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으로 가족을, 삶의 터전을, 자기 자신을 잃은 사람들이 나나의 올리브나무 집에 찾아온다. 그곳에 가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리브나무 집에서 지내는 동안 이들은 다친 몸과 마음을 수선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누군가 전쟁을 피해 함께 떠나자고 할 때도 있지만, 나나는 언제나 올리브나무 집에 남는다. 까만 가면을 쓴 개들도 언제나 올리브나무 집 곁을 지킨다. 올리브나무 집은 언제나 변함없이 그곳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사라지기 마련이야. 그렇지만 우리를 붙드는 건 언제나 남아 있는 것들이지”라는 문장으로 『나나 올리브에게』를 소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여기서 방점은 ‘언제나’에 찍혀 있지 않다. 바닥에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문장의 손이 가장 힘주어 쥐고 있는 건 ‘붙들다’이다. 『나나 올리브에게』는 거의 모든 것을 잃은 이들이 가까스로 다시 무언가를 붙드는 순간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가령 부칠 수 있을지 모르는 채로 편지를 쓰기 시작한 순간처럼.(『나나 올리브에게』는 그렇게 쓰인 편지들의 묶음이기도 하다.) 루리 작가와 함께 우리를 지탱해주는 것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나 올리브에게』 작업을 마친 후기를 들려주세요.
오랫동안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 하나를 책으로 완성할 수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항상 할 일이 가득했는데, 그게 사라지니 좀 어리둥절하기도 해요.
『긴긴밤』은 마지막 하나 남은 수컷 북부흰코뿔소 수단의 죽음을 다룬 뉴스가, 『메피스토』는 친구 어머니의 유품인 일기장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나 올리브에게』는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이번 이야기는 타임지에 실린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으로 무너지고 부서진 집에 한 노인이 침대에 앉아 턴테이블의 음악을 듣고 있는 사진이었는데요, 사진 밑에는 ‘그는 머물기를 고집했다’라고 써 있었어요. 망가진 집에 머물기를 고집하며 음악을 듣고 있는 그 노인의 모습에는 어떤 아름다움이 있었고, 저는 그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싶었어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무엇이 그를 떠날 수 없게 만들었을까, 어떤 마음으로 전쟁의 한복판에서, 망가진 집에서 음악을 듣고 있는 걸까, 그렇게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 시작했고 그 집을 둘러싼 다양한 인물들과 동물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어요.
올리브나무 집에는 끝내 그곳을 떠나지 않았던 이들, 다시 찾아온 사람들, 까만 가면을 쓴 개들이 있었습니다. 올리브나무 집이 변함없을 수 있었던 건 이들 덕분이기도 하죠. 이들은 왜 올리브나무 집 곁을 지켰을까요?
저는 그들은 그저 살아 냈을 뿐이고, 그것만으로 올리브나무 집을 지켜 내기에 충분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저 먼지가 쌓이면 쓸어 내고,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준비하고, 비가 오면 비닐을 씌우고, 그렇게 묵묵히 일상을 반복해 나가고 살아 낸 것이, 전쟁으로 엉망이 된 세상 속에서도 그 집을 지켜 냈다고요. 그래서 저는 우리 모두가 어떤 면에서는 그 집을 지켜 낸 존재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얼마 전 제 지인 중 한 분이 세쌍둥이를 출산했어요. 세쌍둥이이다 보니까 태어나자마자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다가 어제 한 명이 퇴원을 했는데, 거기서 졸업장을 주더래요. 거기에 뭐라고 쓰여 있었냐면,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가을이에게, 위 신생아는 세상에 좀 더 일찍 나와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잘 이겨 내고, 세상의 희망이 되어 주었기에 이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이런 말이 적혀 있었어요. 저는 가을이가 언젠가 저만큼 나이를 먹어서 정말 힘든 하루를 살고 있을 때 이걸 보면, 아 맞아, 난 이미 강인한 사람이지, 하고 눈물이 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보니까 우리 모두 다, 어쨌든 이 험한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 내서 세상에 희망이 되어 준 존재들이구나, 우리 다 여기까지 왔으면 충분히 강인한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 우린 다 이미 무언가를 지켜 낸 나나 올리브 같은 사람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요.
책을 덮으며 올리브나무 집이 그리워졌어요. 가 본 적 없는 장소에 향수를 느낀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그런 이야기에라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 집을 진짜라고 믿었다”라는 문장이 등장하기도 하죠. 한때 작가님이 붙들었던 이야기, 힘들 때 돌아가곤 했던 ‘집’이 있을까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쭉, 집순이였습니다. 내복 입고 집에서 뒹구는 게 제일 좋았어요. 이사를 많이 다니지는 않았지만 이사 갈 집을 고를 때 저희 부모님의 가장 중요한 기준 중 하나는 집 앞에 놀이터가 있는가, 였어요. 덕분에 제가 자란 집은 항상 집 앞에 놀이터가 있었고요. 어렸을 때는 그게 제 세계의 전부였습니다. 놀이터와 집이요. 그 두 공간에서,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어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고, 울고, 싸우고, 다시 웃고. 집이라는 공간에서는 온갖 일이 일어난다는 걸 경험하며 자랐어요. 그리고 그 온갖 일도 그게 무엇이건 간에, 결국은 지나가고 다 괜찮아질 거라는 게 저에게는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안도감을 주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독립을 해서 제 보금자리를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고요.
사실 이번 이야기에 나오는 뻐꾸기시계는 저희 부모님의 이야기예요. 형편이 넉넉하지 않던 시절, 6개월간 장판 밑에 월급을 모아서 마련한 뻐꾸기시계가 있었거든요. 그 시계는 제가 태어난 집을 거쳐, 어린 시절을 보낸 집, 제가 20년 넘게 살았던 집에까지 쭉 걸려 있었어요. 그리고 부모님의 이야기를 이어 가고 싶다며 남편이 선물한 뻐꾸기시계가 지금은 저희 집에 걸려 있고요. 저는 이 이야기가 어떤 공간을, 제 보금자리를 만들어 주는 이야기이고 저를 지탱해 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나나에게 쓴 편지가 책의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편지에는 연필로 그린 스케치가 동봉되곤 하는데, 글만큼이나 그림이 전달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작가님이 애정하는 그림이 있을까요?
저는 손으로 배트맨의 얼굴을 감싸는 스케치를 그릴 때가 가장 좋았던 것 같아요. 실제로 강아지 얼굴을 손으로 만지는 걸 상상하면서 그렸거든요. 손끝에 느껴지는 털의 촉감, 눈곱, 코의 촉촉함 같은 건 언제 떠올려도 정말 기분 좋아지는 온기예요.
곳곳에서 작가님이 이야기에 깊이 몰입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가장 마음이 쓰였던 인물은 누구인가요?
마음이 가장 많이 쓰였던 캐릭터는 사실, 조로입니다. 조로는 제가 15년을 함께했던 뭉크를 모델로 하고 있어요. 조로의 일화들, 그리고 조로가 떠나던 날은 모두 제가 뭉크와 함께했던 날들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올해로 뭉크가 떠난 지 10년이 되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여전히 뭉크 얘기를 하고, 전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이 이야기를 붙들고 있는 몇 년 동안 정말 여러 번 감기에 걸렸습니다. 그때마다, 엄마가 온갖 청을 담가 주셨어요. 가장 최근에 받은 건 모과청과 레몬생강청인데요, 감기에 걸렸을 때는 물론이고, 멀쩡할 때도 예방주사를 맞는 느낌으로 수시로 마셨어요. 사실 엄마가 주신 레몬생강청은 레몬 맛은 거의 안 나고 정말 생강이 씹히는 강렬하게 건강한 맛이었는데요, 감기 예방의 효과만큼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덕분에 무사히 작업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레몬생강청과 작업 노트북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작업실은 없고, 카페나, 식탁이나, 방바닥이나 그때그때 내키는 곳에서 노트북으로 작업을 합니다. 이 노트북은 2019년 크리스마스에 가족들과 남편이 돈을 모아서 사 준 노트북인데요, 펜으로 화면 위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노트북이에요. 그전까지는 계속 수채화나 색연필로만 작업을 하다가, 이 노트북이 생겨서 처음으로 디지털 작업을 해 보게 되었고, 그게 『그들은 결국 브레멘에 가지 못했다』였어요. 그 작업으로 그림책상을 받았으니, 저에게는 행운의 부적과도 같은 작업 도구들입니다.
올리브나무 집 도면 스케치
마감 후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그 일을 실제로 하셨을까요?
옷장 정리요. 저는 청소와 정리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실은 작년 봄에 이사를 했는데, 작업에 집중하느라 마음껏 정리를 하지는 못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마감을 하자마자 집 안에 있는 수납장과 옷장을 전부 줄자로 재고 수납함을 사서 정리를 했습니다. 규격에 딱 맞는 수납함 안에 깔끔하게 정리되는 모습을 보는 건 정말 짜릿합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작업 중 특히 재밌게 본 타인의 작품은 무엇인가요?
저희 집 앞에 독립영화관이 있어요. 유혹이 이만저만이 아닌데, 덕분에 작업에 많은 영감을 얻기도 했어요. 특히,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삼부작,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올리브나무 사이로>는 이번 책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어요. 영화 속 현실은 엉망이에요. 물자도 부족하고, 지진 피해 현장이고, 멀쩡하고 제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웃고, 진지하면서도 가볍고, 그래서 굉장히 동화적이거든요.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에는 지진으로 임시 천막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나와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월드컵 결승전을 보기 위해 들떠 있고, 한 남자가 안테나를 고치고 있어요. 이를 지켜보던 감독이, 지진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은 상황에서 왜 축구 경기를 보려고 하느냐고 질문을 해요. 거기에 남자가 대답하기를, 여동생도 잃고 조카도 잃었지만 어쩌겠느냐, 월드컵은 4년마다 열리고 지진은 40년이다, 그리고 삶은 계속된다, 라고 하거든요. 망가져도 삶은 계속되니까요. 손에 잡히는 것을 고치고 일상을 살고 그렇게 삶을 계속 이어 나가는 거예요. 그런 모습들을 보는 게 저에게는 큰 위안이 되었고, 제가 받은 위안이 이번 이야기에도 담기게 되었던 것 같아요.

“모두가 그 집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 이야기를 진짜라고 믿었던 건 아니다. 그런 이야기에라도 매달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그 집을 진짜라고 믿었다.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그 집은 진짜였다. 이 이야기는 그 집에 대한 우리의 기록이다.” (13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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