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클래식] 보들레르 서간집 『우울의 고백』
보들레르 서간집 『우울의 고백』 가운데 유서 형식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일명 「자살 편지」로 알려진 이 편지는 시인이 25살에 쓴 것으로, 보들레르는 외롭고 고단한 삶을 절절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글ㆍ사진 민음사 편집부 제공
2022.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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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클래식>은 문학, 역사, 예술, 철학 분야 고전 중 필독서를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민음사의 노하우로 엄선한 고전들을 사전 연재로 만나 보세요.

에티엔 카르자가 찍은 보들레르(1861)

보들레르 서간집 『우울의 고백』 가운데 유서 형식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일명 「자살 편지」로 알려진 이 편지는 시인이 25살에 쓴 것으로, 보들레르는 외롭고 고단한 삶을 절절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한평생 가족의 사랑을 갈구했지만 외면당한 보들레르가 연인 잔 르메르에게 재산을 모두 넘기겠다고 선언하는 이 대목에서 그의 쓸쓸했던 생애가 느껴집니다.



저는 고통 없이 자살합니다. 사람들이 고통이라 부르는 혼란스러움을 전혀 느끼지 못합니다. 빚이 있다고 고통받은 적은 결코 없었습니다. 이런 혼란들은 제겐 별것이 아닙니다. 제가 자살하려는 진짜 이유는 잠들고 깨어나는 삶의 피곤함이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남들에게는 필요 없는 존재이며, 나 스스로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자신을 불멸이라 믿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기 때문에라도 저는 자살하려는 것입니다.

이 대목을 쓰고 있는 지금, 저는 너무도 명석해져서 「테오도르 드 방빌론(論)」을 쓰는 양 원고들을 다루는 힘이 넘쳐납니다. 조촐한 가구와 초상화까지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때때로 제 삶에 위안을 주었던 유일한 사람 르메르 양에게 유산으로 넘겨주려 합니다. 이 지겨운 세상에서 제가 맛본 드문 즐거움에 대가를 지불한다고 해서 그 누가 나무랄 수 있겠습니까?

저는 형을 거의 알지 못합니다. 형과는 함께 산 적도 없고, 그래서 제 안중에도 없습니다. 게다가 그는 제 도움이 필요치 않습니다. 본의는 아니겠지만 언제나 제 인생에 독약을 주입했던 어머니 역시 이런 제 돈이 필요치 않습니다. 그녀에게는 애정과 우정을 품고 있는 헌신적인 남편이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저에게는 오로지 잔 르메르뿐입니다. 그녀에게서만 안식을 취할 수 있었던 저로서는 제정신이 아니라는 이유를 들이대며 사람들이 그녀에게서 제 유산을 빼앗으려 한다는 생각만 해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 요즘 저와 자주 이야기를 나누면서 제가 미쳤다는 생각이 드시던가요?

만약 어머니에게서 제 마지막 의지를 방해하지 않을 거라는 약조를 얻어낼 수 있다면야, 저는 당장 어떤 모욕이라도 감수하고 그녀에게 사정할 것입니다. 어머니는 여자이고, 누구보다도 저를 더 잘 이해할 것이기에 어쩌면 그녀만이 형의 무지한 반대를 단념케 할 수 있으리라 확신하기 때문이지요.

잔 르메르는 제가 사랑한 유일한 여자이며, 게다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아는 이 중에 온화하고 숭고한 정신의 소유자인 앙셀 씨 당신께 그녀에게 베푸는 제 유언의 집행을 맡깁니다.

- 1845년 6월 30일 

나르시스 앙셀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5월 출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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