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의 여자들』 은 고국을 떠나 낯선 타지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베트남 이주민 여성의 외로움. 세월과 함께 남편의 상습적인 폭행이 일상이 되어버린 중년여성의 아픔 등, 우리 사회의 고통 받는 존재들에 대해 고스란히 직시하고, 따뜻한 내부의 시선으로 그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작가 박문영은 제2회 SF 어워드 중단편소설 분야에서『사마귀의 나라』로 대상을 받으며, 환경사회학의 관점에서 원자력 문제를 차분하고 담백하게 풀어냈다. 이번 『지상의 여자들』 에서도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보여준다는 점은 기존 작품과 일치한다. 하지만 미스터리한 배경 속에서 연약한 존재에게 가해진 '폭력'이라는 삶의 무게를 박문영만의 날선 언어로 예리하게 구현했다는 점은 기존 작품과는 다른 특별한 매력을 선사한다. 한편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느끼는 '성연'을 통해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젠더감수성을 서정적으로 아름답게 일깨웠다는 점에서 작가가 지닌 단단함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한국형 페미니즘 장편 SF 『지상의 여자들』 에 대한 작가님의 간략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화내는 남자들이 사라지는 도시, 그곳에 사는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외계 존재가 일으키는 초자연적 현상 속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드러냈어요. 체감 상 지금 한국과 상당히 가까운 픽션입니다. 소재에 대해 어떤 분은 불편을, 어떤 분은 흥미를 느끼시는 데 보시면 아시겠지만 이 소설은 여성을 선하게, 남성을 악하게 그린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여성들의 발언을 서사 전면부에 내세운 내용에 가깝습니다. 아울러, 읽는 분에 따라 ‘한국형 페미니즘 장편 SF’에서 맞는 말은 한국 장편뿐이라고 여기실 수 있을 텐데요. 저는 과학소설이란 말 앞에서 각자 과학, 소설 두 단어 중 방점을 찍는 위치가 다를 거라고 판단합니다. 페미니즘 소설에 대한 의견 역시 마찬가지죠.
2015년에 제 2회 SF어워드 중ㆍ단편 소설 분야에서 『사마귀의 나라』로 대상을 받으신 후, 오랜만에 집필활동을 하여 내신 책이 『지상의 여자들』 인 것으로 압니다. 작가님의 첫 장편소설이기도 한데요. 책을 출간하신 소감과 함께, 『지상의 여자들』 을 어떻게 구상하시게 되었는지 작품 창작 배경이 궁금합니다.
중편을 쓴 뒤에 주로 웹툰, 만화,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이미지 작업과 미술 프로젝트만 하고 있었어요. 수상 이후 SF 장르 계에서 가짜 깃털을 매달고 어쩔 줄 모르는 까마귀가 된 것 같았거든요. 장문의 혹독한 비판을 보내신 독자도 있었는데 아마 이번 신간을 접하시면 더 말문이 막힐 거라 예감합니다. 너무 걱정하거나 움츠러들면 아무 것도 변할 게 없어 과감히 시작한 소설이에요. 우리가 관측할 수 없는 우주의 어떤 존재가 지금 한국을 보면 어떨까, 라는 질문이 단초가 되었어요. 전작에서 우리가 사는 곳이 어떤지를 물었다면, 이번 책은 우리가 이곳에서 어떻게 사는지를 부각하려 했습니다. 출간 이후에는 역시 후련함 보다 미련이,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크네요.
작품에서 주인공 ‘성연’은 유약한 남편 형근과 자신에게 여과 없이 감정을 드러내는 친구 ‘희수’ 사이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 합니다. 더욱이, 성연은 과거에 사촌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던 상처를 안고 있는 인물이기도 한데요. 주인공 ‘성연’을 어떤 인물로 그리고 싶으셨던 것인지, ‘성연’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성연은 결정을 미루는데 익숙하고 행동도 느린 인물이에요. 자신을 포함한 모든 대상과 조용히 불화하고 있죠. 말하자면 기로와 경계에서 늘 헤매는 친구인데요. 언어ㆍ입장ㆍ정체성에 대한 질문부터 피해 당사자인 그가 피해자성에 대해 고민하는 지점까지 성연이 여러 터널을 예민하게 통과하길 바랐어요. 저는 성연을 통해 평범한 한국 여성이 자신의 세계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의문을 품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크고 작은 방해를 받고 있는지, 나아가 여성 스스로가 자신을 필요 이상으로 얼마나 불신하고 혐오하는지 밝히고 싶었습니다. 또한 희수와 성연의 사랑엔 시작도 끝도 뚜렷한 형체도 없었지만, 희수 혼자만 성연을 사랑했다고 여기지 않았어요. 성연은 관계와 애정에 명확한 이름을 붙이지 못하는 인물이지만 형식이 흐리다고 내용도 흐린 것은 아니니까요. 갖은 수난을 겪은 만큼 성연이 결국에는 전보다 단단한 삶을 살길 빌고 있어요.
소도시 ‘구주’에서는 자주 윽박지르고 폭력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남성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집니다. 그리고 서서히 구주의 낮과 밤은 여성들의 것이 되어 가는데요. 이렇게 여성들의 도시가 된 구주는 행복할까요? 작가님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책 후기에 밝혔지만 여성들이 주축이 된 사회가 훌륭하고 정결할 거란 판단은 편견일지 몰라요. 소설 속 구주 여성들도 무조건 연대하지 않아요. 반응이 각각 다르고 노선도 갈라지죠. 남성에 의한 강력범죄가 극히 드문 구주가 쾌적한 도시임은 분명하지만 생존권 위에 다른 욕망들이 쌓이고 얽히면서 사회는 또 복잡다단해질 거예요. 경험 상 관계에 문제가 생겼던 사람들 중 제게 복잡한 영향을 끼친 건 거의 남자보다 여자였던 것 같아요. 구주 역시 여성이 여성과 대립하는 상황이 얼마든지 생기는 세상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사회적 관념이나 허울 또는 고정된 구도에서 벗어나, 낯설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충돌할 수도 있겠죠.
『지상의 여자들』 을 집필하시는 동안 작품 창작에 영감이 되었던, 또는 도움이 되었던 책이나 영화, 음악들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소개 부탁드립니다.
훌륭한 책, 영화, 음악이 숱하지만 작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것들을 특정해 적어보자면 이화여대 고병진 님의 <연대 거부를 통한 ‘여성’ 경계의 획정-메갈리아 분열 이후 워마드와 TERF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을 흥미롭게 읽었어요. 김일란, 이혁상 감독의 다큐 <공동정범>도 ‘약자성’에 대해 계속 질문할 수 있던 영화라 인상 깊었습니다. 소설을 쓸 때는 음악을 잘 못 듣다가 퇴고 때 HBO 드라마 <웨스트 월드> OST를 틀어 두었는데 고치고 있는 작업에 비해 너무 웅장한 사운드라 이질감이 들었지만, 여러 번 들어도 물리지 않아 도움이 되었어요. 쉴 때 유튜버 허챠밍님의 영상을 보면 기분이 노곤노곤해져서 참 좋았고요.
『지상의 여자들』 이후에 특별히 생각하시고 계시는 작품 방향이나 앞으로의 활동이 궁금합니다.
다음 작업으로 만화수필집 한 권을 만들 예정이에요. 소설보다는 웃기고 편안한 글이 될 것 같아요. 음악 장르로 치면 포스트 락에서 신스 팝으로 이동하는 셈인데 건강 상 이런 모드 전환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저는 무겁고 눅눅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가볍고 명랑한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물론 논픽션이라는 점 때문에 저를 어디까지 노출하고 편집할지 고민이 되지만요. 제가 아는 작가들 중 직업이 단 하나인 경우는 거의 없어요. 저도 뭘 하든, 어떻게 생활을 꾸리든 소설과 만화를 오래오래 만들고 싶어요. 보편성과 전형성을 헷갈리지 않고 작업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지상의 여자들』 을 접하게 되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책을 읽어 주신 분들에게, 그리고 읽어 주실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구매 덕에 저와 저희 동네 길고양이, 집고양이들이 건강히 지낼 수 있습니다. 이번 신간은 기존 SF 독자 분들에게 여러 모로 아쉬움이 클 수 있겠지만 여성문학 독자 분들에게는 접근도가 수월한 책일 거라 짐작해요. 장르 문학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책에 아무 시차 없이 쉽게 진입할 수 있을 거예요. 스펙터클 혹은 사이다 없이 흘러가는 이야기를 즐기는 분들이 있다면, 어쩌면 이 소설이 친구가 될 수도 있겠어요. 그러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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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여자들박문영 저 | 그래비티북스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외계 지성체의 존재는 구주 남성들의 실종 사건을 더욱 미궁으로 빠뜨린다. 사회의 순기능이라 여겨졌던 현상은 점점 여성들에게도 혼란과 갈등을 불러일으킨다.
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