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루시드 폴(이하 폴님)의 노래 '문수의 비밀'이 그림책으로 출간된다는, 게다가 김동수 작가와 협업이라는 소식을 듣고 빛의 속도로 책을 주문했다. 공연을 즐겨 찾지 않는 내가 공연 소식을 듣고 번개처럼 예매했던 공연도 폴님의 공연이었다. 잔잔한 폴님의 목소리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서 서둘러 예매하기를 잘 했다고 생각했었다. 같이 간 남자친구는 처음부터 꾸벅꾸벅 졸았지만 그 모습마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는 시간이었다.
요즘 나는 폴님의 '사운드 제주'를 작업 음악으로 즐겨 듣고 있다. 제주에서 들을 수 있는 여러 가지 소리에 폴님의 목소리가 더해진 앨범인데 재생이 끝난 건가 싶어 볼륨을 조금 높여보면 발자국 소리가 자박자박 흘러나오는 폴님스러운 음악 소리이다.
김동수 작가 역시 항상 내 주변에 머무는 그림책 작가다. 올해 초 이사를 하면서 가지고 있는 그림책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는데 김동수 작가의 『엄마랑 뽀뽀』는 버리지도 나누지도 않을 책, 끝까지 내 옆에 둘 책의 자리에 남겨 두었다. 당연히 『감기 걸린 날』도 『잘 가, 안녕』도 모두 내가 사랑하는 책이다.
폴님이 '다음 작업이 궁금한 뮤지션'이라면 김동수 작가는 '믿고 사는 작가,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드는 작가'이다. 항상 은은한 팬심을 가지고 있는 두 분의 그림책이 나온다니! 소중한 책이 될 것을 책을 받기도 전에 알 수 있었다.
두근두근 설레는 마음으로 택배 박스를 열었다. 설렌다는 표현이 조금 오버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문수의 비밀』을 맞는 마음은 확실히 설렘이었다. 캬~ 표지 봐라. 마스크팩을 올려놓고 큰대자로 누워있는 멍멍이. 네가 문수구나? 파인애플 통조림도 까먹고 과자도 뜯어먹은 모양인데 두 귀와 네 발을 있는 대로 쭉 뻗고 누운 자세가 꼭 나를 보는 것 같다.
빨리 표지를 넘기고 싶지만 조급한 마음을 진정시키고 음악 앱으로 '문수의 비밀'을 재생했다. 그리고 노래 속도에 맞춰 셀프 뮤직비디오처럼 책장을 넘겼다. (이렇게 읽는 것을 적극 추천합니다.) 정확히 5분 35초의 멋진 공연이었다. '문수의 비밀'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머릿속에 그려봤을 법한 장면이 익살스럽고 사랑스럽게 펼쳐졌다.
이야기는 푸른 새벽에 손전등을 머리에 얹고 거실로 나가는 문수의 기대에 찬 얼굴로 시작된다. 반려동물의 사생활을 상상한 이야기는 종종 보았기에 특별히 놀라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생생하게 표현된 문수의 모습이 기대감을 갖게 했다. 아빠가 없을 때 문수는 TV도 보고 책도 읽고 메신저도 한다. 아빠가 옆에 있을 때는 신나게 같이 놀고, 아빠가 없을 때는 혼자만의 시간을 알뜰하게 보내는, 현재를 즐길 줄 아는 강아지다. 이렇게 멋진 문수가 아빠와의 좋은 관계는 여자 친구가 생기기 전까지 일뿐이라는 체념한 듯한 말을 자주 하는데, 마지막 장까지 넘기다 보면 그 안쓰러운 마음이 사람 중심의 시선이었음을 깨닫는 작은 반전을 만나게 된다. 문수는 언제나 자신을 사랑하는 멋진 강아지였다. 김동수 작가는 이 작업을 하며 '문수의 비밀'을 몇 번이나 들었을까 궁금해졌다. 백 번쯤? 천 번쯤? 문수의 사진을 여러 장 받았겠지? 문수 사진을 모니터에 띄우고 '문수의 비밀'을 반복 재생하며 『문수의 비밀』을 만드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작가는 문수뿐 아니라 지금까지 작가와 관계 맺었던 많은 반려동물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동안 여러 작업을 통해 동물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었던 작가였기에 김동수 작가만 그릴 수 있는, 사랑할 수밖에 없는 문수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수신지가 사랑에 빠진 그림책'에는 글과 그림을 한 사람이 작업한 그림책만 소개했었다. 글과 그림을 다른 사람이 작업한 그림책에는 사랑에 빠진 경험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내용과 그림이 각각 좋음에도 미묘하게 밋밋하거나 한쪽이 다른 쪽에게 잠식당하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찰떡처럼 글과 그림이 달라붙어 있었다. 붙어 있다기 보다 김동수 작가 버전의 문수 이야기가 새롭게 만들어졌다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림과 글이 얹힌 PDF 문서를 메일로 받아보고 기뻐서 방방 뛰었을 폴님의 모습이 상상된다. 다음에는 폴님의 차례가 되었으면 좋겠다. 김동수 작가의 바통을 이어받은 폴님이 『감기 걸린 날』이나 『잘 가, 안녕』 그림책을 노래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때 다시 리모컨을 머리에 얹고 거실로 나가는 문수를 떠올리고 싶다.
*루시드 폴 (『문수의 비밀』 작가) 아름다운 노랫말을 쓰고 따뜻한 멜로디를 입히는 일을 해요. 인디밴드 미선이를 시작으로 『사람이었네』, 『오, 사랑』 등처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그린 노래들을 꾸준히 선보이고 있어요. 노래뿐만 아니라 소설집 『무국적 요리』, 가사집 『물고기 마음』, 번역 소설 『부다페스트』, 마종기 시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아주 사적인, 긴 만남』, 『사이의 거리만큼, 그리운』도 펴냈어요. 최근에는 어린이 책에도 관심이 많아 그림책 『어쩌다 여왕님』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답니다. *김동수 (『문수의 비밀』 그림 작가) 동덕여자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하였고 어린이 책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이다. 2001년 한국출판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감기 걸린 날』로 2002년 보림창작그림책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작품으로 『천하무적 고무동력기』, 『할머니 집에서』, 『으랏차차 탄생 이야기』 들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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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신지(만화가)
서양화와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으며, 글과 그림으로 만들 수 있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많다. 만화책 <3그램>, <며느라기> 등을 펴냈으며, 여러 그림책의 일러스트를 작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