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작업실
박지영 작가의 작업실 -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저주와 축복, 선과 악, 과거와 현재가 뒤엉켜 소름과 위로를 선사하는 소설.
글: 이참슬
2025.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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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상상력을 더해 외로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포착해 온 박지영 작가의 신작 장편소설이 출간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저주의 이야기입니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은 바이러스로 인해 팬데믹이 선언된 현재와 80년대 전체주의적 사회를 교차하며 고립된 사람, 고립을 선택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불러냅니다. 자기혐오와 뒤틀린 욕망, 그리고 그 안에서 끝내 살아가려는 마음은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서늘하지만 묘하게 따뜻한 위로를 건넵니다. 읽는 동안 다음 장면을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소름' 그 자체의 소설. 가능하다면 어떤 정보도 없이 이 작품을 맞닥뜨려 보시길 권합니다. 어쩌면 책을 덮은 뒤 비로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작업을 마친 소감이 궁금합니다. 

마지막 교정을 보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이 책을 출간하고 싶지 않다는 제 마음과 싸우는 일이었어요. 제가 최근에 작업한 소설들과는 톤이 많이 다르기도 하고, 오래전에 써두고는 발표할 기회를 얻지 못한 시간이 길었기 때문에 그날들만큼 두려움도 많이 쌓였었고요. 그러나 함께 작업해 주신 박지호 편집자님과 다른 분들의 지지 덕분에, 불안을 떨구어 내고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국 이 책을 벽장 밖으로 꺼낸 건 이야기를 쓴 제가 아니라 이 책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신 분들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두려움에 지지 않고 책을 출간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는 마음뿐입니다. 이 책 덕분에 제가 쓰고 싶은 이야기들을 쓰고 싶은 방식으로 더 써봐도 좋겠다는 믿음도 조금 생겼고요. 

 

소설에서는 현재의 팬데믹 속 우식의 이야기와, 10년 동안 안전가옥에서 격리된 삶을 살았던 소년(조기준)의 이야기가 교차하며 전개됩니다. 두 세계는 ‘벽장’이라는 공간으로 이어지는데요. 인물들은 자신을 숨기기 위해 벽장에 들어가지만, 동시에 그곳에서 버티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고 또 재구성하는데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벽장에 들어간다’는 마음은 어떤 상태일까요? 이는 ‘격리’와는 어떻게 다르고 또 닮았을까요?

숨는다는 건 나약해 보이지만 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절박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기도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벽장은 현실의 절망과 ‘내가 나인 저주’로부터 도피하기 위한 피난처이면서, 현실의 나를 잠시 멈춤 상태에 두고 나를 둘러싼 어둠을 홀로 응시하며 나중의 나, ‘그럴 수도 있었던 나’를 상상하고 키우는 인큐베이터이자 암실 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암실에서 필름을 현상하듯, 어둠 속에서만 필름 상태로 존재하는 희미한 자신의 영혼을 선명하게 현상할 수 있기에 벽장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거죠. 

 

그래서 벽장은 격리와는 물리적으로 외부와 단절되고 혼자된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격리가 외부와의 관계와 공간적인 단절에 더 초점이 맞춰진다면, 벽장은 자신과의 관계와 시간적인 단절에 더 방점이 찍힌다는 점에서 조금 다르지 않나 생각합니다. 

 

한 방향으로 진실을 제시하기보다는 읽을수록 앞선 이야기가 계속 뒤집히면서 점점 미궁으로 빠져듭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하고, 선과 악의 경계도 계속 흔들리는데요. ‘단 하나의 객관적인 진술’을 하지 않는 서사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고립과 단절된 개인의 이야기는 애초에 객관적인 사실로 타인에게 온전히 전달되는 건 불가능하고, 주관적인 진술에 대한 각자의 해석만이 가능한 게 아닐까 싶어요. 조기준의 격리가 애초에 사실이 아닌 전쟁의 사이렌을 통해 시작되었듯이, 개개인의 이야기는 단 하나의 사실이 아닌 주관적인 진실을 통해서 재구성되기 마련일 테니까요.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저는 지금도 조기준의 이야기가 어디까지 사실인지, 어떤 점이 왜곡된 진실인지 확신하지 못합니다. 이 소설은 근배의 시점에서 재구성되었으니까요. 저는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조기준의 이야기와 우석의 이야기, 두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시나리오 작가(라고 주장하는) 김근배를 통해서 서술된다는 데 있다고 생각해요. 김근배는 왜 갑자기 우리에게 이 이야기를 다시 구성해서 들려주는 걸까요. 우석이 김근배에게 먼저 메일을 보냈다고는 하지만, 결국 우석을 찾아내어 접근한 건 김근배였고, 김근배는 끝까지 우석에게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않습니다. 조기준의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아이가 죽지 않았다는 것도 우리는 김근배의 진술을 통해서만 알게 되죠. 왜 김근배는 갑자기 우석과 우리 앞에 나타나 조기준의 이야기에 대한 주석을 달고 다른 진실을 들려주고 있는 걸까요. 팬데믹의 시기를 지나 조기준이 다시 한번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새로운 공감과 관심을 얻으며 세상 밖으로 나오기를 선택했으나 결국 휴먼북 세일에 실패했을 무렵, 오래도록 조기준을 여전히 격리 상태에 머물게 한 이유 중 하나일 과거의 사고에서 조기준이 결백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나타난 목격자처럼요. (이 소설의 또 다른 진실은 이런 식으로 다시 쓰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희망은 저주 안에 머물 때만 유효하다는 것을. 그리고 이런 비관과 절망이 자신을 바깥 세계를 위협하는 슈퍼 바이러스로 만든다는 것을.”(235쪽)이라는 문장처럼, 소설은 타락한 세상에서만 자신을 긍정하고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격리한 채 평온함에 이르고자 하는 인간의 자기혐오와 욕망을 여러 인물을 통해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런 불온하고 자기 모순적인 인물들이 묘한 위로를 준다고도 느껴져요. 

불온하고 모순적인 인물들이 혐오스럽거나 불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묘한 위로를 준다고 말씀해 주셔서 안도했어요. 제가 쓰는 인물들은 어쩔 수 없이 다 조금씩 비틀리고 크고 작은 저주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얼마 전 북토크를 했는데요, 한 독자분께서도 그런 말씀을 해주셨어요. 제가 쓰는 찌질한 인물들의 이야기에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위로를 받는다고요. 앞으로도 찌질한 이야기를 계속 써달라고요. 그 감상이 굉장히 힘이 되더라고요. 때때로 내 소설이 어떤 가치를 담을 수 있을까, 내 소설이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찌질한 이야기는 계속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웃음) 그리고 소설을 출간하면서 제가 배운 건, 혹시 제가 잘못된 방향을 가리키더라도 그 손가락을 구부려 옳은 쪽을 향하도록 하고 읽는 독자분들이 있다는 거였어요. 그러니까 독자분들을 믿고, 결국 이야기는 읽히는 순간에 매번 새로 쓰인다는 걸 믿으면서 함께 나아가면 된다는 걸요. 그러니 위로를 받는다면 그것은 독자분들이 자기 안에 모순되고 불온한 인물들도 품을 수 있는 정서적 공간이 충분히 있기 때문 아닐까 생각합니다. 누구나 조금씩 결핍을 가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도 좌절도 결국은 함께 잘 살아내고 싶은 마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알고, 곁을 내주며 읽고 이해하려는 그 마음에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끝내 ‘방 탈출 레벨업 가이드’로 이어지며 어둠의 방을 나서는 공략법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언제든 또 다른 어둠의 방으로 스스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방이 있다면 그곳엔 문이 있다”(213쪽)는 저주와 축복을 담아서요. 이 소설을 통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더 나은 나와 더 나은 세계를 상상하는 힘, 공포와 억압, 지난 실패와 불행, 지금의 저주에 지지 않고 더 나은 나중을 상상하고 만들어 나가는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이야기 속의 메시지와 별도로 소설이 주는 효용으로서 ‘소름’ 그 자체를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단순히 도파민을 쫓는 이야기가 될까 봐 다듬는 과정에서 많이 뭉툭해지긴 했지만요.


지독하게 현실적이고 서늘한 분위기에서도, 곳곳에 유머가 녹아 있습니다. 작가님께 유머와 농담은 어떤 의미인가요?

전에 박혜진 평론가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제 소설은 한쪽에 명랑함, 한쪽에 염세주의가 있는데 그것을 가운데에서 지퍼로 올려 하나로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요. 제 소설 속 유머와 농담은 그런 것 같아요. 그렇게 제 안의 상반된 두 가지를 지퍼로 올리다가 지퍼에 ‘찝히는’ 뱃살 같은 것. 고통스러운 가운데 웃을 수밖에 없는 것. 그렇게 아프지만 웃음이 터지는 경험을 통해서 어떤 고통은 웃음을 유발하기도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작은 비극과 불운을 유머와 농담으로 중화시킬 수 있는 근육을 만들며 일상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것.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제가 작업하는 공간은 조기준의 이야기를 쓴 십 년 전에도, 우석의 이야기를 쓴 2022년이나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대부분 집 근처의 카페입니다. 보통은 좌석이 많아서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프랜차이즈 카페를 이용하고요, 요즘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문학 창작실 이용 지원 사업 덕분에 공유 오피스도 함께 이용하고 있습니다. 


책상(왼쪽)과 공유 오피스 작업 모습(오른쪽)

 

최근에는 노트북을 들고 이동하는 것이 힘들기도 해서 집에서 작업을 해보려고 방을 새로 꾸몄습니다. 작업 가능한 공간으로 방을 정리한 후에 이 글을 쓸 수 있게 되어 다행이에요. 이전까지 집은 오로지 휴식을 위한 공간이었거든요. 사진 속의 책상은 제가 열여섯 살 때, 시를 써서 한 공모전에서 받은 상금으로 구입한 건데요, 그러니까 무려 삼십 년도 더 된 진정한 빈티지 가구입니다. 이사 다닐 때마다 버리지 못하고 한동안 공구나 약을 담아두는 수납장으로 사용했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책상의 기능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은 주로 카페에서 글을 쓰지만 차츰 집에서도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려고 하는 중입니다. 이 책상에서 이 책상만큼 수명이 긴 재미있는 소설을 쓸 수 있기를!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 ]

좀 재미있는 사진이나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작업을 하며 가장 의지한 건 노트북뿐이네요. 노트북 앞에 앉는다고 해서 글을 쓰는 건 아니지만 노트북이 없으면 아예 글을 한 줄도 못 쓰는 타입이거든요. 간단한 손 편지도 노트북으로 먼저 쓰고 옮겨 적습니다. 사진은 부산에 잠시 있을 때의 사진인데요, 최근에 워낙 여행을 다닌 적이 없어서 이 노트북과 함께 간 가장 멀고 낯선 곳입니다. 지금은 사진 속의 레지던스(좌측)에서 떠올린 단편을 이 노트북으로 쓰는 중입니다. 그러고 보니 2022년 출간한 『고독사 워크숍』부터 가장 최근에 출간한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까지, 7권의 책을 모두 이 노트북으로 완성했네요. 벌써 여기저기 고장이 나서 배터리도 한번 교체하고 키보드도 여러 번 수리를 받았지만, 앞으로도 여러 책들을 이 노트북과 함께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마지막 교정을 끝내고는, 운전 연수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전은 제가 새해마다 결심하지만 지금까지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인데요, 마감을 할 때는 마감도 못하고 혹시라도 사고가 나면 안 되지, 라고 핑계를 대며 미루었거든요. 하지만 책이 출간되고 다른 급한 마감도 없는 지금까지도 계속 미루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 보면 제게 운전은 하고 싶다기보다 해야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이겠네요. 요즘 챗GPT에게 내가 가진 저주를 묻는 질문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제가 가진 저주 중 하나는 ‘운전에 대한 두려움’인가 봅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책을 만든 이후인 것 같긴 하지만, 최근에 본 가장 좋았던 콘텐츠는 윤가은 감독님의 <세계의 주인>입니다. 제 기준 올해의 영화라서 꼭 언급하고 싶었고요… 올해의 드라마는 <소년의 시간>. 그 외에 이 책을 만들 때만이 아니라 집에서 휴식할 때 자주 보는 영상물은 대체로 짧고 재미있는 시트콤들. <사인필드>같은 오래된 시트콤부터 <빅뱅 이론>, <오피스>, <VEEP(부통령이 필요해)> 등등 좋아하는 시트콤은 여러 번 반복해서 보는 경우도 많고요. 최근에 기대 없이 봤다가 시즌이 갈수록 좋았던 건 <Hacks: 나의 직장 상사는 코미디언>. 영리한 작품이고 캐릭터나 관계성이나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 시각도 좋아서 재미있게 봤습니다. 짧고 재미있는 영상들을 밥 친구 삼아 보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밥 친구가 될 수 있는 짧고 재미있는 소설 모음도 언젠가는 써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얼룩을 지워도 지운 자국은 남는다고.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고. 그러니까 우리가 진짜 해야 하는 건 더 많은 얼룩을 만드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사과 한 알처럼 예쁜 얼룩을. 더러운 얼룩들 따위는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아주 많은 예쁜 얼룩을 자꾸만 자꾸만. (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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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

<박지영>

출판사 |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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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