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여러 가지 웹툰을 다루었다. 하나같이 매력적인, 허구의 이야기를 담은 웹툰들. 그렇지만 그런 웹툰을 즐기고 나서 돌아오면 기다리는 것은 익숙하고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들이다. 그러면, 이런 일상사를 새롭게 보는 법은 없을까. 거기에 대한 대답은, "있다"이다.
사실 한국 웹툰의 초창기는 거의 일상을 짤막한 만화로 기록해 인터넷에 개재하는, 즉 '인터넷 만화 일기'가 주류였다. 정철연의 『마린블루스』, 권윤주의 『스노우캣』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러한 초기 한국 웹툰은 작가의 소소하면서 잔재미가 담긴 일상을 담으면서, 이러한 웹툰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활용하여 캐릭터 상품을 개발하는 등의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일기 웹툰은 한국 웹툰의 전개 방식과 수익 모델 등에서 그 시작을 알렸다고 할 수 있겠다. 과거형으로 쓰고 있지만 사실 이런 일기 웹툰은 지금도 정말 꾸준히 그려지는 장르고, 매일 그려서 매일 올린다는 점에서 웹툰이라는 매체와 가장 친화성이 좋은 장르다.
가스파드의 『선천적 얼간이들』은 이 연장선에 있다. 그날그날의 일상사를 만화로 그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대신 본인과 주변 사람들이 겪은 온갖 이야기를 그려내는 점에서, 인터넷 만화 일기의 후손 격이다. 앞에 언급한 것처럼, 일기 웹툰(과 그 방계에 해당하는 일상 논픽션 만화들)은 웹툰계에서 꾸준히 흔하게 그려지는 장르이다. 그렇지만, 이 만화는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의 완결에 이어 목요일 연재작의 자리를 꿰차자마자 빠른 속도로 인기를 끌었고, 1년 만에 네이버 웹툰 최고 인기작 중 하나가 되었다. 정식 연재에 앞서 네이버 웹툰의 아마추어 코너인 베스트도전에서 3개월간 연재한 것을 생각해봐도 터무니없이 빠른 속도로 인기작에 올랐다는 사실은 웹툰 역사상 유례가 없다. 뭐가 다르기에?
앞서 말했듯, 『선천적 얼간이들』은 작가와 주변인들의 여러 가지 일화를 그려내는 만화다. 오직 그것뿐인 만화이지만, 그럼에도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 무엇보다 컷 하나하나가 매우 강렬하고 임팩트 넘치는 연출을 보여준다. 세 컷에 한 컷은 패러디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패러디의 비율이 높은 만화이면서, 그 패러디를 몰라서 웃지 못하는 상황은 결코 없다. 예를 들어 ‘동물원 묵시록’ 편은 따지고 보면 그냥 시설 낡고 병든 동물이 가득한 더러운 동물원의 이야기지만, 다양한 패러디와 적절한 연출을 섞어 매 컷을 넘길 때마다 사람을 ‘뿜게’ 만드는 마성의 만화가 되었다.
앞서 하던 이야기의 연장선으로, 독특한 그림체 또한 장점이다. 웹툰 작가들의 작화는 대부분이 일본 만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 리얼리티에 집중하거나, 둥글둥글하고 간단한 그림이거나, 또는 소위 ‘모에 그림체’로 편중되기 일쑤인데, 그의 작풍은 스트리트 그래피티의 분위기가 강하여, 차별화된 분위기와 화려하고 화사한 색감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또한 (그 내용물들은 하나같이 기행을 저지르는 아저씨이고 덕분에 귀여운 외모와의 부조화가 종종 일어나기도 하지만,) 선천적 얼간이들에 등장하는 어지간한 주?조연 캐릭터들은 모두 동물 캐릭터이기 때문에 비교적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
스토리텔링 또한 뛰어나다. 아무리 재미있는 일화라도 이야기꾼의 실력이 별로라면 빛을 보지 못하지만, 작가는 거기에 약간의 과장과 연출, 말장난 등을 섞어 훌륭한 개그 만화를 선보인다. 가스파드는 인터뷰에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웃길까”라는 (당연해 보이지만 간과하기 쉬운) 것을 언제나 생각한다고 언급하고 있고, 실제로 그는 만화에서 어디를 어떻게 강조하고 포인트를 줘야 웃길지 알고 있다. 이러한 요소들과 패러디 등이 섞여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인데다가, 강조하지 않아도 될 부분에도 깨알 같은 온갖 ‘장난’을 쳐 놨으니 그런 세심함을 들쑤시고 다니며 여러 번 반복해서 읽는 것도 한 재미다.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그의 만화에서 그려지는 모든 일화가 사실이라는 것이다. ‘밥보다 좋다’ 편에서 언급된 감자칩 광고 공모전에서 은상을 탔다는 그들의 응모작이나, 2007년 프로야구 시즌의 잔여 경기에서 현수막을 들고 나와 중계진의 카메라에 포착된 모습 등 만화에서 그려진 몇몇 일화들의 증거를 인터넷에서 어렵잖게 찾아볼 수 있어 설득력을 더한다. 그런 증거들을 보고서 만화로 돌아와 보면 웬 말도 안 되는 판타지가 펼쳐져 있는데, 이미 모든 만화가 실화라는 증거를 접한 뒤이니 이것도 실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논리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그건 지금 따지지 말고). 그렇다. 이 스펙터클한 만화가 작가의 일상사라는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만 재미없는 나날을 보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작가의 인터뷰를 마저 읽어보자. "(…) 사실 남들이 살아온 삶의 무용담을 길게 들을 기회는 없어서 내가 그렇게 평균 이상으로 재밌는 일을 겪었는지는 몰랐다. (…) 다만 그런 건 있다. 같은 일을 겪더라도 나는 열린 마음으로 더 재밌게 받아들이는 편이다. 낙엽 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는 여고생처럼." 의외로 우리랑 별 차이는 없다는 거다. 단지 자신에게 닥친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그 문제다. 마음가짐의 차이라는 조금 흔한 이야기로 귀결된다.
그러고 보면 만화 속에서 작가 본인(의 분신)인 가스파드는 언제나 주위 사람들이 일으키는 온갖 말썽에 넌더리를 내며 지겨워한다. 하지만 그의 그런 고생담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끝내주는 코미디가 된다. 남의 불행은 나의 행복인 걸까? 아니, 찰리 채플린이 죽었을 때, 영국의 신문인 가디언 지는 크리스마스에 있었던 그의 죽음을 보도하며 이런 말을 곁들였다. “삶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 삶은 당사자의 눈으로 보면 끔찍하고 진절머리날지 몰라도, 멀리서 타인의 시선으로 보면 희극이라는 것이다. 사실 타인까지 갈 필요도 없다.
자, 이제 당신의 일상으로 돌아가자. 당신은 평범하고 지루하다고 생각한다. 별 시답잖은 일 때문에 귀찮아지고, 별것 아닌 문제가 발목을 잡는다. 바보 같고 우울한 매일. 하지만 그렇기만 하지는 않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그렇기만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서, 내 눈에 비친 당신의 일상은 더없이 유쾌하게 반짝인다. 그러니까, 이 만화가 당신이 아주 조금만 더, 당신의 그런 일상을 즐길 기회가 되기를. 그것이 『선천적 얼간이들』,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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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제훈
90년대 서울 출신.
길지 않은 세월 속에 이야기를 모으고 즐기는데 낙을 두고 있다.
또한, 누군가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부지런히 설명하는 것 또한 좋아한다.
그렇기에 이 지면에 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