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영하 편>
오은 : 『작별인사』를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먼저 작가님께서 『작별인사』가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마련했어요.
김영하 : 늘 딜레마가 있는 게, 책을 어느 선까지 설명해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에요. 『작별인사』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고요. 한 소년이 자기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하고, 세계가 실제로 자기가 생각한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해요. 하지만 작가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조심스러운 이유는 작가의 말이 너무나 큰 권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들이 이 책을 읽고 어떠한 얘기라고 생각해서 북클럽 같은 데서 이야기를 했는데 “야, 김영하 작가가 <오은의 옹기종기>에 나와서 그거 아니라고 했어. 이거라고 했어.”(웃음) 그러면 이길 수가 없잖아요. 작가를 어떻게 이기겠어요. “내 생각은 다른데?”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사실은 여러분 마음대로 생각하는 게 맞죠.
오은 : 소설의 배경 평양이에요. 이 장소가 선택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김영하 : 만약 통일이 된다면 평양과 같은 곳이 자율주행 같은 것들을 시험하기 좋은 환경이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처럼 이미 택시 운전을 하는 분들이 많은 곳도 아니니까요. 예를 들어 ‘타다‘같은 서비스가 도입될 때 갈등이 많았던 것도 택시가 생계인 분들이 많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인프라가 아예 없다면 새로운 서비스들을 이렇게 시행해 보기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그러기에는 평양이 적당할 것 같았어요.
오은 : 소설 쓰기 전에 취재하는 걸 좋아하신다고 들었는데요. 이번 작품은 취재도 취재지만 공부를 많이 했어야 했을 것 같아요. 집필하시는 동안 가장 많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 그리고 관련해서 찾아본 분야가 어떤 것이었나요?
김영하 : 원래 과학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았어요. 제가 새로 생긴 고등학교의 1기 학생이었거든요. 학교가 새로운 뭔가를 시행해보기 좋았죠. 그때 컴퓨터반이 시범적으로 생겨서 거기에 가입해서 프로그램도 짜고, 플로피 디스크도 없을 때라 녹음 테이프에 프로그램을 레코딩하고 그랬어요. 그런 식으로 과학이나 어떤 새로운 변화에 늘 관심은 있었는데요. 그것들을 소설에 녹여낼 만한 상황이 없어서 그냥 책이 나오면 열심히 보고 관심만 갖던 상황이었죠. 이번에 자연스럽게 소설에 등장하게 된 것 같고요. 책을 쓰면서 특별히 더 공부를 해야 했다면 죽음에 관한 것이었어요.
오은 : 죽음이요?
김영하 : 많은 분들이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죽음이 무척 가까이 있구나, 코로나19라는 것이 우리의 인간다움을 공격하는구나, 우리가 취약하구나, 생각하셨을 거예요. 인간이 인간답기 위해서는 친구와 가족이 필요하고, 만나기도 하고 밥도 같이 먹어야 되는데 바로 그 경로를 통해서 공격해 오니까요. 인간이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취약한 존재고 죽음이라는 것이 바로 우리 뒤에서 어른거리는 느낌들을 받으셨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번에 특별히 공부를 많이 한 것은 그런 윤리학적인 측면들이었어요. 과연 태어나는 것은 옳으냐, 만약에 태어났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또 삶에서는 고통을 피할 수 없는데 고통을 피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삶을 지속해야 될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것들을 많이 생각하고 윤리학자들의 책들을 읽었어요.
오은 : 예전에 어떤 기사들에서 미래에 강인공지능이 등장하더라도 사라지지 않을 직업 하면 항상 작가가 높은 순위에 있었어요. 작가님의 생각은 어떤지 관련해서 여쭙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인간다움이라는 것이 어쩌면 이야기를 하는 능력,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 중 좋은 이야기를 가려서 잘 전달하는 능력이라고 했을 때 저는 이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기 때문이에요.
김영하 : 소설을 읽을 때 우리의 뇌는 복잡하게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공감하려는 뇌가 있어요. 계속해서 공감할 인물을 찾는 거예요. 한 명을 찾아내면 그 소설을 끝까지 읽게 되죠. 이 인물이 잘 됐으면 좋겠다, 이런 고통을 당하다니 얼른 좀 해결됐으면 좋겠다, 하잖아요. 이것을 편의상 우뇌가 하는 역할이라 한다면요. 한편으로 뇌의 다른 쪽에서는 끝없이 예측을 합니다. 이 이야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전에 일어난 일들이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계속해서 이성적인 뇌가 작동을 하는 거예요. 동시에 이 뇌는 비판도 해요. 얘기가 너무 뻔하게 흘러간다, 전에 내가 읽은 어떤 이야기랑 너무 비슷하다, 하는 식으로요. 그래서 소설이 잘 쓰이면 독자가 깊이 공감하면서도 어떤 지적인 부분, 이성적인 부분이 자극되는 느낌을 받아요. 흔히 고전, 명작이라고 생각하는 책들은 그냥 재밌게만 읽은 게 아니고, 읽으면서 여러 가지 이런 생각들을 하게 하죠. 인생에 대한 식견이 넓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고요.
오은 : 역시 인공지능은 따라하지 못하는 영역일까요.
김영하 : 인공지능은 매력적으로 우리를 따라가게 하는 이야기는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법칙을 따라가면 되겠죠. 주인공에게 고통을 부여해라, 시련을 주어라, 갈등을 만들어라, 이런 캐릭터를 만들어라, 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읽다가 여러분들의 좌측에 있는 어떤 부분들이 활성화되면서 이거 너무 뻔한데, 너무 기시감이 느껴지는데, 하게 되겠죠. 그래서 저는 인공지능이 그걸 피하려면 그 자신이 비판적인 어떤 부분을 갖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어떻게 수용될지를 생각해보고 그것을 예측하면서 써나가는, 다시 말해 작가가 개개의 독자들과 일종의 머리싸움을 해야 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렇다면 피해가야 될 텐데 인공지능은 그걸 쓸 가능성이 굉장히 커요. 이 과정이 저는 어려울 것 같아요.
오은 : 후기에도 등장하지만 『작별인사』라는 제목을 작가님이 참 좋아하신다는 걸 느꼈어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김영하 : 제목이 너무 평범하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었어요. 너무 흔한 말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의외로 이 제목의 소설은 없었어요. 에드거 앨런 포의 ‘잃어버린 편지’ 같은 느낌인 거죠.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있어서 숨겨 놓은 것처럼요. 그렇다면 내가 써야지, 생각하기도 했고요. 또 저는 처음 봤을 때 멋있게 느껴지는 제목보다 다 읽고 났을 때 이 제목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구나, 이 제목이 딱 어울리네, 생각하게 하는 제목이 좋은 제목이라고 생각해요. 결말을 읽은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멋있긴 하지만 다 읽고 나서 ‘근데 왜 이 제목이지?’ 이러면 좀 실패한 제목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작별인사』는 다 읽고 난 독자들이 납득할 만한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평범하긴 하지만 말이에요.
오은 : 독자 질문을 드릴게요. 단체 속에서 종종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에게 조언을 부탁드린다고 어떤 분께서 질문 주셨어요.
김영하 : 단체 속에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디폴트입니다, 여러분.(웃음) 단체 속에서 외로움을 못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소수예요. 그렇지 않은 사람을 저는 잘 상상을 못하겠어요. 그러나 분명히 단체나 파티 같은 것을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죠. 하지만 이 집단 안에서 외로운 사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외톨이 같다고 느끼는 사람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만 알아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오은 : 근미래가 배경인데 ‘민이’ ‘선이’ ‘철이’라는 이름은 1900년대 중후반부에 많이 지어졌을 법한 이름이거든요. 이름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요?
김영하 : 몇십 년대에 가장 흔했던 이름 같은 것을 검색하면 쫙 나와요. 놀라운 것은 부모 세대의 이름을 피한다는 거예요. 부모 세대에 유행했던 이름을 아이들 세대에는 피해서 보통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 유행했던 이름들이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굉장히 많죠. ‘민이’ ‘선이’ ‘철이’가 지금은 좀 옛날 이름 같지만 100년 후에는 신선한 이름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오은 :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할게요. 청취자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은 무엇인가요?
김영하 : 『작별인사』와 관련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또 쓰는 동안 읽었던 책이기도 해서 여러분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은데요.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라는 소설이에요. 연극으로도 나와서 독자들이 좀 읽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뇌사 상태에 빠진 어떤 젊은이를 둘러싼 가족들의 심리도 잘 묘사되어 있고요. 과연 어디까지 인간은 살아 있다고 볼 수 있고, 어디까지를 죽었다고 생각할 것인가, 그리고 누가 그 결정을 내릴 것인가 하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묵직한 소설이에요. 아주 미묘한 심리 묘사를 다루면서도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어서 <오은의 옹기종기>를 듣는 분들께서 관심을 가지실 거라고 생각해요.
*김영하 1968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군인인 아버지를 따라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성장했다. 잠실의 신천중학교와 잠실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했다. 한 번도 자신이 작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학원에 재학 중이던 1990년대 초에 PC통신 하이텔에 올린 짤막한 콩트들이 뜨거운 반응을 얻는 것을 보고 자신의 작가적 재능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서울에서 아내와 함께 살며 여행, 요리, 그림 그리기와 정원 일을 좋아한다. |
* 책읽아웃 오디오클립 바로 듣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연선
읽고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