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소박한 시작들이 문학을 만든다” (G. 전승민 평론가)
“글을 쓴다는 건 어쩌면 온 힘을 다해 누구도 듣지 않는 나의 노래를 기록하는 것과도 같을지 모른다”고 말씀하시는, 에세이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를 쓰신 전승민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글ㆍ사진 신연선
2024.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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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의 내 삶이 좋고, 사람들 속에 있는 나의 모습이 좋다. 있는 그대로 '나'인 내가 좋다. 그래서 이런 소수자성은 뭐랄까, 그것들이 사람들로부터 받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선과는 마땅히 싸우고 대항해야 할 무엇이지만 동시에 소중하고 멋진 나의 얼굴이기도 하다. 개인이 극복해야 할 것은 자신의 소수자성이 아니라 그로 인해 부당하게 입는 사회적 타격과 폭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나'부터 자신의 고유함을 받아들여야 한다. 있는 그대로 긍정해야 한다. 그래야 싸울 수 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문학 평론가 전승민 작가님의 에세이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전승민 작가님은 타인과 다른 속도로, 타인과는 다른 삶의 경험을 지나오면서 자신에게 새겨진 고유한 무늬를 기꺼이 사랑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타자와 치열하게 연결되고, 어긋나고, 다시 접촉함으로써 그 사랑을 확장시키죠.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는 그런 전승민 작가님의 사람에 대한, 문학에 대한, 무엇보다 삶에 대한 사랑의 고백입니다.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에세이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를 쓰신 전승민 작가님을 모시고, 불확실한 삶의 속성들을 낙관으로 이어가는 태도와 그것을 가능하게 한 문학의 힘에 대해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인터뷰  전승민 편

오은: 문학 평론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신데요. 첫 책이 에세이집이에요. 물론 평론집은 묶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까 이것이 이례적인 일은 아닐 수 있을 텐데요. 그렇다 해도 첫 책을 다른 평론가의 경우보다 먼저 받아본 셈이잖아요. 그래서 각별한 느낌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승민: 그렇더라고요. 평론가들의 어떤 공동체에서는 조금 이례적인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사후적으로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굉장히 복된 일 같거든요. 평론가지만 에세이로 먼저 독자들한테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이 말이에요. 보통 생각하시기를, 저는 몰랐지만, 평론가라고 하면 딱딱하고, 고지식한 면도 있고, 날카롭고, 틈이 없을 것 같은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요. 근데 이 책을 읽으면 아시겠지만 저는 굉장히 허술한 사람이거든요.(웃음) 틈도 많고요. 엉뚱한 면도 있어요. 그래서 평론가 혹은 평론이라는 글 자체가 사실은 흔히 생각하시는 엄격함보다는 여느 일상을 사는 어떤 사람의 한 시선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에세이로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되게 감사한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오은: 전승민 작가님 소개를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상남도 진주에서 태어났다. 2020년 대산대학문학상과 202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하며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영문학을 공부하면서 시바견 호두와 함께 남산 아래에서 살고 있다. 이십 대의 많은 시간을 병원에서 보냈고 덕분에 남들과 약간 다른 삶을 살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삶은 온통 불확실한 것들로 가득하며 그것들이 결국은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준다고 믿는다. 비록 그것이 지금은 힘들고 나쁜 것처럼 보일지라도 말이다. 사람은 사람에게 가장 큰 상처를 받지만 구원 또한 사람에게서 받는다고 생각한다. 햇빛이 가득한 공원 벤치에 앉거나 누워서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한다.”

영문학을 공부하던 분이 한국 문학 비평을 하게 됐어요. 어쩌다 한국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신 건가요?

전승민: 학부 4학년 즈음이었던 것 같은데요. 영문학이 너무 재미있으니까 한국 문학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국문학은 어떻게 가르치는지, 어떤 걸 학생들이 좋아하는지 되게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국문과 수업을 한 과목만 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남는 학점을 국문학과 수업에 등록을 했죠.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오은: 오늘 이야기 나눌 책,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가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전승민: 어릴 때부터 문학도의 꿈을 키워 온, 비장한 마음으로 작심하는 사람들만이 글을 쓰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소박한 시작들이 문학을 만든다는 의미인데요. 아주 거창하고 비장해 보이는 것들도 시작, 또는 그것의 내면을 알고 보면 굉장히 사소하고 작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거든요. 『허투루 읽지 않으려고』는 그런 것들을 느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어요.

오은: 책 제목에 ‘허투루’라는 단어가 들어간 경우를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검색해 봤어요.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한 권도 '허투루'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이 없더라고요. 작가님께서 첫 '허투루'를 점하게 된 셈이죠. 제목이 어떻게 결정되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전승민: 책 제목을 고르는데 진짜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굉장히 많은 안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는데요. 저는 비평을 쓸 때는 제목을 잘 짓거든요. 그래서 제목 짓는 인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요. (웃음) 이상하게 에세이는 하나의 제목을 달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아마도 글 안에 일상이 콜라주처럼, 다양한 모습들이 엮여 있다 보니까 일관된 제목을 찾는 게 어려웠던 것 같아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요. 역시 눈 밝으신 핀드 대표님이 저의 글 <깨끗한 우울>에 수록된 문장에 중에서 뽑아주셨어요.

처음에는 이 말이 너무 평론가의 정체성과 닿아 있는 건 아닌가 염려했었는데요. 생각해 보니까 허투로 읽지 않는다는 일이 텍스트에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사람 사이나 우리가 살아가는 일 자체, 나를 돌아보는 일까지 포괄할 수 있을 것 같았고요. 실제 저의 삶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는 것 같아서요. 기쁘게 낙점을 하게 된 제목입니다.

오은: "'나'에 관해 이야기하는 일이 제일 어려운 일처럼 느껴진다"고 쓴 부분이 있습니다. 에세이라는 장르는 어쩔 수 없이 나를 드러내지 않을 수 없는 장르잖아요. 책을 쓸 때도, 그리고 메일링 연재를 할 때도 쓰면서 어떤 어려움을 겪진 않으셨을까, 싶었어요.

전승민: 아무래도 실제 삶이 언어로 기록이 된다는 것 자체가 큰 어려움이었어요. 왜냐하면 우리가 현실에서 만나서 얘기를 하고,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오해는 늘 발생을 하잖아요. 가장 직접적인 거리에서 만나는 사람과도 오해가 있기 마련인데요. 글자라는 매개로 전환이 되면 오해가 더 커질 거라는 염려를 했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차피 삶 자체에서 오해들이 무수히 많이 발생한다면, 글자에서 발생하는 오해도 당연히 그 안에 포함이 되지 않을까, 괜찮을 것 같다, 생각한 뒤에 가감 없이 쓸 수 있었어요.

다만 더 염려가 됐던 것은 저와 연루된 타인들의 이야기였어요. 예를 들면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들과의 일화로 그들의 모습이 에세이로 남겨질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것은 저의 시선에서, 제가 경험한 그들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죠. 독자가 그것을 그 사람의 전부라고 판단하고, 확정해 버리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겠다는 염려가 됐어요. 그래서 최대한 그런 부분을 의식하면서 쓰려고 노력했죠. 물론 잘 안 되더라고요. 어느 선까지가 맞는 것인지 저는 알 수가 없으니까요. 독자 분들이 어떤 시선을 가지고 있을지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그냥 용감해져야 되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나를 말하는 게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해보니까 가장 어려운 거더라고요.

오은: 앞서 제목 이야기를 했는데요. 비평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고백한 부분에 이 말이 나오잖아요. 제일 싫어하던 과목이 국어였던 사람이 문학을 순수하게 사랑하게 되고, 평론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궁금해지더라고요.

전승민: 특별한 서사는 사실 없어요. 딱 하나를 꼽자면 책을 많이 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책이라는 물건을 좋아했어요. 연필을 좋아하듯이 책이란 물건을 좋아해서요. 집 밖을 거의 나가지 못하던 시절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인터넷이었으니까요. 그때 SNS도 만들고 세상을 경험했어요. 그래서 저는 인스타그램에 참 감사함이 많아요. 그게 없었으면 그 시절의 문화를 저는 전혀 몰랐을 거예요. 어쨌든 책도 그렇게 접하게 된 거죠. 요즘 사람들이 뭘 사지, 하고요. 기억나는 게,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니 마니 하던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절판될 것 같은 책, 그리고 비싸서 못 사는데 할인을 하는 책들을 쟁여두자고 하고 그랬어요. 그래서 거기에 저도 탑승을 했었죠.(웃음)


오은: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입니다. <책읽아웃> 청취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주세요.

전승민: 한국 장편 소설이고요. 김연수 작가님의 『원더보이』라는 책입니다. 앞서 저의 낙관이 어디서 온 것인지 물어보셨잖아요. 돌아보면 김연수 작가님께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김연수 작가님이 산문도 되게 많이 쓰시고, 소설은 말할 것도 없이 많이 쓰시는데요. 특히 어떤 분들은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을 보고 현자가 나오는 소설이라고 하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삶에 대해 거리를 두고 보고, 통찰을 하는 인물들이 늘 나와요. 저는 그런 너르게 던지는 시선들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런 작품을 읽을 때 엄청난 해방감이 들고요. 넉넉하게 숨 쉴 공간이 생기는 느낌이었거든요. 특히 『원더보이』는 제가 읽었던 김연수 작가님의 첫 번째 소설이었어요. 이걸 다 읽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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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