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의 선택
커트 보니것 저 / 강동혁 역 | 문학동네
이 책을 소개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건 띠지에 담긴 문구 때문이었는데요. 심채경 행성 과학자, 저희 <책읽아웃>에도 한번 출연을 하신 적이 있죠, 이분이 써주신 추천사의 일부가 들어가 있어요. '보니것은 우리 삶의 우주적 무의미함에 대해 노래하고 조롱한다. 그의 글은 오늘날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임과 동시에 과거에서 온 미래의 예언 같다'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데요. 저는 여기서 '우주적 무의미함'에 꽂혀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왜 우주적 무의미함에 꽂혔냐면, 최근에 본 영화가 <에브리씽 에브레웨어 올 앳 원스>였거든요. 거기에 허무에 빠진 반동 인물이 나와요. 주인공의 딸인데, 모든 것은 의미없다는 허무주의에 빠져서 세상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사람이거든요. 영화를 보고 나서 무의미함이라는 단어에 대해서 좀 꽂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차에 이 책을 보게 되었고, '무의미함'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계기가 또 되었습니다. 거대한 사고 앞에서 인간이 계속 무력해지잖아요. 그리고 어떠한 사건이 해결이 안 되는 걸 보면서 약간 허무에 빠지기도 하고 '이런 것이 과연 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에 빠지기 쉬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일단, 이 소설의 배경은 악몽 시대라고 불리는 제2차 세계대전과 제3차 대공황 사이라고 하는데, 아직 일어나지 않은 혹은 지금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시기라는 뜻이겠죠. 이 소설은 물질화라는 현상으로 시작이 됩니다. 뭔가 물질이 아닌 것이 물질이 되는 현상을 말하는 거겠죠. 우주 공간을 떠돌던 등장인물이 있어요. '럼포드'라고 불리는 사람인데, 이 사람이 개와 함께 지구에 59일마다 나타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걸 '물질화 현상'이라고 부르면서 그 현장을 보고자 엄청 애를 써요. 하지만 럼포드의 아내는 그 모든 요청을 무시를 해요. '이것은 개인적인 사고이므로 너희들은 볼 수 없다, 미안하다'하고 사무적인 편지만 보내게 됩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그 물질화를 보고 싶어 하냐면, 럼포드가 모든 시대와 모든 공간에 존재를 하면서 과거와 미래를 다 볼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는 거예요.
그 와중에 '콘스탄트'라고 불리는 사람만이 이 물질화가 일어나는 저택에 들어가게 됩니다. 럼포드의 아내가 초대를 했어요. 콘스탄트는 유명한 정치인도 아니고 유명한 학자도 아닙니다. 단지 돈이 어마무시하게 많은 사람이에요. 그것도 그 사람이 일궈낸 부가 아니라 그 아버지가 어마무시하게 돈을 벌어놨기 때문입니다. 럼포드의 아내가 왜 이 사람을 초대했냐면, 럼포드가 예언을 하면서 이 사람을 꼭 불러와달라고 얘기를 했기 때문인데요. 럼포드가 예언한 내용은 너무너무 터무니가 없었습니다. 럼포드가 자기 아내한테 얘기한 게 "너는 콘스탄트랑 화성에서 외계인들한테 사육당해서 아이를 낳고 화성과 수성을 거쳐서 타이탄으로 가게 될 거다"라는 거였어요. 이 책의 결말로는 결국 그대로 돼요. 그 결말까지 가는 내용이 이 책입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타이탄까지 가게 됐는지는 여기에서는 설명을 안 하려고 합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정말 무의미하다, 인생이란 무의미해'라는 결론으로 나지는 않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 콘스탄트가 왜 타이탄까지 가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가 나오게 되는데, 아주 먼 곳에 살고 있던 외계 존재가 또 다른 존재한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였거든요. 그 메시지가 두 음절의 단어입니다. 그 두 음절의 단어는 거창한 게 아니에요. 사랑이라든가 평화라든가 그런 건 아니고요. 정말 간단한 단어인데 그 단어를 위해서 수많은 인류가 온갖 사건을 마주하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그 두 음절에서 이상하게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저는 이 소설을 읽은 시간이 무의미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그리고 커트 보니것의 시니컬한 농담적 문장을 한번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한자(황정은)의 선택
앤 카슨 저 / 윤경희 역 | 봄날의책
이 책을 옮긴 윤경희 번역가가 '녹스'의 뜻을 적어두었습니다. '녹스(Nox), 일몰과 일출 사이의 시간, 밤, 죽음, 하룻밤의 사랑놀이, 밤 같은 상황, 어둠, 음울' 이런 뜻이 있는 여성 명사라고 합니다.
출판사에서 (이 책이) 192페이지라고 밝혔는데, 이 책에는 사실 페이지 번호나 목차가 표기되어 있지 않습니다. 한 장의 종이를 계속 접어서 만든 아코디언 북이기 때문인데요. 이런 형식을 레포렐로(leporello)라고 하는데, 병풍 모양으로 접은 사진첩 혹은 그림책을 이르는 말이기도 합니다.
『녹스』는 시인이자 번역가 고전학자이기도 한 앤 카슨이 1978년부터 2000년까지 22년 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하고 헤어져 지내던 오빠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만든 책입니다. 앤 카슨은 그래서 이 책을 '그를 위한 묘비명'이라고 쓰기도 했는데요.
두꺼운 종이 상자에 담긴 책을 꺼내고 보면 표지에 해당되는 첫 페이지에 저자 이름도 없고 제목도 없고 출판사 이름도 없어요.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레포렐로 뭉치인데, 오빠의 어린 시절 사진을 잘라 붙여놨어요. 이 표지를 넘기면 비로소 저자의 이름과 책 이름이 등장합니다. 페이지를 또 넘기면 굵은 글자로 여섯 번 적은 오빠의 이름이 보입니다. 그 위에 '녹스 프라테르(frater) 녹스'라는 활자가 새겨진 종잇조각이 붙어 있습니다. 녹스는 밤이고 프라테르는 오빠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밤 오빠 밤'이라는 뜻이겠죠.
또 다시 한 장을 넘기면 대단히 낡아 보이는 많이 구겨진 듯한 종이에 스텐실 기법으로 인쇄된 시 한편이 붙어 있습니다. 101번이라고 이름 붙은 시인데, 이 시는 기원전 50여 년 전에 '카툴루스'라는 고대 로마 시인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죽은 형제의 죽음을 슬퍼하며 쓴 10행의 비가입니다. 이 시는 63개의 단어로 적힌 시인데, 앤 카슨은 『녹스』에서 이 비가에 사용된 63개의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들과 용례를 수집합니다. 그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책의 왼쪽 펼침 면에는 그렇게 수집된 단어를 하나씩 써놨어요. 왼쪽 면은 다 그 단어들의 몸집입니다. 그리고 오른쪽 면에는 앤 카슨의 기억, 그리고 오빠와 관련된 내용들을 붙여두었습니다. 제가 '붙여두었다'라고 말한 이유가, 결과적으로는 이게 지면에 인쇄된 활자이지만, 이 책의 모든 지문은 우리가 통상 책을 읽을 때 볼 수 있는 인쇄된 문장이 아니라 수첩이나 사진, 편지, 혹은 편지 봉투, 발신지 소인이 찍힌 우표들, 낙서들에서 잘라내고 오려내고 뜯어낸 파편을 풀이나 물감이나 스테이플러 같은 철심으로 고정해서 붙인 스크랩북의 형태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 시도들이 매끄러운 서사가 되지는 못합니다. 오빠가 어떻게 살았고 어디서 살았고 어떻게 죽었고, 그 이야기가 나오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서사를 이루지 못하고 파편으로 흩어지고 지면에 조각으로 산발적으로 붙어 있는 이유는 애초에 한 사람의 죽음과 그 죽음으로 산 사람의 마음에 일어나는 일이 해독이 불가능한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습니다. 독자는 책 바깥에서 이 책을 더듬으면서 그걸 읽고, 그리고 각자가 가진 기억이나 경험이라는 자원을 바탕으로 그 파편들을 해독하려고 시도를 해보는 것이죠.
책을 펼쳐보면 아시겠지만 모든 페이지가 다 특별한 책입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시각을 통한 촉각 경험을 했는데요. 펼쳐서 눈으로 보는 순간에 손의 질감이 느껴지는 독특한 경험을 했는데, 여기에 수록된 어떤 질감은 또 고통으로도 감각이 돼요. 이를테면 뭔가 뾰족한 것으로 철필 같은 것으로 긁은 자국이 있어요. 종이가 움푹 패인 자국인데 이 흔적이 뒤에 이어지는 페이지까지도 계속 이어지거든요. 막상 만지면 매끄러운 지면인데, 만져보기 전까지는 어딘가 구겨지고, 움푹 패이고, 물들고, 번지고, 심지어는 묻어날 것 같은 그런 페이지들인데. 그래서 이 책을 만져보는 일 자체가 감각을 뒤흔드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앤 카슨이 겪은 개인적인 상실과 애도를 또 다른 방식으로 전혀 다른 타인인 제가 경험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파코 로카 글·그림 / 성초림 역 | 아름드리미디어
파코 로카는 스페인의 작가이고요. 그래픽 노브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는 주제들을 많이 다뤄왔어요.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해서 그래픽 노블을 그리기도 했고, 살바도르 달리의 일생을 작품으로 그리기도 했습니다. 『주름』에서는 알츠하이머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 책은 2012년에 우리나라에 출간이 됐었어요. 그런데 절판이 됐고, 올해 9월에 다시 나왔습니다.
첫 장면이 의미심장한데요. 은행을 배경으로, 한 사람의 남성과 한 사람의 여성이 은행 직원과 상담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요. 은행 직원으로 추정되는 중년의 남성이 얘기합니다. "선생님의 연봉이 적고 부인도 일을 안 하시니 대출은 어렵습니다. 담보가 있다면 조정을 해보겠습니다만"하고 완곡하게 거절의 이야기를 해요. 그러자 마주 앉은 두 사람이 놀란 표정을 하면서 남자가 얼굴을 감싸쥡니다. "대출이라니요. 제가 지금 대출해 달라는 게 아니잖아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은행 직원은 침착하게 "진정하십시오. 저는 여기 지점장으로 20년째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한 장을 넘기면 배경이 전혀 다른 곳으로 바뀝니다. 인물들은 똑같은데 한 집의 내부로 바뀌어요. 그러면서 젊은 남성이 이야기하는 거죠.
"여긴 은행이 아니에요. 은행 일 그만두신 지 벌써 한참 되었다고요. 얼른 저녁 식사나 하세요."
은행 직원인 남성이 깜짝 놀라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이때 갑자기 이 남성의 모습이 노인으로 바뀝니다.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요. 자신은 침대에 앉아서 밥상을 받은 참이고 먹지 않은 식사가 그 위에 올라와 있는 거예요. 젊은 남성이 "이제 더는 못 참겠다. 내가 미쳐버릴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노인이 듣고 있다가 수프를 젊은 남성에게 끼얹으면서 "그만 가봐"라고 말하면서 첫 번째 씬이 끝나요. 젊은 남성은 노인의 아들이고 옆에 있던 젊은 여성은 며느리입니다. 그리고 이 노인의 이름은 에밀리오예요.
이어지는 이야기를 보면 아들 부부가 에밀리오와 함께 요양원을 찾습니다. 그리고 에밀리오는 요양원에서 지내게 돼요. 아들은 자주 찾아오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고, 에밀리오에게 이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는 다른 노인들이 와서 인사를 건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앞으로 당신과 내가 같은 방을 쓰게 될 거라고 말하는 미겔이라는 인물입니다. 에밀리오는 미겔과 함께 요양원을 둘러보는데, 곳곳에 무료함이 고여 있어요. 노인들은 이 공간 저 공간에서 졸고 있고 공간에는 활기가 없습니다. 요양원을 둘러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공간이 1층과 2층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는 거예요. 1층은 거동이 혼자서 가능하고 비교적 일상생활이 가능한 환자들이 모여 있고, 2층에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고 일상생활을 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들이 있다고 얘기합니다.
에밀리오는 식사 자리에서 미겔의 소개로 다른 친구들을 만나게 되는데요. 그 중에는 안토니아 할머니가 있고, 돌로레스 할머니와 남편 모데스토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이 다섯 사람이 계속해서 식사를 같이 하는 멤버가 돼요. 안토니아 할머니는 미겔과 마찬가지로 기억과 관련된 문제는 없습니다. 치매 증상이 없어요. 그건 돌로레스 할머니도 마찬가지예요. 안토니아 할머니는 자신이 나이가 들었고 자식들에게 돌봄의 짐을 지우기 싫어서 이곳에 온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를 찾아오는 것은 한 명의 손주뿐이에요. 돌로레스 할머니는 남편인 모데스토가 치매를 앓고 있어서 그를 돌보기 위해 같이 요양원에 입소한 경우입니다. 모데스토는 대부분 초점 없는 눈으로 앉아 있어요. 아내인 돌로레스가 가끔 귓속말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주름』은 이 다섯 사람이 관계를 쌓아 나가면서 요양원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 일상을 굉장히 세밀하게 보여줘요. 구체적으로 하루의 일과가 어떻게 되고, 일주일의 일과가 어떻게 되고, 어떤 사람들이 오고, 이들은 무엇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지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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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