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최다 응모를 기록한 ‘제12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1307편의 경쟁작을 비집고 등장한 괴력 같은 소설! 소설가 김슬기가 첫 장편소설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로 독자들을 만난다.
서른셋의 ‘강하고’는 재개발 철거 지역의 빈집에서 고립된 채 죽음 같은 일상을 버티고 있다. 이제는 이 모진 세상 등질 수 있으려나, 싶은 강하고 앞에 생전 처음 보는 근육질 할머니 3인방이 등장하면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진다. 힘센 할머니들에게 들려, 지도에도 없는 바다 마을 ‘구절초리’에 떨어진 ‘강하고’.
소설은 누구 하나 도와주는 사람 없는 외로운 청년에게 강인하게 살아남은 할머니들을 데려다 놓으면서 좀 더 살아보라고, 이왕이면 달게 살아보라고 권유한다. 달고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들이켜듯 청량하고 달콤한 이야기를 만나보자!
작가님의 장편소설이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는 아름다운 소망을 간직한 제목으로 공개되었습니다. 이 작품은 어떻게 시작된 이야기인가요.
“과연 내가 잘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앞으로 삶을 어떻게 채워가야 할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들려줄 이야기가 많은 멋진 할머니가 되어보자”였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가 만나는 사람들, 경험, 여행, 일, 사소한 모든 시간까지 전부 다 훗날 들려줄 모험담처럼 느껴졌고요. 때때로 마음이 재가 될 정도로 타버리는 순간을 마주해도, ‘난 이런 역경도 있었지’ 하고 할머니가 된 내가 누군가에게 얘기를 들려주는 미래의 어느 날을 상상해보기도 했고요. 그러고 나니 특별할 것 없다고 여겼던 삶이 조금씩 특별해지더라고요. 이상하게도 내일이 기대되고, 또 그다음 날이 기대되고. “살아서 뭐 하나” 같은 슬픈 질문이 들어설 자리가 점점 줄어들었어요. “이대로도 좋다”, “지금도 충분히 잘 하고 있어” 같은 말들이 마음을 채우기 시작했고요.
우리의 모든 순간은 잘 늙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걸, 그리고 지금의 좌절이 끝이 아니라는 걸 함께 나누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어요. 소설을 통해 느슨하게 연결된 사람들과 함께,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될 때까지 아낌없는 응원을 나누는 그런 이야기를.
이 작품의 매력은 마음이 아니라 신체가 강한 할머니 캐릭터에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인간은 노화를 거치기 때문에 근육 빵빵한 할머니를 일상에서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요. 어떻게 근육질의 힘센 할머니를 떠올리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예전에 TV에서 ‘81세 몸짱 할머니’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요. 예순이 훌쩍 넘은 나이에 운동을 시작해서 피트니스 대회에까지 출전하신 분이었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평생 남을 위해 살았으니 이제는 자신을 위해 살아야겠다고 다짐했고, 매일 헬스장에 가서 운동하고 식단 관리를 한 거예요. 젊은 사람들 못지않은 근육을 자랑하는 할머니를 보고 진심으로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키우는 데는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말이 있다고 해요.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아이를 키우는 데만 온 마을이 필요할까? 다 자란 어른이 회복하는 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고요. 고민을 이어나가던 끝에, 어른을 위한 ‘최고로 멋진 어른’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최고로 멋진 어른’이란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아는, 그래서 그 누구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들이었거든요. 그런 어른들이라면, 자신을 무조건 희생하거나 양보해서 타인을 돌보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희생하지 않는 돌봄이 가능할지에 대한 상상의 결과물인 셈이에요. 영춘, 길자, 원주로 대표되는 ‘구절초리’의 근육 빵빵 할머니들은 그렇게 탄생했습니다. 자신을 먼저 사랑할 줄 알고, 누구보다 강인하고, 존재만으로도 살아갈 힘을 건네주는 어른들로요.
작가님 스스로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기 위해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 있으신지도 궁금해요.
꾸준히 운동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대학 시절엔 여자대학 태권도 동아리에서 활동했는데, 그 동아리의 슬로건이 ‘강한 여자가 아름답다’였거든요. 그 문장이 그렇게 좋았어요. 세간의 기준에 맞춰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려면, 이목구비부터 손을 봐야 하는데 이건 돈이 많이 들거나,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바꾸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그런데, 강한 여자가 되어서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일은 이번 생에서도 가능한 일처럼 여겨졌거든요. (웃음)
대학을 졸업한 뒤로는 약 7년간 복싱을 했어요. 운동 강도가 꽤 높았고, 실력이 뛰어난 분들과 스파링도 자주 했죠. 생활체육대회에 나가서 우승한 경험도 있고요. 특히 좋았던 건, 같은 체육관에서 함께 운동하고 서로를 응원하며 지냈던 사람들이었어요. 지도를 하며 늘 씩씩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나눠주던 분들, 훈련에 진심이던 동료들과의 교류가 제게 큰 힘이 되었죠. 그 시간이 있었기에, 몸뿐 아니라 마음도 단단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여성 축구부에 들어가서 공을 차고 있어요. 이제 막 시작해 자세도 어설프고, 공을 엉뚱한 데로 차서 팀원들을 당황하게 할 때도 많지만요.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도 다양하고 에너지도 넘치는 언니, 동생 들과 함께 몸을 움직이고 웃으며 운동하는 시간이 참 좋아요. 특히 이 소설의 막바지 작업을 하던 시기에 축구를 시작했는데, 공을 따라 뛰는 순간마다 저도 모르게 ‘구절초리 체육대회’에서 근육을 불끈거리며 달리는 마을 주민이 된 기분이 들더라고요. 현실과 소설이 겹쳐지는 듯한, 묘하게 벅찬 순간들이 있었어요.
이 작품은 가상의 바다 마을 ‘구절초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바다가 아름답고 여느 야구장 못지않은 멋진 경기장이 있는 곳이지요. 혹시 구절초리를 구상하실 때 마음에 염두하고 계셨던 실제 마을이 있을까요?
울산이 고향이에요. 중학교 때까지 살던 집은 걸어서 바다에 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웠고요. 심심하면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가서 마음껏 뛰어놀곤 했어요. 지금도 눈을 감으면 여름 해변의 뜨거운 모래가 맨발에 닿는 감촉, 철썩이는 파도 소리가 생생하게 떠올라요. 마치 아주 깊은 곳에 단단히 새겨진 기억처럼요.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이미지는 외할머니 댁에서 가져왔어요. 방학이면 일주일쯤 머물던 곳인데, 집과 밭이 번갈아 가며 드문드문 이어지는, 밀도 낮은 마을이었죠. 이웃이 언제든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무언가 가득 담긴 포대 자루나 이야깃거리를 놓고 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곳이었어요. 구절초리는 동해의 바다와 외가의 산골 마을 같은 제가 좋아하는 풍경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만든 이상적인 공간이에요.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장소, 그리고 주인공 ‘강하고’가 한때 ‘천국’이라 믿을 만큼 아름다운 곳으로 그려지게 되었죠.
집필 과정에서 특별히 신경 쓴 장면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등장하는 할머니들이 모두 쾌활해 보이지만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때론 눈물 나는 장면도 많았는데요, 각별히 애정을 쏟은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무엇보다 ‘구절초리 체육대회’를 쓰는 시간이 정말 즐거웠어요. 마을 사람들이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수레를 끌고, 뛰고, 포효하는 그 장면들을 글로 풀어내다 보면, 저도 모르게 구절초리 깊숙한 곳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더라고요. 그 안에 들어갔을 땐, 마치 세상에 없던 생명체를 처음 발견한 것 같은 설렘이 있었어요. ‘갈라파고스에서 바위 같은 피부와 굵고 긴 꼬리를 지닌 해양 이구아나를 처음 본 탐험가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런 상상을 하기도 했죠.
또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더 있어요. 비 오는 날, 주인공이 길자가 싸준 전을 들고 영춘의 집을 찾아가는 장면인데요. 슬픔에 잠겨 있을 줄 알았던 영춘이 안방에서 훌라를 추고 있는 거예요. 사실 이 장면은 처음부터 계획돼 있었던 건 아니에요. ‘주인공이 영춘의 집으로 간다’는 설정까지만 갖고 있었는데, 문을 열고 마주한 풍경은 저에게도 완전히 새로운 것이었죠. 그 순간은 마치, “영춘 어르신, 아픈 기억은 어떻게 잊나요?”라고 제가 질문을 했고, 영춘이 죽음과 슬픔을 춤으로 끌어안으며 답을 건넨 것처럼 느껴졌어요. 소설은 분명 작가가 쓰는 것이지만, 어떤 장면은 작가가 썼다기보다는 작가를 통해 쓰였다고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게 바로 이 장면이었어요.
구절초리에서 할머니들과 보낸 나날이 주인공 ‘강하고’에게 어떤 의미였을지요? ‘강하고’는 혼자 살아온 사람이기에 느닷없이 나타난 할머니들의 존재가 어떻게 느껴졌을지 궁금합니다.
‘강하고’는 사실 꽤 억울했을 거예요. 구절초리의 할머니들은 초대도, 설득도 없이, 말 그대로 ‘납치’의 방식으로 강하고를 마을로 데려오거든요. 이제 더는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던 사람을, 강제로 살아내게 만든 셈이죠. 그래서 처음 며칠 동안 강하고는 탈출도 시도해요. 할머니들을 자기 삶을 방해하는 존재로 여기고, “그냥 죽게 두지 그랬냐”라며 원망도 하죠.
하지만 저는 강하고의 무의식은 조금 달랐을 거라고 생각해요. 죽음을 결심하던 그날,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메시지를 보낼 사람으로 ‘정아’를 떠올리고, 누군가 집 안으로 들어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가족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떠올리거든요.
그러니 구절초리의 할머니들이 겉으론 ‘납치범’처럼 느껴졌을지라도, 실은 강하고가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었던 그리운 사람들이었는지도 몰라요. 강제로 끌려온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마음 깊은 곳에서 불러왔던 존재들이었달까요.
이 작품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마다가스카르에는 ‘파마디하나’라는 독특한 장례 문화가 있다고 해요. 고인과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무덤을 열어 먼저 떠난 이를 다시 꺼내 안고 기억하고 돌보는 시간이죠. 제겐 그 장례 문화가 고인이 더 살지 못한 삶을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고인과 함께한 삶의 여정을 충분히 기억하고, 그의 인생을 증명하는 사람들이 모여 축복하는 방식으로 느껴졌어요. 떠난 자와 남은 자가 모두 즐길 수 있는 그런 축제 같은 장례. 저도 소설 속에서 장례를 하나의 축제처럼 그리고 싶었어요. 내 장례가 축제이고, 결국 삶이란 그 축제에 초대할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이라 생각하면 비로소 아낌없이 나이 들고 싶다는 확신을 품게 되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과 진심으로 살아내고 싶다는 그런 희망을 품으면서요.
어딘가 삶이 모나게 흘러가는 것 같을 때, 사람들 사이에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 마음이 폐허처럼 무너져 내렸을 때, 그리고 살아야만 하는 이유를 자꾸만 스스로에게 묻게 될 때. 그때가 아마, 구절초리 같은 마을로 떠나야 할 시기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건 꼭 물리적인 여행을 의미하진 않아요. 어쩌면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을 다시 한번 살피는 마음의 여행일지도 몰라요. 나를 진심으로 위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내 존재 자체를 아름답다고 말해줄 사람은 누구인지. 그 질문을 따라가는 여정이 바로, 이 소설이 독자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영춘, 길자, 원주, 복자, 옥분, 다운, 두콩, 그리고 석재……. 『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속 구절초리를 다녀간 뒤, 독자님들만의 소중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