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이라는 말로 덮어버렸던 사춘기의 감정들
사계절문학상 수상 작가 김지현의 신작, 주인공 이경과 세 친구의 관계를 통해 열일곱의 감정을 섬세한 언어로 풀어낸 성장소설.
글 : 출판사 제공
2025.07.24
작게
크게

 

 

2022년 제20회 사계절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지현 작가의 새 장편소설 『오늘의 기분은 사과』가 출간되었다. 친구들과의 다툼이 싫어 늘 자신의 감정을 검열하며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열일곱 살 소녀 이경이 상대를 향한 신의와 믿음으로 여러 관계 안의 갈등을 부드럽게 풀어내고, 더 용기를 내어 자신의 감정과 꿈에도 진심을 다하는 과정을 그려낸 성장소설이다. 전작들을 통해 ‘좋아하는 마음’으로 서로 연결되는 청소년의 세계에 깊은 애정을 보여 온 김지현 작가의 따뜻한 시선은, 이번 작품을 통해 사춘기 아이들의 그 순수하고 무해한 ‘좋아하는 마음’이 자기 자신의 마음과 하루, 꿈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확장되길 응원하는 선한 바람으로 가득하다.


 

『오늘의 기분은 사과』로 다시 청소년 독자들을 만나게 되셨어요. 이번이 네 번째 청소년소설인데요, 청소년의 감정과 성장 서사에 애정을 갖게 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선 저는 학교 교실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친구 관계에서의 감정을 다룬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그 두 가지 키워드를 모두 충족하는 것이 청소년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을 쓸 때 중요한 갈등, 성장, 변화 같은 단어들과도 잘 어울리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어른이 되면 ‘학생이 하는 고민이 거기서 거기지’, ‘사춘기라 그렇지’ 하고 그 시기를 뭉뚱그려 말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무엇보다 저는 학창 시절에 고민거리가 생기면 ‘이걸 금방 털어버리지 못하는 내가 문제인가?’, ‘나랑 비슷하게 느끼는 사람은 없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럴 때 내 마음을 알아주는 누군가가 있다고 하면 위안이 되고 용기를 얻잖아요. 지금 청소년 독자 중에서도 10대 시절의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있을 텐데, 결국 그들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서 청소년소설을 계속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의 기분은 사과』의 주인공 이경이는 자기 생각과 기분을 표현하는 데 머뭇거리는 아이지만, 사실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도 취향도 확고한 소녀죠. 열일곱의 작가님은 어떤 학창 시절을 보내셨나요?
이경이는 친구들한테 ‘눈치가 없다’라는 평을 자주 듣는데, 저는 그보다는 티 나지 않게 눈치를 살피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아요. 제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때부터 저는 친구들의 기분이 한눈에 보일 때가 많았어요. 같이 잘 놀다가도 갑자기 기분이 상한 친구를 보면 속으로 ‘내가 뭘 실수했나?’ 하면서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가끔은 그 혼자만의 생각이 ‘쟤가 나를 싫어하나’ 하는 오해로 이어지면서 갈등이 생기기도 했고요. 그렇게 친구 관계에서 저와 상대방의 감정에 민감한 만큼 오히려 서툴게 행동하는 때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때는 서로가 불편할 수 있는 얘기나 감정들은 꾹꾹 참고 누르는 게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꺼내고 털어놓고 나서 관계가 돈독해진 경우도 많아요. 그래서 말, 표정, 그림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려는 모습들을 소설에서 보여주고 싶었어요.

 

이경이와는 다르게 감정 표현이 확실한 유림이, 솔, 규리도 주위에 한 명씩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라 미워할 수 없는 친구들이었어요. 특히 "어떤 때는 내 기분이 뭔지도 모르겠어. 이유도 모르는데 짜증 나고 기분이 더러워. 지나가는 사람한테 시비 걸고 싶어."라던 규리의 말에 공감하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내 기분을 정확하게 바라볼 수 있는 작가님만의 비법이 있으신가요?

사실 유쾌하지 않은 감정이나 무어라 말로 하기 어려운 복잡한 기분들은 굳이 깊게 생각하지 않고 지나치려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자기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느낌과 변화에도 주의를 기울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불쾌한 감정을 모른 척 무시하고 싶은 이유도 그 감정이 나를 괴롭게 하기 때문인데, 그럴 때는 결국 지금 이 기분도 흘러 지나갈 무언가라고 생각하면 거기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자기 마음을 살필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느끼는구나’, ‘나는 이런 감정에 약하구나’ 하고 관찰하듯 보다 보면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되고요. 그리고 감정을 명료하게 느끼는 것만큼 그걸 정확하고 바람직한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평소에 말을 할 때나 글을 쓸 때 이 감정에 더 어울리는 표현을 찾으려고 고심하는 편입니다.

 

이번 작품은 ‘말하지 않은 상처를 알아봐 주고 보듬는 사람’, ‘나의 가장 약한 상처를 보여 줄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죠. 나와 타인의 상처를 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내가 타인의 고통과 상처를 모두 헤아릴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몇 년 전, 가장 친한 친구가 어떤 일로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같이 마음 아팠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데 그 시간이 점점 길어지고, 친구가 일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에 어떤 말을 했다가 친구에게 큰 상처를 주게 됐어요. 시간이 흘러 그 일을 되돌아보니, 처음에는 친구의 슬픔에 공감하려는 마음이 컸다면 나중에는 얼른 회복해서 전처럼 나랑 잘 지내길 바라는 기대와 ‘나는 심리학까지 전공한 임상심리사니까 내가 친구를 위로해야 해’ 하는 이상하고 이기적인 책임감 같은 것들이 끼어들어서 마음이 조급했던 것 같아요. 소설 속 솔의 얘기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저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상대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껏 슬퍼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곳에서 그저 조용히 기다려 주면 된다고요.

 

이경이의 복잡한 마음, 고모의 따뜻한 응원, 솔의 단단한 진심 등 독자들의 마음에 오래 남을 한마디가 많은 작품인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오늘의 기분은 사과』 속 최고의 문장은 무엇인가요?

우선은 고모가 이경이에게 남긴 말들은 다 너무 좋아하고요. 그 외에도 소설을 쓰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매번 멈춰 오래 읽고 곱씹었던 부분은 후반부에 찻집에서 꿈을 꾸고 난 이경이가 찻집 할머니와 대화하는 장면이에요. 이경이가 손안의 매실을 만져보며 ‘나를 괴롭히지도 않고, 내가 미워할 이유도 없는 단단한 초록빛 매실이라고 생각하는 게 참 좋아요. 작가의 말에서 저는 미워하는 것들이 많다는 얘기를 썼는데요. 사실 나를 화나게 하는 일들이 생각해 보면 내 삶에서 그렇게 결정적이지 않은 것들, 혹은 지나간 일이나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지금 여기가 아니라 멀리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중요하지 않은 일에 부정적인 마음을 일으키지 말자, 스스로 다짐하고 싶을 때는 저 말을 계속 떠올리게 될 것 같아요.

 

좋아하는 영화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하고 싶고, 언젠가 내가 쓴 시나리오가 영화화되길 꿈꾸는 이경이를 보면 무엇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란 삶의 중요한 동력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지금 작가님은 무엇을 ‘좋아하고’ 계시하는가요?

제가 여러 인터뷰나 강연, 북토크 자리에서 매번 덕질 대상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요즘 새롭게 꽂힌 것들만 떠올려 볼게요. 몇 주 전에 제가 사는 도시로 지방 공연을 온 뮤지컬을 보게 되었는데, 공연을 보면서 압도됐던 느낌과 여운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소설 속에서 유림이라는 친구가 지금 말고 다음 생에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말을 하는데요. 그게 제가 대학생 때 한 친구와 실제로 나눴던 대화예요. 공교롭게도 그때 친구가 저에게 ‘다음 생에는 뮤지컬배우가 되고 싶다’라는 말을 했었거든요. 경영학을 공부하는 친구가 전혀 다른 직업을, 그것도 다음 생에 뭔가를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게 여러모로 인상 깊어서 기억하고 있다가 소설에도 집어넣게 됐는데, 뮤지컬배우가 그만큼 멋진 직업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새삼 실감했어요. 뮤지컬 넘버도 계속 찾아 듣고 있는데 출퇴근 길에 듣고 있자니 좀 비장해지는 느낌이긴 하지만 그래도 좋습니다.

 

어쩌면 이경이는 운이 좋은 아이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과 찻집 언니를 만나고 다른 친구들의 진심을 알기까지, 이경이를 응원하고 아껴주는 고모가 곁에 있었으니까요. 아직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만나지 못한 독자들에게 이경이의 고모처럼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세요!

저는 제 소설에 다정하고 호의적인 인물들을 의도적으로 잔뜩 등장시키는 편인데요. 처음 소설을 쓸 때는 ‘책 속에서라도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을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었다면, 이번 소설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이 더 많다고 말하는 찻집 언니의 대사를 쓰며 제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네 권의 소설을 출간하고, 많은 독자분들을 만나고, 개인적으로도 여러 일을 겪는 동안 이 세상이 제가 예상하던 것보다 더 따뜻한 곳이라는 믿음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도 이 세계의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만을 가득 보고 누리는 순간들이 되기를, 마음을 다해 응원하겠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0의 댓글

오늘의 기분은 사과

<김지현> 저

출판사 | 다산북스

Writer Avatar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