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티가 출간하는 책을 볼 때마다 언젠가 꼭 한 번 대화를 청하고 싶었습니다. 또렷한 문제의식, 시리즈를 관통하는 연속성, 아름다운 책의 물성까지. 나아가 세 명의 편집자가 마티를 꾸려간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독자, 동료, 세상과 연결되기 위해 다방면의 활동을 펼치고 있죠. 책을 읽고 책을 만들고 책을 실천하는 출판사 마티의 조은 편집자를 서면으로 만났습니다.

많은 출판사 중 마티에 합류하시게 된 이유가 궁금합니다. 마티의 구성원 소개도 부탁드려요.
일단 마티에서 낸 책들을 꾸준히 읽고 사온 독자였어요. 편집자로 왔다 갔다 수년 일해보니 결국 제 관심과 호기심이 가는 책, 의미 있는 담론과 실천으로 이어지는 책을 만들고 동료들과 같이 고민할 수 있는지가 제게 제일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구체적으로는 앤 츠베트코비치의 『우울: 공적 감정』과 요하나 헤드바의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가 계약돼 있다는 사실이었어요. 두 저자의 글과 활동을 어설프게 따라가며 한국어판 기획을 하고 싶었지만 내부 문턱을 넘지 못했었는데, 이미 마티에……! 처음 츠베트코비치 글을 읽고 끄적인 일기를 찾아보며 ‘마티와 나, 이런 게 인연?’ 하고 들떴던 (지금은 부끄러운) 기억이 있습니다.
현재 마티는 편집자 세 명이 일하고 있어요. 기획과 편집은 서로 의견을 자주자주 나누면서 진행해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거나, 저자를 물색하거나, 책의 패키징 방향을 정하거나 단계마다 회의 시간 외에도 사무실에서 대화를 편하게 나누는 분위기예요. 평소에 이 책 저 책 얘길 시시콜콜 하는데 그러면서 공유되는 것도 많은 듯해요. 뉴스레터 발행이나 SNS 운영, 책 행사 같은 마케팅 업무도 합니다. 종종 ‘벌써 다음 각주 나가야 한다고?’ ‘쉴까?’ ‘이걸로 해 보면 어때?’ 하면서, 재밌는 아이디어를 틈틈이 모아 놓고 좀 미루기도 하면서 해나가고 있어요.
다양한 경로로 독자를 만나고 계시죠. 뉴스레터 <마티의 각주>를 발행하고 <앨라이 도서전>, <책 너머는 책이다> 등의 전시와 북페어도 활발히 참여하고 계신데, 그 과정에서 도끼처럼 선명한 자국을 남긴 장면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도끼요?! “도끼처럼”이라 하시니 발등 찍힌 듯 두려운 기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만…….(웃음) 8월 말에 서점 ‘물결서사’에서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 북토크를 했어요. 독자분들이 책이나 문서 여백에 남긴 흔적을 뜻하는 ‘마지네일리아’라는 단어를 알게 된 데 반가움을 자주 표해주시는데요. 저자인 김지승 작가가 마지네일리아라는 말을 어떻게 알게 됐고 여성적 읽기와 쓰기의 방법론으로 삼게 됐는지에 대해 얘기하다가, 마지네일리아를 잘못 기억하고 정확히 발음하지 못한 에피소드를 나눴어요. 그러고 북토크에 오셨던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이자 트랜스젠더인 독자분께서 한 친구가 디스포리아(젠더 디스포리아, 성별불쾌감)와 디아스포라 발음이 자꾸 헷갈린다고 했을 때 “그래, 우린 발음이 어려운 사람들이야”라고 말하고서 같이 웃었다는 얘길 들려주셨어요. “발음이 어려운 사람들”. 최근에 제게 선명하게 남은 말입니다. 이렇게 독자로 만난 동료 시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간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올해 군산북페어에서 민음사 신새벽 편집자님과 나눈 대화를 담은 소책자 「당신의 스타일을 찾아서」를 공개하셨습니다. 스타일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끌림이 있죠. 마티에서 독자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자리를 기획해 오면서 경험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스타일이 있을까요?
독자와 만나는 자리의 ‘스타일’이란 게 뭘지, 출판사가 하는 각종 행사와 홍보 활동에서 스타일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나 추구할 여지는 뭘지 고민스러운데요……. 가장 중요한 건 역시나 그 책의 스타일에, 시리즈나 출간 목록이 쌓여가는 모양새와 그 분위기에 영 맞지 않는 행사를 하지 않는 일이겠습니다. 막연한 말이지만요.
현재 여건과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춰 선택하고 준비하기 때문에 일관된 어떤 스타일을 구상해 놓고 구현하지 못해요. 예산과 인력이 부족하고요. SNS도 여전히 한 출판사가 책을 소개하고 보여주는 방식을 전하는 중요한 통로잖아요. 그래서 SNS에 올리는 이미지를 일관성 있게 잘 만들고 싶지만, 일단 사진을 못 찍고 디자인 능력도 없는 사람으로서 시각적인 면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티 계정의 게시물들은 마티 뉴스레터가 그러하듯 작성자 개인의 입장이 담겨 있는, 주로 편집자로서 감상과 경험이 느껴지는 특징을 지닌 듯해요. ‘영혼 있는’ 스타일이라 할까요. (헉 마티에서 나온 『진정성이라는 거짓말』이 떠오르고.)
여력이 된다면 개인적으로 책을 ‘소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다음에 대해, ‘읽은 이후’를 함께 논하는 자리를 많이 마련해 보고 싶어요. 이 책의 논의가 독자인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걸 어떤 실천과 변화로 연결할 수 있을까, 비판적으로 볼 지점은 무엇이고 그걸 보완할 방법은 뭘까 등에 대해 나누는 시간이요. 이런 형식의 책 행사가 하나의 책이 담고 있는 이야기와 감각, 주장을 더 깊게 널리 유통하는 데로도 이어질 거라 생각합니다.
행사를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종종 예상과 현실 사이에 간극이 발생하곤 합니다. 둘의 불일치로 인한 실무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우연의 즐거움도 있습니다. 혹시 관련된 경험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당연한 말이지만, 수요 예측이 항상 어렵습니다. 올해 서울국제도서전에 참가하면서 오랜만에 ‘굿즈’를 제작했는데요, 요즘 트렌드에 맞춘 아이템이 아니었고, 우리의 ‘귀여움’에 대한 감이 과연 통할까 의심이 컸는데, 웬걸 반응이 좋아 일일 판매 수량이 빠르게 동났고 마티 배지를 사려고 오픈과 함께 저희에게 직행하거나 다음 날 다시 오는 독자들도 있었어요. 예상보다 반응이 좋아서 신나기도 하고, ‘더 많이 만들걸!’ 아쉽기도 하고, 책보다 빨리 동난 게 슬프기도 하고 했습니다.
군산북페어에 가져간 진(zine) 3종에 대한 수요 예측도 얼마쯤 실패였는데요. 개중 앞서 언급되기도 한, “스타일”이 들어가는 소책자가 더 인기 있을 듯싶어 그걸 조금 더 찍었어요. 그러나 결과는 또다시…. ‘스타일을 찾는다’는 제목이 ‘문체’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잘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을 뒤늦게 아쉬워했고, 제일 먼저 품절된 건 시인ㆍ소설가 장정일이 쓴 『팔레스타인을 생각한다』였습니다. 팔레스타인 문제에 관한 책자를 많은 사람들이 찾았다는 사실이 기쁘고 다소 안심되면서, 이 또한 슬프기도 했어요.
서울국제도서전 마티 부스와 배지 ⓒ마티
마티 하면 이제 ‘앳 시리즈’를 떼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앳 시리즈’를 통해 연결된 독자분들이 계실 것이라 짐작됩니다. 독자와의 연결이 감각되는 순간에 관해 좀 더 듣고 싶어요.
‘앳 시리즈’ 다섯 번째 책인 『우울: 공적 감정』을 내고 같이 책을 읽는 2회짜리 모임을 열었어요. 다양한 정체성, 직업, 이력을 가진 분들이 참여하셨고요. 우울을 개인적ㆍ병리적 상태가 아니라 사회적ㆍ역사적 맥락에서 이해해야 할 공적 감정으로 논하는 만큼, 공사의 구분을 넘어 경험과 생각을 주고받았습니다. 독자분들이 자신의 활동, 일상, 관심사와 텍스트를 밀접하게 연결 지은 내용을 들려주셨고, 소위 ‘사적인’ 얘기도 약간은 다르게 대했다는 느낌이 들어 인상적이었어요. 얼마 전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에서 얼굴이 낯익은데 어디서 봤나 모르겠는 분과 마주쳤는데, 우울 읽기 모임 참여자였음이 기억났어요! 그때 했던 이야기들도 떠오르고 싱겁게 혼자 내적 반가움과 친밀감을 쌓았어요. 또 그분이 한 사회운동 단체 블로그에 쓴 글도 보게 됐는데, 같은 책들을 읽어가며 비슷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이 망해가는 지구에서 함께 분투 중인 동료라는 감각이 느껴져 힘을 얻기도 했습니다. ‘탄핵 광장’ 시기의 우울을 『우울: 공적 감정』을 통해 나눴듯, 가자지구 ‘집단학살 2년’의 우울 또한 이런 책들의 독자들과 간접적인 방식으로나마 나누는 듯해요.
서울국제도서전 이후 발행된 뉴스레터 <마티의 각주> 111호는 “서점인이 참여하는 도서전을 제안합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뉴스레터에서 출판사 현장 판매 방식을 벗어난 도서전을 그려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현실적인 제약을 잠시 내려놓고 편집자님이 기획자가 된다면 시도해 보고 싶은 도서전은 어떤 모습인가요?
마티의 서성진 편집자가 쓴 레터입니다. 발행 전 테스트 메일을 보고 동의와 공감을 하면서 ‘아, 한개 출판사보다 더 큰 데로, 출판행정가로 나가야 할 인재다!’라고 느꼈어요.(웃음)
출판계의 가장 큰 행사를 기획해 보라니 여러 상상을 하게 되는데요. 그중 현재 형태와 비슷한 더 현실적인(?) 버전으로 생각해 볼게요.(ㅎㅎ) 우선 페어 형태 행사가 흥하고 늘어나는 게 뭘 의미하는지 장단기적으로 따져봐야겠습니다. 많고 많은 저자, 독자, 출판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기회이고 우리가 같이 다뤄야 할 문학ㆍ출판ㆍ학술계의 의제나 이슈가 많은데도, 왜 진지하고 흥미 있게 논의하는 자리를 만들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최근 도서전 프로그램은 대체로 규모만 다른 신간 북토크 같았다는 인상이기도 합니다. 재밌었다고 기억에 남은 게 주제가 ‘변신’이던 2017년 도서전이에요. ‘서점의 시대’라는 주제로 20여 개 독립서점이 참가했고, 출간 도서의 분야와 색깔이 분명한 중소 출판사들을 모아 ‘책의 발견전’도 열렸습니다.
그래서 대형 독립 부스들의 공간을 줄여 주제어 및 “국제”라는 이름과 관련된 물리적인 영역을 대폭 키우고, 주제 연계 프로그램도 늘리고 싶어요. 일반 부스들 쪽에도 일종의 큐레이션이 필요하겠고요. 출판 시장과 문화를 논할 때 으레 보는 연사들이 아닌 젊은 비평가와 학자들을 섭외하고, 지금 출판노동을 하고 있는 편집자ㆍ마케터ㆍ디자이너 선후배가 대화하는 자리 등을 꾸려보고 싶습니다. 도서전에 독자를 위한 자리를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이런 대화들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뉴스레터 <마티의 각주> 111호 ⓒ마티
마티는 독자만큼이나 동료에 대한 애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합니다. 민생소비쿠폰이 발행됐을 때 주변 출판인들에게 ‘애착 동네서점’을 소개받아 공유하는 SNS 이벤트를 진행하거나 출장길에 만난 지역 서점을 소개해 주시기도 하고요. 뉴스레터 <마티의 각주>가 독자뿐 아니라 “출판업 자체에 회의를 느끼거나 책의 미래를 어둡게 내다보는 출판인들에게도 가닿았”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마티의 시선이 독자만큼이나 동료를 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애착 동네서점’ 이벤트, 지역 서점 소개를 비롯해 성진 편집자님이 독립서점과의 교류에 꾸준히 관심 두어왔어요. 저도 동참하고 배우고 싶은 활동이에요. ‘그 서점’에 가기 위해 그 지역을 가는 일도 재밌고요. 한데 서점에 가서 ‘안녕하세요? OO 편집자입니다’라고는 입이 (아직까진) 아예 떨어지지 않는 문제가 있긴 합니다.
저의 경우 원고를 편집하면서 동료가 꼭 틀림없이 필요해요. 회사가 크든 작든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료는 한 명이거나 없는 환경에서 일해온 영향도 있을 텐데요. 혼자서는 불안이나 답답함이 해소되지 않을 때가 많으니 의견을 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직간접) 동료를 찾게 됩니다. 내가 좋아하는 책, 참고하는 책을 만들거나 소개하거나 판매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궁금해지고, 그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게 되고, 관련된 행사가 열리면 가보고, 멋대로 ‘동료 의식’ 같은 걸 품고서 나도 그 책과 만드는 사람에 대해 자주 말하게 되고 같이 읽고 가자고 주변에 권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계속 책을 읽고 만드는 동력을 얻기도 합니다. 음, 책이 점점 더 안 팔려서 서로서로 북돋을 필요가 커지는지도요…….
마지막으로 자랑하고 싶은 동료 출판인 혹은 서점의 활동이 있을까요?
인문, 사회과학, 과학, 문학 등 다양한 분야의 책에 대한 밀도 있는 서평을 2주 간격으로 발행하는 ‘책과참치’ 계정(@booksnchamchi)은 한국과 한국 바깥의 “출판독서 문화를 탐사하고 책 바다를 항해”하다 찾은 흥미롭고 유익한 소식을 많이 전해줍니다. 다른 나라의 출판 동향과 책ㆍ서점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넉넉해요. 구독과 팔로우 추천해요.
그리고 내부 기획도 끼워 넣어보면…… 『계속 읽기』를 쓴 한유주 소설가가 재미있는 행사를 열어요. 책을 읽어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책을 버리지 못하고 짊어지고 사는지 알 수 있는데요. 이번에 ‘집을 바꿀 수 없어 책과 작별합니다’라는 이름으로 소설가의 책 벼룩시장이 열립니다(브레인스토밍 단계에서는 ‘한유주 구출 프로젝트’였던 것). 오시면 저자의 북토크가 아닌 ‘책 토슨트 해설’을 들을 수 있어요!
요즘 독서 생활 탐구
우리는 요즘 책을 통해 어떻게 만나고 있을까요? 온갖 종류의 콘텐츠가 범람하는 오늘날 변함없이 책을 읽고, 책을 통해 연결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유한 방식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는 뉴스레터, SNS, 출판사와 서점, 북페어 운영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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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 공적 감정
출판사 | 마티
우리가 언제 죽을지, 어떻게 들려줄까
출판사 | 마티
마지네일리아의 거주자
출판사 | 마티
진정성이라는 거짓말
출판사 | 마티
계속 읽기
출판사 | 마티
박소미
뒷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그림을 보면 쉽게 눈을 떼지 못하고 저장해 둡니다. 그 사람들...어떤 얼굴 하고 있을까요? 그래서 읽고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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