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포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순간, 실시간으로 수상 소감을 전한 편집자가 있다. 마침 욘 포세의 원고를 편집하고 있던, 2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맞힌 화제의 주인공, 유상훈 민음사 편집자를 만나 당시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유튜브 채널 민음사TV에서 노벨 문학상 발표 당시 전화로 수상소감을 한 장면이 화제가 되었어요.
노벨 문학상 시상식 당일에 세계문학팀은 항상 야근을 해요. 욘 포세가 상을 받을 거라고 전혀 기대하지 않아서 퇴근을 하려던 와중에 수상 소식을 들었죠. 유튜브 영상에 나온 것처럼 전화를 받을 때는 예상을 못 하고 있었으니 경황이 없었어요. 어안이 벙벙해 몸은 바싹 굳고, 머릿속이 하얘져서 아무 말이나 한 것 같아요.
마침 욘 포세의 원고를 담당 편집하고 계셨다고요. 그 순간 기분이 남달랐을 것 같아요.
동시대에 위대하고 유명한 작가는 많잖아요. 그중에서 한 명을 골라낸다는 건 일종의 뽑기 같은 거죠. 욘 포세가 수상해서 좋다는 감정도 있지만 이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생각해야 해서 잠시 벙찐 것 같아요. 갑자기 일이 한꺼번에 밀려드니 전구 필라멘트가 끊기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아무래도 직장인으로서 할 일이 있잖아요. (웃음)
욘 포세 책은 어떻게 준비하게 되었나요?
욘 포세는 원래 희곡 작가이기 때문에 산문 자체에 독특한 매력이 있고 그게 마음에 들어서 올해 1월에 계약을 했어요. 노르웨이에 계신 손화수 선생님께 번역 부탁을 드렸고, 거의 3~4개월 만에 해주셨죠. 민음사 세계 문학 전집은 항상 체계가 똑같으니 조판만 해놓고 있었는데, 시상식 아침에 갑자기 팀장님께서 욘 포세가 받을 수도 있겠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부랴부랴 표지부터 만들었어요. 작품 속 주인공이 화가다 보니 표지도 금방 나올 수 있는 유기적인 지점이 있었고, 공교롭게도 여러 상황이 맞물려 일사천리로 책이 나올 수 있었어요. 편집이 가장 큰 숙제였는데 세계문학팀 전체가 일치단결해서 주말까지 정신없이 일한 덕에 빠르게 예약 판매를 할 수 있었어요. 인생 최초의 경험이에요. 고3 때 공부도 이렇게 안 했던 것 같아요. (웃음)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욘 포세의 매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신다면요?
시인이나 희곡 작가가 소설을 쓰면, 다른 체계 속에서 글을 쓰던 흔적이나 매력이 산문에 묻어나는 것 같아요. 욘 포세는 희곡 작가만이 쓸 수 있는 리듬감, 반복에서 오는 운율감을 소설에 잘 끌어왔어요. 여러 소설을 편집하다 보니 낯선 느낌을 주는 작품에 끌리는데, 『멜랑콜리아I-II』는 90년대에 나온 책인데도 신선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책으로 독서 모임을 몇 번 해보니, 대부분 처음에는 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지루한 진행에 부담을 느끼다가 100쪽 정도 넘어가면 반복을 통해 더 깊게 들어가는 경험을 하면서 그다음 내용이 궁금해진다고 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희곡 작가가 쓴 소설이다 보니 우울증을 앓거나 치매를 겪는 두 주인공의 정신 상태를 마치 연극에서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독서할 수 있다는 점이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2022년 아니 에르노에 이어 2023년은 욘 포세로 2년간 노벨 문학상을 예측하셨어요. 내년에는 어떤 작가를 눈 여겨 보시나요?
법칙이 없다고는 하는데 21세기 이후에는 여자와 남자가 번갈아 가며 받는 추세이긴 해요. 올가 토카르추크가 받았으면 페터 한트케가 받고, 루이즈 글릭 다음에는 압둘라자크 구르나가 받았죠. 그래서 다음엔 여자 작가가 아닐까 싶어요. 사실 저는 올해도 여자 작가가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남자 작가는 연달아 받아도 아무렇지 않으면서 여자 작가가 연달아 받으면 이례적인 선택이라고 여기는게 이상하더라고요. 이번엔 아시아에서 작가가 나올 것 같은데 중국어로 작품을 집필하는 찬쉐나 일본어와 독일어로 집필하는 다와다 요코가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하고 있습니다.
2024년은 어떻게 준비하고 계시나요?
욘 포세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모든 일정이 다 어그러졌거든요. (웃음) 후반부에 썰물인지 밀물인지 일이 산사태처럼 몰려와서 내년에는 밀린 책들을 빠르게 편집해야 할 것 같아요. 시몬 드 보부아르의 첫 작품인 『초대받은 여자』라는 소설을 준비하고 있는데, 지금 거의 3/4 정도는 끝났어요. 지금 가장 급한 작품이자 제가 또 되게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보부아르 전공자이신 강초롱 선생님께서 번역을 해주셨는데 정말 잘 나왔답니다. 독자분들께 빨리 세계 문학 전집으로 소개하고 싶어요.
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