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석은 한국에서 가장 접근이 어려운 인물 중 하나다. 오랫동안 그는 자신이 공들여 쌓아 올린 이미지에 부합하는 이벤트에만 참석했고, 언론 매체와의 인터뷰도 신중하게 골라서 진행했다. 오죽하면 그런 소문이 파다했을까. 2010년대 초반 종종 터져 나오던 ‘유재석 위기론’ 기사의 상당수는, 유재석과의 인터뷰 혹은 독대 자리를 원했으나 거절당한 연예부 데스크들이 앙심을 품고 자가발전한 기사들이라고.
물론 괜한 까탈은 아니었다. 유재석은 당대 가장 전위적인 예능 MBC <무한도전>과 예능 한류의 최전선에 서 있던 SBS <런닝맨>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 그의 이미지는 곧바로 해당 프로그램의 이미지와도 직결되는 문제였는데, 하하나 박명수와 같은 동료 연예인들과는 달리 바른생활 사나이라는 기본 이미지 탓에 운신의 폭도 넓지 못했다. 그런 상황에서 그의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오인이라도 불러 일으키면 그 파급력이 어떨지는 가늠조차 어렵다. 그러니 유재석이 취해온 극도의 신중함은, 아마 어깨 위에 짐이 많은 사람 특유의 책임감이었으리라.
유재석이 세상 밖으로 한 발 더 나온 계기는 <무한도전>이 끝난 뒤 시작한 tvN <유 퀴즈 온 더 블록>(이하 <유퀴즈>)이었다. <무한도전>에서 선보인 적 있었던 길거리 토크쇼 포맷을 확대 발전시킨 <유퀴즈>를 진행하며, 유재석은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초 근접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웃고 떠들었다. 그가 수 년 간 정상을 지키며 쌓아온 ‘친근하나 손 닿을 수 없는 거리에 있는’ 범접불가의 1인자 이미지는, <유퀴즈>를 통해 자연스레 그 거리감을 좁혔다.
그 변화에 급가속 페달을 밟은 건 오랜 동지 김태호 PD다. MBC <놀면 뭐하니?> ‘뽕포유’ 프로젝트에서 트로트 신인 ‘유산슬’로서의 삶을 살기 시작하며, 유재석은 지난 20여년 간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세계로 떨어졌다. 성인 나이트클럽에 불려가 뮤직비디오를 1시간 안에 찍어내는 일정을 소화하는가 하면, 연말이니 행사를 하루에 5개씩 잡아줄 수 있다는 베테랑 매니저들의 제안 앞에서 휘청거리고, 생짜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 라디오국을 돌며 홍보용 CD를 뿌리고, 노래교실을 방문해 중년의 학생들과 어울려 함께 춤판을 벌이는 뽕의 세계로.
신중하고 조심스러운 유재석이라는 브랜드가 흔하고 쉬운 신인 유산슬로 거듭나 전에 없이 ‘막 굴려지는’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전에 없던 쾌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모르긴 몰라도, 지금의 상황을 가장 크게 즐기고 있는 건 유재석이 아닐까? 오랜 시간 많은 책무를 짊어지고 올곧고 단정한 이미지를 지켜야 했던 그는, 오랫동안 그 이미지를 깨기 위해 노력해왔다. 조세호와의 콤비 플레이를 통해 까칠하고 잔소리 많은 얄미운 이미지로 거듭나려고도 해봤고, 넷플릭스 <범인은 바로 너!>를 통해 빈틈 많은 허당 이미지를 더하려고도 해봤다. 그러나 그 어떤 시도도 ‘유산슬’만큼 파격적인 변화를 선사하진 못했다. 이제 그는 어디든 가서 얼마든 더 과감해질 수 있다. 빤짝이 재킷과 중절모만 있다면.
이승한(TV 칼럼니스트)
TV를 보고 글을 썼습니다. 한때 '땡땡'이란 이름으로 <채널예스>에서 첫 칼럼인 '땡땡의 요주의 인물'을 연재했고, <텐아시아>와 <한겨레>, <시사인> 등에 글을 썼습니다. 고향에 돌아오니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