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숲의 사람들’이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들도 시골에 ‘뫼키’라고 부르는 여름 별장을 두고 대부분의 휴일을 이곳에 와서 조용하게 보내는 편이다. 물론 사우나는 꼭 있다. ⓒ Shutterstock
인구 500만이 만들어가는 행복의 나라, ‘진짜 일류’ 핀란드를 만나다
한 나라에 대한 첫인상은 평생 남는 법이다. 핀란드에 대한 나의 첫인상과 경험도 그렇다. 핀란드에 첫발을 디뎠을 때는 내가 이 나라와 이곳 사람들의 가치관을 이토록 좋아하게 될 것이라고 미처 깨닫지 못했다. 핀란드는 인생과 세상에 대한 나의 시각과, 우리가 어떻게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시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 글을 읽다 보면 어쩌면 여러분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라플란드에서 순록 사파리 여행의 종착지는 대개 이런 장소다. 여름에는 하루 종일 해가 지지 않는 ‘백야’를, 겨울에는 그 반대인 ‘극야’를 체험할 수 있다. 신비한 오로라 현상도 1년에 200회는 볼 수 있다. ⓒ Shutterstock
모든 계절을 위한 땅
핀란드가 실제로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모두들 얘기는 들어봤지만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콕 짚어 가리킬 수 있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은 핀란드를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연관 지으며 “이 위쪽 어디쯤인데”라고 말한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핀란드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속하지 않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는 노르웨이와 스웨덴, 덴마크, 이렇게 3국을 포함한다고 정의되어 있다. 핀란드는 간혹 발트3국 중 하나로 오해받기도 하는데, 발트3국은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를 지칭한다. 핀란드는 발트 해에 면하기는 했지만 국토 전체가 북위 60도 위쪽에 있으며 다른 이웃 국가들과도 독립적으로 떨어져 있다. 그리고 이런 고립이 핀란드라는 나라를 특징지었다. 핀란드인은 독특하다. 그들은 스칸디나비아 사람도 아니고 슬라브 민족도 아니다. 그들의 언어는 다른 유럽 언어들처럼 인도유럽 어족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다. 또한 기후는 음산하고 지리적으로 고립되어 있다.
사람들은 핀란드에 갈 때 뚜렷한 이유를 가지고 간다. 그곳이 여행 중 잠시 머물기에 편안한 장소는 아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결코 어딘가로 통하는 주요 길목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에 일본 사람들이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가 다른 유럽 국가로 가는 도중에 잠시 쉬어가기 좋은 장소라는 것을 발견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또한 요즘 유럽에서 러시아 내륙으로 가는 가장 빠른 운송로는 철도나 도로로 핀란드 남부를 통과하는 것이다. 국경을 한 번만 넘으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대단히 아름다운 경관을 지녔지만 이 나라를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전통이 핀란드를 흥미롭게 만든다. 현대적인 모든 것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핀란드를 놀라운 곳으로 변모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언어는 핀란드를 감당하기 힘든 곳으로 만든다. 또한 동서양에서 받은 영향이 헬싱키를 ‘북유럽의 이스탄불’로 만든다고도 말할 수 있다. 발트 해에 자리 잡은 수도 헬싱키는 유럽과 스칸디나비아와 러시아 문화가 흥미롭게 혼합되어 있다. 핀란드는 기본적으로 핀란드어와 스웨덴어, 2개의 공식 언어를 사용한다. 그와 달리 핀란드 북쪽 라플란드 지역에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가진 6500명의 사미족(라프족)이 살고 있다.
핀란드를 묘사할 때 내가 항상 사용하는 두 단어는 모순과 대조다. 바로 다음과 같은 상반된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ㆍ 6월과 7월에 여름 숲의 고요함을 방해하는 모기와 그 밖의 성가신 해충들
ㆍ시골의 절대적인 고요와 정적과 대조되는 도시의 밤 문화
ㆍ 한겨울 눈 덮인 숲의 경이로운 고요함과 대조를 이루는 한여름 긴 ‘백야’의 발광
ㆍ 현대 문물과 오랜 전통
ㆍ 겨울의 완전한 ‘화이트아웃’과 대비되는 파랗고 파란 봄 하늘
ㆍ 라플란드의 전통 대 대도시 헬싱키
ㆍ 특별한 개입 없이 잘 관리되고 있는 광대한 숲
ㆍ 철저히 자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질서 있게 관리되고 있는 나라
헬싱키 중앙역의 상징이 된 등불을 든 조각상. 철도뿐 아니라 많은 버스와 지하철도 연결되기 때문에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은 이곳을 방문하게 된다. ⓒ Shutterstock
세계 상위권
핀란드는 겨울이 길고 어둡고 추우며, 유럽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핀란드 사람들의 전반적인 행복을 가로막지는 못한다. 2015년 유엔 산하 자문기관인 ‘지속가능한 발전해법 네트워크(SDSN)’가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서 핀란드는 세계 6위를 기록했다(스위스가 1위, 덴마크 3위, 미국 15위, 프랑스 29위, 한국 47위, 중국 84위. 최하위는 토고로 158위였다). 2012년부터 매년 발표해온 이 보고서에서 핀란드는 항상 상위를 유지했다.
핀란드가 최고 위치를 차지하는 부분이 행복만은 아니다. 핀란드는 시민 자유의 옹호자가 되었다. 국경없는기자회(RSF)가 2015년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언론과 표현의 자유 면에서 핀란드는 당당히 세계 1위다. 다른 상위권 국가로는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 있다. 프랑스는 38위, 한국은 60위였다. 또한 국제사면위원회에서 실시하는 다양한 국가의 시민들이 경험하는 자유의 정도에 관한 설문조사에서도 핀란드는 항상 상위권을 유지하며, 2015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삶의 질 조사에서도 다른 북유럽 국가들과 함께 세계 5위를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교육 강국’으로도 명성이 높은 핀란드는 OECD가 실시하는 독해력과 수학 및 과학 능력의 유럽 표준에 관한 설문조사에서 항상 1위를 놓치지 않는다.
1999년과 2007년에 핀란드 청소년은 스웨덴과 함께 유럽에서 가장 건강하다고 평가되었다. 또한 경제창의력 지수에서 1~2위를 다투며, GDP 대비 연구개발비 지출에서 미국을 한참 앞섰다. 특허출원 성공은 4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핀란드는 2013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환경지속성지수(ESI)에서 다른 나라들을 가뿐히 물리치며 당당히 1위를 했을 뿐 아니라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인식지수에서도 매년 최상위를 기록한다. 핀란드는 또한 동물 질병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채택해 EU 국가 중에서도 유일하게 ‘무질병’ 상태를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핀란드의 1인당 올림픽 메달 개수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인구가 500만 명에 불과한 나라가 달성했다. 놀랍지 아니한가!
부활절을 맞아 핀란드식 할로윈 복장을 한 소녀. ⓒ Shutterstock
핀란드인
핀란드인을 만나는 것은 스트레스로 지친 영혼에 아주 도움이 된다. 특히 돈과 지위와 과시적인 최신 ‘머스트 해브’ 아이템에 집착하는 성과주의적인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전반적으로 핀란드 사람들은 이런 지위와 관련된 것들에 집착하지도, 남들보다 한 발 앞서려고 아등바등하지도 않는다. 그들은 가식이 없고 따뜻하며, 친절하지만 고독을 좋아한다. 그래서 언뜻 무뚝뚝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천성적으로 애정이 많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사귀기 쉬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아량이 넓은 편이지만, 뒷공론을 좋아하거나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감정적인 사람은 불신하고 경멸한다. 과하게 자신감이 넘치거나 자기 의견을 앞세우는 사람을 보면 눈살을 찌푸린다. 핀란드인은 결코 떠벌이거나 자랑하거나 과시하지 않으며 그런 외국인을 보면 뒷걸음친다. 이 땅에서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외국인들뿐이다.
핀란드인은 많은 면에서 개인의 탐욕을 멀리해왔다. 탐욕과 과도함은 문화적 금기이며 사회는 공익을 추구한다. 그들은 자존심(자립심의 측면에서)이 강하고 깊이 뿌리내린 전통적 가치관과 건강한 풍자의식을 갖고 있다.
핀란드 사람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동일성’이라고 이야기된다. 그들은 군중 속에서 눈에 띄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옷차림도 비슷하다. 물론 핀란드 사람들은 이런 일반화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런 특징이 드러난다. 예를 들어 그들은 개인의 성취를 크게 추켜세우지 않는다. 생일과 결혼은 회사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지만 직업적인 성취나 시험 합격, 수상 따위는 숨겨두는 편이다. 그들의 문화는 노골적인 선전을 배척한다. 개인의 성취를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자랑이나 과시로 생각하고, 겸손을 미덕으로 여긴다.
핀란드에서 여성은 남성과 완전히 동등한 권리를 지닌다. 사진은 마치 자동차 수리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알토 공대 여학생들로, 봄의 시작을 알리는 오월제에 전공마다 색깔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 참여하는 것이 이 학교의 전통이다. ⓒ Shutterstock
핀란드인은 오랫동안 해방을 위해 투쟁했고 독립을 이루자마자 생존 투쟁을 계속해야 했다. 이 용감한 나라는 자유를 얻기 위해 여러 차례 싸웠다. 이런 역사가 모든 핀란드인을 과단성 있고 강인한 사람들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오랜 역경을 딛고 살아남기 위한 내재적 복원력을 갖고 있다. 이런 핀란드적 특징을 ‘시수(sisu)’라고 하는데, 이 말은 배짱과 강인함, 용기, 활력, 완고함 등을 포함한다. 패배가 분명해 보이는 상황에서도 시수를 가진 핀란드인은 완전히 패배할 때까지 용감하게 싸울 것이며 그러고도 여전히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시수는 말하자면 핀란드인 특유의 강인한 독립성을 뜻하며 여기에서 자립심과 냉철한 실용주의가 나왔다. 시수의 진정한 요지는 뭔가를 끝까지 해내는 것이다. 그것이 중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할 필요가 있고, 누군가는 해야 하며, 무엇이건 미완으로 남겨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바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의 문제이다.
핀란드인은 스스로를 스칸디나비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러시아인의 피가 일부 섞여 있을 가능성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핀란드의 전통은 두 문화 모두에 빚을 지고 있다. 그래서 매우 현대적이고 기술 지향적이고 ‘서구적’ 관점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전통이 사람들을 한데 묶어주고 있다.
이 글을 쓴 데보라 스왈로우(Deborah Swallow)는 문화간 의사소통 컨설턴트이자 강사로서 19개국을 넘나들며 민간ㆍ자원봉사ㆍ공공 부문(주로 해외 정부)에서 활동해왔다. 그녀는 전 세계 경영자들과 외교관을 대상으로 일하는데 ‘좋은 관리(Good Governance)’ 세미나를 준비해서 전달하고, 책임성과 투명성을 위한 체계를 개발하고, 기업을 상대로 세계화의 도전에 대한 연설을 한다. 1999년 업계 최고의 상인 영국 국가훈련상(UK National Training Award)을 수상했다. 그녀는 핀란드에 가게 된 것이 자신의 삶과 가치관을 변화시켰으며 그 결과, 책임 있는 기업 솔루션이 성공의 원동력임을 굳게 믿게 되었다고 말한다.
도서출판 가지
<세계를 읽다> 시리즈는 장소보다는 사람, 그리고 그들의 삶에 초점을 맞춘 본격적인 세계문화 안내서다. 그곳에서 직접 살아보며 문화적으로 적응하는 기쁨과 위험을 몸소 겪었던 저자들이 이방인의 눈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현지인의 생활문화, 관습과 예법들을 쉽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