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에 이름을 붙이는 이유를 몰랐다. 자주 뽀득뽀득 세차하고, 긁혀서 도장이 벗겨지면 돈을 들여 새로 칠하는 이유도 몰랐다. 이름이 있건 말건 자동차의 기능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겉이 좀 더러워지고 여기저기 벗겨져도 자동차를 타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나는 자동차의 겉면보다 내부의 좌석이 훨씬 중요하리라고 생각했다. 내부를 잘 관리하면 탑승자가 편안하게 차를 탈 수 있다. 이건 탑승 경험에 직결된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상당한 비용을 내면서 겉면을 관리하는 걸까. 자동차 소유주들과 이야기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대강이나마 이해했다. 이들은 자신의 자동차를 아끼는 거였다. 적어도 애착을 갖고 돌보고 싶어 하는 거였다.
나는 ‘타디스’를 생각했다. 몇 년 동안 내 휴대폰 뒷면에는 타디스가 있었다. 타디스 테마의 휴대폰 케이스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타디스(Tardis)는 “시간과 공간의 상대적 차원(Time and Relative Dimension in Space)”의 줄임말이다. 또한 영국 BBC에서 만든 SF 드라마 <닥터 후>에 나오는 타임머신의 이름이다. 설정상 ‘타임로드’들의 타임머신 일반을 가리키는 말이긴 한데, 작중에 등장하는 타디스는 거의 하나뿐이다. 그래서 타디스라고 하면 대개 드라마의 주인공 ‘닥터’가 사용하는 하나뿐인 타임머신 겸 우주선을 가리킨다. 파란색 전화부스 모양으로 온갖 시간대의 온갖 우주에 출현하는 바로 그 녀석.
타임머신으로서 타디스는 변신 기능이 있다. 어느 시간대에 자리하든 눈에 띄지 않도록 적당한 모습으로 위장할 수 있다는 설정이다. 하지만 닥터의 타디스는 언제나 파란색 전화부스의 외관을 유지한다. 워낙 골동품인데다 회로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고대 폼페이가 배경이든, 외계 행성에 건설된 새로운 뉴욕에 있든, 닥터의 타디스는 항상 “Police Public Call Box”라고 쓰인 파란색 형태로 덩그러니 나타난다. ‘경찰 박스(Police Box)’라고도 불리던 파란색 부스는 영국에서 실제 쓰이던 것으로, 원래는 경찰 업무와 관련해 곳곳에 마련된 구조물이었다. <닥터 후>가 처음 제작된 1960년대까지만 해도 파란색 부스가 흔했다고 한다. 드라마 제작자들은 흔하고 단순한 디자인을 차용한 덕분에 예산을 절약했다. 그리고 전화부스 디자인을 고집하면서(세부사항은 조금씩 달라졌다) 기존의 소품과 세트장을 자주 재활용했다. 닥터 역할의 배우는 거듭 바뀌었지만 타디스는 언제나 타디스였다.
게다가 <닥터 후>가 하도 오랜 세월에 걸쳐 제작된 탓에 타디스의 인지도가 현실을 능가했다. 영국의 파란색 전화부스는 시대가 변하면서 자취를 감추었다. 반면 <닥터 후>는 1963년에 처음 방영된 이후 아직도 새로운 시리즈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파란색 전화부스를 보면 ‘전화’보다 ‘타디스’를 떠올린다(물론 양심에 손을 얹고 인정하건대, <닥터 후>를 몰라서 어느 쪽도 떠올리지 않는 사람이 다수일 것이다). 이에 BBC는 타디스를 고유한 상표로 등록하고자 특허청에 심사를 요청했다. 경찰 측은 이의를 제기했으나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타디스의 이름과 디자인은 BBC의 지적재산권이 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파란색 전화부스 디자인의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닥터 후> 시리즈 또는 타디스를 향한 애정을 공공연하게 표현할 수 있다.
나는 드라마보다 타디스 자체를 더 좋아한다. <닥터 후>는 기본적으로 20세기에 제작된 ‘클래식 시즌’과 21세기에 시작된 ‘뉴 시즌’으로 나눌 수 있다(현재는 ‘뉴뉴 시즌’이 제작되는 중이다). 아쉽게도 내가 본 것은 뉴 시즌뿐이다. 그리고 클래식 시즌과 달리 뉴 시즌의 오프닝에는 언제나 타디스가 등장한다. 어설픈 3차원 그래픽으로 구현된 파란색 전화부스가 빙글빙글 돌면서 우주처럼 보이는 미심쩍은 공간을 날아다닌다. 최근 시리즈일수록 그래픽은 정교해지지만 빙글빙글은 여전하다. 그리고 그 혼신의 빙글빙글이…… 웃기고 기특하다! 더군다나 타디스는 타임머신인 동시에 의식을 지닌 생명체다.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이동을 거절하기도 하고, 탑승자를 선별해서 받고, 심지어 몸싸움도 한다. 내가 보기엔 드라마를 통틀어 타디스가 제일 귀엽다. 닥터 일행이 어떤 수상쩍은 곳에 떨어지더라도 눈에 띄는 파란색 형태로 기다려주는 모습은 짠하고 믿음직스럽다.
생각해 보면 내게도 타디스처럼 믿음직한 공간이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책상 아래의 빈자리에 숨어들어 놀곤 했다. 아끼는 장난감을 들고 혼자서 조용히 시간을 보냈다. 그 자리는 어둡고, 아무도 없고, 어린이가 만끽하기에 적잖이 아늑했다. 아마 친구와 함께 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나의 비밀공간은 지금은 비좁더라도 그때 몸으로 느끼기에는 상당히 넓었으므로. 마침 ‘내부가 생각보다 크다’는 타디스의 특징이다. 겉모습은 조그맣지만 타디스 내부는 상상 이상으로 넓다. 그곳은 바깥과 다른 공간이다. 닥터를 따라 타디스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안이 밖보다 크잖아!”라고 외치곤 한다. 닥터가 몇 명을 데려오든 타디스는 모두 수용해줄 것이다. 간혹 탑승객을 거부할 순 있겠지만.
<닥터 후>의 기본 설정상 닥터는 자기 종족 중에서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다. 닥터에게는 동족이 없다. 그래도 닥터의 여행에는 종종 동반자가 등장한다. 그들은 닥터와 친밀한 교류를 나누며 닥터를 이해하고, 지지하고, 응원한다. 때로는 비난하거나 방해하기도 한다. 어느 쪽이든 존재감이 강한 경험이다. 동반자는 그런 교류를 통해 닥터의 이야기에 시청자가 귀 기울이도록 만든다. 반대로도 마찬가지다. 닥터는 자신의 동반자들에게 우주 곳곳을 누비는 특별한 경험을, 용기를 발휘할 기회를 선사한다. 그들은 여행이 끝나면 닥터를 떠나 자기 자리를 찾아가곤 한다. 닥터는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만남과 이별과 인연이 섞인 그 모든 과정에 타디스가 있다.
우리에겐 타디스가 없다. 드라마처럼 시간여행을 하거나 평행우주로 떠날 수는 없다. 우리의 탈것은 훨씬 단순하게 움직인다. 말하거나 반항하거나 장난치지 않고 그저 운전하는 대로 묵묵히 반응한다. 하지만 어디로든 떠날 수 있도록 나를 태워준다는 점은 유사하다. 나와 같은 시간과 공간을 경유한다는 점이나, 동반자와 여정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내어준다는 점도. 나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마 예쁘고 귀엽고 멋있다는 공통점도 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아낄 만한, 마치 생명체처럼 돌보고 싶어지는 그런 애틋한 매력이.
심완선(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SF의 재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적 평등과 문학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키워드로 여행하는 SF 세계』 『우리는 SF를 좋아해: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SF는 정말 끝내주는데』가 있고, 『취미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를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