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입구에 작은 오뎅바가 생겼을 때, 이곳이 곧 참새방앗간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채 열 자리나 되려나, 키 높은 바 의자에 엉덩이를 걸치고 꼬치에 끼워진 어묵을 고른다. 고향에는 가래떡을 통째로 오뎅 국물에 넣어 먹는 물떡꼬치가 있는데, 대신 여기엔 치즈가 쏙쏙 들어간 꼬치가 있다. 꼬치 한 개가 그다지 비싸지 않은 터라 '제발 세 개 이상 먹어주세요' 라고 오뎅바에 적혀 있지만 늘어가는 건 꼬치보다는 술잔이다.
지인과 동계올림픽 팀추월 경기에 대해 얘기하다가, 팀음주 경기를 창설했다. 쉽게 상상하듯 세 명을 한 팀으로 하여 더 많은 술을 마시는 편이 이기는 간단한 경기가 아니다. 각 팀마다 주당 셋을 모아 산해진미와 함께 술을 제공하는데, 대신 가장 술을 적게 먹은 팀이 이기는 경기다. 경기가 시작하기 전에 일단 세 잔씩 술을 먼저 마시게 한다는 규칙이 있다. 아예 술을 안 마시는 것보다 마시다가 멈추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다.
술 권하는 책이라면 역시 『술꾼 도시 처녀들』 이다. 혼자 마시는 게 어쩐지 쓸쓸할 때 이 책을 보면 혼자라도 외롭지 않다. 찬물을 꾹 참고 달려가 헉헉거리며 땡볕 아래 마시는 ‘금욕적 맥주’의 기쁨에 가슴 깊이 공감하는 사람들이다. 간을 지키기 위해 주3회 음주를 결심하지만 주3회란 주말 별도라고 말해주는 친절한 친구들이 이 책에 있다.
혼자라도 바가 있는 곳이라면 딱히 눈치가 보이지 않아 좋다. 위스키나 칵테일을 파는 곳이라면 꼭 바가 있어 종종 칵테일바에 들리게 된다. 이런 곳은 주로 2차로 오는 곳이라 초저녁에는 한가하다. 막 문을 열어 대걸레가 옆에 서 있고, 탁자 위에 전날의 접시가 널브러져 있어도 어수선한 분위기가 되레 좋아 침침한 바에 팔짱을 끼고 웅크려 앉는다. 이런 곳에서는 안주를 시키지 않아도 좋고 크래커와 블랙올리브, 치즈 몇 조각도 좋다. 방울토마토를 뜨거운 물에 데쳐 껍질을 벗기고 올리브유와 발사믹 식초, 꿀과 바질을 섞어 버무리면 어디에나 어울리는 안주가 된다. 같이 파는 데가 없어서 말이지 삼겹살이나 닭갈비, 감자탕에도 나는 생맥주를 곁들이고 싶다.
술이 떨어지면 요리용 맛술이라도 기웃거릴 만큼 술을 가리는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겐 생맥주가 제일이다. 애호가들이 비평하는 국산맥주도 가리지 않는다. 보리차에 탄산수를 타놔도 모를 거라며 무딘 혀를 나무라지만 나름 내게도 철칙은 있다. 피치 못할 사정이 아니고서야, 병맥주든 캔맥주든 반드시 유리컵에 따라 마신다. 투명한 유리컵으로 술이 얼마나 남았는지 미리 알기 위해서일지도. 생맥주가 너무 좋아 기계라도 들여놓고 싶었지만, 혼자 생맥주 기계와 노즐을 관리하는 것은 여러모로 번거로운 일이다. 공동주택에 생맥주 탱크를 들여 수도꼭지처럼 각 가정으로 생맥주가 공급되는 맥주아파트를 꿈꿔보기도 한다.
술을 너무 마셨나 싶어 종종 큰 결심을 하고 금주를 선언하기도 한다. 실종일기2 <알코올 병동>을 읽으면 금주 결심에 도움이 된다. 알코올 중독자 치료병원에 입원한 저자 아즈마 히데오가 자신의 경험을 각색하여 그린 책이다. '여러분도 언제 입원하게 될지 모르니 자세하게 설명하도록 하겠다'라고 가슴 뜨끔하게 시작한다. "의존증 환자는 취함으로써 자신을 확대하는 만능감이나 합체감 같은 도취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퇴행상태가 되었을 때의 행복감을 잊지 못하고 같은 걸 반복하게 되는 거지요." 이런 대사에 밑줄을 그으며 의지를 불태워보지만 영화 범죄의 재구성의 대사를 빌리자면, “술 끊는 것 쉬워요. 평생 백 번도 더 끊어 봤어요.”
술과 함께 이야기 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소설집이 있다. 권여선 작가의 『안녕 주정뱅이』 는 술을 권하지도, 말리지도 않는 책이다. 첫 번째 작품인 '봄밤'에는 술로 이어진, 그렇지만 술로 무너져 가는 두 사람의 처연한 사랑 이야기가 나온다. 책을 읽는 내내 먹먹하여 한잔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면서도, 차마 한잔 이상 마실 수 없었던 것을 보니 술을 말리는 책에 가까우려나.
전자책을 보게 된 뒤에 혼자 마시는 술이 늘었다. 대부분의 술집이나 바는 어두컴컴하여 독서를 하며 한잔 하기란 여간 난감하지 않다. 그러나 전자책은 빛이 나기 때문에 어느 술집에서라도 곁들이기 꽤 좋다. 기승전 맥주다. 오늘은 책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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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도시처녀들미깡 글, 그림 | 예담
30대 중반 여성을 압박하는 사회 편견을 맥주처럼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가 하면 그들의 말 못할 속앓이는 소주처럼 속 깊게 보듬는다.
고여주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
bono8713
2018.03.02
찻잎미경
2018.02.28
혼자 술 마시기에 딱 좋은 책이라.. '술꾼 도시 처녀들', 술 권하는 책이라, 정말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