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서점』의 송유정 작가가 또 한 편의 섬세하고 다정한 소설로 돌아왔다. 이번 작품 『별다방 바리스타』는 재개발과 미개발 지역의 경계, 죽율동 한가운데 자리한 작은 카페를 배경으로, 세상에서 외면당한 치매 노인 ‘달순’과 세상을 품은 언어 장애인 ‘예빈’의 이야기를 담았다.
별다방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이곳은 상처 입은 마음들이 조용히 회복하는 곳이다. 실직한 중년 가장, 사회적 편견에 부딪힌 연인, 가까운 사랑에 상처를 입은 사람까지. 소설 속 인물들은 모두가 조금씩 부서진 채 살아가지만, 별다방에서의 만남을 통해 조금씩 회복되어 간다. 이 소설은 당신이 혼자라고 느낄 때, 말없이 옆에 있어 주는 따뜻한 손길처럼 다가온다.
송유정 작가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기억서점』에 이어서 두 번째 장편 소설인데요, 작품을 집필하는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처음 자음과 모음 편집부에서 『별다방 바리스타』 기획안을 주셨을 땐, 단순하게 정말 좋은 이야기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돌이켜 떠올려보면 참 부끄러운 생각이었습니다. 『별다방 바리스타』는 준비하는 과정과 글을 써 내려가는 매 순간마다 저를 멈춰 서게 했고, 돌아보게 했고, 때로는 두려움까지 느끼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이야기 속 세상이 아닌, 진짜 세상 속 달순과 예빈, 그리고 다른 등장인물들의 삶에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가진 경험을 바탕으로 『기억서점』을 썼던 그때처럼 이야기를 ‘과장’하지 않으며, 힐링 소설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이야기를 ‘미화’시키지 말자는 생각을 내내 했었습니다.
『별다방 바리스타』는 전작 『기억서점』과 다루는 소재와 의미가 연결되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작가님의 작품 세계에서 ‘기억’이나 ‘소통’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키워드인가요?
그러게요. 저에게 있어 ‘기억’이나 ‘소통’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별다방 바리스타』를 쓰는 내내 제가 ‘기억’이라는 단어를 무척 자주 사용하고, 자주 사용하는 만큼 그와 연관된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질문을 주셔서 전작이었던 『기억서점』의 내용을 되짚어가며 그 단어들에 대한 의미를 따라가 보니, 저에게 ‘기억’이란 곧 ‘삶’ 자체를 뜻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도, 때로는 무력하고 슬프게 만드는 것도 ‘삶’을 구성하고 있는 ‘기억’이 아닐까요? ‘기억’은 단순히 경험에서 묻어나온 데이터가 아니라, 살면서 우리가 감각하는 모든 것으로 쌓아 올린 지난 시간의 조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조각들이 모여 결국 하나의 ‘삶’을 이루게 되는 것이고요.
‘소통’은 그렇게 남겨지는 ‘기억’의 농도와 무게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기억’의 주체는 결국 사람이라, 그 사람이 어떤 생명체나 사물과 어떠한 결의 ‘소통’을 이루었는지, ‘소통’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감정이 어땠는지에 따라 ‘기억’의 농도와 무게가 결정되어, 가슴 속에 있는 여러 개의 방에 저마다 같은 결의 ‘기억’들이 보관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의 배경 ‘별다방’이라는 공간은 잃어버린 것들을 조용히 감싸 안는 장소처럼 느껴집니다. 작가님께 별다방은 어떤 공간이었나요?
누군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곳. 괜찮지 않아도 괜찮은 곳. 친밀하지 않은, 오히려 낯선 이들이기 때문에 내가 나인 채로 존재할 수 있는 곳. 별다방은 제게 그런 공간이었습니다. 별다방의 문을 두드려 그 안에 머물러주신 다른 독자분들께도 별다방이 그런 편안한 공간이길 바랐는데. 이 질문을 받고 보니 문득 궁금해집니다. 독자님들께 별다방은 어떠한 공간으로 남았는지요.
‘달순’이라는 인물은 소설 전체의 정서를 이끄는 존재입니다. 달순 캐릭터는 어디서부터 출발하셨나요? 실존 인물을 참고하셨는지, 혹은 작가님 안의 어떤 기억이나 감정에서 비롯된 인물인지 궁금합니다.
달순의 캐릭터는 저희 할머니 두 분의 삶에서부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외할머니께서 오랫동안 치매를 앓고 계셨는데, 많이 편찮으신 중에도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어떤 날은 저를 알아보시고, 어떤 날은 당신의 존재에 대한 기억도 희미한 듯 허공을 바라보시던 모습들을 떠올리며 할머니들의 시간을 거꾸로 좇았던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들은 두 분 모두 일찍 돌아가시고, 지금과는 달리 6남매, 5남매가 되는 여러 자식들을 혼자 힘으로 키워내시며 ‘얼마나 고되고, 힘든 삶을 사셨을까?’ 생각하니 달순의 서사가 자연스레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달순은 제게 가상의 인물이 아닌, 진짜 가족의 일부이기 때문에 그리움이나 애틋함 같은 감정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달순과 깊은 감정을 교류하는 ‘예빈’은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들을 손끝과 눈빛으로 전하는 인물입니다. ‘예빈’이라는 캐릭터는 어떻게 태어났고, 작가님께 어떤 인물로 남아 있나요?
‘예빈’이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것이 참 쉽지 않았어요. 우선, 누군가는 달순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별다방에서 달순은 누군가의 고민을 듣고, 그 고민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사람이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달순이 살아왔던 삶을 떠올려보면 달순은 늘 들어주고, 받아주는 사람이어야 했기 때문에 마음의 병이 생겼던 것이고, 그렇다면 누군가는 달순의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달순이 다른 사람에게 그렇듯 누군가는 달순을 어루만져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빈의 따뜻한 손짓과 다정한 눈길이 달순만큼이나 저도 간절해졌습니다. ‘소통’의 방법이 반드시 ‘말’이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예빈은 저에게 아주 단단한 사람으로 남아 있습니다. 글을 쓰다가 어느 부분에 막혀 해결책을 찾지 못할 때 예빈에게 많이 기대기도 했어요. 예빈에겐 제가 닮고 싶은 부분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독자분들께도 예빈의 이야기를 더 들려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힐링’이라는 말이 너무 가볍게 소비되는 시대입니다. 작가님께 ‘힐링’은 어떤 상태이자, 어떤 태도인가요?
기억서점을 출간한 이후 감사하게도 ‘힐링’ 소설과 관련된 제안을 많이 해주신 덕분에 『별다방 바리스타』라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되었는데. 사실 『기억서점』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감히 제가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수 있을 만큼 아직 인격적으로 성숙하지는 못합니다. 때문에 『별다방 바리스타』를 처음 고안하던 시기에는 ‘힐링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졌습니다. 아쉽게도 그 해답을 완벽하게 찾지 못했지만요. 다만, 『별다방 바리스타』의 달순처럼 누군가의 아프고, 힘든 이야기를 성심껏 잘 들어주고. 내가 처한 상황이 아니라는 이유로 함부로 판단하지 않으며, 때로는 필요에 의한 침묵을, 또 때로는 내가 가진 언어 중 가장 모나지 않은 말을 골라 신중히 전달하려는 의지를 택하고자 하는 마음가짐. 그것이 현시점에서 제가 생각하고, 전달할 수 있는 최선의 ‘힐링’이 아닐까 싶습니다.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떤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로 책을 덮기를 바라시나요? 작가님께서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위로’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합니다.
‘감정’이나 ‘마음의 상태’라고 표현하기엔 조금 딱딱한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공감’과 ‘동지애’. 또, 이런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도 있구나, 하는 세상에 대한 ‘확장’과 ‘이해’로 마지막 페이지를 닫아 주신다면, 제게는 정말 감사한, 앞으로도 이와 같은 글을 쓸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되어 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게 곧, 아직도 많이 부족한 제가 독자님들께 감히 전하고 싶은 ‘위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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