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어딘가 다르다. 타이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를 듣자마자 든 생각이다. 이내 5개의 신곡과 2개의 보너스 트랙이 담긴 신보를 재생, 역시나 처음의 감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느꼈다. 2022년 싱글 'Athletic girl'로 건강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이들이 1년 만에 내놓은 EP는 기존에 주목한 '건강함'의 범위를 더욱 넓히려 든다. 궤는 흔히 말하는 4세대 아이돌 즉, 아이브의 'Love dive', (여자)아이들의 'Tomboy'와 같은 '주체성'이나 접근이 다르다. 더 쉽고, 더 넓고, 더 두껍다.
밴드 데이식스의 영케이가 가사를 쓴 타이틀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전 국민 히트송 거북이의 '빙고'가 생각날 만큼 멜로디가 쉽고 노랫말이 따뜻하다. 전자가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 했다면 이 곡은 스스로를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로 지칭하며 '삭막한 이 도시가 아름답게 물들 때까지' 힘내자고 노래한다. 가사 속 'I'll be alright'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는 위로와 다짐이 곡과 음반의 핵심을 관통했다.
이들의 주체성은 사랑과 성별, 다시 말해 고착된 여성적인 이미지를 깨부수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삶에 굴복하지 않고 이겨내리라는 접근에서 주체적이다. 이는 첫 곡 'Ring the alarm'에서도 나타난다. 일면 블랙핑크의 '뚜두뚜두'가 떠오르는 노래는 힙합 질감을 기초로 해 미니멀한 전자음과 휘파람을 효과음으로 얹어 '시간 됐어 일어나요 Ring the alarm'을 너머 'Everything's gonna be alright / 다 잘 될 거니까'는 외침을 농도 깊게 전한다.
아이돌의 맑고 청량한 정형화된 모습을 내비치는 팬쏭 'You are my key(for m1-key)'를 제외한 'Crown jewel', 'Dream trip' 역시 메시지는 같다. 특히 'Crown jewel'은 태국 아티스트 Tachaya의 힘을 빌려 태국 악기인 라나트, 자케와 우리나라 전통 악기 꽹과리를 한데 뒤섞어 선율을 만들어 냈는데, 그 조합이 매끄럽다 못해 감칠맛 난다. 블랙핑크 'Pink venom', 어거스트디 '대취타', 송민호 '아낙네' 등 한국의 소리를 노래에 넣은 이전 곡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
AI가 그룹의 멤버가 되거나 멤버가 초월적인 힘을 가진 캐릭터로 소개되곤 하는 작금의 복잡한 K팝 월드에 단순하지만 힘센 그룹이 나왔다. 오빠, 삼촌에게 말을 걸거나 혹은 언니, 누나의 모습으로 손 내밀지 않고 '나'로서 다가오는 하이키식 위로가 범대중적인 호소력을 터트린다. 계산됐든 계산되지 않았든 부담 없고 불편하지 않은 '대중 가수'의 시작이다.
추천기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