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시를 써요
아빠에게 시가 뭐냐고 물으면
어떤 날은 "구름 같은 거란다." 하시고
또 어떤 날은
"노래 같은 거란다."
하세요
또 어떤 날은
아주 짧은 이야기라고 하고
어떤 날은 기도 같은 거라고 하세요
오늘 또 물었더니
"음! 시는 바로 너야."라고 하셨어요
아 알겠어요
아빠에게는
내가 시인가 봐요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허연 시인님의 첫 번째 동시집 『내가 고생이 많네』 가운데 「시는 '너'예요」를 읽어드렸습니다. 시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어린이는, 어린이의 말과 행동은 어떤 장면으로 기억될까요? 시인은, 그런 어린이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을까요?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불온한 검은 피』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등 날카로운 시선으로 세상에 말 걸어온 허연 시인님의 첫 번째 동시집 『내가 고생이 많네』에는 호기심 많고, 고민도 많고, 반항하고, 또 기꺼이 사랑을 건네는 다양한 어린이의 목소리가 담겨 있습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동시집 『내가 고생이 많네』를 쓰신 허연 시인님을 모시고, 어린이의 입장이 되어 시를 쓰는 기쁨과 깊고 넓은 시 세계를 구축해온 허연 시인님의 시에 관한 생각들을 함께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 허연 편>
오은: 허연 시인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991년 <현대시세계> 신인상으로 등단한 이후 『나쁜 소년이 서 있다』 『불온한 검은 피』 『당신은 언제 노래가 되지』 등의 시집과 『너에게 시시한 기분은 없다』 『고전 여행자의 책』 등의 산문집을 냈다. 현대문학상, 한국출판학술상, 시작작품상을 받았다. 연세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추계예술대학교에서 문화예술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일본 게이오대학교 미디어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매일경제신문에 재직 중이다.”
공부를 많이 하셨어요. 석사학위를 받은 저널리즘과 박사학위를 받은 문화예술학은 좀 다를 것 같거든요. 어떻게 영역을 건너 공부하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허연: 제가 좀 즉흥적이고 지조가 없어요. 당시 하고 싶은 일을 했던 거예요. 꾸준히 한 일은 시 쓰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오은: 왜 저랑 잘 통하는지 알 것 같네요.(웃음) 이번에 허연 시인님이 웬만해서 내지 않을 것 같은 책이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바로 동시집입니다. 『내가 고생이 많네』라는 제목의 책이고요. 읽기 전에 ‘내가 고생이 많네’라는 말을 정말 아이가 할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읽고 난 뒤 너무나 사랑하는 동시집이 되었어요.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시인님께서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허연: 애들은 진짜 그렇게 얘기해요. 어른들이 왜곡하는 거죠. 제가 아주 늦은 나이에 딸을 하나 키우게 됐는데요. 어른들은 많은 단어를 가지고 큰 얘기를 하는데 사실은 작아요. 결국은 작은 얘기를 하고 있는데요. 아이들은 많지 않은 단어로 작은 얘기를 하지만 얘기가 크더라고요. 가끔 전복도 있고요. 거기에서 재미를 느꼈어요.
또 너무 늦게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모르는 게 많잖아요. 주변에 묻기도 하고, 인터넷에 검색을 하면서 키우다가 도저히 안 돼서 책을 읽어주기로 했어요. 거의 한 살 때부터 지금까지 밤마다 책을 읽어줬죠. 아주 특별한 일이 있지 않는 이상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그 친구가 말을 익혀가는 과정이 보였어요. 말을 자기 것으로 가지고 와서 응용하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출판사 분들께 우연히 했는데요. 바로 그걸 한번 써보자고 하신 거죠. 그렇게 나오게 된 책이에요.
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이 나온 뒤, 이 시를 쓰게 만들어준 허민재 어린이의 감상일 것 같아요. 민재 어린이는 이 시집을 어떻게 평가하던가요?
허연: 그림 그리는 시간도 걸리고 해서, 원고를 시작한 지 꽤 지나서 시집이 나오게 된 건데요. 그 중간에 어찌하다가 이 친구가 편집이라는 단어를 알게 된 거예요. “책 어떻게 됐어?”라고 묻기에 “지금 편집 중이야.”라고 했더니 그 다음부터는 “편집 안 끝났어?” 하고 묻더라고요. 출간 전에 드디어 “편집 끝났어.” 이랬더니 너무 좋아하고 춤을 덩실덩실 췄어요. 그러더니 아이돌 된 것보다 더 좋다고 하는 거죠. 책에 자기 이름이 나오고 하니까요.
오은: 그림 말씀을 하셨는데요. 동시와 함께 놓인 소복이 작가님의 그림을 보면 확실히 시가 더 잘 들어오기도 하고요. 시와 약간 다른 내용의 그림들도 있어서 읽고, 보는 맛이 다양했어요. 시인님은 소복이 작가님의 그림 보면서 어떤 생각하셨나요?
허연: 많이 놀랐어요. 우선 닮았어요. 그림 속 주인공들이 실존 인물과 닮아서 놀랍더라고요. 특히 깜짝 놀란 건 민재가 짜장면하고 군만두 먹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짜장면만 있으면 안 돼요. 군만두가 반드시 있어야 돼요. 그런데 우리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작가 분께서 그림 중간에 짜장면하고 군만두 먹는 장면을 그리셨더라고요. 실제로 저희를 보신 것처럼 말이에요. 그 밖에도 작가님 식으로 변주를 하셔서 좋았어요. 이 책이 만약에 팔린다면 소복이 작가님의 공이 더 크지 않을까 싶어요.
오은: 거의 대부분의 시가 허민재 어린이의 말에서 싹튼 것이잖아요. 그런 말을 동시로 쓴다는 것을 생각했는데요. 그 일은 다만 들은 말을 기록하는 게 아니라 아예 그의 입장이 되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 같더라고요. 그러니까 여기에 담긴 시를 쓰는 시간은 아빠 허연에게도 각별한 시간이었을 것 같아요.
허연: 우선 나도 이렇게 컸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번째로 생각한 것은요. 아이들은 온마음으로 말해요. 아프면 아프다고, 필요하다면 필요하다고 온마음으로 말하죠. 그걸 보면서 내가 온마음으로 말하는 걸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 어른들의 생각을 많이 썼구나, 하고요. 아이들처럼 온마음으로 쓰는 것이야말로 동시의 모습과 가장 가깝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오은: 허연의 시를 유독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들을 ‘허연주의자’라고 부르는데요. 시인님은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아웃사이더를, 언더그라운드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잖아. 그런 언더그라운드로 남고 싶은 마음도 있고.” 그렇지만 이런 열성적인 독자들, 그리고 매년 중쇄를 찍는 시집을 보면 아웃사이더, 언더그라운드로 남지 못하도록 독자들이 발목을 붙잡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거든요. 다양한 감정이 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허연: 시집이 팔려 나가는 것을 저는 실측할 수 없어요. 물론 인세가 들어오지만, 시집의 인세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하지 않으니까요. 오로지 제가 고민하는 것은 창조거든요. 창조는 자기식으로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내 식으로 말하고, 내 식으로 아파하고, 내 식으로 하늘의 언어를 받아쓰고, 그러고도 부끄럽지 않은 일이 시라고 생각하고요. 나머지는 인생사가 다 그렇겠지만 운이에요. 팔리고 안 팔리는 것, 상을 받고 안 받는 것, 누군가가 알아주고 안 알아주는 것들은 정말 우리가 이 별에 태어난 것처럼 운에 준하는 일이라 그건 고민조차 안 해요.
그런 과정에서 독자는 저를 섬뜩하게 하는 존재들이었어요. 혼자 휘적휘적, 내 멋대로 길을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는데 멈칫할 정도로 나를 노려보고 있는 사람들이었죠. 그런 존재들이 없거든요. 시를 쓰는 것에 대해서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제가 시로 밥 먹고 사는 사람도 아니고요. 그런데 독자들은 저를 멈칫하게 하는 존재들이었고요. 지금은 독자가 없으면 허연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허연: 책 제목은 『백년보다 긴 하루』라는 책이고요. 친기즈 아이뜨마또프라는 작가의 소설이에요. 작가가 이 책을 썼을 때가 구 소련 시절이니까요. 지금은 아마 카자흐스탄 소설가로 되어 있을 것 같아요. 일단 너무나 훌륭한 소설입니다. 누군가가 죽고, 그 자식과 가족들이 그 사람을 고향에 묻기 위해 중앙아시아 사막을 걸어서 하루 동안 가는 이야기인데요. 그 하루 사이에 이들의 슬픈 가족사는 물론이고 중앙아시아의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역사와 종교 간의 갈등, 나아가 우주 이야기까지 나와요. 제가 이 책을 어느 외국에서 혼자 골방에 갇혀 읽었던 것 같은데요. 그 날을 잊을 수가 없어요. 이 책을 가끔 이야기를 했는데 누구도 이 책을 아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