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전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결제했다. 단 이틀 만에 내린 결정이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인천(ICN)>카트만두(KTM)’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카트만두’라는 낯선 글자가 더욱 굵직하게 보였다. 한 달 뒤에 곧바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티켓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내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내가 네팔행 비행기 티켓을 끊은 이유는 바로 히말라야 때문이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해보는 것. 몇 년을 마음속 깊은 곳에 간직해둔 채 ‘언젠가는…’이라며 미뤄 둔 꿈이었다. 먼 일처럼 여기고 그렇게 오랜 시간을 생각만 해왔었는데 갑자기 어디서 용기가 솟아났는지 단번에 모든 것을 해치워 버렸다. 그러자 아주 후련한 기분이 들었다. 묵은 일을 해치웠을 때의 쾌감은 그 시간에 비례하는 법이다. 걱정과 두려움에,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마음의 서랍장 한편에 넣어 두고 섣불리 꺼내어 보지 못한 일이었다. 언제나 그 주변만 빙글빙글 맴돌기만 했다. 한참을 지켜만 보고 선뜻 열지 못한 오래된 서랍장이었다. 그러다 이제야 과감하게 손잡이를 당겨 꺼내어 버린 것이다. 손끝부터 시작된 미세한 전율이 몸 전체를 타고 흘렀다. 무엇이든 섣불리 시도하지 않고, 긴 시간 고민하는 성격인지라 그만큼 결정은 확고했다. 이제야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드디어 히말라야로 떠날 순간이 온 것이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히말라야의 새하얀 설산이, 높디높은 봉우리와 끄트머리를 덮고 있는 만년설이 차례차례 떠올랐다. 이제 곧 사진 속 그 풍경들을 나의 두 눈에 직접 담아내리라 생각하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설렜다.
도대체 왜, 하고 많은 여행지 중에서 굳이 히말라야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냥, 마음이 이끌렸기 때문에. 이보다 강력한 동기는 없지 않을까? 많은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의미를 찾으려는 나지만 때로는 이처럼 마음이 동하는 그 자체가 의미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 산을 자주 오르거나, 트레킹을 즐기던 것도 전혀 아니었다. 나에게 히말라야는 일종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리고 도전이나 한계 같은 것을 의미했다. 그래서 기대감과 설렘을 느끼는 동시에 아주 당연하게도 걱정과 두려움이 동반되었다. 분명 내가 선택한 일이기는 하지만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었다. 보통의 여행과는 아주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긴장감이 흘렀다.
최근 들어 반복되는 일상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고, 약간의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삶의 변화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삶도 좋지만 지금은 무엇보다 스스로를 좀 더 성장하게 만드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래서 많은 것들에 부딪혀보고 싶었다. 편안한 휴식과 쉼은 잠시 뒤로한 채 스스로 고행을 자처하는 여행에 나를 던져 넣어보기로 했다. 단단해져 버린 틀을 깨고, 벗어나고 싶었다.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 불 보듯 뻔했지만 그만큼 나는 달라져서 돌아올 것이었다. 그리고 또 그렇지 않다한들 어떤가, 도전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 비로소 나는 내가 살아 있다는 실감이 났다. 영화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의 월터가 된 것만 같았다.
막상 마음을 먹고 나니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 같았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들부터 꼼꼼하게 정리해나갔다. 희뿌연 안개로 가려진 채 두서없이 머릿속을 떠다니던 생각들이 명명백백하게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늘 반쯤은 무계획으로 여유로이 여행을 즐기곤 했는데 이번만큼은 절대 그래선 안 되었다. 나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미리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 남은 한 달의 시간 동안 부지런히 몸과 마음을 단련해보리라 다짐했다. 히말라야에서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새로운 경험들 속에서, 새로운 내가 되고 싶다.
(* 책 속 여행 시기는 COVID-19가 발생하기 이전입니다.)
*배현선 그림을 그리고 글을 씁니다. 어딘가 어설프지만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들을 좋아합니다. 마음에 오래도록 남는 순간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휴가』, 『우엉이와 오니기리의 말랑한 하루』 저자 인스타그램 @baehyunseon @3monthssho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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