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 GPT도 절대 흡수할 수 없는 인간의 고유 능력이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당장 그 능력을 가지고 싶을 것이다. 『메타인지의 힘』은 인간의 가장 고등한 지적 능력이자 기계와 구별되는 유일한 인지 능력인 메타인지에 관한 종합 교양서다. 디지털 인문학자이자 베스트셀러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의 저자 구본권은 인공지능 시대에 반드시 갖춰야 할 경쟁력으로 메타인지에 주목했다. 메타인지는 지난 10여 년간 전 세계 뇌과학, 신경과학, 심리학, 인지과학 연구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탐구해온 주제이기도 하다. 얼마 전 저자는 『메타인지의 힘』을 읽은 독자들과 메타인지에 대해 더 깊이 이야기하는 시간을 보냈다. 현장에서 나온 많은 대화를 일곱 가지의 질문과 답으로 구성했다.
메타인지를 다룬 학습서나 자녀 교육서는 여러 권 보았는데, 이렇게 종합 교양서로는 첫 출간된 게 아닌가 합니다. 책을 쓰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왜 이 책을 쓰게 됐나, 저한테 이 책이 무슨 의미인가는 서문에 담겨 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왜 사는 건가, 아는 건 뭔가, 이런 생각에 빠져서 철학과를 가게 되었고 그 이후로 철학도이자 언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저 나름대로 한 40년 묵힌 그 질문들이 "아,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런 생각들을 젊어서 했구나"라는 게 직장 은퇴할 때쯤 되니까 좀 확연해진 거죠. 그런 것을 저 나름대로 알고 있었던 것, 보았던 것, 경험했었던 것, 읽었던 것들을 메타인지, 자기 객관화라는 관점으로 엮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저한테는 이 책이 다른 책들과는 좀 차별화되는 책, 나만이 생각했었던 나의 고유성, 그리고 일종의 내 인생의 문제 의식이 담긴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쓴 기간은 1~2년이지만 생각을 묶이는 데 한 3~40년은 걸렸습니다.
'메타인지'는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능력으로, 자신의 한계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과 직결된다고 책에서 이야기하셨는데요. 나의 한계를 알아보는 방법 그리고 극복해야 하는 한계와 포기해야 하는 한계를 구분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흔히 어느 시기에 이르면 내 한계를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그런 선이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저는 60이 가까운데, 살 만큼 살았으니까 저의 한계가 무엇인지 다 알아야 되잖아요? 몰라요. 모르지만 몇 번의 계속되는 시도를 통해서 이건 처음에 안 됐는데 계속 했더니 되더라라고 하는 경험이 여전히 있고요. 물론 어떤 것들은 비교적 한계가 명확한 것도 있지요. 저는 마라톤은 하지만 빨리는 못 뛰어요. 고등학교 때도 18초까지밖에 못 뛰었고 지금도 저한테 17초를 뛰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런 육체적인 한계라든지 그런 것들은 조금 명확하지만 다른 것들은 이게 될지 안 될지가 그렇게 명확하게 선이 그어져 있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든 간에 우리는 그 상황을 가능한 한 객관적으로 파악을 해야지 그게 계속해서 시도해볼 만한 대상인지 아니면 아예 시도한 것 자체가 무의미하고 위험한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접어야 되는 상황인지 알 수 있는 거죠. 어떨 때 그 판단을 해야 되느냐, 그것은 두 가지가 다 필요한 것 같아요. 객관적인 나의 외부 상황을 알아야 되고요, 외부가 위험한 상황인데 우리가 무조건 뛰어들 수 없으니까. 그리고 자기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느 정도 실력이 있어야 되는지를 파악해야 되는 거죠.
메타인지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데 있어 사람마다 차이가 있을까요?
메타인지 연구자들의 가장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아이큐는 타고나는 게 맞지만 메타인지는 타고나는 게 아니다, 이것은 교육과 훈련의 영역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메타인지라고 하는 것은 훈련하기에 따라서 얼마든지 기술적으로 고양시킬 수 있는 것이죠. 책에서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는 생각의 시스템 1, 즉 직관과 본능을 타고나는 것이고 이것을 어느 순간에 사용하고 제어할 것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시스템 2라는 이성과 깊이 생각하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달리 말하면 메타인지인 것이죠.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교육받고 어떻게 경험하고 자기가 마인드셋을 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당연히 후천적 개발과 학습의 대상이다 보니까 사람마다 차이가 엄청 크죠.
직장생활에서 메타인지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되기 위한 직업에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제가 요새 사람들 만날 때마다 하는 이야기인데, 인공지능에 영향을 받지 않을 직업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 사실은 모든 영역에서 두 가지, 자기를 알고 도구를 알아야지만 자기가 하는 일에다가 도구를 써먹을 수 있는 거죠. 제가 책 앞부분에 '지피지기면 백전불태(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고 <손자병법>의 구절을 인용하며 이야기했지만, 도구는 사실 계속 변화하는 거죠. 외부의 침략은 누가 쳐들어올지 모르고요. 대상이 계속 바뀝니다. 이럴 때 적어도 절반의 승산이 있으려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일단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학습할 수 있는 인간이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나면 거기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자기를 객관화하게 되면 자연히 다음 스텝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걸 피해야 되겠다, 혹은 학습해야 되겠다 등등 뭔가를 해도 그걸 알기 전과는 다른 상태로 이루어지게 되죠. 그러니까 이런 메타인지를 활용한다는 것은 자기가 어떤 역량을 갖고 있는지를 조금 더 세분화해서 객관적으로 판단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건 생각해서 아는 게 아니라 경험에서 뛰어들어서 뭔가 부딪혀야지 그 피드백이 오는 거잖아요. 경험을 통해서 조금씩 계속 바꿔나가는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최근 불거졌던 문해력과 세대와 관련된 논란에 대해 메타인지라는 개념으로 접근해 다뤄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책의 서문에서 그 얘기를 했죠. 이 문해력 논쟁에 대해서. 무운을 빈다, 금요일이 아니고 금일. 사실 세대별로 사용하는 어휘는 당연히 다른 건데, 최근 문해력 논쟁에서는 '너는 왜 내가 모르는 단어를 써서 나를 이렇게 혼란스럽게 만드냐' 하는 태도가 문제인 거죠. 그냥 모르는 단어를 만났을 때, 영어 단어 나왔을 때는 쉽게 찾아봅니다. '생성 인공지능'이면 왜 그 말 썼냐고 따지지 않고 아주 쉽게 찾아보는데 이제 무운을 빌고 이러면 왜 그런 말을 썼냐라고 얘기하는 거죠.
이것은 지식에 대한 경시, 그리고 단순히 경시가 아니라 내가 변화하는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서 계속 뭔가를 배워서 알아야 되는 건데, 그것에 대해서 스스로 알고자 하는 노력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으려는 반지성적 태도입니다. 되게 위험한 신호인 것 같아요. 내가 모르는 단어를 쓰지 말라고 하는 대화와 소통의 단절이니까. 이 문해력과 관련해서는 책에도 언급한 매리언 울프의 『다시, 책으로』라고 하는 책이 아주 좋습니다.
메타인지가 사회에서, 공동체에서는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사회적으로 메타인지가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가는 제가 많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는데요, 북유럽의 얀테의 법칙하고 비슷한 것 같아요. 얀테의 법칙은 북유럽의 한 작가가 소설에서 한 얘기이고 몇 가지가 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게 '너는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지 말아라'라는 것입니다. 네덜란드나 덴마크와 같은 북유럽 국가에서는 사람이 자기 과시를 하면 사회적으로 매장됩니다. 그러니까 땅만 평평한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의식도 대단히 튀어오르는 것, 잘난 척하는 것, 있는 척하는 것 이런 과시를 무시하는 것이죠.
그게 저는 일종의 사람들에 대한 평균주의일 수도 있지만 자기 객관화를 못하고 사람들을 층위를 지으려고 하는 것들에 대한 깨달음을 주는 잣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요새 보면 우리 사회의 각종 혐오라든지 이런 것들, 가진 자원과 신분, 지위로 차별하고 무시하려고 하는데, 그런 것도 우리 사회가 자기를 객관화할 줄 모르는 것 때문에, 그래봐야 다 똑같은 존재라고 하는 것을 자기 객관화하면 알 수 있는 것일 텐데, 결국은 자기 객관화가 안 돼 있으니까 그런 이상한 현상들이 사회에 나타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의 메타인지를 주기적으로 체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작가는 어떤 방법을 쓰고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일단 내 생각에 되게 자연스러우면 이거는 뭔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우리가 정치적 판단이나 여론 같은 거 보면 당연히 사람들은 이럴 거야 해서 생각하고 판단하잖아요.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나한테만 자연스러운 거지. 한 발 뒤에서 보면 상황도 조금 더 종합적으로 보이고 자신도 객관화가 가능하죠.
제가 자기 객관화를 위해서 쓰는 방법은 16세기에 프랜시스 베이컨이 한 말에 있습니다.
reading makes a full man, conference a ready man, writing an exact man.
독서는 충만한 사람을 만들고 토론은 준비된 사람을 만들고 글쓰기는 정확한 사람을 만든다.
제가 대충 알고 있던 것을 기사로 쓰려면 하나하나 다 다시 확인해야 돼요. 책을 쓸 때도 마찬가지고요. 안 그러면 밥줄 끊기는 거니까요. 그래서 똑같은 글을 쓰더라도 그게 맞는 것인지 더 세심하게 확인을 합니다. 그리고 읽는 행위는 사실 책에 있는 정보를 습득하는 게 아니라, 그걸 계기로 해서 내 생각을 만나는 거잖아요. 저자의 생각에 내가 동의하는지 아닌지. 아니면 그것과 자기의 고유한 생각과 경험을 연결시키는 행위. 메타인지는 이런 데서 작동하는 거죠.
또 저는 달리기를 하는데요, 뛰는 것의 장점이 뭐냐면 뛰면서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지극히 단순한 일이기 때문에 글감이 좀 숙성되는 측면이 있고, 또 뛰지 않으면 자기 몸이 어떤 상태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는데 뛰게 되면 정확하게 알아요.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시는 분들도 그렇죠. 일종의 체크리스트 기능을 하기도 하고, 자기를 체중계 달아본 것하고 다른 방식으로 자기를 잘 알게 되죠. 그래서 그런 리추얼을 만드는 게 필요하다. 자기가 자신에 대해서 조금 더 민감하게 느껴지는 일상의 무엇, 그것을 만들어 놓으면 자기의 상태에 대해서 민감해질 수 있다. 제가 쓰는 방법은 그런 겁니다.
*구본권 언론인이자 디지털 인문학자.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신문방송학과 겸임 교수를 지냈다.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으로 일하며, 국가교육위원회 전문위원을 맡고 있다. 기술과 사람이 건강한 관계를 구축할 방도를 궁리하며 글 쓰고 강의한다. 신문 기자로 오래 일했고 서울시교육청 미래교육 전문위원, <신문과 방송>, <미디어 리터러시>, <언론중재> 편집 위원으로 활동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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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