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에세이스트] 9월 우수상 - 옷은 안 예쁜데 엄마가 예뻐

자주 가는 중고 의류점에서 옷을 고르다가 아주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

글ㆍ사진 김정민(나도, 에세이스트)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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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자주 가는 중고 의류점에서 옷을 고르다가 아주 마음에 드는 옷을 발견했다. 고상한 회색 바탕에 섬세한 금사가 수 놓인 디자인에 큐빅이 고급스럽게 박혀 있는 소매 단추, 어깨에 여우털이 탐스럽게 장식된 코트였다. 보풀이나 얼룩도 없이 깔끔했다. 무겁지도 않았고 한눈에 보기에도 고급스럽고 비싸 보였다. 가격까지 착해서 누가 먼저 살까 염려하면서 재빨리 계산했다.

옷은 엄마를 위한 선물이었다. 평소에도 선물 주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무언가를 보고 누군가가 떠오르면 딱 그 사람을 위한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깜짝 선물을 하는 편이었다. 어느 기업 회장 사모님이나 교수님 부인처럼 보일 이 옷을 받고 엄마가 맘에 들어 할 거라는 확신으로 신나게 포장해서 택배를 부쳤다. 카톡 메시지로 엄마에게 곧 근사한 옷 선물이 갈 거라는 말도 길게 써 보냈다. 엄마에게 택배를 받았느냐고 며칠째 채근했다.

그런데 막상 택배를 받은 엄마에게서 받은 메시지는 실망스러웠다.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에 보낸 선물이었는데 입기 싫다고 하시는 말에 서운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예쁜 옷인데 왜 중고 옷에 편견을 가지느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이렇게 중고 옷을 사는 재미 또한 엄마에게서 배운 것이었고 엄마가 가르쳐준 즐거움이었다. 엄마는 아빠가 월급을 받아오고 나면 언니와 나를 데리고 시장에 있는 중고 의류점에 데려갔다. 알싸한 방향제 냄새가 풍기는 중고 옷들이 쌓여 있는 곳에서 느낌이 오는 옷만 싹싹 빼내어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을 걸쳐보면서 고르는 재미를 알았고 나의 취향도 알아갈 수 있었다. 친척들의 옷을 물려 입기도 했던 우리는 오히려 중고라도 직접 고를 수 있다는 데에서 나름 만족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갑자기 내가 사 준 중고 옷이 싫다며 거절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서운함에 빠져 하루를 허비한 끝에 옛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느 날 엄마가 낡고 이가 빠진 그릇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엄마는 신혼살림 때부터 친척들이 쓰던 것을 받은 살림이라 이제 정리하고 새 것을 사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싼 것이라도 본인이 하나하나 직접 사며 행복해하던 엄마의 얼굴이 생각났다. 이 나이가 될 때까지 나는 새 옷을 입고 싶은 엄마의 바람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 순간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흘렀다.

“이제 값이 싼 옷이라도 그냥 새 옷을 입고 싶더라. 그냥 그런 마음이야. 서운했다면 미안해. 근데 네 안목이 워낙 뛰어나서 옷이 예쁘다. 잘 어울리나?”

엄마가 메시지로 코트를 입고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이제 엄마는 예쁜 새 옷을 입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내가 너무 무심했다. 이번에 엄마를 만나면 꼭 백화점에 같이 가서 엄마가 마음에 들어 하는 옷을 고르게 한 다음 가격표를 보지 않고 무조건 계산할 거라고 다짐했다. 엄마의 사진을 한참이나 보다가 옷은 별로 안 예쁘고 엄마가 정말 예쁘다고 답장을 보냈다.

김정민 흔들릴 때마다 삶의 자리로 다시 데려다 주는 이 좋은 글쓰기를 평생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