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는 삶터, 살기 위해 일하는 모든 ‘나’의 이야기
아무리 거대한 악이 제멋대로 들쑤시고 망쳐놓아도, 어딘가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선함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이 있음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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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노동’이라는 단어가 있기 훨씬 이전부터 노동해 왔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아직’ 혹은 ‘더 이상’ 자립 능력이 없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이루어졌던 수만 년 동안의 노동이 각인되어 있다. 다시 말해 노동은 인간의 본능이며, 인간의 역사는 곧 노동의 역사다.

 

여실지의 첫 장편소설 『난기류』는 바로 그 본능을 꺾는 폭력, 역사를 멈추는 폭거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은 팬데믹이 끝나고 하늘길이 열린 직후의 항공사를 배경으로, 승무원 집단 내에서 대물림되는 관습적 괴롭힘과 부당한 이유로 가해지는 개인적 괴롭힘을 통해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말한다. 작중 인물인 ‘홍은결’은 주인공 ‘이수연’에게 원혼으로 가득 찬 비행기에서조차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며, 그러니 조심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직장 내 괴롭힘’은 어떻게 인간의 삶을 지옥으로 바꾸는가. 예스24 오리지널로 선공개된 『난기류』에 대해 여실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크레마클럽 오리지널에서 『난기류』의 연재가 시작되네요축하드립니다데뷔 이후 활발히 활동해 오셨지만장편소설 발표는 처음이신데요어떤 마음이실까요?

안녕하세요, 여실지입니다.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첫 장편소설 발표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뿌듯하고, 들뜨고 설레는 마음이 가득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소설이 어떻게 세상에 받아들여질지, 소설가로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지 걱정도 되고, 기대가 되기도 해요. 모쪼록 독자 여러분의 즐거운 독서에 보탬이 되면 좋겠습니다. 

 

제목인 난기류는 어떤 의미일까요?

『난기류』는 포스트 코로나 시기의 항공사를 배경으로 일터 괴롭힘을 다룬 소설입니다. 비행기를 탈 때, 불규칙한 기류를 만나 흔들리는 현상을 ‘난기류’라고 말하는데요, 속수무책으로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직장 내 괴롭힘’은 우리가 생계를 위해 노동하고 직장을 다니는 인생이라는 비행에서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난기류 같은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 지어진 제목입니다. 

 

소설을 읽다 보면 아주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수많은 인물 사이에서 작가님과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시는 인물이 있나요?

아무래도 등장인물마다 작가인 저와 닮은 점이 조금씩은 있지 않을까, 싶긴 한데요. 그게 콕 집어서 누구이고 어떤 모습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닮았다’라는 말을 들으니, 우리 주인공 이수연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저와 닮았다기보다는, 극 중에 자살한 박은하와 닮았다고 자주 언급되는 인물입니다. 이수연에게는 제가 사회 초년생 시절에 느꼈던 ‘일’과 ‘일터’에 대한 감정을 많이 투영하려 노력했습니다. 특히 그 ‘일’이 나에게 주는 의미와 ‘일터’가 왜 나에게 소중한지, 그 일터에서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 일터에서의 위협이 얼마나 무섭고도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지 등, 이런 고민과 감정이 잘 드러나야 직장 내 괴롭힘이 어떻게 사람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어 가는지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간혹,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피해자들에게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면 되지 뭐 하러 버티냐?’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 왜 그토록 험한 대접을 받으면서도 일터에서 버틸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 주고, 공감과 이해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이 이수연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쩌면 이수연은 우리 모두의 자아와 감정이 투영된 ‘닮은 사람’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합니다. 

 

『난기류』는 표지에도 적혀 있듯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한국 사회가 지닌 수많은 문제들 중 왜 이것에 관해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하셨을까요?

왜 하필 직장 내 괴롭힘일까. 그건, 너무 사소하고 하찮은 취급을 받아서라고 할까요? 물론 세간을 시끄럽게 하는 직장 내 괴롭힘도 있었지만, 그와 비슷한 수준의 이야기 대부분은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계속 드러내고, 사람들이 가까이하고 이야기로 만들어져야 하는 이야기의 씨앗이라고나 할까요? 또 남의 일일 때는 별로 대수롭지 않은 일로 시끄러운 것 같지만 나의 일이 되면 죽고 싶은 고통이 일어난다는 점도, 일상 속에서 일어나지만 일상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아이러니도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현실 사회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접근 방식이나 해결해 나가는 과정도 상당히 부조리하다고도 생각했어요. 개인 간의 감정싸움으로 치부해 버리거나, 피해자가 무능한 사람으로 탈바꿈하기도 하고, 관련 법령도 5인 이하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 조항이 많고, 사내에서 진상 조사를 하는 등 제도적 장치도 뭔가 논리적으로 앞뒤가 안 맞는 점이 수두룩했어요. 그 예로, 사장이 직원을 괴롭혔는데, 사장이 조사하라고 명령하면, 누구 말을 들을까요? 현실에서는 구멍이 숭숭 나 있지만, 그건 다른 말로 작가의 상상력이 개입할 여지가 많다는 뜻도 되기에 오히려 이야기가 풍성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회적 메시지가 뚜렷한 소설이니만큼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해요『난기류』를 구상하고 쓰실 때 가장 신경 쓰셨던 점고민하셨던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우선, 직장 내 괴롭힘을 개인 간의 갈등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차원의 문제로 드러내야 하는 점이 가장 고민이었습니다. 대놓고 ‘이거야’ 하고 말해 주지 않아도 이야기를 통해 독자분들이 눈치채 줬으면 했거든요. 개인 간의 갈등이 있지만, 그 개인들을 둘러싼 뭔가를 끊임없이, 그리고 시나브로 알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섬뜩하고 음산한 사회의 음모를 어떤 식으로 보여 줘야 할까, 이런 부분을 가장 신경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오컬트적인 요소를 사용했지만, 오컬트가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잡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현실 문제 해결의 길잡이를 초현실적인 현상에 기대면 전하고자 하는 사회적 메시지에 혼선이 있을 것 같았거든요. 원혼이라는 막연하게 느끼는 공포가 사실은 우리 행동에서 기인한 죄책감과 아쉬움과 후회 등의 살아 있는 감정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우리 사회의 공포는 귀신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과 동시에 사람이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었어요. 이런 메시지를 어떻게 하면 은근하고도 재미있게 알릴 수 있을지가 고민이었습니다.

 

대담에서 예측 불가능한 미지의 공포라는 그룹으로 호러와 괴롭힘그리고 전염병을 엮으셨던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작가님께 지난 팬데믹이 남긴, ‘쓰는 사람으로서의 자의식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혹시 들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팬데믹 시절, 우리는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때문에 공포에 휩싸였었습니다. 확진자 수와 사망자 수가 늘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숫자만으로도 공포를 느끼던 시대였으니까요. ‘내가 저 숫자에 포함되면 어떡하지?’하는 두려움 때문에 타인이 바이러스를 퍼뜨릴 병원체로 보이고 혐오와 증오로 공격하기도 했었지요.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의 일상은 이어지고 막연한 공포감을 애써 지우며 다시 근근이 삶을 지속하는, 이것이 반복되었던 시절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사실 그 막연한 공포가 뚜렷한 실체감을 주는 건 일상이 무너지고 미래가 보이지 않을 때였습니다. 국가적 위기는 항상 경제적 하부 구조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생존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보다 생계를 위협하는 경제 상황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두려움에는 일터 괴롭힘도 포함합니다. 정리 해고나 노조 파괴와 같은 사회 구조적 차원의 일터 괴롭힘은 경제가 어려울 때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지요.

세계적인 전염병에서 일상의 일터 괴롭힘으로, 그렇게 공포가 이어지는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야기에 담을지가 ‘쓰는 사람’으로서의 제 일이면서 동시에 고민의 시작이었습니다.

미지의 공포가 우리를 좌절시킬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희망을 보고 다시 일어서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이겨낸 팬데믹처럼 말이지요. 아무리 거대한 악이 제멋대로 들쑤시고 망쳐놓아도, 어딘가에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선함의 끈질긴 생명력을,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이 있음을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으로 남는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요?”

 

작년 겨울, 한강 작가님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감 중 한 부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글자 하나 버릴 게 없는 훌륭한 연설이었지만, 저에게는 특히 이 문장이 가장 가슴 속을 후벼 파는 말이었습니다. 

일상이 무너진 공포 속에서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남을 밟고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결코 아름답지 않으리라, 무슨 일이 있어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대의 끈을 놓지 말아야 우리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으리라,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 『난기류』가 독자분들께 어떤 소설로 읽히고 기억되기를 바라시는지 들려주세요.

먼저 이 책을 읽기 위해 귀중한 시간을 내 주신 독자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각각의 인물들에게 공감하기도 하고, 반감이 생기기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답답하다가도 후련한 기분이 들다가 ‘이건 또 뭐지?’하고 변덕을 느끼셨을 수도 있겠고요. 책장을 덮은 뒤에는 분분한 의견과 다양한 해석이 남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모든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재미있는 소설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는 작가로 남길 바라며, 저는 열심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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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