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문유석, 나와 당신 삶의 공통점
판사에서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드라마 작가가 된 만화 같은 삶에서 내 삶과 공통점을 발견한다면?
글: 박의령 사진: 표기식
2025.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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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작가는 어릴 적 만화를 탐독했습니다. 자라서 판사가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의 삶은 만화만큼이나 스펙터클 해졌습니다. 젊은 나이에 엘리트 코스를 밟고 화려한 이력으로 법조계 생활을 하다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를 만들며 최초의 현직 판사 겸 작가라는 타이틀을 얻으면서부터인데요. 한창 유명세를 탈 때 사법농단이 일어나고 법조계 블랙리스트 문건이 세상을 뒤흔들면서 문유석 작가의 이름은 다시 한번 거론되었습니다. 이 대목조차 만화 같지 않을 수 없네요. 결국은 첫 번째 삶이었던 법조계를 떠나 전업작가를 선언합니다. 첫 책 『개인주의자 선언』을 발표한 후로 10년, 법복을 벗은 지 5년 후 그의 삶은 몇 화에 접어들었을까요? 

 

『나로 살 결심』은 그의 두 번째 선택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결심’은 마음을 먹는 일이기도 하며 끝을 내기도 하는 일이죠. 어릴 적 꿈꾸던 일, 본업이 있을 때도 잘했던 일, 가장 잘할 수 있고 잘하고 싶은 창작의 길은 계획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인생의 실전에는 자비가 없습니다. 인생의 한 부분을 매끄럽고 순탄하게 달렸다고 해서 이어지는 모든 길이 탄탄대로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문유석 작가는 분투의 시간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또 유머러스하게 지면 위에 털어놓습니다. 프리랜서의 고뇌, 일하는 대다수의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끝없는 고용의 불안까지. 

 

“제가 뭐 대단한 사람이고 제 개인의 특수한 경험이 의미가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것보다도 나와 다른 삶을 산 사람이지만 의외로 공통점들이 있구나. 지금 시대에서는 누구의 일자리도 안전하지 않잖아요. 불안과 힘든 점들은 다 마찬가지이며 이 모두가 같이 당면한 과제이구나. 그러니 동지적인 관점에서 읽어 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답은 없지만 아마 같은 길을 가는 동지로서 공감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 선택과 헤어질 결심


제목을 보자마자 영화 <헤어질 결심>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것은 ‘헤어질 결심’으로부터 시작되죠. 첫 번째 직업이자 선택인 판사와 이별하려고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주세요.

어릴 적부터 글쓰기가 꿈이긴 했는데 포기하고 현실적인 선택을 해서 법관직을 하게 되었어요. 해보니 너무나 보람된 일이라 평생 할 생각이었거든요. 공교롭게도 <미스 함무라비>라는 드라마를 쓰게 되면서 갑자기 어릴 때 꿈이 이루어졌어요. 두 가지 다 열심히 하면서 살면 되겠다 싶었는데 법관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지면서 제가 인사 불이익 대상으로 요주의 인물로 관리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사람들의 대다수가 저랑 잘 아는 사람들이었는데 계속 얼굴을 마주치면서 지내는 것이 좀 껄끄러웠어요. 글도 자유롭게 쓰고 싶었고요. 

 

온갖 소설과 만화, 영화, 음악에 빠져 살았던 이른바 ‘덕후’ 기질이 다분한 어린 시절을 보내셨죠. 수많은 이야기의 세계에 어떻게 매료되었나요? 

70년대 후반 80년대 정도에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요. 한국은 지금과는 다르게 굉장히 가난한 나라였어요. 집까지 가난하다 보니 저의 세계는 되게 좁았어요. 할 수 있는 것도 별로 없고 학교 다녀오면 골방에 박혀 있거나 동네에서 애들과 뛰어 노는 게 다였어요. 그런데 책은 제한이 없었어요. 책을 통해 아프리카나 남극 탐험을 하고 유럽의 왕족이 되어 전쟁을 경험하기도 했어요. 그 모든 것들이 가상 현실처럼 느껴졌어요. TV도 재미없는 공중파밖에 없었으니까 책이 제일 재미있고 도파민 도는 매체였어요. 해적판 만화부터 패션잡지, 『삼국지』 같은 대서사시, 전집까지 손에 잡히는 것들을 죄다 봤어요. 저는 이야기 중독자였어요.

 

그 많은 이야기들 중에 인생을 바꿔놓을 것만 같은 강렬한 작품도 있었나요?

집합적인 것들의 총체이지 어느 한 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노총각 삼촌이 사다 놓고 한 번도 안 읽어서 아주 깨끗한 50권짜리 세계 고전 문학 전집에는 호메로스의 작품부터 플로베르의 작품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있었어요. 한국 문학 전집을 통해서는 『오발탄』부터 최인호 선생님, 이문열 작가의 작품에 감명받고 박경리 선생님의 『토지』를 보면서 최서희가 얼마나 아름다울까 머릿속에 그려보면서 온통 시간을 보냈어요.

 

갓 미성년자를 벗어나는 시기에 익숙했던 세계와 이별하고 다른 길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는데요. 미지의 영역을 향한 발걸음이 되기도 하는 그 시기의 결정이 꽤나 오래,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더라고요.

소설과 만화를 좋아해서 닥치는 대로 읽으면서 사춘기를 보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도파민 중독이었던 것 같아요. 심오한 예술혼이 있진 않았지만 그림 그리는 재능이 있었으면 만화가를 했을지도 몰라요. 그림을 못 그리니까 만화 스토리 작가나 소설가, 영화 감독도 꿈꿨지만 돈을 벌어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어요. 재능과 열정도 보통이고 부유하지 않은 집의 장남이라 일단 법대를 가고 보자 지극히 계산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을 한 거죠. 게다가 운이 좋은 게 요즘이었으면 사법고시는 엄두도 못 냈을 거예요. 제가 입시를 했던 80년대는 철저하게 사교육 금지라 학교에서 배운 것만 달달 외우면 성적이 잘 나왔어요. 대한민국 역사상 한 5년밖에 없는 그 시기라 법조계에 발을 담글 수 있었던 거죠.(웃음)

 

결국 법원을 ‘첫사랑’이라고 회고할 만큼 23년 동안 진심을 다하는 시간을 보내셨어요. 하루아침에 작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거예요. 어린 시절 꿈을 은연중에 품고 밸런스를 맞추며 지속해 온 것일까요.
매주 재판을 하고 판결을 선고했어요. 미리 다음 주 판결의 난이도와 분량을 생각해 7일 중 어느 정도 노동을 해야 되는지를 먼저 산정했어요. 그 외의 시간은 전부 치열하게 딴짓을 하는 거죠. 주로 책을 읽거나 여행 계획을 세웠어요. 구글 앱으로 가고 싶은 도시의 골목을 다 돌아봐요. 여기서 세 번째 골목을 돌면 구글 리뷰상 제일 맛있는 집이 나오고 가성비는 여기가 최고다, 마치 군사 작전을 하듯 지도 위를 떠돌아다녔어요.

 

책을 읽을 때는 수많은 콘텐츠가 쏟아져도 호불호 기준이 굉장히 명확한 편이라 시간을 아낄 수 있었어요. 첫맛을 보면 내 취향인지 아닌지 바로 알아요. 예를 들어 개과보다 고양이과의 글을 선호해요. 너무 성실하고 진득한 것보다 위트 있고 톡톡 튀면서 많은 정보량이 담겨 있는 걸 좋아해요. 마음껏 딴짓을 하다가 본업을 할 때는 초집중력을 발휘되면서 그렇게 23년을 살았어요.

 

판사라는 직함이 있을 때는 그것만으로 설명이 필요 없었지만 법복을 벗은 후로는 어딜 가나 자신을 설명해야 한다는 에피소드에 공감이 갔어요. 대기업이나 좋은 환경에서 일하다 홀로 섰을 때 주변의 대우가 달라지는 걸 경험한 이들이 많을 거예요. 이런 속상함이 꽤 오래 발목을 붙잡기도 하는데 이전의 선택이나 삶과 이상적인 이별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워낙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보니 훌륭함과 대단함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같이 있을 때 즐겁고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났어요. 누군가에게 맞춰주기 위해서 감정 노동을 해야 되면 안 만났어요. 그럴 때는 바로 전화번호를 삭제합니다.(웃음) 무성의하다 욕도 많이 먹었지만 뭐 어쩌겠어요? 진짜 인간관계는 내가 판사를 하든 어떤 일을 하든 똑같이 나를 대해줄 사람들과 나누면 된다고 생각해요. 판사에서 전업작가로의 전환을 버틸 수 있게 해준 건 소수의 믿을만한 사람들 덕분이었어요. 




계획대로 되는 게 없어서

 

현직 판사가 재직 시절 쓴 <미스 함무라비>는 여러모로 화제가 되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을 하나 더 얻게 된 순간을 어떻게 기억하시나요. 

<한겨레> 고경태 에디터님으로부터 주말판에 제가 겪은 법정 실화를 연재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어요. 저는 직업 윤리상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재판하는 사람들의 사생활을 폭로하는 걸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픽션이면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단, 글을 써 본 경험이 아예 없다고 했는데도 무조건 괜찮다고 해주셨어요. 뻔뻔한 얘기인데 태어나서 처음 쓰는 습작을 돈 받으면서 유수의 신문에 쓸 기회가 주어진 거예요. 그때 저는 만화를 좋아하던 소년 시절로 바로 돌아갔어요. 순정만화를 좋아했기 때문에 여주인공이 아주 예쁘고 똑똑한데 뭔가 비극적인 과거사가 있고 그 옆에는 또라이 같지만 묵묵한 남자가 있는 전형적인 구조를 먼저 떠올렸어요. 그러고 나서는 그냥 닥치는 대로 쓰기 시작했어요. 판사로서 법정에서 느낀 것과 유소년기 내내 심취해 있었던 만화를 결합하면서 튀어나온 게 <미스 함무라비>인 거죠.

 

드라마화가 되고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이 법원의 제 방에 찾아와 인터뷰도 하고 일을 어떻게 하는지 관찰하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단역들 오디션이나 촬영장도 자주 찾아갔어요. 원래 작가는 그렇게 자주 안 가도 되는 건데.(웃음) 마치 「어느 날 눈 떠보니 드라마 작가가?」 같은 웹소설의 주인공이 된 것만 같았어요. 매일 즐거웠고 일생에 두 번은 없을 경험이었어요.


법원 생활의 일화를 쓴 글들이 작가로서 단초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20년 넘도록 속해 있던 법원이라는 세계가 작가로서의 두 번째 삶에 여러 영향을 더했을 테죠.  

판사 생활을 할 때 매주 50건 정도 재판을 했어요. 그 많은 사람들의 삶을 인터뷰하고 관찰한 셈이죠. 공감 능력이 엄청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이야기 중독자다 보니 그들의 삶을 자꾸 상상하게 되는 버릇이 생겼어요. 이 사람은 어쩌다 이렇게 몰락해서 여기까지 왔을까, 저 가족은 왜 서로 원수가 됐을까. 머릿속 어느 한 켠에서 상상이 자동적으로 돌아갔고 저도 모르게 저장되어 있더라고요. 영화 <인사이드 아웃>처럼 핵심 기억 구슬이 어딘가에 있었던 거죠. 본격적으로 창작을 시작하니 그때의 간접 경험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개인의 보호를 위해 그대로 사용하진 않지만 그걸 토대로 변형하거나 연상된 것들로 이야기를 만드니 수월하더라고요. 제 안에 풍성한 이야기들이 큰 자양분이 되고 있어요. 

 

2부에서는 심사숙고 끝에 시작한 전업작가 생활의 ‘꽃길’이 펼쳐질 거라 생각했지만 코로나라는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과 여러 시행착오, 슬럼프 등이 그려져요. 작가님께는 죄송하지만 여기서부터 흥미진진해지더라고요. 이건 분투기이구나.

한마디로 요약하면 주제 파악의 역사인 것 같아요. 인간은 누구나 자기 객관화가 안 되는구나, 내가 그걸 잘한다고 생각하는 거 자체가 자기 객관화 안 되는 거예요. 본업을 하면서 창작을 하는 동안은 내가 굉장히 대단하고 자기 절제가 잘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전업작가가 된 후부터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것도 하루 한 시간 운동하는 것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엄마한테 혼나야 방학 숙제를 하던 때로 돌아간 느낌이었어요. 프리랜서가 되는 순간 자기 뇌와 싸우는 삶이에요. 뇌가 계속 사보타주를 해요. 마감이 다가오면 막 심장이 두근거리고.(웃음) 지금까지 불면증 없이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이었는데 본격적인 작업 기간에는 잠을 제대로 잘 수가 없었어요. 멜라토닌도 먹어보고 술도 못 마시면서 일부러 잠을 자기 위해 맥주 한 캔씩 마신 적도 있을 정도였어요.


실패와 고초가 솔직하고 담담하게 실려 있어요.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숨기려던 이야기를 예리하게 짚어 주셨네요. 이 책은 원래 1년 전에 나왔어야 하는 책이에요. 제목도 『세컨드 라이프』로 정해져 있었고 작년 이맘때 나올 채비를 다 갖추고 있었어요. 그러다 출간 전 여름에 출판사에서 소수의 분을 선정해 독자 리뷰를 받았어요. 그런데 결과가 굉장히 부정적이었어요. 심지어 제 이전 책을 좋아해주신 분들의 반응이었는데도요. 


저도 모르게 자기 방어가 강했던 거예요. 저는 자기 연민을 되게 혐오하는 사람이거든요. 힘든 얘기를 최대한 기피했어요. 결국은 나의 포부와 꿈과 잘 된 얘기 위주로 쓴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 당시가 가장 슬럼프였거든요. 창피했던 것 같아요. 이 나이가 되어 어떻게 보면 대부분의 사람이 겪는 나태함 같은 걸 겪으며 징징대는 게 부끄러웠어요. 나보다 힘든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이런 일로 뭔가를 쓰는 게 철없고 윤리적으로도 옳지 않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열심히 살고 있는 건 알겠는데 나의 삶과 연결점이 안 느껴진다는 리뷰가 다수였어요.


종착점은 같아도 굽이굽이 길을 가면서 자빠졌던 얘기를 빼니 공허한 거죠. 다시 숨김없이 써달라는 주문을 받았어요. 독자들은 작가들이 개고생하는 얘기를 좋아한대요.(웃음) 드라마 작업을 하면서 동시에 개고를 했어요. 뼈대는 남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갈아 엎었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는데 겪고 나니 과정 자체가 정말 감사하게 느껴졌어요. 작년 이맘때 계엄이 선포되었잖아요. 그때 껍데기처럼 보이는 경험과 포부로만 가득한 책이 나왔으면 생각만해도 아찔해요. 아마 작가 생활이 끝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역시 나는 전생에 나라를 구해 이런 좋은 편집자와 동반자들을 만났구나 했어요.(웃음)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챕터의 제목을 보자마자 프리랜서인 저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어요. 혼자 일하는 사람들이 빠지게 되는 가장 큰 딜레마인 것 같아요. 시간은 있는데 돈은 부족하고 돈을 쓰면 그만큼 더 벌어야 한다는 사실이 형벌처럼 다가오는. 

스스로에 대한 규율이 필요하다는 걸 매일 OTT만 보다 뒤늦게 깨달았어요. 일의 우선 순위나 돈 씀씀이 같은 것도 파워 ‘J’ 스타일로 관리해요. 드라마 차기작 기획이나 집필을 가장 앞에 두고 그 범위에 맞춰서 선택과 집중을 하는 거죠. 책은 워낙 좋아하고 독자분들이 있어서 계속 쓰지만 방송 출연이나 강연, 인터뷰 등은 최대한 적게 하려고 해요. 돈 역시 계약금이나 인세를 기간에 나눠 받는 거라 월급 받던 때처럼 생활할 수 없어요. 재테크를 통해 만들어 놓은 자금들을 월급처럼 나눠 쓰고 있어요.

 

경제적 자유를 위해 주식으로 재테크 하는 경험담이 실려 있어요. 책 전체의 결과 조금 다르지 않은가 물음표가 떠올랐다 결국에는 왜 이 챕터가 책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수긍하게 되더라고요.  

사람은 생존이 먼저입니다. 가족의 생계 앞에서는 다 배부른 소리라고 생각하고요.(웃음) 그래서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일단 생존하는 것이 모든 생명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할 것인가에서 출발해 주식이라는 재테크를 선택했는데 해보니 경제적 자유라는 말이 어폐가 있더라고요. 이런 100세 시대에 지속 가능하지 않은 꿈이라 생각합니다. 지속 가능한 일을 갖는 것이 더 어렵지만 현실적인 목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계속 일을 할 거예요. 그게 저주라 생각하면 평생 불행한 거고 주어지는 기회라고 생각하면 생계에 필요한 자원도 얻고 사회적인 인정도 얻고 자기 실현도 할 수 있는 거죠.

 

결국은 불안함의 문제인 거네요. 어떻게 해도 완벽하게 불안을 거둘 순 없지만 불안을 멀리하기 위해 작가님이 취한 방법이 있을까요?

자전거 바퀴를 밟듯이 계속 페달을 밟아서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안정을 얻어 보려고 재테크도 시작했는데 그게 제일 불안한 일이었죠.(웃음) 앞서 한 답변과 비슷한데 세상에 완전한 안정은 없으니 불안해하기보다 받아들이려고 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건강을 챙기는 게 중요하더라고요. 타고나길 건강해서 지금까지 신경 일도 안 쓰고 막 살아온 사람인데 점점 잔고장도 생기고 체력이 딸리는 걸 느껴요. 밤에 먹는 아이스크림이나 단 것도 끊어내면서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는 PT도 시작했고요. 


양승태 대법원 시절 내부 문건에 '어용연구회장'으로 이용된 ‘애증의 사건’이 없었더라면 전업 작가라는 두 번째 선택은 아직, 아니면 영영 오지 않았을까요? 

어떤 식이든 글은 계속 썼을 것 같아요. 워낙 책과 글을 좋아하고 또 쓰는 것의 맛을 봐 버렸단 말이에요. 독자들의 피드백, 리뷰를 읽을 때 굉장히 행복하거든요. 제 마음은 그랬지만 상황은 또 다르잖아요. 하지만 언제 오든지 올 일이었어요. 검열을 하면서 글을 쓰면 행복하지 않으니까 결국은 멋대로 쓰다 비슷한 비판을 받으며 누군가에 또 찍혔을 것 같아요.(웃음) 판사라는 본업을 가지고 작가를 시작했을 초창기에는 법원이나 저나 서로 유예 기간이 있었던 거라 생각해요. 이것저것 수용해보다 서로 한계를 느꼈고 결정의 기로는 이미 와 있었던 거라고.

 


가장 잘할 수 있는 일

 

흰머리, 혼잣말, 불어난 뱃살과 몸무게 등등. 작가님이 지난 5년 동안 얻은 것들인데요. 전업 작가의 글쓰기에 따르는 괴로움을 한껏 느꼈습니다. 그럼에도 작업을 놓을 수 없는 이유가 있을 텐데요.

여러 버전의 대답이 있을 수 있는데 당장 즉각적으로 떠오르는 답은 그냥 그걸 잘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나마 제가 이 사회 속에서 역할을 하고 자원을 벌 수 있는 게 창작인 거죠. 엄청난 대가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주식 투자 하나도 바로 실패했는걸요.(웃음)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 <악마판사>, <프로보노>를 멋대로 ‘법원 3부작’이라 이름 붙여보겠습니다.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의 흐름과 발견하게 된 공통점, 가치관의 변화도 있을 거예요. 

사실 작품을 쓸 때 의식한 적은 한 번도 없거든요. 그때그때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내키는 걸 썼는데 질문을 받고 돌이켜서 생각해 보면 해당 작품을 쓰던 시기의 주 관심사나 삶의 상태와 일치하는 것 같아요.

 

<미스 함무라비>는 나이브한 이상주의자로서 어떤 낙관주의에 불타고 있던 시절에 쓴 거예요. 법원에 대한 신뢰도 최고조에 달했고 나의 동료와 조직이 그래도 성실하고 이타적인 사람들의 집단이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내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동료, 후배, 선배들이 열심히 사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다는 거를 좀 보여주고 싶었고 나도 그중 하나로서 좋은 판사가 돼야지라는 마음가짐으로 썼던 작품이에요. 그런데 방영 시기에 블랙리스트가 터지고 사법 농단이 터졌으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요? 꿈은 깨지고 빛도 있지만 그림자도 깊었다는 것을 깨닫고 충격을 크게 받았어요.


그 충격과 절망이 <악마 판사>가 된 거죠. 대법원을 폭파시켜버리잖아요.(웃음) 극 중의 대법관이 알고 보면 악의 축이고 그러니 정의의 신전은 위선의 신전이 되어버려요. 법원도 다른 권력 집단과 마찬가지로 소수의 권력자들이 나쁜 곳으로 이끌 수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마주하고 분노가 생겼어요. 거기에 코로나 시대가 주는 고립감과 절망감이 ‘다크 문유석’을 작동하게 했고 굉장히 공격적인 톤이 나왔던 것 같아요.


제2의 삶에서 충분한 교훈과 어느 정도의 안정감을 얻으면서 어두운 모드를 보내고 다시금 법조계를 바라보고자 한 것이 <프로보노>예요. <미스 함무라비>가 법조인의 이상화 된 모습을 그렸다면 빛과 그림자를 경험한 후의 등장인물은 전혀 달라졌어요.(웃음) <프로보노>의 주인공은 굉장히 이기적이고 속물적이고 출세지상주의적에 눈에 띄는 것만 하려고 하는 공명심 많은 판사거든요. 이랬던 인물이 공익 변호사를 하게 되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그렸어요.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계기만 있으면 때로는 이타적으로 되기도 해요. 정반합을 거쳐서 이제는 보다 현실적인 인간상을 한번 그려보고 싶어진 거죠.


작품을 창작하는 동안 판사로서의 자아와 작가로서의 자아가 동일시되기도 하고 대립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판사라는 직업을 그만둔 지 5년이 지나도 아직 물이 덜 빠졌나 봐요 <프로보노>를 쓸 때도 자꾸만 법정 씬에서 판결을 내리고 있더라고요. 그러면 제작진들이 드라마지 100분 토론이 아니라고 얘기해주세요.(웃음) 각자 일리가 있는 양자의 입장과 논리를 가지고 치열하게 토론하는 게 저한테는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드라마는 감정이 중요하기 때문에 특히 주인공의 감정선을 얼마나 섬세하게 시청자들이 올라탈 수 있게 끌고 가느냐가 관건이거든요. 근데 저는 자꾸만 ‘T’가 발동해서 감성보다 논쟁과 담론을 떠올리는 병이 있어요. 감독님과 PD분들의 피드백을 받으면서 적절히 조절을 해가고 있어요. 아직도 배워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다양한 문화 향유자로서 전혀 다른 주제로 쓰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텐데요.

처음 작가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근거 없는 자신감이 넘쳐서 <어벤져스> 같은 것도 만들려다가 잘 안된 적도 있고 사극도 해볼래 뭐도 해볼래 하다가 다 망해서 이제는 주제파악을 한 상태고요.(웃음) 제일 잘하는 것부터 하다 보니 이번 작품 역시 법정물입니다. 판사에서 변호사로 일단은 한 발만 바꿔 봤거든요. 생각해보니 저는 어떤 직업인의 이야기, 일에 관한 얘기를 좋아하더라고요. 일하면서 느끼는 가치관의 충돌이나 고민 같은 걸 다루는 게 좋아요. 평생 일하면서 살아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거기서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많고 저도 몰입이 되는 거예요. 그렇게 따져보면 의학 드라마나 제가 쓴 법정 드라마나 일만 다르지 똑같더라고요. 거기서는 죽어라 수술을 하는 거고 저는 죽어라 재판을 하죠. 그 안에서 누구는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찍어 누르고 라이벌이 생기고 파벌이 생기는. 내가 가진 틀과 경험을 다른 직업군으로 확장해보는 것에 점점 관심이 가네요.

 

또한 어떤 주제를 쓰더라도 작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대단한 야심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최소한 세상에 해를 끼치는 작품을 만들면 안 된다는 마음이 강해요. 그동안 이 사회에서 과분하게 혜택받고 살아온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의무라고 생각하고요. 제가 보기에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접근이나 표현을 하는 드라마들이 있거든요. 예를 들어 여성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을 불필요하게 다루는 걸 볼 때마다 굉장히 분개하게 돼요. 안 좋은 메시지를 알게 모르게 전달하게 되는 것도 경계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려는 목적 의식을 가져서도 안 되고 같이 한번 생각해 봤으면 하는 문제를 던져보려고 하는 거죠. 

 

여기서 작가로서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전달하느냐가 관건인데요. 당대에서 고민해 볼만한 이야기를 찾아내고 보다 많은 사람이 공감하면서 너무 어렵지 않게 극을 따라가게 하는 것이 작가의 할 일이며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서 매력적인 캐릭터가 필요하고 섬세한 빌드업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고민하고 공부해 가면서 또 좋은 협력자들과 협력해 가면서 일을 하고 있는 거죠.

 



삶은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인터뷰가 공개되는 날이면 이미 새 드라마 <프로보노>가 방영 중일 텐데요. 작품이 공개될 때 긴장과 기대랄까요, 어떤 감정이 드나요.

두렵죠. 두렵고 참 두렵습니다. 그리고 잘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뿐이죠. 한편으로는 사람들이 어떻게 봐줄지 무척 궁금해져요. 저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만 쓰니까 자족적으로 늘 만족하는 사람이거든요. 제가 쓴 걸 보면서 울고 웃을 만큼.(웃음) 허들이 낮아서 참 행복한 작가죠. 그래서 작품이 나오고 나면 후기도 열심히 찾아봐요. <악마 판사> 때는 배경이 되는 고전 동화로 문학 평론에 가까운 후기를 나누거나 미술 소품까지 언급하는 ‘덕후’들이 많이 생겼어요. 창작자로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순간이고 그런 순간을 즐기는 편입니다.

 

극본이 영상화되는 짜릿한 순간을 벌써 세 번째 맞이하고 있는데요. 그동안 가장 인상적으로 남아있는 기억은 어떤 것인가요. 

정말 많은 순간이 있었지만 <미스 함무라비>가 방영된 다음 대만 대법원에서 초청받은 적이 있어요. 정말 만화 같은 일이죠. 우리나라에서는 블랙리스트 사건으로 뉴스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다른 나라에서 대법원에 판사들을 모아놓고 <미스 함무라비>에 관한 세미나를 하겠다는 거예요.
 무슨 일이지? 하고 갔더니 판사님 한 100명 모여 있고 대법원장님까지 참여해서 드라마에 나온 젠더 의식, 법원 조직의 유연성 문화 등에 대해 발제하고 인용하며 토론을 벌이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저는 원작자로서 코멘트를 하는 영광을 누린 거죠. 심지어 세미나를 마친 후 그분들이 사인도 받아 가시고 큰 공감을 해주시더라고요. 그때 이야기의 힘이라는 게 어마어마하구나라는 걸 실감했어요.


다음 저작은 어떤 형태가 될까요?

그동안 냈던 책들은 법을 공부하고 판사로 살았던 20여 년간의 고민과 경험, 지식을 토대로 쓴 책이 대부분이거든요. 평생 그것만 우려먹고 살 수는 없어요.(웃음) 그리고 그 전환기인 지난 5년간의 경험으로 이번 책을 쓴 거예요. 좋은 책 한 권을 만들려면 거의 10배, 수십 배의 재료가 준비되어 있어야 농축하고 농축해서 나오는 것 같아요. 자기 복제는 하고 싶지 않으니 우선 열심히 살아야겠죠. 새로운 독서, 바뀌는 시대에 대한 공부, 여러 사람들과의 인터뷰나 고민이 필요해요. 그런 시간이 쌓인 상태에서 자신감이 있을 때 다음 책을 쓰고 싶어요.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쓸 수 있는 것을 찾는다면 민법, 형법, 노동법 등을 알기 쉽게 에세이 형태로 쓰는 것도 저에게는 유의미한 작업이 될 것 같고. 어릴 때 좋아했던 고전을 지금 다시 읽어보고 그 경험을 공유하는 책도 좋을 것 같네요.

 

최근에 눈여겨 본 콘텐츠를 채널예스 독자들에게 추천해 주세요.

최근에 주목받은 작품은 많이들 아실 거라 몇 년 전에 나온 미드 중에 권하고 싶은 게 있네요. 영화 <대부>를 만드는 과정에 관한 드라마 <오퍼: ‘대부’ 비하인드 스토리>를 추천하겠습니다. 대중들에게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은 유명하지만 정작 영화를 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아요. 스타인 말론 브란도나 알 파치노가 수면 위를 우아하게 떠도는 백조라면 제작자들은 수면 아래에서 버둥거리며 동력이 되는 발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럽고 치사한 일들을 해내야 하죠. 근데 그들의 일이 오히려 우리 같은 생활인, 직업인들이 겪는 일에 가까운 거예요. 돈을 조금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 투자자들에게 읍소하고 고개를 숙여요. <대부>는 마피아에 대한 작품이니 말 그대로 생명의 위협을 받아가며 그들을 설득하는 일까지도 했어요. 저도 글만 써서는 안 되고 배우나 스태프를 설득하고 조율하는 일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만 목숨 걸고 자기 일을 하는 모습이나 명배우들의 연기는 누가 봐도 호불호 없이 빠져들 것 같아요.

 

지금까지 지독한 개인주의자와 나이브한 이상주의자라고 자신을 명명했지만 이쯤에서 또 다른 형용을 붙여도 좋을 것 같은데요.

제가 보는 저는 여행자? 계속 새로운 곳으로 떠나며 지금 이 곳은 잠시 스탑오버한다는 느낌으로 살아온 것 같습니다. 미지의 나라에 표류한 걸리버처럼 소속감이 없으니 여기서 내 이름과 기억을 남겨야겠다는 생각도 없고요. 그냥 현재를 가장 즐겁게 재미있게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아가는 여행자로서 떠돌며 살다가 잊히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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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의령

여러 패션 매거진의 피처 디렉터로 일하다 지금은 자유롭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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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기식

사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