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 1쇄, 2017년 11월 41쇄, 42만 부. 민음사에서 펴내는 경장편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에 조남주 작가가 투고한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기록이다. 누구는 울분을 토하면서 읽었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문학성을 따지며, 또 다른 이들은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지적하며 화살을 쏜 작품. 하지만 조남주 작가는 1년 남짓 ‘서울 변두리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 중인 34세 주부 김지영 씨’를 열심히 호명했고, 대한민국 실제 82년생 김지영 씨의 삶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청소년기에 IMF를 겪으며 진로 결정에 제약을 받고, 엄마가 되는 즈음인 2012년 무상 보육 제도가 실시되면서 잉여 취급을 받으며, ‘맘충’ 소리를 듣고 있는 지영 씨.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1978년생 조남주 작가는 서울에서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엄마가 없을 때, 오빠 밥도 아버지 밥도 언니가 차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10년간 시사 교양 프로그램의 방송 작가로 일하다 결혼했고, 출산을 계기로 휴직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집에서 쓸 수 있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1년 전, 무명이던 조남주 작가에게 인터뷰를 청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딸아이 하교 시간 전까지만 끝내주세요.” 이로부터 1년 후, 조남주는 ‘올해의 책’ 저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하지만 시간의 제약은 같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녀에게 책상이 생겼다는, 발언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담고 싶다
꼭 1년 만에 다시 봬요. 작년에는 『82년생 김지영』의 운명을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어요.
아무도 몰랐죠. 그땐 책을 내고도 인터뷰도 많이 안 했고요.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여전히 엄마로 아내로 주부로 살고요. 글을 쓰는 시간이 좀 길어졌죠.
강연회 요청도 많이 받으시죠?
종종 와요. 정책 간담회 같은 자리에서도 가끔 연락이 오는데요. 그때마다 내가 해야 할 역할들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그리고 고민의 결과는 내가 어떠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적합한 여성이 앉을 수 있도록,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제안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다짐이었어요. 나만 발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발언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커요.
페미니즘 소설 『현남 오빠에게』가 출간됐어요. 여성 작가 7인의 소설집인데, 표제작을 쓰셨어요.
올해 4월쯤 편집자님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페미니즘 앤솔로지를 기획 중인데 써볼 생각이 있냐고 하셔서, 메일을 받자마자 “네, 할게요”라고 했어요. 최근 페미니즘 도서가 많이 출간되고 화제도 됐지만, 처음부터 이런 목적을 갖고 기획된 ‘소설’은 제가 알기론 처음인 것 같아요. 힘을 좀 보태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제가 듣기론 작가분들이 대부분 바로 수락하셨다고 해요.
가스라이팅(gaslighting: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심리 상태) 개념을 소재로 선택했습니다.
가스라이팅에 대해 단편이 됐든, 장편이 됐든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때마침 단편 제안이 와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현남 오빠에게」의 주인공은 20세 이후 10년간 교제한 남자 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며 편지를 씁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일할 때 가정 폭력 피해여성을 만난 적이 있어요. 경우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피해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점, 인지했지만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당사자의 탓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줄곧 높임말로 편지를 쓰던 주인공은 마지막 장을 쓰면서 반말을 해요.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왔다는 것,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38쪽) 소설을 읽고 나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왜 10년을 그 폭력 속에서 견뎠지?”라고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사실 주인공이 10년 동안 애인에게 끌려 다녔지만, 어떤 면에서는 되게 똑똑한 사람이에요. 막판에서야 프러포즈를 거절한 것 같지만, 그동안 친구와 따로 연락하고, 간접적이지만 자신의 입장도 여러 번 말했고, 이사도 말없이 준비했어요. 부모의 큰 도움 없이 타지에서 자기 앞가림도 잘했고요. 이렇게 치밀하고 똑똑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끌려가다 보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주인공은 나름대로 치밀한 사람이에요.
제목에서 ‘한남’이 연상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의도는 없었어요. 남자 주인공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했을 때, 문자 어감상 끊어 가는 느낌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이름의 마지막 글자에 입술이 맞물리는 받침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ㅁ, ㅂ 등을 생각했고요. 남, 섭 같은 글자 안에서 조합하다가 문득 ‘남자 주인공은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약간 반어적으로 지은 이름이에요. 책이 나오고 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요. ‘한남’이라는 단어를 알긴 하지만 실제로 들어본 적은 거의 없어요. 인터넷에서만 봤던 글자죠. 누군가가 ‘한남’을 연상한다면 제목을 바꾸는 게 맞았을까 생각했을 때… 글쎄요, 그동안 ‘김치녀’ 같은 성희롱적인 발언도 뜻과 달리 교묘하게 많이 사용됐잖아요. 문제를 지적하면 “왜 이렇게 예민하게 생각해”라는 반응을 보이고요. 만약 ‘한남’을 떠올렸다면 거꾸로 생각해봐도 될 문제가 아닐까요?
「현남 오빠에게」를 읽고 난 소감은 “『82년생 김지영』을 쓴 작가가 쓴 소설이 맞구나”예요. 톤이 달라지지 않아서 좋았어요. ‘확 다른 작품을 쓸 거야, 변화를 보여줄 거야’라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한데요.
“페미니즘 작가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그런데 사실 전 그런 부담이 없어요. 『82년생 김지영』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고요. 책이 나오고 다양한 반응을 접하면서, 어쩌면 남성들도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들을 의지도 있었는데 기회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제가 앞으로 꼭 비슷한 주제의 소설만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의식들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담고 싶어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 다른 작가들과 소재가 겹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도 겹치지 않았어요. 너무 다 다른 내용이라서 놀랐고요.
읽으면서 정말 울컥했던 작품
『현남 오빠에게』 출간 소식을 다룬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10년 전엔 성공학, 처세술, 자기계발서, 지금은 페미니즘. 팔아먹기 위한 양산형 도서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듯.” 페미니즘 도서가 과연 잘 팔리는 책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참 씁쓸했어요.
몇 달 전 ‘네이버 책문화 생중계’에서 인터뷰했는데 악플이 많이 달렸다고 하더라고요. 『82년생 김지영』으로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돈을 보고 기획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글쎄요, 콘텐츠라는 게 사람들의 관심사, 흐름을 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왜 페미니즘은 너무 큰 색안경을 끼고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유행하는 자기계발서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지만, 역사나 인문학 관련 책들이 한창 주목받을 때는 “역사가 돈이 된다, 인문학이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두고 ‘돈’을 연결시킨다는 건, 페미니즘을 누군가의 진지한 고민이나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냥 유행으로 치부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
그래서 돈이 되든 안 되든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해요.
반면 응원의 메시지도 많아요. 최근 한 독자님이 단 댓글인데요. “우리의 소심한 한 마디가 모여 세상과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감동이었어요.
소심한 한 마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힘들진 않았어요. 지금 제 고민이라면 ‘『82년생 김지영』 이후의 내 역할이 어디까지인가’예요. 페미니즘에 관해 한두 번이라도 발언한 저에게 독자들이 기대한 바가 있을 테니까요. 또 해야 하는 바도 있을 거고요. 어디까지 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텐데요. 제가 능력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요. 1년 동안 이 고민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는 가부장제의 두 얼굴을 그린 작품이에요. 맏딸로 태어난 주인공 ‘유진’은 엄마 ‘정순’으로부터 오랜 집착의 대상이 됐죠. 엄마는 주인공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었고요.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요. 유진이 남동생의 배우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았어요. 흔히 배타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사이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유진은 일단 호의를 갖고 상대를 대해요. 실제 찾아보면 이런 경우도 많을 거라 생각해요. 이런 설정들이 좋았고요. 엄마와 딸 사이에는 각자만 알고 있는 말 못 할 감정이 많잖아요. 이런 감정들을 굉장히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자 독자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까도 궁금했고요.
세 번째 수록작인 김이설 작가의 「경년更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크게 공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읽으면서 정말 울컥했던 작품이에요. 주인공의 딸아이가 초경을 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 딸한테도 이런 순간이 닥치겠구나, 내 고민들이 한 단계 달라지겠구나’ 싶었어요. 아이가 “생리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답해준 적은 있지만, 정작 상상은 못 해봤던 장면이었어요. 아들 가진 엄마, 딸 가진 엄마들의 입장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한 작품이었어요.
소설 독자에게 읽히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14개월간 42만 부. 국내 소설이 이만큼 주목을 받은 해가 근래에 없었어요. 흔히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많은 독자가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공감한 것처럼 암울한 미래만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남 오빠에게」 작가 노트에도 썼는데요. 여자로 사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어쩔 수 없다고, 별일 아니라고,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자주 의심해요.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을 믿지 않지만 동시에 절대 불가능한 결말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출간 후 입소문으로 꾸준히 책이 팔렸지만, 금태섭 의원이 국회의원 300명에게 선물하고, 노회찬 의원이 청와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면서 『82년생 김지영』의 판매가 급격히 늘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기쁘면서도 너무 놀랐어요. 흥미로운 건 두 국회의원 모두 남성이라는 점이에요. 여자들이 더 공감하는 이야기였을 텐데, 남자 독자들이 발견해줬다는 게 뜻밖이었어요.
사실 저도 생각해봤어요. ‘만약 여성 의원이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호평을 늘어놓았을 때 과연 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이 주제를 두고 여자들이 이야기했을 때 받아들이는 방식과 남자가 했을 때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구나. 만약 여성 의원이 이 책을 선물했다면 다소 거북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고요.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더 용감하게 발언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싶어요.
지난 8월 다큐멘터리
방송을 봤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어쨌든 제가 쓴 김지영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실제 김지영 씨가 눈앞에 보이니까 처음에 드는 생각은 ‘마음이 짠하다’였어요. 눈앞에서 그들의 생활을 보고 있으니까 ‘그분들에게 정말 위안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최근 <한겨레>에서 통계, 증언으로 ‘82년생 김지영들’의 삶을 공개했어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낸 ‘82년생 여성의 노동 시장 실태 분석’에 따르면 82년생 남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93. 4%지만, 여성은 독박 육아 탓에 59. 8%, 월급은 동년생 남성보다 67만 원이 적었어요.
소설을 계기로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어떤 존재, 어떤 삶의 방식들에 주목해주신 것 같아 저에게도 고무적인 일이었어요. 소설 독자에게 읽히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여러 방식을 통해 한 세대, 그리고 내가 처한 현실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게 참 고맙고 좋았어요.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독자들의 성별을 따져보면 여성이 78%, 남성이 22%라고 해요. 지금은 좀 격차가 줄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간혹 남성 독자들의 리뷰를 들어요. 불편했다고 하는 분도 계시지만 옆에 있는 동생, 친구들의 삶을 생각해보게 됐다고도 하세요. 제 주변에 있는 남성이나 어르신들을 보면서 가치관이 한번에 확 바뀌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만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됐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변화가 있었나요? 혹시 개인 책상이 생겼을까요?
얼마 전에 이사하면서 방에 책상을 하나 들여놓았어요. 그전까지는 주로 식탁에서 글을 썼는데, 사실 지금도 거의 식탁에서 써요. 딸아이가 초등학생 2학년인데 아직 엄마가 항상 눈앞에 있었으면 하나 봐요. 아이가 방에서 저를 보려면 제가 식탁에 앉아 있어야 해요.
질문이 생길 때 소설을 쓴다
‘글 쓰는 여자는 힘이 세다’는 말에 긍정하는지 궁금합니다.
동의해요. 발언권이 있는 사람은 힘이 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현남 오빠에게」에서 주인공은 편지로 거절 의사를 전했잖아요. 자기 생각을 발언하고 글로 쓰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생각에 논리를 세울 수 있으니까요. 또 글을 쓴다는 건 직접 대면해서 받을 수 있는 어떤 공격에서 한 단계 물러설 수 있는 편리도 있어요. 기록의 의미도 있고요. 대면에서의 스피치 또한 중요하지만, 자료가 될 만한 글을 많이 쓰고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면서 자주 깨달아요.
최근 <경향신문> 토요판에 연재했던 ‘그녀의 이름을 부르다’가 막을 내렸어요.
1년간 썼던 픽션이에요. 어떤 가상의 인물을 잡아서 소설 형태로 담았어요. KTX 여성 승무원부터 성주 소성리 할머니, 임산부, 워킹 맘까지 대상이 되는 범위가 크기도 작기도 했는데, 대부분 글을 쓰기 전 직접 만나서 인터뷰했어요. 마지막 글은 파업에 참여한 MBC 여자 아나운서들의 이야기를 썼고요. 흩어지는 글이 될까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내년쯤 책으로 묶을 계획이에요.
네 번째 장편은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예전에 써놓았던 소설이 한 편 있어요. 불법 체류자들이 사는 가상의 맨션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에요. 또 여중생들이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내년쯤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까지 발표한 세 편의 장편 『귀를 기울이면』 『고마네치를 위하여』 『82년생 김지영』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투고한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모두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이에요. 예전 인터뷰에서 기억이 남는 답변이 있었는데, “수상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책으로 묶일 수 있다는 것이 더 기쁘다”는 말이었어요.
2011년에 ‘문학동네소설상’으로 등단했지만 청탁은 거의 없었어요. 꾸준히 쓰고 두드리는 수밖에 없었죠. 『82년생 김지영』은 정말 기대를 안했던 작품이에요. 후보에 올랐길래 ‘아, 그래도 후보에는 올랐네’ 싶은 마음이었어요. 문학상이라는 걸 받는다는 기대가 전혀 없었어요.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아, 네”라고만 답했던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아, 네”라고 혼잣말을 했어요. 예전에 제가 ‘내 작품이 소설 서가에 꽂히든, 에세이 코너에 꽂히든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내가 쓴 소설도 문학’이라고 조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한 독자의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소심한 말 한 마디가 중요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지금 당장은 나를 예민하게 보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발언하고 나면 상대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점이에요.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소설을 쓰기 전에도 사소한 이야기는 꾸준히 했던 것 같아요.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하는데 누군가가 “이런 건 아빠들이 잘하잖아” “남자들한테 시켜야지” 같은 말을 하면 “우리 집은 제가 하는데요” “여자들도 잘하는 사람 많아요”라고 했어요. 되게 소심한 표현 같기도 하고, 내가 너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나 싶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이 평등하게 살고,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되면 좋은 거니까요. 불편한 말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 주로 읽는 책들은 무엇인가요?
올해는 특히 읽어야 해서 읽은 책이 많았던 것 같아요. 리베카 솔닛의 책 중에 그간 못 읽었던 책들을 읽었는데요. 그녀의 초기작인 『걷기의 인문학』과 최근작인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올여름에 나온 『여공문학』도 좋았는데, 호주 태생인 저자가 한국에 왔다가 또래의 10대 여공들을 만나 이들의 수기와 자서전, 소설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해요. 지금까지 제가 제대로 읽은 여공 문학은 『외딴 방』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 책도 굉장히 재밌었고, 페미니스트 홍승은, 홍승희 저자의 책도 기억에 남아요. 윤단우 작가님의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도 좋았는데, 윤 작가님의 글은 워낙 많은 여성의 인터뷰를 통해 나온 것들이라 어떤 작품을 읽든 도움이 돼요. 그래서 항상 챙겨 읽고 있어요.
TV 보는 것도 굉장히 즐기신다고요. 작년 인터뷰 때 “딸하고 기분 좋게 볼 TV프로그램이 없어서 아쉽다”며 “여자들끼리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를 TV로 보고 싶다”고 했는데요. 최근에는 여성 패널들만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꽤 생겼어요.
일단 반가워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누가 무슨 소리를 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지려나’ 그런 생각을 종종 했거든요. 긴장 없이 편하게 보는 프로그램들이 생겨 좋아요. 좀 더 다양한 여성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외모와 무관하게 머리가 희끗한 사람, 배가 많이 나온 사람들도 TV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질문이 생길 때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유효할 것 같아요. 지금 조남주 작가님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고령화 시대잖아요.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이고, 예전의 가족이 양육을 수행하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아니에요. 이미 가족은 돌봄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됐는데 가족 구성원들은 돌봄을 필요로 하고, 사회적으로 돌봄 기능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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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조남주 저 | 민음사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엄지혜
eumji01@naver.com
qubee3
2017.12.08
리엔쥬
2017.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