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요즘 10대’라는 말은 어른들 사이에서 학교폭력과 왕따 등의 문제가 이야깃거리로 전락할 때 종종 앞에 붙는 말이다. 그 말 속에는 ‘뭔가 문제가 많고 유별난’이란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말하는 이들 중에 요즘 10대가 힘겨워하는 진짜 이유를 아는 이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10대의 힘겨움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대부분의 어른들은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 하지만 그것이 단지 마음 없이 뱉어내는, ‘알고 있다’는 생각뿐이라는 것을 모른다. 정작 그들은 ‘그때와 요즘은 다르다’며 자신 역시 모자라고 힘없고, 두려움 가득한 10대의 시기를 거쳐 왔다는 사실 조차 부정하고 있다. 장벽…… 10대들은 자신들을 향해 장벽처럼 둘러쳐진 무지의 시선을 불신하며 하루하루 병들어가고 있다. 아파서, 너무 힘들어서 어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또 다시 탈선이나 비행, 혹은 문제아라는 굴레를 덧씌워 시작도 하지 못한 인생들을 규정지어버린다.
이러한 현실에서 지난해 말 출간 된 『열여덟, 너의 존재감』이 최근까지 청소년을 비롯한 많은 독자들에게 꾸준한 관심을 얻고 있는 상황은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10대가 가진 아픔을, 힘겨운 마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덕분이다. 더구나 이 이야기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그러한 안도감을 희망으로 키우고 있다.
하지만 그녀 역시 교사로서 힘겨워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어쩌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그것을 지켜보는 것조차 너무나 힘겨워서, 상처받아 공격적으로 돌변한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꾸짖기만 하는 교사들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해 속병이 생기기도 했다. ‘마음공부’는 그런 그녀가 힘겨움 끝에 찾아 낸 해법이었다. 이날 만남의 주제는 ‘마음을 돌아보는 좋은 습관 만들기’, 쿨샘은 자신의 경험과 마음 들여다보기의 비결을 청소년과 독자들에게 소개하며 행복해지자고 이야기한다.
극복병에 걸렸던 지난 시간들
“제 꿈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해요”
십대들이 항상 들어왔을 그 말, ‘꿈을 가져라’ 혹은 ‘네 꿈이 무엇이냐’의 반복인가. 기대감이 감돌았던 십대 청소년 독자들의 눈빛은 일순간 시큰둥한 빛이 감돈다. 교단에서 매일 학생들과 마주했던 쿨샘이 그런 감정을 알아차리지 못할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 이야기는 쿨샘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다. 그렇고 그런 꿈 이야기가 아닌 쿨샘 자신의 고백이자, 경험이기 때문이다.
“다들 짜증난다는 표정이네요(웃음). 그래서 저도 준비하면서 꿈 말고 다른 표현이 없을까 생각해 봤는데,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저한테는 진짜 꿈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20년이 넘게 품어왔던 꿈, 바로 집을 떠나는 것이었죠.”
‘집을 떠난다는 말은 순식간에 강연장에 모인 십대들의 공감을 불러온 듯했다. 대체 무엇이 십대들로 하여금 집을 떠나고픈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일까. 쿨샘의 경우, 그 이유는 가난과 부모의 불화였다. 어쩌면 『열여덞, 너의 존재감』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경험한 힘겨움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집만 벗어나면 내 인생은 필거라고 생각했어요. 반드시 20세가 되면 집을 떠난다고 결심했는데, 결국은 삼수를 하는 바람에 22세에 떠나게 됐죠. 어쨌든 그 순간에는 행복해 질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달라지는 것은 없더군요. 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가난의 그림자는 여전히 나를 짓누르고 있었고, 오히려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고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너무 피곤하고 힘겨웠어요.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고민하다가 겨우겨우 교사가 된 거죠.”
쿨샘의 말에 숨김이나 거짓은 없었다. ‘꿈’ 이야기에 식상해 하던 청소년들도 어느새 그런 솔직함에 빠져들고 있는 듯했다. 쿨샘은 ‘교사를 택한 것도 안정적인 직장의 개념이었다’고 고백했다. IMF 사태 직후, 모두가 직장에서 해고 걱정을 할 당시, 솔직히 그런 쿨샘의 선택을 비난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쿨샘은 마치 고해성사를 하는 듯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말을 이어갔다.
“실망했어요(웃음)? 어쨌든 힘든 상황에서 선생이 된 제가 아이들에게 해 줄 말은 딱 하나였어요. ‘극복해라’, 당시 저는 극복병에 걸려있었죠. 사실 저 역시 계속 극복해 왔거든요. 집으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못마땅한 내 상황으로부터……. 문제는 어디론가 가긴 가는데 도무지 극복해야 할 것은 계속 이어지고 행복하지도 않고 너무 힘들고 괴롭기만 했다는 거예요. ‘대체 왜 여전히 괴로울까’, ‘아직 극복해야 할 게 더 남았나’ 하면서도 아이들에게 극복교 교주가 돼서 ‘극복하라’고 했던거에요.”
장혜진 선생(좌)과『열여덟, 너의 존재감』의 저자인 박수현 작가(우).
학교라는 틀에서 정해진 규율과 납득할 수 없는 원칙에 힘겨워하는 것은 학생들뿐이 아니었다. 쿨샘 역시도 동의할 수 없는 것들로 인해 숨 막힌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결국 동료 교사들이 수긍하는 것들에 대해 홀로 문제 제기를 했고 편한 길 대신 험로를 선택했다.
“애들하고 재미있게 지내긴 했죠. 하지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별다른 해결책을 주지 못했어요. 사실 제 삶이 더 힘들었거든요. 그런 와중에 몸까지 아프게 되어 수술을 받기도 했고, 절망에 빠지게 되더라고요. 한 3년 쯤 그렇게 우울증을 겪었어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흘렀죠.”
아이들을 보며 쿨샘은 자신의 대학시절 사정이 비슷한 친구와 했던 ‘불행 배틀’을 떠올렸다. 누가 더 불행한지를 견주는 소모적인 대화, 아이들의 대화는 그때 자신의 대화와 다르지 않았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쿨샘에게 변화의 시작인 된 것은 한 선생님의 따뜻한 말 한 마디였다.
“지친 상태로 하루하루 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선생님이 ‘장혜진 너 괜찮아, 멋있어, 그런 말해도 돼’ 이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제 귀에 딱 꽂힌 말은 ‘괜찮다’는 거였어요. 집으로 가는데 마음이 진동하더라고요. ‘이게 뭘까’,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 이거였나’ 싶더라고요. 생각해보니 나는 자신에게 ‘괜찮다’라는 말을 해 준적이 없던 거예요.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괴로움을 벗어나는 길이 내 마음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었죠. 그때부터 마음을 살피는 공부를 하기 시작했어요.”
마음과의 만남
아이들을 도와주고 싶었지만 자신 스스로도 치유가 안된 상태였다는 것을 쿨샘은 마음공부를 하면서 깨달았다. 몇 년 간을 마음과 귀를 열고 위로의 말에 귀 기울이며 스스로를 ‘괜찮다’고 다독였다. 자신이 처한 상황이 어떤지, 마음이 어떤지를 살피게 되면서 쿨샘은 점점 자신이 나아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제가 어느 정도 치유가 되니까 아이들에게 시선이 가더군요. 마음은 우리 생활에서 굉장히 많이 쓰는 단어잖아요. 하지만 실제로 자기 마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죠. 그 사실을 돌아보게 된 거였어요.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떠세요.”
쿨샘은 갑작스레 마이크를 독자들에게 떠넘기며 질문을 던져왔다. 독자들 특히나 십대 청소년들로서는 당황스럽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개중에는 얼굴이 빨개지며 어쩔 줄 몰라 하는 이도 있었다. 마음에 따라 몸도 반응한다는 것, 쿨샘은 마음의 존재를 느끼게 하기 위해 그 같은 행동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음의 속성이 이래요. 잠깐 사이에도 어떤 일에 요동을 치죠. 억누를 수가 없어요. 한번 들어온 마음은 생각으로도 조절 안되고 이성으로도 제압되지 않아요. 마음으로는 어떤 것이든 가능해요. 누굴 극단적으로 미워서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거죠. 실제로 행하진 않더라도 내 마음이 그렇다는 의미가 되요. 지금 제 강연을 듣는 학생에게 ‘지루해요?’라고 물었을 때 대부분의 학생은 멈칫하며 ‘아니요’라고 대답하겠지만, 진짜 지루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사라지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지루할 수도 있어요’라고 하면 비로소 지루한 마음은 공감을 얻으면서 지나가고 그 안에 있던 다른 마음, ‘선생님에 대한 배려’가 올라오죠.”
마음의 속성을 알게 되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어린 시절 기억에 각인 된 괴로운 상황은 쿨샘이 어른이 돼서도 계속 발목을 잡았다. 그때 다친 마음은 무의식에서 부정적인 형태로 발현됐다. 좋은 일이 있어도 ‘너무 기뻐할 필요 없어,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몰라’와 같은 불안한 마음상태가 찾아온 것이다.
“억누를 수 없는 마음이었죠. 사라지지도 않고 생각으로도 조절되지 않는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다행히 마음에는 안전장치가 있어요. 오늘 강연 중에 여러분의 마음에 담아갔으면 하는 말이 이거에요.”
화가 났다거나 부끄럽다거나 마음이 동요하는 순간은 삶을 살아가며 늘 직면하게 된다. 하지만 역시 어떤 마음이든 그 순간이 지나면 사그라진다는 것이다. 마음을 잘 알아주면 괴로움도 사라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 마음을 억누르거나 외면한다면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미리 괴로워하는 불안한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괴로운 이 상태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 명심하면 되요. 지나갈 거야,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줄 수 있다는 거죠. ‘부러우면 지는 거다’란 말이 있죠. 그 말은 진짜 맞는 말이에요. 바로 마음에 진다는 말이죠. 하지만 우리는 매일 질 수밖에 없어요. 사실 제가 쿨샘이라고 하지만 저도 별로 안쿨해요. 집착도 있고 상처도 받아요. 절대 사람은 쿨 할 수가 없어요. 쿨하다는 건 자기 마음상태에 좌지우지 안된다는 건데, 사람이 어떻게 그래요.”
마음과 생각의 차이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숱하게 많은 생각과 마음의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정작 어느 것이 마음이고 어느 것이 생각인지는 구분하지 않는다. 때론 생각을 마음이라 여기고 행동하다가 뒤늦게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고민하기도 한다. 쿨샘은 마음과 생각을 구분함으로서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마음과 생각의 차이는 뭘까요. 생각은 주로 옳고 그름, 내가 주체가 되어 할 수 있는 것, 생각하는 것이에요. 내 의지대로 원하는 생각을 할 수 있죠. 하지만 마음은 좋고 싫음이에요. 내가 조절이 안 돼요. 생각과 마음 중에 마음이 훨씬 강하죠. 그래서 마음은 다스리려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에요. 우선은 내가 왜 불안해하는 가를 봐야해요. 솔직한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인지를 찾아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만약 ‘공부가 하기 싫다’는 마음이라면 어떨까요. 분명 원인이 있겠죠. 하지만 그 마음을 안보고 대부분 학생들은 ‘공부해야된다’는 생각을 해요. 계획을 짜고 또 짜고, 생각만 하는 거죠. 마음을 봐 주지 않는데 공부가 될 수 없죠. 공부하기 싫은 마음, 그 싫다는 마음을 잘 살펴보면 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어요.”
마음을 살펴보는 방법으로 쿨샘은 마음일기를 제안했다. 마음일기란 자신의 마음을 알고 구경하는 것의 다른 표현이다. 하루를 보내며 그냥 지나쳤던 마음의 패턴을 읽으며 깨닫게 되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되고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 반복되는 스스로의 행동에 괴롭거나 혼란한 마음도 사라진다는 것이 쿨샘의 설명이다.
“자신의 마음을 잘 모르면 남을 탓하거나 원망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알면 타인의 마음도 잘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처음에는 애매모호한 마음일기를 쓰겠지만 점점 쓰다보면 구체적으로 바뀌게 되는 것을 느낄거에요. 그게 마음의 표현인지 생각의 표현인지를 살펴보게 되고, 진짜 마음이 어떤 것인가를 발견하는 거죠. 자신의 마음을 알고 나면 그 마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안아주면 됩니다. 조금 쑥스럽더라도 눈을 감고 그때의 마음을 떠올리며 소리 내서 이야기해보세요. 정말 효과적이에요(웃음).”
마음이라는 건 그래, 변덕스럽기 짝이 없지. 그런데 그게 안정장치이기도 해. 어떠한 마음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 말이야. 슬픔도 기쁨도 단지 그 순간일 뿐이야. 어제 화났던 일도 오늘 생각하면 별일이 아닐 때도 있잖아. 그런 거야, 아무것도 영원한 것은 없어. 너무 슬퍼도 렛 잇 비, 너무 힘들어도 렛 잇 비…… 흘러가게 가만히 내버려둬. 당장은 괴로워서 죽어버릴 것 같은 마음도 다 지나갈 거야. -『열여덟, 너의 존재감』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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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사례를 들며 마음을 찾고 인정하는 방법에 대해 알려준 쿨샘은 마지막으로 『열여덟, 너의 존재감』의 한 구절을 낭독하며 마음의 속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웠다.
“몸짱 열풍이 예전부터 불긴 했지만 사실 마음의 힘을 키우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제가 몇 년을 헤매다가 결국 찾은 것,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서 지금은 그때보다 행복해졌어요. 여러분들도 마음 일기를 쓰면서 자기 마음이 깨어있는 상태로 항상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열여덟 너의 존재감 박수현 저 | 르네상스
요즘 십대들이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말 가운데 하나가 ‘존재감’이다. 열에 아홉이 ‘존재감이 없어서’ 고민이고, ‘미친 존재감’을 갖고 싶어 애를 태운다. 이들이 말하는 존재감은 인정 욕구에 다름 아니다. 내가 여기 있다는 걸, 나도 살아 있다는 걸 누구라도 알아주었으면 하는 세 친구의 이야기이다. 사실 이 소설은 사실을 바탕으로 씌어졌다. 쿨 선생의 모델은 작가의 사촌 여동생이자 현직 고등학교 교사인 장혜진 선생이며, 마음 일기 또한 그이가 교육 현장에서 만난 ‘아픈’ 아이들을 위해 고안해 낸 것이다…
황정호
최선을 다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합니다. 언제나 꿈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샨티샨티
2012.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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