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들은 평소 뭘 보고 듣고 읽을까? 언젠가 영감의 원천이 될지도 모를, 작가들의 요즘 보는 콘텐츠. |
박솔뫼 저 | 위즈덤하우스
나에게 박솔뫼의 소설이 매력적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 목소리가 들린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이 짧은 소설을 여러 번 재독하며 그의 말투에 대해 생각했다. 같은 말을 반복하여 문장의 개별 정보 값을 줄이는 방식으로 무에 접근하거나, 확신을 회수하는 방식의 말하기. 한 걸음 전진했다 다시 퇴보하는 방식의 말하기. 그 과정에서 생겨나는, 주춤거리는 발자국들로서의 말하기. 힘주지 않고 흘러가면서 흘러감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말하기. 박솔뫼의 소설은 평서문으로 쓰이지만 역시 글쓰기보다 말하기에 가깝다고 느껴지고 말하기만큼이나 생각하기에 가까운 것 같다. 생각이 주춤거릴 때 함께 주춤거리는 말들. 그것의 가벼움, 운동성.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저/민승남 역 | 을유문화사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달걀과 닭』을 처음 읽었을 때 그 책을 지나치게 좋아한 나머지 한 친구는 나에게 종교가 생긴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은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지만 그때 나는 리스펙토르의 책이 더 이상 번역되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주변의 모든 이들에게 그의 책을 추천하고 다녔다…… 『별의 시간』은 리스펙토르의 마지막 소설이다. 너무 사랑하는 친구의 유작을 읽는 기분으로 읽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열병의 방>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저/이계성 역 | 미디어버스
작년 한 해 가장 잘한 일이라면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공연 <열병의 방>을 두 번 관람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 작품에 대해 할 말이 정말 많지만…… 하지 않겠다. 아피찻퐁의 영화를 보았을 때에는 그의 영화 같은 시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열병의 방>을 관극한 이후에는 시를 그만 쓰고 싶어졌다. 2023 옵신 페스티벌이 막을 내린 이후 현재 국내에서 이 공연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없지만, 대신 AI와 아피찻퐁의 대담집 『태양과의 대화』를 읽어보아도 좋을 것이다.
클레르 누비앙 저/김옥진 역 | 궁리출판
한때 러시아 어부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팔로우한 적이 있는데 그가 종종 찍어 올리는 심해 생물의 사진이 너무나 인상적이기 때문이었다. 눈이 몸통만하다거나, 입 속에 또 다른 머리가 존재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상정해 왔던 생명체의 이미지라는 범주를 확연히 벗어나 있었다. 사회가 동물의 얼굴이라는 대상을 정말 인간중심주의적으로 그려 왔구나, 인간의 형상과 멀리 있다고 느껴지는 것은 언제나 못생겼다고 여겨 왔구나…… 생각했다. 지난 연말, 친구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친구가 멋진 책이 있다며 가져와 보여주었다. 그는 잠이 안 오는 밤이면 이 책을 펼쳐본다고 했다.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다양한 형태의 심해 생물들이 고화질로 인쇄되어 있었다. 외계라는 장소가 인간과의 거리가 가장 먼 곳을 의미한다면 그곳이 바로 심해일 것 같다고, 심해의 어둠은 희한하게도 잠이라는 공간의 질감과 닮아 있어서 불면의 밤에 읽기 좋은 책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반야심경
반야심경을 콘텐츠라고 할 수 있을까? 불교 신자인 나의 부모님은 이십오 년 전 동생을 불교유치원에 보냈다. 나는 방학마다 동생이 다니는 절에서 열리는 어린이 불교 캠프에 참여해야 했다. 절에는 벌레가 너무 많았고 스님들은 무섭고 엄해서 언제나 캠프에 가기 싫어했는데, 함께 불경을 외는 시간만큼은 좋아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시…… 성인이 된 나는 종종 템플스테이를 하러 절을 찾아다니고, 대학원도 불교 학교로 진학했다. 다시 찾아 본 반야심경은 더욱 아름다웠다. 대한불교조계종 종단 표준의례 한글 반야심경에 의해 “눈의 경계도 의식의 경계까지도 없고, 무명도 무명이 다함까지도 없으며”, “온갖 괴로움을 없애고 진실하여 허망하지 않음을 알지니라”라고 번역된 구절을 특히 좋아한다.
김선오(시인)
199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좋아하는 것이 많지 않지만, 무한히 변주되고 갱신되는 피아노와 시만큼은 자신 있게 좋아한다 말하는 시인. 시집 『나이트 사커』와 『세트장』, 에세이 『미지를 위한 루바토』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