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쿠사의 명물 - 하나라쿠도 (ハナラクドウ / 花楽堂)
매장 안은 넓진 않지만 생화가 가득 있어서인지 신선한 꽃 향기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어진 진한 갈색 니스 칠이 된 나무 벽과 천장. 노란 조명이 더해지니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글ㆍ사진 노사라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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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굴이 우거진 전경의 하나라쿠도

세계 각지의 관광객들로 늘 북적거리는 아사쿠사는 근대 시대부터 도쿄 제일의 번화가였다. 관동대지진 이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옛 일본의 향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다. 근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건물과 거리 모습이 잘 유지되고 있어서 골목골목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기다란 고목 위에 붓글씨로 쓰여진 간판이 참 독특하다.

이런 아사쿠사의 느낌을 잘 담아낸 공간이 있다. 전쟁이 끝난 직후인 1945년 상점으로 쓰기 위해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살려서 플라워샵으로 사용하고 있는 하나라쿠도이다. 덩굴이 우거진 외관은 척 보기에도 주변 상점들 사이에서 눈에 띈다. 마치 장승같이 세워놓은 고목 위에 붓글씨로 쓰여진 간판은 하나라쿠도만의 아이덴티티가 잘 드러난다. 튤립과 히아신스가 매장 앞을 예쁘게 장식하고 있다. 현대식 건물에만 익숙해져 있는 나에겐 생소하면서도 어쩐지 그리움이 느껴지는 그런 곳이다.


봄을 알리는 구근인 튤립이 매장 앞에 진열되어 손님을 맞아주고 있다.

드르륵 소리를 내며 덜컹거리는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플로리스트 시마타씨가 환하게 반겨주었다. 예전에 한 번 방문했던 적이 있는데 용케 기억해주신다. 구레나룻을 따라 턱까지 이어지는 수염을 멋지게 기르고 있는 시마타씨는 뭐든지 척척 만들어내는 맥가이버다. 매장 내 있는 작업대나 필요한 수납장 등 큰 가구부터 아기자기한 작은 소품까지도 직접 만드는 만능 엔터테이너 플로리스트. 매장을 구경하다가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멋지게 찍어주면 돈을 받지 않겠다며 농담을 하신다. 오늘이 겨우 두 번째 만남이지만 그의 유쾌한 성격 덕에 금방 친해져 버린 것 같다.


드르륵 소리가 나는 나무로 된 미닫이문.
전쟁 직후 상점으로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매장 안은 넓진 않지만 생화가 가득 있어서인지 신선한 꽃 향기에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요즘은 거의 볼 수 없어진 진한 갈색 니스 칠이 된 나무 벽과 천장. 노란 조명이 더해지니 아늑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불투명한 유리로 된 엔티크 조명등, 땡~ 하고 그윽한 울림을 낼 것 같은 괘종시계와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식기장 등 곳곳에 놓여있는 크고 작은 이 예사롭지 않은 소품들은 모두 시마타씨가 직접 모아온 컬렉션이라고 한다.


매장의 전체적인 분위기. 넓은 공간은 아니지만 생화로 가득 차 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생화를 디스플레이 하는 방법도 여느 플라워샵과는 조금 다르다. 일반적으로 유리 화병이나 광택이 있는 고급스러운 세라믹 화기를 사용해서 꽃을 디스플레이 해놓지만 하나라쿠도는 거친 질감의 테라코타와 물을 퍼 올릴 때나 쓸 것 같은 나무 양동이, 짙은 색감의 라탄 바스켓 등을 활용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작은 요소들이 모여 전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하나라쿠도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유럽에서 유행하는 스타일과 디자인을 따라가기에만 바쁜 요즘, 오히려 다른 매장들과는 차별화된 느낌에 한번 더 돌아보게 만드는 그야말로 아사쿠사의 명물이다.


매장 곳곳에 있는 엔티크한 소품들은 플로리스트 시마타씨가 직접 모아 온 컬렉션이다.

이제는 박물관에 가야지만 볼 수 있는 짚신과 대롱대롱 천장에 매달려 있는 조롱박과 먼지가 뽀얗게 쌓인 양은 주전자를 보고 있으니 어릴 적 할머니 댁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꽃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는 나도 모르게 평소보다 늘 감상적이게 돼버린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엄마 손을 잡고 함께 오고 싶다.


[Shop Data]_하나라쿠도

Add. 東京都台東( )( )草橋1-34-7
Tel. 03-3866-8783
Open : 9:30~20:00(토요일, 공휴일 9:30~18:00), 일요일은 휴일
Access : 아사쿠사바시역 A4번 출구에서 도보 5분
Site : www.hanarakud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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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플라워 노사라 저 | 미래의창
플로리스트의 눈에 비친 도쿄는 어떤 모습일까? 도쿄에서 본격 플로리스트 수업을 받고 일본 최대의 꽃 도매업체인 아오야마 플라워마켓의 플로리스트로 근무한 저자가 꽃을 테마로 한 도쿄의 모습을 전한다. 유명 플로리스트의 화려한 플라워 부티크, 전국적 규모의 플라워프랜차이즈부터 카페와 티하우스를 겸한 플라워샵과 골목 귀퉁이의 개성 넘치는 플라워샵까지, 꽃향기 가득한 도쿄의 이색 공간을 소개한다.

 



도쿄, 이런 여행은 어때요?

도쿄의 서점
도쿄 싱글 식탁
카페 도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하나라쿠도 #아사쿠사 #도쿄 플라워 #노사라
7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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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e78

2013.07.31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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즌이

2013.07.31

일본에도 가보고 싶은데... 방사능얘기가 너무 많아서 ㅠㅠ 가지 못하고있어요 책으로나마 위안삼아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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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로리

2013.07.31

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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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라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블로그, ‘사라스가든’ 운영자인 플로리스트, 노사라는 꽃에 빠진 이후로 손이 늘 상처투성이인 것은 물론이고 아침잠은 새벽 꽃시장에 양보한지 오래다. 본격적인 플로리스트 수업을 받기 위해 일본에 건너가 하나키치 프로페셔널 과정을 수료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형 플라워샵인 아오야마 플라워마켓에서 플로리스트로 근무했으며 현재 숙명여대 대학원 화예디자인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꽃처럼 예쁘고 우아한 직업에 대한 동경이 없지 않았으나, 지금은 플로리스트란 직업이 작업을 위해 늘 무거운 꽃다발과 각종 도구들을 챙겨들고 다녀야 하는 익스트림 잡(?)이라는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개인 및 단체를 위한 플라워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파티와 이벤트 플라워 스타일링 연출을 하고 있다. 블로그 : 사라스가든(sarahroh.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