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예정인 곳은 시즈오카의 서부 하마마츠시에 있는 PC 거베라 농장. 이때까지만 해도 일본 지리를 잘 몰랐던 터라 시즈오카가 도쿄 바로 옆이라는 친구들의 이야기에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생각했다. 또 버스를 대절해서 당일치기로 갔다 오는 일정이었기에 서울에서 경기도 정도의 거리인지 알았다. (일본에서 장거리는 대부분 기차를 이용하기에.) 그런데 왠걸 버스를 타고 가도가도 도착할 기미가 안 보이더니 도착해서 보니 4시간 30분이나 걸린 게 아닌가. 왕복으로 치면 차에서 보낸 시간만 9시간이다. 어쩐지 너무 일찍 출발한다 싶더니… 일본의 국토 면적이 남한의 약 4배라는 것은 이론상으로 알고 있었지만 직접 몸으로 깨닫는 순간이다. 보통 한국인들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자동차로 이동해야 할 때 당일치기 일정은 좀 무리라고 생각하지 않나? 한국에서도 수도권을 벗어날 일이 거의 없던 나에겐 나름 문화충격이었다. 일본이 그다지 큰 나라라고 인식하지 못했었는데, 4배가 맞긴 맞나 보구나.
농장으로 가는 길. 인근이 모두 화훼 농가라서 비닐하우스가 잔뜩 있다.
어쨌든 기나긴 버스 여정 끝에 무사히 시즈오카의 하마마츠시에 도착. 햇빛이 뜨겁게 내려 쬐고, 사방에는 귤이 주렁주렁 열려 있다.
따뜻한 날씨 덕에 사방에 귤이 주렁주렁 열리다 못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시즈오카에서는 날씨가 따뜻하고 일조량이 많은 지역적 특성을 살려 거베라와 국화, 조팝나무 등의 꽃이 많이 생산되고 있는데 PC 거베라 농장의 주 생산품 역시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바로 거베라이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거베라(Gerbera jamesonii hybrida Hort.)는 국화과의 한 식물로 한국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꽃이다. 절화 상태에서도 꽤 오랜 시간 싱싱하고, 다채로운 색감 덕에 한국에서는 축하 화환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이다.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꽃인데,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어서인지 저렴한 꽃이라는 인식이 있어 조금은 아쉽다. 한 송이만 꽃병에 꽂아두어도 그 다양한 색감과 조형적인 요소가 완벽할 정도로 예쁜 꽃이 거베라인데 말이다.
방문객을 위한 비닐하우스로 다양한 품종과 컬러의 거베라가 심겨져 있다.
도착시간이 점심시간과 맞물려 간단하게 도시락을 먹고, 후식으로 준비해주신 시즈오카의 명물, 귤과 우나기파이를 먹었다. 우나기파이는 장어분말가루가 들어간 파이인데 이름과는 달리 정말 맛있다. 시골이라 그런지 인심이 참 후하다. 배불리 먹고도 남을 만큼 챙겨주시더니 직접 농사지은 블루베리로 만든 쨈까지 한 통 챙겨주신다.
드디어 거베라가 있는 비닐하우스로 이동! 딸기농장 1일 체험조차 해본 적 없는 나에겐 너무 두근거리는 시간이다. 판매용 거베라가 심겨진 비닐하우스에는 각각 한 종류씩만 심겨져 있는 것에 비해 우리가 도착한 비닐하우스는 체험을 오는 방문객을 위한 공간으로 색색의 다양한 품종의 거베라가 열을 지어 쭉 심겨져 있었다. 방문객들이 좀 더 다양한 거베라를 보고 즐길 수 있게끔 마련한 배려이다. 간단한 주의사항을 듣고,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거베라를 수확(?)할 수 있다.
거베라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시범을 보여주시는 PC 거베라 농장의 사장님.
시골이라 그런지 일본인스럽지 않게 굉장히 정이 많으시고 친절한 분이셨다.
각자 마음에 드는 거베라를 마음껏 수확중!!
넓은 비닐 하우스 곳곳을 다니며 마음에 드는 거베라를 한송이 한송이 따다 보니 어느새 품에 가득 찼다.
내가 고른 거베라이다. 크고 예쁜 거베라가 너무 많아서 다 갖고 싶은 마음에 잔뜩ㅎㅎㅎ
꽃시장에서 판매하는 거베라는 잎이 하나도 없이 줄기가 깨끗한데 그 이유를 오늘에야 알게 되었다. 거베라는 민들레처럼 뿌리와 맞닿는 줄기의 가장 아랫부분에만 잎이 있는 형태로 줄기 끝을 살짝 비틀면 가위 없이도 깨끗하게 딸 수 있다. 이렇게 직접 농가를 방문하고 체험해보니 꽃시장에서만 보던 것보다 훨씬 꽃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고, 꽃에 대한 애정이 더 톡톡해지는 것 같아 참 좋다.
우리가 수확한 거베라를 한 번에 모아 물에 꽂아두었다.
모든 방문객이 우리처럼 욕심부리다간 판매할 거베라가 있을지나 모를 정도로 엄청난 양이다.
원하는 만큼 자유롭게 거베라를 딴 후, 한 송이씩 포장을 하고 상자에 담는 출하 작업을 하는 공간으로 이동했다. 거베라는 활짝 피게 되면 꽃잎이 바깥으로 벌어지는 특징이 있어서, 꼭 출하 전에 비닐 캡을 씌우는 작업을 거쳐야만 한다. 그래야 꽃잎이 떨어지거나 상하지 않은 상태로 배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송이라도 상하지 않도록 정성을 들여 포장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일본 최대 꽃 도매시장인 도쿄의 오타 꽃시장을 방문했을 당시 도매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꽃이 진열되어 있어 놀랐던 기억이 난다. 또 PC 거베라 농장은 특허를 낸 거베라 전용 포장 박스를 가지고 있는데, 배송하면서 꽃이 박스 안에서 한 쪽으로 쏠려 눌리지 않도록 박스 중앙부에 꽃이 고정되게끔 만들어진 박스이다. 사소한 것마저 그냥 지나치지 않는 일본인들의 꼼꼼함을 보인다.
생산부터 유통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PC 거베라 사장님으로부터 다양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단 하루였지만 PC 거베라 농장 사람들은 정말로 그들이 자신들의 일을 사랑하고 즐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농업이라고 해서 1차원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신품종 개량과 품질 개선, 생산부터 유통까지 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기 위해 얼마나 부단히 노력하는지도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단 한 송이의 거베라를 대할 때도 PC 거베라에서 그 열정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내 위치에서 사람들에게 그 열정을 전해줄 수 있는 플로리스트로 기억되고 싶다.
[Shop
Data]_하마마츠 PC 거베라 농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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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
플라워 노사라 저 | 미래의창
플로리스트의 눈에 비친 도쿄는 어떤 모습일까? 도쿄에서 본격 플로리스트 수업을 받고 일본 최대의 꽃 도매업체인 아오야마 플라워마켓의 플로리스트로 근무한 저자가 꽃을 테마로 한 도쿄의 모습을 전한다. 유명 플로리스트의 화려한 플라워 부티크, 전국적 규모의 플라워프랜차이즈부터 카페와 티하우스를 겸한 플라워샵과 골목 귀퉁이의 개성 넘치는 플라워샵까지, 꽃향기 가득한 도쿄의 이색 공간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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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라
보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블로그, ‘사라스가든’ 운영자인 플로리스트, 노사라는 꽃에 빠진 이후로 손이 늘 상처투성이인 것은 물론이고 아침잠은 새벽 꽃시장에 양보한지 오래다. 본격적인 플로리스트 수업을 받기 위해 일본에 건너가 하나키치 프로페셔널 과정을 수료하고 일본을 대표하는 기업형 플라워샵인 아오야마 플라워마켓에서 플로리스트로 근무했으며 현재 숙명여대 대학원 화예디자인 석사 과정을 밟고 있다. 꽃처럼 예쁘고 우아한 직업에 대한 동경이 없지 않았으나, 지금은 플로리스트란 직업이 작업을 위해 늘 무거운 꽃다발과 각종 도구들을 챙겨들고 다녀야 하는 익스트림 잡(?)이라는 현실을 실감하고 있다. 개인 및 단체를 위한 플라워 클래스를 진행하고 있으며, 파티와 이벤트 플라워 스타일링 연출을 하고 있다. 블로그 : 사라스가든(sarahroh.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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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