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로맨스의 결합, 고딕 소설
고딕소설을 형식적으로 말하면 공포와 로맨스가 결합된 소설이고, 낭만적이고 초자연적인 소재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고딕 소설에는 높게 솟은 성탑, 끝없이 오를 것만 같은 계단, 어둡고 침침한 복도, 그 곳을 거니는 창백한 여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등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글ㆍ사진 김봉석
2014.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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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년 6월, 제네바 호수 옆 아름다운 별장에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과 그의 친구들이 모였다. 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와 후일 그의 부인이 되는 메리 울스톤크래프트 고드윈, 메리의 이복동생인 클레어 클레어몬트, 바이런의 주치의인 존 폴리도리. 사흘간 폭풍우가 몰아치자 무료해진 그들은 무서운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시인과 소설가 등 풍부한 상상력을 지닌 그들은 어딘가에서 들은 괴담을 단순하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럴듯하고 섬뜩한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후일 그들이 발표한 소설들은 고딕 문학의 대표작이 되었다.


메리 셸리는 1818년 『프랑켄슈타인』을 발표한다. 과학의 힘으로 만들어낸 새로운 인간 혹은 괴물 이야기.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시체들에서 일부를 잘라내 하나의 육체로 만들고 전기를 흘려보내 깨어나게 만든다. 이름이 없는 그는 말을 배우고 지능도 발달해 가는 등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연금술사가 만든 호문쿨루스나 유대교의 랍비들이 만들어낸 흙인형 골렘 같은 존재들. 괴물을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 박사는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의 전형이 되었다. 신의 영역을 넘보다가 엄청난 파국을 맞는 과학자. 혼자만 죽으면 그나마 낫지만, 세계 전체를 위기에 몰아넣는 캐릭터.

 


존 폴리도리는 1819년 『뱀파이어』(The Vampyre)를 발표했다. 피를 빠는 시체의 이야기. 『뱀파이어』는 큰 인기를 얻으며 뱀파이어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과 연극이 대거 등장하게 한다. 하지만 억울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뱀파이어의 시작을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로 알고 있다. 『뱀파이어』는 흡혈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시체가 깨어나고, 피를 빠는 행위는 동일하지만 시작이 무엇인지, 어떤 인물이었는지도 드러나지 않는다. 스토커의 『드라큘라』는 뱀파이어를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인 ‘드라큘라’로 그려낸다. 실존했던 왈라키아의 군주였던 블라드 3세의 이름이었던 ‘블라드 드라큘라’를 끌어와 뱀파이어의 섬뜩한 스토리를 창조한 것이다.


제네바의 아름다운 호수 별장에서 시작된 『프랑켄슈타인』『뱀파이어』는 섬뜩하면서도 아름다운 고딕소설의 시조가 되었다. 고딕 소설의 효시로 인정받는 작품은 호레이스 월풀이 1764년에 쓴 오트란토의 성이지만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작품은 『프랑켄슈타인』 『드라큘라』지킬 박사와 하이드 『늑대인간』 등이다. 고딕소설을 형식적으로 말하면 공포와 로맨스가 결합된 소설이고, 낭만적이고 초자연적인 소재와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고딕 소설에는 높게 솟은 성탑, 끝없이 오를 것만 같은 계단, 어둡고 침침한 복도, 그 곳을 거니는 창백한 여인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 등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다. 고혹적인 이미지는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메트로폴리스> 등 1930년대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로 이어지고 후대에도 위력을 잃지 않고 계승되고 있다.


낭만주의 시인의 초대로 모인 사람들이 만들어낸 무서운 이야기. 그것은 괴담만이 아니었다. 18, 19세기는 중세가 근대로 변화하던 시기였다. 신의 섭리에 의해 움직이던 세상이 아니라 자연법칙을 발견하고 인간이 이해하여 모든 것을 만들어가던 시대. 말이 없어도 증기기관으로 기차를 움직일 수 있고, 인간의 몸이 어떻게 구성되었고 움직이는지 밝혀냈다. 이성과 합리주의로 세상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정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대다. 하지만 불안했다. 여전히 세상은 어둠이 공존했고, 과학의 이면에는 알 수 없는 무엇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SF의 원조라 할 『타임머신』 우주전쟁 등을 쓴 H.G. 웰스의 단편집 허버트 조지 웰스을 보면 과학의 놀라움만이 아니라 이면의 공포도 함께 그려냈음을 알 수 있다. 고딕 문학은 불안의 징후이기도 했다. 과학으로 만들어낸 괴물은 인간처럼 진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창조주는 결국 괴물을 배신하고 죽임을 당한다. 드라큘라는 죽었지만 더 많은 뱀파이어들이 창궐하게 되었다.


고딕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드라큘라』 『지킬박사와 하이드』 『늑대인간』 등은 현대 호러물의 시조로도 평가받는다. 『뱀파이어』와 『카밀라』에게 영향을 받은 『드라큘라』는 모든 뱀파이어 소설의 출발점이다. 마늘과 십자가를 무서워하고, 짐승으로 변신할 수 있고,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고, 심장에 말뚝을 박으면 죽는 등의 장르 공식이 『드라큘라』에서 시작되었다. ‘깨어나는 시체’라는 점에서 본다면 홍콩의 강시영화, 걷거나 뛰는 좀비도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프랑켄슈타인』은 미친 과학자와 괴물의 이야기다. 미친 과학자는 1950년대 인기였던 변종괴물을 만들어내는 SF영화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탐구하다가 지옥을 만나는 공포물에서도 많이 나온다. 그리고 창조주에게 거역하는 피조물의 이야기는 안드로이드와 로봇을 다룬 SF로도 확장된다. 인간은 과연 창조주가 될 수 있을까, 인간과 안드로이드는 과연 무엇이 다른 것일까 등등의 질문으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사이코패스, 다중인격 등 인간의 내면에 대한 관심을 보여준다. 평소에는 이성적이고 선량한 지킬 박사가 종종 사악하고 폭력적인 하이드가 된다. 그렇다면 하이드라는 자아가 지킬의 내면에 공존하고 있는 것일까? 『지킬 박사와 하이드』는 인간성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여 확장될 수 있는 여지가 무한하다. 대니얼 키스의 『빌리 밀리건』은 1977년 납치와 강간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다중인격 장애와 정신이상으로 무죄 혐의를 받은 빌리 밀리건의 이야기를 그린 논픽션이다. 미국에서 처음으로 ‘다중인격’을 인정받은 사건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이나 한국에서는 다중인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빌리 밀리건』은 한 사람의 내면에 24명의 완벽히 분리된 자아가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것이 만약 빌리의 의지로 조정되는 자아라면, 그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뛰어난 천재적인 능력과 연기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다른 자아가 가능하다면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 등 필립 K. 딕의 소설들에 나오는 것처럼 다른 사람의 기억을 주입하여 정체성을 바꾸는 것이 가능할 수도 있고, 로봇이 인간과 동일한 자아를 갖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근대에 성립된 고딕 소설은 과학기술의 발달로 급격하게 환경이 변화하는 것에 비하여 사회적인 제도와 의식은 중세에 머물러 있던 세태에 반발하는 경향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즉 억압된 사회에 대한 반항과 도발인 것이다. 『오트란토 성』 등의 초기 고딕소설에는 고딕 풍의 성과 건물에서 벌어지는 초자연적인 로맨스나 비극을 그렸지만 점점 다양한 소재로 확장된 고딕소설은 20세기의 공포소설, 모험소설, SF, 판타지 등 펄프 소설의 원류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21세기의 ‘고딕’은 ‘고스 로리’ 같은 말도 일상적으로 쓰일 만큼 익숙해지면서, 단순한 설정으로도 많이 쓰인다. 특히 만화나 라이트노벨 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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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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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ojukaki

2014.10.20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서 생각난 소설들...을 발견하니 반갑습니다.하나하나 찾아 읽어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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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rfati2

2014.07.30

고딕소설에 관심이 많아서 칼럼을 즐겁게 읽었습니다. 익숙한 작품들이 많지만 또 그 작품들을 다 읽어본 것도 아니어서 소개해주신 작품들을 꼼꼼하게 살펴봐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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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