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순도를 지키다 -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
어스 윈드 앤 파이어가 2005년의 이후로 무려 8년만에 새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간 걸어온 음악적 행보를 충실히 따르며 아프로 아메리칸 뮤지션으로서의 확고한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네요. 컴백 소식만으로도 반가운 이들의 신보, 를 소개해드립니다.
글ㆍ사진 이즘
2013.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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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


(앨범이) 나와 줘서 반갑고, (음악의 순도와 질을) 지켜줘서 고맙고, (그것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줘서 영광이다. 이런 감사의 변만을 나열할 수밖에 없다. 신보에 대한 비평적 재단보다는 솔직히 그런 감정이 우선한다. 신보가 나와 줘서 반가운 이유는 이미 차트와 시장에서 위력이 쇠한 뮤지션들에게 좀처럼 앨범 제작과 홍보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 냉혹한 산업의 폭압 시대를 살짝 이겨냈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의 앨범 에 이어 8년 만에 앨범이 나온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가움보다 더한 느낌은 두 번째, 음악의 순도와 질을 지켜준 것에 대한 고마움이다. 그들이 예나 지금이나 음악 팬들로부터 무한 경배를 받는 배경에는 빼어난 음악 외에 아이덴티티 측면이 작용한다. 1970년대에 개화한 펑크(Funk)와 관련해서 흔히 그들을 펑크 음악의 테두리에서 논하곤 한다. 그들이 평크의 산 역사임은 명백하다. 하지만 펑크는 딴 음악에서 떨어져 나와 독야청청한 음악이 아니라 대부분의 장르가 그렇듯 이전과 이후 음악흐름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는다. 펑크만이 아니라 이전의 소울(Soul)과 이후의 디스코(Disco), 큰 범주인 알앤비(R&B), 재즈(Jazz)의 요소가 모두 그들 음악에 배어있다. 발라드 명작 「After the love has gone」 같은 경우는 팝이며 라틴의 요소가 넘실거리는 곡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의 정체를 공정하게 말한다면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n) 음악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미국 흑인음악’의 모든 것이 그들 음악에 용해되어 있다. 아프로 아메리칸 음악의 용광로라고 할까. 팀의 조타수 모리스 화이트가 과거 ‘니그로 피아노’로 알려진, 손으로 치는 아프리카 건반 악기인 칼림바(Kalimba)를 그룹의 상징으로 내건 것이 의미하는 바는 다름 아닌 아프리카니즘(Africanism)이다. 누구보다도 어스 윈드 앤 파이어는 미국 흑인의 음악이 아프리카 음악임을 등식화한 공신이다.


‘아프로’ 음악의 핵심은 리듬 곧 그루브이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춤, 그룹 댄스(아프리카라면 부족 댄스)의 향연으로 이끈다. 「Fantasy」, 「Let's groove」 그리고 영화 <언터처블: 1%의 우정>을 통해 재조명된 「September」, 「Boogie wonderland」와 같은 펑키 그루브에 춤추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한편에 「That's the way of the world」와 같은 곡이 말해주듯 그루브에 바탕을 두면서도 재즈, 팝, 소울 등 여러 요소를 융합한 은은하고 쿨한 그들만의 스케일을 찾아냈다. 아마도 이쪽은 ‘아메리칸’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두 가지 패턴은 곡에 따라, 어느 쪽을 강조하느냐에 따라 분리되어 존재하기도 하고 한곡에서 합일을 이루기도 한다. 말 그대로 ‘아프로 아메리칸’ 음악이다.

신보도 여지없이 아프로 아메리칸의 전형이라고 할 그 두 패턴에 따른다. 신나고 펑키한 「Sign on」, 「My promise」, 「Dance floor」가 ‘아프로’적이라면 「Love is low」, 「Guiding lights」, 「Splashes」 등 브라스가 분발하는 은은한 맛의 노래는 조금은 ‘아메리칸’적이다. 싱글로 나온, 정말이지 리듬 감각이 하나도 녹슬지 않은 수작 「My promise」와 「Guiding lights」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를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사운드로 표현된 그 개성이 오랜 활동역사 속에서 정립된 덕에 그 서로 다름은 의미가 없다. 어느새 하나로 뭉쳐진 것이다. 「Got to be love」와 「Night of my life」가 그런 노래들이다.

여전히 그 음악, 그들 스타일에 충실하다. 정체성에 대한 고집, 열정 그리고 내공이 아니면 이것은 어렵다. 어스 윈드 앤 파이어의 세 멤버 버딘 화이트(모리스의 동생, 베이스), 필립 베일리(보컬), 랄프 존슨(드럼)은 초창기부터 그룹을 지켜온 오리지널들이다. (셋은 모두 1951년생으로 우리 나이 63세이며, 그룹의 의장인 모리스 화이트는 파킨슨 질병으로 그룹의 앨범과 공연활동에 동행하지 못하고 있다) 마이클 잭슨의 곡 「I just can't stop loving you」에서 마이클과 듀엣으로 호흡을 맞춰 이름이 알려진 시다 가렛(Siedah Garrett)이 주도적으로 작곡한 「Guiding lights」에서 필립 베일리는 언제나 그랬듯 듣는 사람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마력의 팔세토를 술술 풀어댄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만족스럽다.

고맙다는 말을 아낄 수가 없다. 또 이들이 이 음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를 춤추게 함이다. 세 멤버는 말끝마다 “우리 노래에 사람들이 춤을 췄으면 한다”는 표현을 동원한다. 춤과 음악은 동종이다. 지난해 서울 재즈페스티벌과 울해 슈퍼소닉 콘서트에서 이미 입증한 것처럼 관객들은 일제히 그들 곡 하나하나에 떼로 발을 굴렸다. 스튜디오에서 스물 한 번 째 주조해낸 신보도 그룹의 영원한 지향대로 팬들은 너도나도 흥겨운 ‘떼춤’으로 화답할 것이다.

멤버 랄프 존슨은 이런 말을 했다. “신보는 현재 우리가 어디쯤 와있는지, 어디서 왔는지, 우리가 지구상에서 사라지더라도 우리 음악은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0곡의 신곡 CD는 ‘현재(Now)’고 7곡의 이전 발표 곡으로 구성한 CD는 ‘과거(Then)’다. 이를 통해 어스 윈드 앤 파이어는 자신들의 음악이 영원(Forever)하기를 희망하고 그렇게 되기를 믿는다. 베스트 형식을 띤 ‘Then’의 수록곡들은 20-40년 전에 발표한 곡들이지만 들어보면 Now의 노래들과 조금의 시차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시제가 없다는 것은 그들이 영생하는 음악을 추구했다는 말이기도 하다.


‘Then’ CD에서 「Can't let go」는 「After the love has gone」과 「Boogie wonderland」가 수록된 1970년 수록곡이며 「Runnin'」은 마지막에 수록한 그들의 시그니처 송 「Fantasy」처럼 1975년 에서 골랐다. 이전 베스트 앨범에는 들지 않았던 러닝 타임 8분14초의 「Turn it into something good」는 숨은 걸작으로 평가받는 두 장짜리 앨범 에서 취했고 아프로 리듬의 극치를 선보인 「Power」는 그들이 뜨기 전인 1972년 3집 으로부터 뽑아냈다. 전체적으로 펑키한 리듬 곡들에 초점을 맞췄다. 두 장의 CD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를 접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들의 ‘아프로 아메리칸’ 음악세계로 들어가는데 단기 속성코스로서 기능해줄 것이다. 결론은 다시 한 번 감사함이다. 나와 줘서 반갑고, 지켜줘서 고맙고, 즐겁게 해줘서 영광이다.

글/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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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