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태어나서』 『못 배운 세계』 『펄프픽션』 등 장르의 제약 없이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펼치고 있는 작가 류연웅의 신작 소설이 나무옆의자에서 출간되었다. 2019년 등장 이래 다채로운 작품 활동을 이어온 류연웅은 판타지, 스릴러, 블랙코미디를 넘나들며 독자들과 만나왔다. 이번 신작 『몇 번 산책하면 헤어지는 아는 강아지』는 인간에게 사랑을 주었지만 배신으로 마음을 잃게 된 강아지 ‘베리’와 사랑받고 싶고, 또 사랑하고 싶은 ‘유나’가 진정한 사랑과 자유의 의미를 깨닫는 성장담이자 우정담이다.
이번 소설에서 '강아지의 시선'으로 인간의 이별과 감정을 담아내셨습니다. 이 서사를 집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종종 강아지를 신과 같은 존재로 느껴요. 주인에게 버림 받아도 끝까지 그를 기다리는 강아지들이 있잖아요. 이별했다고 해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지 않는, 대가 없는 영원한 사랑을 하는 강아지들요. 저는 그게 참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저는 그렇게 못할 것 같거든요. 이 이야기는 그런 부러움에서 시작됐어요. 하지만 소설의 주인공 ‘베리’는 제가 앞서 말한 그런 강아지와는 달라요. 사랑을 계산하고, 다른 강아지들이 손해 보고 있다며 비웃기도 하죠. 어떻게 보면 아주 인간적인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제 모습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인간적인 강아지’였던 베리는 점점 ‘인간이 바라보는 강아지’—즉, 제가 바라보는 강아지—로 변해 갑니다. 강아지를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실제로 이 이야기는 ‘강아지의 시선’이라기보다는 ‘그 시선의 끝에 강아지가 있는 것’이 포인트예요. 그래서 3인칭 시점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사실 베리의 1인칭으로도 써봤고, 실제로 그렇게 쓰면 더 웃기고 흥미로운 리액션이 가능했거든요. 하지만 결국 제가 전달하고 싶은 바가 더 중요했기에, 전지적 시점으로 베리의 변화를 조금 더 멀리서 바라보기로 했어요.
‘몇 번 산책하면 헤어진다’는 설정은 독특하면서도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발상을 떠올리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원래는 '몇 번 산책하면 죽는지 아는 강아지'였어요. 그 발상을 최초로 떠올린 건... 재미없는 얘기일 수도 있지만, 그냥 평소처럼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던 중이었어요. 2023년 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뭐가 재미있을까...” 고민하다가 “오, 이거다!” 싶었던 거죠. 설정을 떠올리고 나서 "이건 됐다!" 싶어 기뻤는데, 꽤 오랫동안 서사로 완성하지 못했어요. '자신의 수명을 계산하는 모습', '남은 횟수를 아끼려 최대한 길게 산책하려는 모습' 등의 장면만 떠오르지, 이를 통해 말하려는 바가 뭔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2024년 여름에 유튜브에서 시골에 묶여 사는 강아지를 산책시켜주는 영상을 보았어요. 난생처음 산책을 해보는 강아지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에 오히려 슬픈 감정이 들더라고요. 만약 저 유투버가 다시 오지 않는다면, 저 강아지는 어떤 기분일까 싶었죠. 그리고 불현듯, 명확한 끝이 있는 죽음보다 언젠가 다시 만날 지 모른다는 희망이 존재하는 헤어짐이 더 고통스러운 게 아닌가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죽는지 아는 강아지'가 '헤어지는지 아는 강아지'가 됐어요. 그러자 이야기가 수월하게 풀려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외로움, 단절, 이해받지 못하는 인물들을 그리셨는데요. 작가님께 이 세 가지 키워드는 어떤 의미인가요?
이 세 단어를 보면, 외로움은 수동적인 감정이고, 단절은 능동적인 행위 같아요. 그리고 ‘이해받지 못함’은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단절이라는 행위로 이어질 때 생기는, 어떤 모순적인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외로운 사람일수록 타인과의 단절을 선택하지만, 그들은 사실 누구보다도 그 외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 속 유나라는 인물이 바로 그 복합적인 상태를 대표한다고 생각해요. 렇기에 세 가지 키워드가 갖는 의미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운명'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하게 되는 과정이니까요.
주인공 베리는 ‘인간을 믿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결국 다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 합니다. 이 모순된 감정은 어떤 마음에서 출발했을까요?
집필하며 참고한 서적에서, 성정과 성격의 차이에 대해 읽었어요. 성정은 타고난 기질, 성격은 사회화 하며 갖게 된 성질이라고 하더라고요. 이 개념이 베리를 설명하는 데 딱 들어맞았어요.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마음'은 베리의 성정이고, '인간을 믿지 않는다'는 건 베리의 성격인 거죠. 그 차이야 말로 '인간적인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인간은 모두 성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모순된 존재니까요.
그래서 베리는 가끔 본래의 성정이 불쑥 올라올 때마다, 그걸 억누르려는 성격이 튀어나오죠. 저는 그런 모습이 참 슬펐어요. 심지어 그것을 성장한 거라고 여기니까요. 근데 진짜 성장은 멀리 가는 게 아니라 다시 돌아오는 거라고 하더라고요. '금의환향'이라는 속담처럼 말이에요. 저는 결국 베리도 진짜 성장을 이루었다고 생각해요. 작품 말미에서 성정과 같은 성격을 갖게 됐으니까요.
작품 속 ‘유나’는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며 강아지와 조금씩 마음을 열어 갑니다. 이 인물은 작가님이 어떤 질문에 답하고자 할 때 탄생한 인물인가요?
베리라는 캐릭터를 먼저 창조했기에, 그 상대역인 유나는 반드시 '외로운 인물'이어야 했어요. 2번 산책시켜줄 보호자의 롤이었으니까요. 그래서 '2025년의 외로움'이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어요. 그러자 외로움이란 과거엔 사회에서 버림받거나 소속되지 못한 사람들이 겪는 것이었다면, 지금은 ‘자기 세계에 과한 확신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외로운 존재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자가 모종의 이유로 거울 보기를 두려워하는 존재라면, 후자는 휘어진 거울 앞에서 자기애에 빠진 존재인 거죠.
오피스텔에 틀어박혀 외주를 받을 때만 사회와 접촉하고, 배달음식만 시키며 살아가는 유나의 생활 방식은 회피하기 위한 노력으로 보이죠. 이것이 ‘2025년의 외로움’이라는 질문에 대한 저의 답이에요. 리는 그런 유나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키고, 결국 유나를 세상으로 이끌어 냅니다. 여담이지만, 만약 베리가 없었다면 유나는 언젠가 돈이 모이면 한국이 아닌 곳으로 떠나버렸을지도 몰라요. 그리고 “내가 한국을 져버렸어!”라며 기뻐했을 것 같아요. 베리가 첫 산책에서 유나를 떠나며 일순간 기뻐했던 것처럼요.
작품 전반에 걸쳐 ‘산책’은 관계의 지속과 단절을 암시하는 은유처럼 쓰입니다. ‘산책’이 작가님께 어떤 의미였는지 듣고 싶습니다.
베리의 시선에서 말해볼게요. 베리에게 산책은 목적이에요. 세상에 태어나서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죠. 그러니 인간을 평가하기 위한, 자신이 체감하는 세계를 넓히기 위한 수단으로 삼죠. 그래서 산책 횟수로 미래를 판단하고, 유나를 오해하기도 해요. 결국 이야기가 흐르면서 베리는 ‘그게 전부는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아요. 산책은 여전히 목적이고 삶이지만, 그 자체일 뿐이라는 걸 받아들이는 거죠. 말하자면, 텅 빈 목적이에요. 저 역시 같은 생각이에요. 인생 자체가 거대한 산책 같아요. 좋은 산책, 나쁜 산책을 확연히 구분하는 기준은 없잖아요. 그냥 한 번 걸어보는 거지.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다 읽은 독자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책을 덮기를 바라시나요?
간단해요.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어요. 이번이 네 번째 책인데, 이렇게 간단한 의도를 갖고 쓴 건 처음이에요. 예전에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조금이라도 의미를 더 부여해서 말하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그래요. 맛있는 한 끼 식사를 한 것처럼 기분이 좋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당분간은 그런 작업들을 계속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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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