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에덴> 지금 이탈리아 영화의 최전선이 궁금하다면
봉준호 감독은 ‘사이트 앤 사운드’의 특별 기획에 피에트로 마르첼로를 선정하면서 <마틴 에덴>을 극찬했다.
글ㆍ사진 허남웅(영화평론가)
2020.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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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틴 에덴>의 한 장면


올해 초 영국의 영화 전문지 ‘사이트 앤 사운드 Sight&Sound’는 봉준호 감독에게 객원 편집장 자격을 부여하며 그가 주목하는 20인의 감독에 관해 소개하는 특별 기획을 선보였다. 그 목록에는 <유전>(2018) <미드 소마>(2019)의 아리 에스터와 <우리들>(2015) <우리집>(2019)의 윤가은 감독 등과 같은 익숙한 이름이 있는가 하면 <아틀란틱스>의 마티 디옵, <로데오 카우보이>의 클로이 자오 등의 생소한 감독도 포함되어 있다. 그중 한 명이 <마틴 에덴>(2019)의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이다. 

<마틴 에덴>은 미국 출신 잭 런던의 원작 소설 배경을 이탈리아로 옮긴 작품이다. 제목의 ‘마틴 에덴’은 이름이다. 영어식 발음으로 마틴 에덴(루카 마리넬리)이지만, 그는 이탈리아 나폴리 출신이다. 사랑하는 엘레나(제시카 크래시)는 선박 노동자 출신인 마틴 에덴과 다르게 상류층 여인이다. 불어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는 엘레나는 마틴 에덴이 관심을 보이자 그의 이름을 불어로 발음하면 ‘마르탱 에르당’이라고 알려준다. 하나로 확정되지 않는 이름처럼 <마틴 에덴>은 두 개의 선택지 사이에서 그 어느 것도 확정해 결정하지 않는 주인공의 여정을 따라간다.

누구에게나 정체성이 있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정체성은 시험에 들기도 한다. 고아 출신이라 어려서부터 먹고 사는 일에 매진했던 마틴 에덴은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이게 콤플렉스가 된 그는 활자 중독에 걸린 양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지식을 흡수하는 가운데 보들레르의 시에 빠져 시인이 되기로 한다. 정작 글을 쓸 때는 상징과 은유가 본질인 시어 대신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현실을 날 것 그대로 전달하는 사실주의 글쓰기로 그의 꿈을 아는 엘레나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엘레나에게 있어 마틴 에덴의 매력은 규정되지 않는 정체성에 있다. 그것은 둘의 사랑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순과 같아서 마틴 에덴은 자신과 다른 환경의 엘레나를 사랑하면서도 그 계급의 바탕이 되는 자본주의에 거부감을 드러내 갈등을 야기한다. 그로 인해 사회주의자 취급을 받는 마틴 에덴은 자본주의자의 탐욕에 반기를 들어 사회주의를 부르짖는 노동조합원들을 향해 개인이 배제된 그 어떤 이념이나 이즘은 해답이 아니라며 사회주의에 반대를 표해 원성을 사기도 한다. 

그런데도 규정한다면 마틴 에덴은 개인주의자이고 리버럴리스트다. 서로 반감을 드러내는 자본 계급이나 노동자들에게 마틴 에덴은 시스템의 혼란을 야기하는 버그이고 일종의 불순물이다. 정체성은 순수로 투명해질 수 없는 성질의 가치다. 배우고 익히고 경험하는 가운데 변화하는 가치관이 자리 잡고 세상과 부딪히고 사회와 소통하며 환경과 불화하면서 여러 가치가 섞인 불순물이 되어 다양성에 일조한다. 개인주의자로서 마틴은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았고, 리버럴리스트로서 에덴은 어딘가에 속하지도 않았다. 그렇지 않다면 마틴 에덴은 죽은 거나 다름없다. 


영화 <마틴 에덴>의 포스터


마틴 에덴을 구성하는 개인의 특징처럼 <마틴 에덴>은 불균질의 영화다. 미술 기법으로 치면 ‘인상주의’라고 할까. 극 중에는 엘레나가 그린 인상주의 그림을 보고 마틴 에덴이 자극받는 장면이 있다. 세상을 사실적으로 보고 옮겼던 그에게 대상을 세심하게 재현하지 않고 개인의 인상을 담아 덩어리진 형태로 바라보는 엘레나의 시선은 전혀 새로운 것이었다. 피에트로 마르첼로 감독 역시 <마틴 에덴>을 극 형태의 작품으로 가져가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연출을 시작한 전력을 살려 다큐멘터리 화면도 삽입하는 등 여러 개의 인상(?)으로 영화를 꾸민다. 

언급한 다큐멘터리 화면도 실제 화면의 차원을 넘어서 이탈리아 영화의 전통인 ‘네오리얼리즘’의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 그러면서도 마틴 에덴과 엘레나의 사랑을 낭만주의적으로 채색하는 등 다양한 레이어를 겹친다. 피에트로 마르첼로는 프랑스 개봉 당시 어느 인터뷰에서 원작 소설을 두고 ‘문화를 해방을 위한 도구라고 믿으면서도 어느 정도는 좌절한 사람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정의했는데 이는 감독 자신을 향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마틴 에덴>은 잭 런던의 원작이 바탕이면서 또한, 피에트로 마르첼로의 정체성이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다. 

어느 하나의 장르로 구분할 수 없는 <마틴 에덴>은 피에트로 마르첼로만이 만들 수 있는 유일의 영화다. 봉준호 감독은 ‘사이트 앤 사운드’의 특별 기획에 피에트로 마르첼로를 선정하면서 <마틴 에덴>을 두고 이렇게 극찬했다. “지난 10년간 베스트 영화 중 한 편이다. 빈민 출신 작가의 성장기를 담은 1909년 잭 런던의 소설을 20세기 중반 나폴리를 배경으로 성공적으로 각색했다. 특히, 당시의 아카이브 푸티지를 절묘하게 삽입해 픽션 가공의 깊이를 더욱 섬세하게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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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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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al0321

2020.12.11

감독의 연출적 의도와 누군가의 극찬과 별개로 한국의 영화관에서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영화를 본다는 것만으로도 가치있는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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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남웅(영화평론가)

영화에 대해 글을 쓰고 말을 한다. 요즘에는 동생 허남준이 거기에 대해 그림도 그려준다. 영화를 영화에만 머물게 하지 않으려고 다양한 시선으로 접근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