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1월 우수상 – 캣폴 좀 옮겨주겠니?
이번엔 기필코 처분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데 웬걸,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거실에서 주로 생활하던 고양이가 캣폴 위에서 낮잠을 자기 시작하는 것이다.
글ㆍ사진 정지은(나도, 에세이스트)
2021.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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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깔끔한 화이트 실크 벽지와 무광의 원목 바닥, 반짝반짝 윤이 나는 새 가전제품들, 그 사이로 멋들어진 그림 액자까지 모든 것이 제 자리에 알맞게 자리 잡았다. 약 4개월간 각종 인테리어 서적을 뒤지고 발품을 팔고, 인테리어 업체를 골라서 이상적으로 구축한 나의 신혼집. 인테리어를 마치고 처음 들어선 집 안의 햇살을 잊을 수 없다. 삭막한 타지 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내 안식처의 존재. 그 낯설고도 황홀한 경험은 여태 느껴보지 못한 안도감을 선사했다.

오점 하나 없는 신혼집의 모습은 이삿짐이 들어오면서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편이 자취하며 쓰던 소파가 들어오고, 낡은 냄비와 식기가 부엌 공간을 차지했다. 검소한 남편의 낡은 옷들이 옷장 안을 채우고, 화장실에 놓이는 면도기와 문 앞에 벗어놓은 양말과 속옷이 생활의 냄새를 풍기게 했다. 내가 상상한 신혼집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 정도는 부부로서 참을 수 있었다. 진짜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결혼 전부터 남편이 키우던 고양이와의 동거였다.

소파는 고양이 스크래쳐가 된 지 오래라 군데군데 천이 떨어지고 구멍이 났다. 출근하려 꺼내든 값비싼 코트는 고양이 털로 어지러웠고, 스타킹에 촘촘히 박힌 하얀 털은 ‘우리 집에 고양이 있어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고양이 관련 물품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고양이 전용 화장실, 각종 놀잇감, 사료 주는 그릇과 물그릇, 수를 셀 수 없는 털, 털, 털. 햇살이 잘 들어오는 거실에 조금만 움직여도 슬로 모션으로 흩날리는 털을 보고 있자니 이곳이 내 공간이 맞나 의심스러웠다. 햇빛마저 원망스러웠다.

그중 가장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캣폴’이었다. 높은 곳에 오르기 좋아하는 고양이를 위해 남편이 거금을 들여 구매했다는 어마 무지하게 큰 물건. 18평 신혼부부가 사는 집에 놓기에 부담스럽게 커다란 그 물건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볼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캣폴은 거실 한구석에 위풍당당하게 자리했다. 티브이 옆에 자리한 캣폴 위에 올라간 고양이가 티브이를 시청하는 우리를 내려다볼 때면 나는 헛웃음을, 남편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남편을 설득했다. 안 그래도 좁은 거실이 더 좁아 보인다고, 너무 답답하다고. 결국 캣폴은 베란다로 옮겨졌지만 추운 겨울이 시작됐고, 베란다 문을 꽁꽁 닫고 살다 보니 고양이가 캣폴을 쓸 수 없었다. 마침 베란다에 둬야 할 물건도 늘어나서 이참에 캣폴을 없애자고 하려는데, 남편은 고양이가 캣폴을 못 쓰고 있으니 방으로 옮기자는 것이었다. 안 그래도 좁은 방에 캣폴을 옮기자니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고양이의 촉촉하고 또랑또랑한 눈을 보자니 쉽게 버릴 수도 없었다. 결국 캣폴은 서재로 쓰고 있는 작은방으로 옮겨졌다.

해가 바뀌고 우리 집에는 새로운 식구가 생겼다. 작고 귀여운 아기는 다시 한번 집의 모양을 바꾸었다. 아기침대가 들어오고, 아기용품이 거실과 방 안 구석구석을 차지했다. 고양이 물건과 아기 물건은 어색한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아기 물건은 나날이 늘어나고 어느새 아기 책도 많아졌다. 캣폴을 둔 서재 방에 아기 책장까지 들어가고 보니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캣폴이 또 눈에 거슬렸다. 이참에 남편을 설득해 당근 마켓에 팔아버릴까 싶었다.

육아로 받는 스트레스를 물건을 버리는 것으로 해소했다. 쓸모없는 것들은 버리기도 하고 팔기도 하면서 좁은 공간을 넓혀갔다. 쾌감이 컸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대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물건을 버리고 공간을 만드는 것은 즉각적으로 눈에 보이는 만족감을 줬다. 버리고 비우고 버리고 비우기를 반복하다가 종국에 다시 ‘캣폴’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엔 기필코 처분하리라 마음을 먹고 있는데 웬걸,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거실에서 주로 생활하던 고양이가 캣폴 위에서 낮잠을 자기 시작하는 것이다. 자고 있는 고양이를 바닥에 내리려고 엉덩이를 톡톡 건드렸더니 뭐가 좋다고 엥엥거리고, 골골거리는 것이 아닌가.

‘아, 졌다 졌어. 이렇게 또 캣폴 처분은 물 건너가는 것인가.’ 자포자기하고 있는데 곁에 있던 아기는 캣폴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가 신기하고 재미있는지 두 팔을 뻗어 만지려고 시도했다. 고양이는 보란 듯이 한 단 더 올라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약을 올렸다. ‘요것 봐라, 내 마음을 다 읽고 있는 거야?’ 아기와 장난치는 고양이를 보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러운지, 캣폴을 버리려 했던 내 마음이 참 못나 보였다. 고양이도 엄연히 우리 식구 중 하나인데 우리 집이 나만의 공간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정말 버리고 비워내야 했던 것은 내 마음속에 정리되지 않고 있던 어수선한 감정 상태가 아니었을까.

앞으로 캣폴은 또 얼마나 자리를 이동하게 될까. 오늘도 이 웅장한 물건은 우뚝 서서 자신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정지은 언젠가 제 글이 주변에 가닿기를 소망하며 매일 조금씩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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