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희 “이혼 후 알게 된 것을 기록하고 싶었다”
이혼 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우리는 사랑의 이야기는 많이 하면서 왜 이별의 이야기에는 인색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많은 이혼녀들의 상황을 보니까, 특히 한국에서는 이혼녀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더라고요. 누군가는 조금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혼의 이야기를 들고 나서고, 그것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글ㆍ사진 임나리
2017.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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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이별 이야기에 인색할까?


『관능적인 삶』, 『유혹의 학교』의 이서희 작가가 세 번째 에세이 『이혼일기』를 출간했다. 이번 책에는 이혼보다 먼저 찾아왔던 사랑의 순간들, 이혼 이후에 남겨진 것들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작가는 “사랑의 이야기가 많은 만큼 이별의 이야기도 무수하다”며 “어쩌면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이혼의 이야기가 필요한지 모른다”고 적고 있다.

 

모든 사랑이 달콤한 사랑의 이야기로 마무리되지는 않는다. 모든 사랑의 이야기는 이별의 이야기로 끝이 난다. 생전의 이별이든 앞선 죽음이든 인간의 관계는 이별을 예비한다. 미리 이별에 압도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좀 더 이별에 편안하고 떳떳할 수 있어야 한다. 『이혼일기』 217쪽)

 

책이 나온 다음날인 9월 1일, 이서희 저자와 함께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행사의 시작을 알린 이는 싱어송라이터 김사월. 그녀는 「어떤 호텔」, 「젊은 여자」, 「프라하」, 「접속」 등 사랑 이야기가 담긴 자신의 노래를 들려줬다. “사랑을 너무 좋아해서 괴롭거나 외로울 일들이 많다”는 김사월은 “그런 걸 추구할수록 상대를 목 조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요즘이다. 그래서 『이혼일기』를 더 재밌게 읽었는지도 모르겠다”며 마지막 곡 「너무 많은 연애」를 남기고 떠났다.

 

뒤를 이어 무대에 오른 사람은 사회를 맡은 변영주 감독이었다. 영화 <화차>, <낮은 목소리>,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등을 연출한 그녀는 여성과 소수자, 해고 노동자 문제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며 행동하고 있다. 변영주 감독은 이서희 작가를 소개하기에 앞서 네 명의 독자와 만났다. 그녀들은 인상 깊었던 책 속 구절을 낭독함으로써 본격적인 북 콘서트의 시작을 알렸다.

 

이혼은 중대한 삶의 변화이자 결정이지만, 무작정 애도의 표현을 받아야만 하는 일은 아니다. 이혼했다고 해서 이전의 결혼 생활이 모두 실패나 불행이라는 표식을 달아야 할 이유도 없다. 남편이 개자식이어서 아내가 쌍년이어서 맞이하는 파경은 생각보다 드물다. 우리의 경우, 살다보니 함께하는 생활이 더 이상 즐겁지 않아졌고 마침내 그것을 넘어서 커다란 고통이 되었기에 내린 결정이었다. 오히려 이혼을 받아들이게 되자 차라리 해방감을 느꼈다. 이혼은 어쩌면, 고통에의 출구이기도 했다. (『이혼일기』 212쪽)

 

변영주 감독의 소개로 독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이서희 작가는 “『이혼일기』는 출판사 편집장님의 제안으로 쓰기 시작한 책”이라며 몇 차례 고사한 끝에 집필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서희 : 이혼 과정을 겪으면서 많은 분들을 만났는데 ‘우리는 사랑의 이야기는 많이 하면서 왜 이별의 이야기에는 인색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많은 이혼녀들의 상황을 보니까, 특히 한국에서는 이혼녀들의 존재 자체가 부정당하더라고요. 누군가는 조금 더 당당하고 떳떳하게 이혼의 이야기를 들고 나서고, 그것이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라는 걸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용기를 냈죠. (이혼 과정에) 많은 사람들이 연루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걸 정확하고 내밀하게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내면의 소용돌이나 성찰 같은 것들을 담았고요. 제 인생에서 이혼은 성장의 계기였다고 생각해요. 이혼의 과정을 묘사하기보다 제가 알게 된 것들에 대해서 기록해 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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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일기』, 언젠가 딸이 읽어주면 좋겠다


변영주 : 자기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이 빠질 수 있는 가장 큰 함정은 자기 연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혼일기』의 놀라운 점은, 작가가 묘사하는 문장들이 그녀의 심장 안이 아니라 그 순간에 느꼈거나 바라봤던 풍경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거예요. 우리로 하여금 작가에게 집중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그녀가 겪어냈던 시간에 집중하게 만들죠. 주관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개관적인 감수성을 느끼게 하는 거예요. 독자들이 씨줄과 날줄 사이에 있는 감정을 캐치하면서 자기 이야기로 환원되는 순간이 있죠. 어떤 의미에서는 연대에 관한 글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혼일기』를 읽으시면 이서희 작가에 대한 생각보다, 책을 읽고 있는 자신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런 것들이 이 책의 장점인 것 같아요.

 

이서희 작가는 “이번 책을 쓰면서 굉장히 신비한 경험을 했다”고 고백했다. 비로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이서희 : 이전까지는 글을 쓰는 것에 확신이 없었어요. ‘글을 쓰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일까?’ 싶었고, 저는 언제나 도망가는 걸 좋아하는 여자라서 ‘쓰다가 아닌 것 같으면 관두고 사라져야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 책을 쓰면서 ‘정말 글을 쓰고 싶고 세상으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다른 글보다도 저를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게 됐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예전에 썼던 글들은 쓰면서 즐거웠는데, 이번에는 쓰는 동안 괴로웠어요. 퇴고를 마치고 나서 한 번도 보지도 않았어요. 너무 꼴 보기가 싫은 거예요. 고문하듯이 내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다음 책을 내고 싶다는 열망을 가장 크게 느꼈어요. 독자들에게도 이 책이 삶을 변화시키고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됐고요.

 

이번 책을 읽으면서 변영주 감독은 “이서희 작가가 의외로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녀가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을 명백하게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다고. 이서희 작가는 “기준을 바깥에 두고 있으면 공격이 어디에서 들어올지 모른다. 그러면 계속 방어해야 된다. 그런데 중심을 내 안에 두면 그때부터는 방어의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삶이 된다. 더 이상 쉴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서희 : ‘결혼=행복’이라고 설정하고 나서부터 삶이 불행해지더라고요. 사람들은 행복을 지켜야 한다고 믿거든요. 그러면 삶 자체가 굉장히 작아져요. 이만큼만 지키면 사라질 것 같은데, 그걸 지키는 게 가장 힘들어요. 그런데 삶을 확장시키는 걸로 나아가면 관점이 달라져요. 저는 행복이라는 말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데, 미국에서는 특히 그런 질문을 많이 해요. ‘너 행복하니? 그게 제일 중요해’라고요. 그때마다 제가 대답하는 건 ‘나는 행복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히면서부터 가장 불편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기쁨의 총량에 대해서 생각한다’는 거예요. 내가 지금 기쁘고 그 에너지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요. 애써 붙잡아두지 않으려고 하고요. 그런 연습을 많이 하면서 강해진 것 같아요.

 

두 사람의 대화가 끝나갈 무렵, 변영주 감독은 “언젠가 딸아이가 이 책을 읽을 수도 있겠다”고 말했다. 이서희 작가는 “마치 타임캡슐을 묻는 것 같은 기분으로 아이들에게 쓴 글이 많이 실려 있다”고 답했다.

 

이서희 : 언젠가 제 딸이 이 글을 읽어주면 좋겠다는 기분으로 쓰기 시작했어요. 그런 순간을 자꾸 상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딸에게 쓰는 편지 같은 느낌의 글이 많이 실린 것 같아요. 당장은 (읽기를) 바라지 않고요. 언젠가 읽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는 언어가 일종의 발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발견의 기쁨을 엄마의 책, 글과 함께 누릴 수 있으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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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지’ 계속 생각해요


이서희 작가와 『이혼일기』, 변영주 감독과 함께한 북콘서트는 독자들과의 질의응답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었다.

 

유혹에 실패하면 패배의 기억이 오래 남아요. 상대를 좋아할 수 있어야 유혹에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를 좋아할 수 있는 비결은 잘 모르겠는데요(웃음). 끊임없이 발견해 나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좋아해줄 의지를 갖기 시작하면, 그 사람이 얼마나 탁월한 사람인지에 관해서 계속 생각해요. 대단하거나 훌륭하지 않은 사람이어도 돼요. 그러다 보면 정말 탁월하고 고유한 부분이 보여요. 물론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사람도 많지만요. 어쨌든 그런 마음을 먹었다는 건 (상대가) 그만큼의 실마리를 줬기 때문이잖아요. 그걸 끄집어내는 거죠. 그러면 누구나 (탁월한 모습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있다고 생각해요. 유혹에 실패했을 때 패배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다음 때를 기다리는 거죠(웃음). 인생이 얼마나 길어요. 앞으로 삶이 어떻게 진행될지도 모르고요. 의연하게 버티면서 ‘다음에 기회가 오겠지’ 하고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변하는 것 같아요.

 

결혼 생활을 하시면서 ‘나는 사라지고 아내, 며느리, 엄마만 남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신 적 있나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이 책의 많은 부분이 그것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저는 조금 달랐던 게, 한 동안은 지워지는 게 목표였어요. 저를 완전히 지우고 싶다고 생각해서 결혼을 선택했고요. 결혼하면서 ‘나는 이제 스위치를 끄겠다’고 말했어요. 스위치를 꺼서 까맣게 되면 나는 보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스위치를 끄니까 제가 안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제가 볼 수 없게 되더라고요. 주변이 깜깜해지니까요. 그 눈 먼 행복을 절정으로 누렸던 것 같기도 해요. 굉장히 행복했어요. 그렇게 지워지는 과정을 겪으면서 내가 쉽게 지워져 버릴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깨닫고 겸손함도 배웠고요. 제가 주부로서 살았던 시간은 고통스러웠지만 흥겹게 제 삶을 가지고 놀았던 기간이라고 생각해요. 그 경험을 통해서 제가 어느 정도까지 용납할 수 있고 없는지 확실히 알았어요. 지금의 행보를 결정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됐고요. 삶이 이 순간에서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지금이 다른 순간의 도약판이 될 수도 있고요. 그렇게 생각하면 모든 게 비참하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아요.

 

엄마로서 아이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는 느낌이에요. 그렇지만 엄마도 정서적인 보살핌이 필요하고 욕구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아이에게 말해주거나 들키는 게 편안하지 않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매번 갱신해야 돼요. 저는 어릴 때부터 많이 이야기했어요. ‘너희도 가끔 짜증내잖아요. 엄마도 지금 짜증내고 싶어. 그런데 너희한테 그러고 싶지는 않으니까 잠깐 혼자 있을게’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많이 했고요. 너희가 친구들이랑 노는 게 재밌는 것처럼 엄마도 놀고 싶다는 말도 했어요. 제일 안 좋은 건 못 할 일을 할 것처럼 구는 게 아닐까 싶어요. 애써 아닌 척 하는 것도 그렇고요. 아이가 성장해서 좋은 건,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점점 더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제가 말이 느려서 그런지, 대부분의 여성은 저와 소통하는 걸 싫어해요.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방어적인 감정을 갖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소통을 잘 하려면 자신의 리듬보다 상대의 리듬에 집중할 수 있어야 돼요. 『유혹의 학교』에서도 유혹은 협상 테이블과 같다고 이야기했는데요. 만약 상대가 10을 제시하는데 내가 5밖에 안 되면 ‘우리 한 번 10까지 가볼까?’ 하고 노력하는 과정이 유혹인 것 같아요. 그렇게 시도하시고 어느 정도는 제안을 해보시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내가 이만큼 했으니까 상대가 여기까지는 와주지 않을까?’ 하고 기대하는 것보다는,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는 방식을 먼저 고민해 보시고 연습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우리 안에 굉장히 많은 자아가 있는데, 그 중에 무엇을 꺼내서 쓰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만나면서 새로운 ‘나’가 발견될 거고, 책이나 영화를 보는 간접 경험을 통해서도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끄집어내는 데 도움을 받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혼일기 이서희 저 | 아토포스
타자로부터 연유했던 여인은 사랑과 이별의 계절을 거쳐 자신에게로 귀착한다. 그러고는 다시 여행을 준비한다. 이제 비로소 타자에게로 닿을 수 있으니 삶은 다시 뜨겁고 아름답고 충만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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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