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역할을 완벽하게 해낼 수 없다는 죄책감 속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버티기 힘든 순간마다 글을 썼고,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시간들이 계절처럼 반복되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희미해질 때마다, 도망치고 싶을 때마다, 글을 쓰며 스스로를 붙잡았다.
첫 책을 낸 지 7년, 이제 훌쩍 자라버린 아이들에게 위로의 답장을 받은 엄마 ‘김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김정입니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전업주부가 되면서 경력단절여성이 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들이 사랑스러웠지만 사회적으로 점점 고립되고 있는 스스로에 관해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행복하고도 불행했습니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두 마음 사이에서 허우적댔습니다. 견디기 힘들 때마다 글을 썼습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을 글로 썼습니다. 그 글들을 엮어 『딸, 엄마도 자라고 있어』라는 에세이를 냈습니다. 첫 책이 출간된 2018년도에 소설 『82년생 김지영』이 영화화되며, 많은 이야깃거리를 던져주었죠. 같은 육아를 다루었는데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는 뭘까 고민하다가 소설 『프롬 윤영옥』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경력단절 여성들의 인터뷰를 엮은 에세이집 『단절을 딛고 걸어갑니다』를 출간했습니다. 최근에는 『딸 엄마도 자라고 있어』의 개정판 『탯줄은 끊은 지 오래인데』를 출간했습니다.
첫 책이 이번에 『탯줄은 끊은 지 오래인데』라는 책으로 개정되었어요. 개정판을 준비하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고 어떤 내용을 더 전달하고 싶으셨을지 궁금합니다.
개정판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7년 전에 나온 책을 다시 펼쳐보는 일이었습니다. 잔뜩 날이 서있는 나를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죠. 또 개정판을 내면서까지 이 이야기를 다시 하는 게 맞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습니다. 7살, 5살이던 아이들이 14살, 12살이 된 만큼 몸과 마음이 고달팠던 육아의 기억이 희미해졌기에 말이지요. 하지만 과거의 나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개정판 작업으로 7살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엄마 역시 훌쩍 자랐음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원래의 제목 『딸, 엄마도 자라고 있어』처럼 말이지요.
이번 책을 고쳐 쓰며, 훌쩍 커버린 아이들의 귀여운 답장도 함께 들어있어요.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떤 반응이었을지 궁금해요.
아이들이 자주 했던 말은 “내가 정말 그랬었다고?”와 “엄마 정말 힘들었겠다.”였습니다. 지금이라도 엄마의 고생을 알아주는 마음이 귀엽고 고마웠습니다. 따뜻했던 순간은 잠시, 그러고 돌아서서 바로 잔소리를 날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생기곤 해요.
한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로서의 역할과 ‘나’라는 개인의 삶 사이에서 갈등을 느낄 때가 많을 것 같습니다. 이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을 듯한데,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조율하고 계시나요?"
지난겨울, 영주 부석사 앞에서 사 온 사과로 쨈을 끓였습니다. 열 알이 넘는 사과의 껍질을 벗기고, 아침부터 가장 큰 솥을 꺼내 끓이고, 눌어붙지 않도록 저어주고, 열탕소독한 병에 나누어 담아 놓고 보니 어느새 늦은 오후가 되었습니다. 시큰거리는 손목을 문지르며 피식 웃습니다. 나란하게 자리하고 있는 쨈 병들이 뿌듯하면서도 부끄러웠습니다. 쨈 덕분에 오늘의 작업은 또 미뤄졌거든요. 저에게 음식을 만드는 일은 육아와 맞닿아 있습니다. 잘 먹이고 맛있게 먹이고 싶은 마음에 요리를 많이 하게 되었고 이제는 꽤 잘 하거든요. 하지만 어느 때는 음식을 만드는 일이나 아이들을 돌보는 일 뒤로 비겁하게 숨어버릴 때도 있습니다. 아직은 ‘엄마’와 ‘나’의 경계가 불분명합니다. 각 영역이 책임을 피해 갈 여지를 만들기도 하죠. 때로는 숨고 꾀를 부리면서 또 반성하면서 두 영역을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것이 저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울기밖에 몰랐던 갓난아기에서, 이제는 말귀를 알아듣고 엄마에게 답장도 쓸 만큼 큰 아이들. 그래도 여전히 고민이 있죠. “어린이”들을 키울 때의 어려운 점은 무엇일까요?
매일 아침 양말을 고를 때도 자기주장을 하는 어린이가 우리 집에 살고 있습니다. 자랄수록 주관은 더욱 뚜렷해지죠. 단지 취향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다는 것을 배워나가는 과정이겠지요. ‘믿는 만큼 자란다’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믿고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을 매 순간 깨닫습니다. 알지만 쉽지 않은 일이지요. 어렵습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쉬운 점이나, 이건 하길 잘했다는 것들이 있잖아요. 모든 게 서툴고 어리둥절한 초보 육아맘을 위해 전하고 싶은 육아 꿀팁이 있을까요?
아이가 스스로 그림책 산을 쌓아 올렸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책보다 스마트폰과 만화책을 더 좋아하는 십대가 되었습니다만.) 둘째 아이 젖 물리면서도 첫째 아이에게 그림책을 읽어줬었지요. 전집을 들이기보다는 단권으로 조금씩 모아 나갔습니다. 그게 거실 한쪽 벽 책장을 가득 채울 정도로 늘어났지요. 그림책 안에는 나쁜 사람, 좋은 사람, 온갖 동식물, 아름답고도 무서운 자연, 무한한 우주 등 무엇이든 다 존재했습니다. 좁은 거실 조그만 소파에서 아이 둘을 양쪽에 끼고 그림책을 읽을 때. 과거와 현재, 미래를 비롯해 온 세상을 방랑하며 다양한 사람과 삶을 바라볼 때가 참 좋았습니다. 그림책에는 아이들의 어리고 무구한 얼굴과 그 시절 나의 노고와 기쁨이 녹아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아직도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읽어주는 시간이 아닌, 함께 읽는 시간을 즐기시기를 추천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계실 독자를 위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젖과 알』로 일본의 최고 문학상인 ‘아쿠타카와상’을 수상한 가와카미 미에코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글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글이라는 표현 방식이 저를 택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마흔셋이 될 때까지 살아 있지 못했을 거예요. 제게 일어난 수많은 일을 견디지 못하고 30대에 파멸해버렸겠죠.” 글쓰기를 통한 치유에 관해서라면 저 역시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글은 쓸 때뿐만 아니라 읽을 때도 치유의 힘을 발휘하죠. 그런 의미에서 필요한 곳에 가닿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탯줄은 끊은 지 오래인데
출판사 | 호밀밭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