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가 얼룩 개를 기른다고요? 정이현 소설가에게 어느 날 찾아온 강아지, 그 작은 돌봄과 애쓰는 마음을 연재합니다.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강아지, 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서로 적응해가는 이야기, <채널예스> 격주 월요일을 기대해주세요. |
이제 11회를 맞는 이 연재에 긴 부제를 붙일 수 있다면 유력한 후보 중 하나가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을 것들에 관하여'일 것이다. 조금 더 길어도 된다면 '어린 개가 아니었으면 모르고 살았겠지만 모르는지도 몰랐을 것들에 관하여'가 될지도 모르겠다.(음, '모르겠다'는 표현이 계속 겹치는데 내 무지함과 혼란스러움의 증거인 듯하여 그냥 놔두기로 한다)
강아지 예방접종과 산책 문제가 대표적이다. 바둑이는 보호소에서 종합 백신을 1회 접종하고 왔다. 강아지 종합 백신(DHPPL)은 '홍역', '전염성 간염', '파보 바이러스 장염', '파라 인플루엔자', '렙토스피라' 등 전염성 질환을 예방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강아지가 모체에게서 받은 자연 면역이 떨어지는 생후 6~8주 사이에 접종을 시작한다. 그 후 2주 간격으로 다섯 번 접종하는 것이 보통이라고도 한다.
여기까지는 끄덕끄덕. 접종이 다 끝나지 않은 강아지들에게 산책 등의 외부 활동이 위험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도 끄덕끄덕. 그렇다면 바둑이의 접종 일정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데에도 또 한 번.
그런데 어린 생명체에게는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있지 않은가? 강아지의 원만한 사회화를 위해서는 8~16주 사이가 무척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시기를 놓치면 강아지가 인간뿐 아니라 다른 개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법을 제대로 익히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이 모든 육아서 아니 반려견을 위한 지침서마다 빠지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어린 사람들'을 낳아 키우는 동안 순간순간 나를 가장 예민하게 만든 말은 '시기를 놓치면'이었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큰일 납니다! 큰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너무 두려워 캐물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 마법의 언어는 엄청나게 강력한 이빨을 가져서, 아이가 태중에 있을 때부터 내 목덜미를 콱 물고 아직껏 놔주지 않고 있다. 이젠 무뎌질 만한데도 자식의 일이라면 그럴 수 없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랐고 그 대단하신 '중요한 시기'는 계속 새롭게 등장했다.
아무튼 그 '적정 시기' 이론에 따르면 우리집 바둑이는 예방접종 시기도 평균에 비해 늦었을뿐더러 사회화 시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무엇에 우선순위를 둘 것인가? 마음이 급했다. 몸과 마음의 균형에 관한 저 오랜 딜레마는 강아지를 키우면서도 비껴가지 않았다. 바둑이에 대해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설마 내가 녀석을 '자식'과 비슷한 반열로? 나는 서둘러 내적 도리질을 치면서도, 치솟는 조바심을 어쩌지 못했다.
밖에 나가지 못하는 강아지가 어떻게 사회화 교육을 받을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견주들은 나 말고도 아주 많았다. '강아지 접종 산책'이 포털 검색창에 자동 완성형으로 뜨는 것만 봐도 말이다. 내가 이제 인간들의 올바른 성장도 모자라 개의 올바른 성장에까지 골몰해야 하다니, 바둑이를 만난 후 나의 세상은 한층 복잡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육아에 자주 그래왔듯이 이 문제에 나와 E의 의견도 엇갈렸다. 나는 접종을 다 하고 내보내자는 쪽인데 반해 E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었다.
"생각해봐. 얘가 그 험준한 산속에서 태어나서 사는 동안 별의별 것에 다 노출되었을 텐데 이렇게 멀쩡하잖아. 웬만한 면역은 생겼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다 무슨 일 생기면?"
"잘 안 생겨."
잘 안 생긴다니, 누군가에게는 생긴다는 뜻이었다. 그런 무책임한 말이 어디 있는가. 희미하고 작은 위험 요소가 언제나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어봤지만 그들의 대답은 대동소이했다. 2차 접종을 하면서 만난 수의사는 다섯 번의 접종이 끝난 뒤 산책을 나가는 게 원칙임을 분명히 했다.
"헌데, 우리 바둑이한테는 사회성 발달이 아주 중요하니까 그 부분은 신중히 결정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나의 곤혹스러운 표정에 그는 우선 3차까지 끝내고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고 했다. 같은 질문을 받은 훈련사는, 이는 개인적 견해이며 강아지마다 사정이 다르긴 하다는 전제를 깔고서 말했다.
"5차까지 맞고 나가면야 좋겠지만 바둑이의 경우는 예외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6개월령이 될 텐데 그때까지 바둑이가 집에서만 있는 건 좀."
"그냥 나가도 된다는 말씀일까요?"
"글쎄요, 판단은 견주님이 하시는 거죠."
판단을 하는 사람이 책임도 지는 거였다. 그렇게 책임감과 시간을 동시에 뭉개며 3차 접종일 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작은 사건이 일어났다.
눈. 첫눈이 내린 것이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이현(소설가)
1972년 서울 출생으로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2002년 제1회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나왔다. 이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제5회 이효석문학상(2004)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제51회 현대문학상(2006)을 수상했다. 작품집으로 『낭만적 사랑과 사회』『타인의 고독』(수상작품집) 『삼풍백화점』(수상작품집) 『달콤한 나의 도시』『오늘의 거짓말』『풍선』『작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