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트위터처럼 시 읽기] - 파블로 네루다 「詩」
그의 시는 뜨겁다. 그의 시는 한 편의 시라기 보다는 하나의 몸짓에 가깝다. 그의 시는 꿈틀거린다.
글ㆍ사진 허연(시인, 매일경제신문 문화부장)
201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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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있는 나를
건드리더군.

 

 

1996년 <일포스티노>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평소 시를 좋아하는 청춘들은 이 영화에 열광했다.


필립 느와레라는 옆집 아저씨처럼 생긴 배우가 주연이었는데, 그 배우가 연기한 인물이 바로 파블로 네루다였다.

 

줄거리는 이렇다. 이탈리아의 작은 섬에 세계적인 시인 네루다가 망명해 온다. 이 때문에 섬에 오는 우편물이 크게 늘어나자 우체국장은 어부의 아들인 마리오를 우편배달부로 채용한다.

 

대시인과 섬마을 청년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됐다. 시인은 동네처녀 베아트리체를 짝사랑하는 마리오에게 시를 가르쳐 준다. 내면의 목소리에 눈을 뜨게 해 준 것이다. ‘은유’라는 마법의 열쇠를 손에 쥔 마리오는 결국 사랑을 쟁취한다.

 

사실 영화 <일 포스티노>가 개봉하기 이전부터 네루다는 인기가 있었다. 혁명과 사랑을 한 바구니에 담아낸 시인이었으니 젊은 문학도들이 좋아했을 수 밖에 없다.

 

시집 『네루다 시선』에는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라는 매력적인 시가 등장한다.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제일 슬픈 구절을 / 예컨대 이렇게 쓴다 / 별은 총총하고 별들은 푸르고 멀리서 떨고 있다 / 밤바람은 공중에서 선회하며 노래한다 /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때로는 나를 사랑했다 / ???/ 오늘 밤 나는 제일 슬픈 구절을 쓸 수 있다 / 이제 그녀가 없다는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잃었다는 생각에 잠겨."

 

얼마나 낭만적이며 얼마나 절창인가. 네루다는 삶과 사랑의 찬양자였다. 그의 격렬한 연애시는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뒤흔들어 놓았고, 그의 명성은 대륙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가 있어 남미 현대문학이 세상에 알려질 수 있었다.

 

네루다는 다차원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서정시인이었으며 반체제 운동가였고, 대사를 지낸 외교관이기도 했으며, 대통령선거에 나서기도 했던 정치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 있든 그의 시는 '사랑'을 향해 있었다.

 

앞에 인용한 '시'라는 제목의 작품은 주술 같은 서정시를 썼던 시인의 면모를 잘 드러내 보여준다.

 

시에 등장하는 '시는 쓰는 게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라는 그의 선언은 많은 문학도들을 떨리게 했고, 네루다 주의자들로 만들었다.

 

사실 네루다의 주장은 맞다. 시는 논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시는 학문의 영역이 아닌 상상력의 영역에서 존재한다. 네루다는 시가 어떻게 대중들의 마음을 흔들고, 어떻게 자신의 운명을 바꾸고 세상에 간섭하는 무기가 되는지를 온몸으로 증거했다. 그의 시는 뜨겁다. 그의 시는 한 편의 시라기 보다는 하나의 몸짓에 가깝다. 그의 시는 꿈틀거린다.

 

<일 포스티노>에 등장하는 마리오의 대사가 떠오른다.

 

"전 사랑에 빠졌어요. 치료약은 없어요. 치료되고 싶지 않아요. 계속 아프고 싶어요."

* 이 기사는 <월간 채널예스> 3월호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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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루다 시선파블로 네루다 저/정현종 역 | 민음사
세상을 떠난 지 3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전 세계 독자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는 네루다의 시들이 한국 시단의 거목 정현종 시인의 머리와 손을 거쳐 마치 원래가 한국어로 쓰였던 시인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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