그룹 정태진 대표를 주축으로,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신철 집행위원장, DMZ 국제 다큐멘터리영화제 정상진 집행위원장, 전양준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등 그의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왕가위 감독과 직접 소통하며 출간을 기획했다. 특히, 모인그룹이 소장한 올컬러 현장 스틸 사진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왕가위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책이 됐다. 출간 기획을 총괄한 모인그룹 정태진 대표에게 서면 인터뷰를 통해, 기획 뒷이야기와 왕가위 감독과의 오랜 인연을 들어 보았다.
정태진 대표님은 <해피 투게더>와 <화양연화>의 프로듀서를 맡으셨고, 왕가위 감독님의 모든 영화를 배급해오셨지요. 장국영 배우를 통해 왕가위 감독님과의 인연을 맺으셨다고요.
왕가위 감독과의 인연은 30년이 넘었으며, <아비정전> 촬영 당시 장국영의 소개로 왕가위 감독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비정전>의 제작자인 등광영 배우와는 더 오래전부터 인연이 있었습니다. <열혈남아>와 <아비정전>의 유럽 시장 세일즈 역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제가 직접 진행했습니다.
긴 세월 동안 가까이서 지켜보신 왕가위 감독님의 인간적인 면모가 궁금합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시면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
왕가위는 아티스트입니다. 아주 세심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이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너무 많은데, 한국과 관련된 에피소드라면 한국 음식 중 깻잎을 굉장히 싫어하고, 자장면을 좋아하는 것 정도가 있겠네요. 고깃집에 가도 깻잎은 절대 먹지 않습니다.
이번 책은 왕가위 감독의 작품 세계 30주년 기념으로 발간됐습니다. 어떻게 기획이 시작됐나요?
2021년 1월 25일경에 상해의 레이 회장으로부터 북경대학출판부에서 왕가위 감독에 관한 책을 출판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직후 왕가위와 이야기를 해봤는데, 그는 이미 알고 있었죠. 레이 회장으로부터 책을 두 권을 받고, 우리나라에도 이 책을 출간하는 것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습니다. 북경대학출판부에 연락을 취했는데, 이 책의 원작 판권을 해리포터 시리즈의 출판사로 유명한 영국의 '블룸즈버리 퍼블리싱(Bloomsbury Publishing)'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가위는 제게 영국, 중국 각 출판사들에 모두 연락을 하라고 조언해 주었고, 출판사들과의 합의 끝에 한국어판 출간 프로젝트를 착수하였습니다. 최종적으로 왕가위의 확인을 받은 후, 한때 우리의 식구이기도 했던 열아홉출판사의 함초롬 대표와 공동으로 출판 작업을 하기로 했어요. 함초롬 대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영화사 (주)모인그룹에서 직원으로 일한 인연이 있거든요. 감독님과의 30주년 우정을 기념하기 위해 함께 준비하여 오늘날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판권 계약까지 합친 제작 기간은 1년 7개월 정도 됩니다.
기획 위원으로 <국제시장>, <해운대>의 윤제균 감독님이 참여하셨죠. 어떻게 협업하게 되셨나요?
윤제균 감독이 데뷔하기도 전에, 부산영화제에서 이미 그는 극장에서 저와 왕가위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도 가족처럼 지내고 있는 관계죠. 왕가위가 근래에 만난 한국 사람들 중 제일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윤제균 감독입니다.
왕가위 감독님이 표지만 8번을 거절하셨다고요. 표지 및 사진, 디자인 선정 과정에서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신다면요?
모든 사진들의 사용은 왕가위의 허락 없이 진행이 어려웠습니다. 각 사진마다 초상권과 저작권이 있었기에 수개월간 하나하나 사진의 사용 여부를 체크하고, 왕가위와 의논하였습니다. 심지어 왕가위 본인의 사진과 작품들조차 복잡한 사정 때문에 거절당했죠. 앞표지와 뒤표지의 사진은 왕가위 본인이 직접 골라 저에게 보내주어서 이것으로 최종 결정했습니다.
해외판과 달리, 이번 책에는 기존에 공개되지 않았던 미공개 슬라이드 현장 사진이 올컬러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국내 팬들에게도 큰 선물이 될 것 같은데요. 모인그룹이 소장해온 사진 중 특히 아끼는 사진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왕가위와 30년 넘게 일하며 찍은 사진과 필름 모두 저에게 굉장히 소중한 자료들이며 높은 가치를 지닌 회사 자산입니다. 심지어 왕가위가 가지고 있지 않은 사진이나 슬라이드 필름 역시 제가 그동안 보관해 왔습니다. 특히, 아래 사진은 제가 현장에서 직접 찍은 스틸 사진이라 더 감회가 남다릅니다.
'그는 홍콩 영화 업계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19쪽)는 말처럼, 저자는 왕가위 감독이 홍콩 영화 산업에 기반하면서도, 저항하려는 면모를 지적합니다. 제작 현장에 함께하셨던 대표님은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현장에 있던 저를 포함한 어떤 스태프나 배우도 왕가위의 생각을 전부 캐치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장에서 진행된 모든 아이디어는 왕가위 본인으로부터 나왔고, 우리는 그것에 맞추어 움직였습니다. 시나리오상 준비된 것들도 거의 없습니다.
<해피 투게더>의 촬영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왕가위 감독은 "방랑하는 것의 느낌에 대해"(208쪽) 배웠다고 했습니다. 대표님은 촬영 당시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신지요?
<해피 투게더> 촬영 당시의 환경이 굉장히 열악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스태프들이 머물 호텔조차 모자랐고, 그 외의 상황도 굉장히 열악했습니다. 스케줄 문제도 꽤 있었기에 어려웠던 기억만 생각납니다. 그래도 무사히 촬영을 끝낸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홍콩 콘텐츠를 국내에 소개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콘텐츠를 해외에 소개하는 일도 하고 계시다고요. 대표님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글로벌 시대에 맞춰 한국의 콘텐츠를 글로벌화 시키고, 세계로 뻗어 나아가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렇기에 영화뿐만 아니라 드라마, 뮤지컬, 애니메이션 등 장르나 분야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IP를 활용해 세계시장에 손을 내밀고 있죠. 최종 목표는 저만의 방송국 플랫폼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정태진 왕가위 영화의 국내 배급사 ㈜모인그룹의 대표. <해피 투게더>와 <화양연화>를 공동 프로듀싱했다. 장국영의 유작 <이도공간>의 2021년 재개봉을 성사시키기도 했던 그는 현재도 왕가위 감독과의 긴밀한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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