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가 나타났다, 산이〈양치기 소년〉
'늑대가 나타났다'같은 앨범에 공감할 수는 없다.
글ㆍ사진 이즘
201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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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이 피해의식을 만나면 이런 결과가 나온다. 한때의 랩 지니어스가 '랩 찌질이'가 된 이유를 단순한 헤이터들의 질투 때문이라 판단하니 자연히 잔뜩 날이 서고, 성공을 위한 마이웨이의 다짐만 굳어진다. 긴 시간을 기다려 발매된 산이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은 작품보다 소문, 가십에 휘둘린 작품이다.


소위 '감성 힙합'이나 '발라드 랩'으로 성공한 MC들이 비판받는 것은 이중적 태도 때문이다. 한때 씬을 책임질 기대주로 평가받았던 이들이 정작 그 잠재력의 반의반도 활용하지 못하거나 일부러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고, '성공', '효도' 등 거창한 캐치프레이즈를 앞세워 시류에 영합하면서도 힙합 아이덴티티는 지독하리만치 고수한다. 상업적 성공과 대의명분 중 선택과 집중이 요구되는데, 실리는 챙기면서 '난 변하지 않았어'라 주장하면 설득력이 있을 리 없다. 갑론을박 속에서 산이는 이 비판을 단순한 헤이터들의 질투로 규정하며 무시하거나, 실력을 과신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때문에 앨범은 메이저 씬에서 성공을 거둔 힙합 아티스들이 범하는 흔한 오류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만다. 「나 왜 이래」와 「한 여름 밤의 꿀」 시리즈, 혹은 힙합 아티스트로써 자신을 증명하려 하는 랩 트랙으로 편이 갈리니 일관성은 일단 기대할 수 없다. 불가능하겠지만 아예 '가요 랩 전향'이나 '100% 힙합' 둘 중 하나를 표방했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모른다.


「#LuvUHater」부터 이어지는 음침한 트랩 비트 위의 날 선 랩에는 과도하게 힘이 실렸다. 빅 션(Big Sean)의 랩에 감명받은듯한 플로우와 스토리텔링, 가사부터 훅까지 흥미롭게 다가오는 부분이 없다. 던 밀스와 씨잼, 양동근의 합세에 최고의 피쳐링 랩퍼인 그가 뒤로 물러나는 모습도 보인다. 건조한 리듬에 유치한 디스와 끔찍한 데뷔를 욱여넣는 기행을 선보인 「모두가 내 발아래」나 세 명이 따로 노는 「I deserve it」같은 최악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이의 성공 공식을 따라간 두 트랙은 무난하다. 백예린이 상큼함을 더한 「Me you」, 서정적인 분위기의 「She's」는 음원 차트에 오래 머무를 곡이다. 이 더블 타이틀은 산이가 굳이 힙합을 고수하지 않아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고유의 코드를 확립했음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스토리텔링 기법을 다시 가져온 「Using you」나, 다소 뻔한 이야기긴 하지만 유일하게 진실한 고뇌가 담긴 「성공하고 싶었어」도 충분한 감상을 가져갈 수 있다.


산이가 두려워하고 고민할 대상은 대중이 아니다. 어정쩡한 선택으로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것은 그가 더 잘 안다. 사람들도 처음부터 양치기 소년을 불신했던 것은 아니다. 그 자신도 어쩔 줄 몰라 독기만을 가득 품은 지금, '늑대가 나타났다'같은 앨범에 공감할 수는 없을 뿐이다.


2015/04 김도헌(zener12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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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양치기 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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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