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애 “부모는 자기만의 우물에 갇혀있어요”
나는 너를 사랑하고, 그래서 너한테 제일 좋은 걸 위해서 내가 희생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아이를 억압하고 압박하는 거거든요. 아이 자신의 경험과 삶, 꿈이 있는 건데 그걸 무시하는 거죠. 저는 부모들이 자기만의 우물에 갇혀있다고 생각해요. 자식한테 맹목적인 사랑을 주는 건 맞지만, 그 맹목이 참 무섭다는 거죠. 눈이 멀어서 안 보이는 거잖아요. ‘이건 널 위한 거야’라는 생각에 눈이 멀어서 제대로 못 보는 거예요.
글ㆍ사진 임나리
201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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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란과 영규 부부는 아들 민수가 걱정이다. 무슨 일이든 똑 부러지게 해내는 딸 민지와 달리 민수는 감도(感度)가 떨어진다. 매사에 느릿느릿 행동이 굼뜰 뿐만 아니라 “정보 해독을 야무지게 못 해” 친구들에게 무시당하기도 하고, 공부도 잘하지 못한다. “만화책 읽으면서 뒹굴뒹굴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아들을 보며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노릇. 정란과 영규는 ‘사회 부적응자가 되어 도태되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며 민수를 바라본다. 영규는 ‘어떻게 해서든’ 아이를 바꾸어 놓겠다고 다짐하지만 정란은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서, 부부 사이에는 갈등이 지속된다.

 

가족소설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는 평범한 한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가정 안에서의 소통과 단절, 사랑과 책임이라는 미명 하에 가해지는 강요와 억압의 모습을 보여준다. 작품은 가족구성원 각자의 시각에서 사건을 전개해 나가면서 “겉보기엔 다 같이 시뻘건 불안이지만 디테일에서는 다 다른 엄마의 불안, 아빠의 불안, 자식의 불안, 내 불안, 네 불안, 그들의 불안”이 있음을 깨닫게 한다. 소설가 박정애는 네 명의 인물에게 골고루 발언권을 부여한다. 독백처럼 이어지는 그들의 이야기 속에는 저마다 다른 경험이 있고, 그 안에서 공고해진 가치관이 있다. 그것은 가족을 비롯한 타인을 평가하고 바꾸려는 잣대로 작용한다.

 

이를테면, 정란과 영규에게 민수는 걱정거리일 뿐이지만 아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민수는 “나한테는 내 속도가 있는걸” 분명하게 선언할 수 있는 야무진 아이고, “삼포세대 어쩌고 하는 기사를 읽었을 때 그게 바로 내 미래라는 걸 곧바로 깨달”을 만큼 현실감각이 발달한 아이다. 정란과 영규, 민지도 마찬가지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각자 다른 이유로 각자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고, 충분히 이해 가능한 인물들이다. 문제라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임을 자부하면서도 실상은 서로의 속마음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역사소설부터 청소년소설에 이르기까지, 소설가 박정애는 다양한 연령대의 독자들과 소통해 왔다. 장편소설 『물의 말』로 ‘2001년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소현세자빈 강씨의 이야기를 담은 『강빈, 새로운 조선을 꿈꾼 여인』으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지는 ‘Herstory’를 복원했다. 청소년 소설 『환절기』, 동화 『똥 땅 나라에서 온 친구』 등을 발표하며 폭넓은 작품 활동을 이어온 작가는 가족소설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를 통해 “제 불안에 눈멀어 자식을, 배우자를 짓누르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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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해서’라는 이름의 억압


누구나 공감할 만한 가족의 모습이 담겨있어요.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도 반영되어 있나요?

 

저 역시도 경험에 갇혀서 아이들을 판단하더라고요. 저희 부모님은 자녀 교육에 신경을 쓰실 여력이 없으셨거든요. 그저 먹고 사는 데 바빠서, 밥만 먹여주고 학교만 보내주면 다 될 줄 아셨죠.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잘 헤쳐 온 것 같은데, 저희 아이들도 그럴 줄 알았어요. 저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좋은 환경에 있기도 하고, 별로 신경 안 써도 잘 해나갈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공부를 잘하지 못하더라고요(웃음). 학습지도 시켜주고 도움을 줘 봤는데 시큰둥하고요. 이렇다 할 효과는 없고 오히려 트러블만 생기더라고요.

 

그럴 때는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잖아요.


남편하고 서로 탓하는 거예요. 남편은 자식 교육에 대한 책임이 일차적으로 저한테 있다면서 직무유기라는 식으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저희 남편은 오기도 좀 있고 경쟁심도 있는 사람인데, 아이들은 그렇지가 않아요. 아들, 딸이 다 그래요(웃음). 그렇다 보니까 남편은 ‘저렇게 해서는 사회에서 루저 밖에 안 된다’고 판단해 버리고, 자식 교육에 실패했다는 공포심과 불안에 갇혀서 아이들을 잡기 시작하는 거예요. 제가 못하면 자신이 하겠다면서요. 그런 게 가족의 삶을 파괴하더라고요.

 

소설 속 영규의 모습과도 흡사한 것 같아요(웃음).


비슷한데요. 저희 아들이 하는 말로는 영규가 아빠보다 훨씬 낫다고 하더라고요. 더 착하대요(웃음).

 

작품에 그려져 있듯이, 부모는 자신의 경험으로 아이를 평가하고 이끌죠.


자식한테 좋은 걸 해준다는 명분이 있죠. 나는 너를 사랑하고, 그래서 너한테 제일 좋은 걸 위해서 내가 희생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아이를 억압하고 압박하는 거거든요. 아이 자신의 경험과 삶, 꿈이 있는 건데 그걸 무시하는 거죠. 저는 부모들이 자기만의 우물에 갇혀있다고 생각해요. 자식한테 맹목적인 사랑을 주는 건 맞지만, 그 맹목이 참 무섭다는 거죠. 눈이 멀어서 안 보이는 거잖아요. ‘이건 널 위한 거야’라는 생각에 눈이 멀어서 제대로 못 보는 거예요.

 

정란과 영규는 각자의 성장기를 떠올리는데요. 지금 민수와 민지가 살고 있는 환경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에요.


일단은 조금 달라졌죠.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논리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개별적으로 다 다르죠. 그런데 다 똑같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경험치를 적용하면 트러블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귀여운 아이 매 한 대 더 때리고 미운 아이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건 공동체가 살아있었던 농경사회에서 허용되던 이야기예요. 그때는 공동체 안에서의 예의범절이 굉장히 중요했고, 어른을 섬기고 제사를 지내는 게 중요했으니까요.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잖아요. 그런데 그때의 경험치를 그대로 적용하면 안 되죠.

 

민수는 뭔가 부족하고 걱정스러운 아이로 비춰져요. 그런데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전혀 다르죠.


저도 그런 걸 느껴요. 예전에 아들을 볼 때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있었는데, 아이가 쓴 시를 읽고 놀랐던 적이 있거든요. 우리가 정말 나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한다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자식을 키우면서 같이 성장을 한다고 하나 봐요.

 

어떤 시였나요?


나무 그늘 속에서 바라본 먼지가 아름다워 보인다는 내용이었어요.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모습이 예뻐서 손을 뻗었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잡을 수가 없었고, 그냥 바라보니까 먼지가 스르륵 가라앉아서 자기한테 왔다고요. 그러면서 우리가 뭔가를 좋아할 때는 잡기 위해서 손을 휘두르고 강압적으로 하면 안 되고, 바라보고 있으면 그것이 오고 싶을 때 오는 거라고 썼더라고요.

 

문학 소년이었네요(웃음). 재능을 키워주면 시인이 될 수도 있겠다, 하고 기대하지는 않으셨나요?

 
부모가 기대를 너무 많이 하는 게 일방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인이 되면 되는 거지, 하고 기대는 안 하려고 했어요.

 

아드님께서 ‘탈학교 청소년’으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아들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고요. 딸은 중학교 때 그만뒀어요. 힘들었어요(웃음).

 

주위 학부모들이 ‘정말 큰 결정을 하셨다, 나라면 못 했을 것 같다’고 말하지 않던가요?


그렇죠. 그런데 학교를 다니는 게 ‘잘 사는’ 것보다 우선순위는 아니잖아요. 학교를 다니는 일이 삶을 갉아먹는다면 관둬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 상황이라면 학교를 그만두는 게 용기라고 생각해요. 직장을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이러다 죽겠다’ 싶으면 관둬야죠. 그런데 사람들이 차라리 죽는 쪽을 택하는 경우들이 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죽음을 택하는 거죠. 제 우선순위는 ‘일단 살고 보자’는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 결혼생활을 유지하거나 직장을 끝까지 다니거나 학교를 졸업하는 게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죽을 것 같다고 생각될 때는 관둬야 되는 거죠. 그래서 아이들한테도 관두라고 했고, 지금은 ‘잘 살고’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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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신의 우물에 갇혀 있다


정란과 아이를 지켜봐 주자는 입장이에요. 그래서 영규와 갈등을 빚고요. 영규가 매정한 아버지로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에서는 정란과 같은 선택을 하기가 더 힘들 것 같아요.


그럼요. 도 닦아야 되는 거죠(웃음). 정란도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렇게 혁명적인 인물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회가 정해놓은 루트를 무리 없이 따라갔다면 그대로 밀고 나갔을 거예요. 그런데 아이들이 굉장히 힘들어하니까, 엄마는 그 힘듦에 공감을 하는 거죠. 그리고 ‘한계선을 넘어가면 안 되겠구나, 일단 살아야 되겠구나’ 생각하는 거예요. 공감력이 더 뛰어난 거죠. 그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밀어붙이면 여러 가지 비극이 발생하잖아요.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굉장히 높은 것만 봐도 그렇죠. 당사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가족이 필요해요.

 

정희성 시인의 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가 인물들 사이를 연결 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평소 작가님께서 좋아하고 아끼는 시인가요?


네, 대학 시절부터 좋아한 시예요. 그때 처음 시를 봤을 때는 연애감정이 먼저 느껴졌어요. 제가 누군가를 짝사랑하고 있었거든요(웃음). 그런데 시의 의미는 언제 읽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더라고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시가 다른 의미로 와 닿았어요. (시 구절처럼) 모든 인간과 인간의 만남이 결국은 한 그리움과 다른 그리움의 만남이 아닐까 싶어요. 이 소설에서 포물선이 의미하는 바와도 연결되죠.

 

영규는 경험으로 알고 있죠. 우리 사회에서 민수 같은 아이가 어떤 일을 겪어야 하는지. “많이 달라졌다지만 한국 사회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이를 강하게 키우려고 할 뿐이에요.


그러니까요. 그런 부분마저 없었으면 정란이 같이 안 살았을 것 같아요. 서로 방식이 많이 달라도 자식을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마음은 똑같은 거죠. 그렇다 해도 아빠도 달라질 필요가 있는 거고요. 자기 방식만 고집하는 안 되잖아요. 파국에 이르기 전에 변화하는 계기가 와야 하는데, 이 소설을 읽는 행위를 통해서 그런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어요.

 

많은 남편들이 소설을 읽고 위안을 받을 것 같아요. ‘내 마음이 바로 이런 건데’ 하고요.


그렇겠죠. 소설을 읽으시고 자기만의 우물에 갇혀있다는 걸 깨달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나의 불안과 공포가 100% 옳은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도 자신만의 고민을 하면서 자기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건데, 그 사실을 알고 이제는 조금 믿고 지켜봐 줬으면 좋겠어요. 엄마들도 마찬가지고요.

 

이번 소설은 일부러 힘을 많이 빼고 쓰신 것 같아요. 어렵지 않게 쓰시려고 노력하신 것 같고요.


그럼요. 예전에 제가 쓴 역사소설을 읽고 어떤 친구가 ‘접근불가’라고 해서 조금 상처받았던 적도 있어요(웃음). 그런 데 이번 소설을 읽은 친구는 순식간에 잘 읽었다고, 자기와 아이들의 이야기 같았다고, 반성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소설을 쓴 보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사실 민수는 정말 사랑스러운 아이인 것 같아요. 생각도 깊고, 허를 찌르는 통찰력을 보여주기도 해요.


어른들이 생각 있는 척하지만, 사실 이야기를 나눠보면 결국은 다 돈으로 귀결된다는 것도 알고 있죠. 삶의 본질과 자기 성격도 잘 알고 있고요. 어른들은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라고 말하지만, 사실 열심히 노력하는 게 헛일일 수도 있거든요. 민수는 그걸 간파하고 ‘나는 내 성격대로 나의 삶을 살겠다’고 선언하는 거예요. 이런 아이를 사랑스럽다고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민수 같은 아이를 두고 루저라느니, 인생을 포기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낙인을 찍잖아요.

 

정란의 친구인 춘희는 네팔 사람 샤말과 결혼해요. 두 사람은 언어가 잘 통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잘 소통하죠.


사실 우리도 틀리게 볼 때가 많거든요. 글자 하나도 잘못 읽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보고 듣고 기억하는 것만 맞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나는 맞게 이야기하는데 네가 잘못 생각하는 거다’라고 말할 때가 많죠. 춘희와 샤말은 항상 ‘내가 틀릴 수 있다, 내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는 전제를 가지고 이야기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을 가진 자일수록 ‘내가 보고 들은 게 맞아, 내 기억이 정확해’라는 전제 하에서 이야기하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서로 부딪히는 거죠. 부모와 자식이 이야기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언어는 항상 미끄러지기 때문에 아이들의 진심을 100% 전달하지 못해요.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경청하려고 노력하면서 들어야 돼요. 그런데 액면 그대로 언어를 듣고, 심지어 잘못 들을 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화내고 윽박지르는 경우가 많죠.

 

우리는 가족에 대해 ‘당연히’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더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요.


그렇죠. 특히 부모가 자식한테 그러잖아요. 자식 자신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해요. ‘내 속으로 낳았는데 내가 몰라?’라고 하면서요. 분명히 독립된 개체인데도, 그 자신보다 내가 더 잘 안다는 오만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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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이 계속되니까, 부지런히 씁니다


정란은 “선생으로서, 엄마로서, 내 좌표가 어디인지 모르겠어”라고 말합니다. 작가님도 같은 질문을 품을 때가 있으세요?


그럼요, 많죠(웃음). 엄마로서도 그렇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때도 그렇고,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사회에서 바라는 것, 살아남는 방법과 다를 때가 있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지도를 해줘야 될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죠.

 

전업 주부, 전업 작가가 아니시잖아요. 집필 시간이 많이 확보되지 않아서 힘드실 것 같아요.

 

네, 이번 소설은 작년 여름방학 때 객주문학관에서 썼는데요. 저한테는 그 한 달 정도의 기간이 천국이에요(웃음). 다른 어떤 리조트에 있는 것보다 좋아요. 그런데 제가 집필을 위해서 잠시 집을 비운다고 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식구들 밥은 어떻게 하고 가냐’고 해요(웃음). 저는 전업주부가 아닌데도 불구하고요. 아직까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차별적인지 보여주는 대목이죠.

 

남성 작가들의 경우는 다르겠죠? 전업 작가라고 해도 더 자유로울 거고요.


자신이 전업 작가이고 부인이 생계를 책임진다고 해도, 어디 갈 때 ‘식구들 밥은 어떻게 하고?’라는 이야기는 절대 안 듣잖아요. 그런데 저는 전업 작가도 아니고, 생계도 책임지면서 글도 쓰는데, 그래도 밥은 어떻게 하냐는 이야기를 들어요. 웬만하면 다들 그 이야기를 해요.

 

작가, 엄마, 선생님의 역할을 다 하시는 게 쉽지 않잖아요. 하나의 역할에만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세요?


잠깐씩 그런 생각이 드는데요. 그렇게 흔들리면서 사는 게 글을 쓰는 데는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늘 고민하게 하니까요. 어떤 분들은 학교에서 자리를 잡고 나면 글을 안 쓰는데, 저는 그래도 부지런히 쓴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고민이 계속 되니까 부지런히 쓰게 되는 거예요. 고민하고 생각하면 표현 욕망이 생겨서 글을 쓰고 싶거든요.

 

“소설을 쓰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감정이입이 될 때가 있다. 이번에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하셨는데요. 아무래도 정란에게 동질감을 많이 느끼셨겠죠?


정란과 제가 성격의 여러 단면들이 비슷해요. 청소년기에 겪었던 것도 비슷하고, 성격이 조금 우울한 것도 비슷하고요. 그런 모습들이 잘 투영이 되어 있죠(웃음).

 

아이들을 키우시면서 청소년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어요.


지금은 그래도 아이들이 다 커서 마음 편히 어디를 갈 수 있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는 그렇지 않았죠. 제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때는 그때예요. 아이들이 어릴 때요. 잠깐만 눈을 돌려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니까 너무 불안하잖아요. 계속 아이들을 주시해야 하는데, 한편으로 저는 한 인간으로서 소설가로서 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맡기는 짧은 시간 동안 집중해서 글을 써야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쓴 글을 아이들은 읽지 못하니까, 같이 소통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어서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됐죠. 그런데 저한테도 도움이 많이 됐어요. 안 쓰던 글을 처음 써보게 됐으니까요. 작품을 쓰다가 중간 중간 아이들에게 보여줬는데, 바로 반응이 오더라고요. 아이들은 재미없으면 도망가거나 TV를 켜요(웃음). 그러면 쓰던 글을 폐기하고, 재밌어하는 부분을 더 늘렸죠. 어떻게 보면 서로 도움이 된 거예요. 제가 혼란스럽고 힘든 시기를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다른 길을 찾을 수 있었죠.

 

“책이 사람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청소년기다. 나도 청소년기에 읽은 책이 내 삶의 방향을 바꿨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작가님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 책은 무엇이었나요?


하나만 꼽자면, 꼭 청소년 책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인에어』예요. 제인에어가 저의 롤모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시골에는 그런 여성 롤모델이 없거든요. 제가 살았던 당시 청도에는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다, 라는 생각으로 사시는 여자 분들이 많았어요. 대구로 이사 간 뒤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요. 그런데 제인에어는 주체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거든요. 그리고 저랑 비슷한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좋아하는 것도 그렇고, 외롭고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는 것도 그렇고요. 『제인에어』에서 얻은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이야기하면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자’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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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가슴에 그리움이 있기를


등단과 동시에 ‘새로운 페미니즘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으셨어요. 『물의 말』, 『에덴의 서쪽』, 『춤에 부치는 노래』, 『죽죽선녀를 만나다』, 『다섯 장의 짧은 다이어리』 등 많은 작품 속에서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고요. 페미니즘이라는 틀에 갇히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하세요?


여성에게는 페미니즘 자체가 삶이지, 제가 갇혀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제 성향이 그렇게 투쟁적이지는 않고 조금 타협적이라서 아주 급진적이지는 않고요. 또 시골에서 농사짓는 집에서 소 키우면서 자랐기 때문에 원초적인 보수성이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어쨌든 아들도 딸도 같이 살아야 된다는 생각인데, 그럼에도 제가 여성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의 삶의 고민으로 평생 가져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이건 어떤 주의가 아니라 내 삶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이제 곧 방학이 시작되는데요. 다시 집필에 전념하실 수 있겠어요.


네, 방학 때 한 달 정도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고요. 올해까지 객주문학관에 갈 거예요.

 

집필 중이신 작품이 있다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넓게 보면 테마는 사랑이고요. 『강빈, 새로운 조선을 꿈꾼 여인』을 쓰면서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했는데, 그때 흥미로운 이야기를 발견했어요. 강빈이 사사되기 전에 아이를 사산했거든요. 그런데 민간에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그 아이가 죽어서 태어난 게 아니고 한 비구니에게 맡겨져서 자랐다고 해요.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자신이 그 아이라고 주장하는 인물이 등장해요. 숙종 때 나타난 기록이 있어요. 그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의 결말은 집필 전에 정해놓으셨나요?


계획을 세워 놓고 소설을 쓰는 편인데요. 이 소설은 너무 슬픈 이야기로 쓰고 싶지 않았어요. 저와 제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어가 있고, 주변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도 있고요. 현실의 이야기니까 어떤 바람과 희망을 담고 싶었어요. 그래서 너무 슬프지 않게, 어쨌든 희망을 주고 싶어서 이렇게 결말을 맺었고요. 사실 이 소설은 몇 년 전에 발표했던 단편을 바탕으로 쓴 건데, 그때 많은 고민들이 잉태됐었어요. 소설 쓰면서 당시의 고민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부모의 입장을 쓰다가 눈물이 나기도 하고, 아이의 입장을 쓸 때도 그랬고요.

 

가족 안의 소통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면 좋을까요?


아집에 갇혀서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아빠도 엄마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나라는 자식 교육의 책임을 엄마한테 지우니까 호랑이 엄마가 되기도 하잖아요. 오히려 아빠가 너그럽고요. 그럴 때 엄마도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등감을 자식한테 투사할 때가 있죠. 그게 유일한 기준인 것처럼 자식을 통제하려 하고요. 그러면 가족구성원 전체가 괴로워요. 자식의 입장에서도 부모를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자기 눈을 너무 믿지 말고요. 그러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해야 되는데, 이 소설이 그런 계기를 제공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잘’ 살아야 할 텐데,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소설에서 민수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가슴에 그리움을 잃지 않고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삶에 쫓기면서 월급 받기 위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자지가 텅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잖아요. 아무 그리움이 없고요. 제가 생각할 때 ‘잘 사는 것’은 어떤 간절한 그리움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 역시 독자들과 제 자신이 감동하는 작품에 대한 그리움을 여전히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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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박정애 저 | 사계절
1998년 등단해 2001년 한겨레문학상을 받고, 소설부터 동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를 아우르며 자신만의 스토리텔링을 선보인 소설가 박정애의 가족소설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가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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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애 #한 포물선이 다른 포물선에게 #가족 #소설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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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사랑

2017.06.29

여러 이야기 귀기울이고 갑니다... 소설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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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